중앙루터교회 최주훈 목사가 '명화'를 주제로 연재를 합니다. 연재는 격주 수요일 발행합니다. - 편집자 주  
기독교 미술

기독교 역사에서 시각예술은 출발 자체가 버거웠던 게 사실입니다. 십계명의 우상숭배 금지 조항을 신이 명한 형상 금지 명령으로 믿었기에, 유대교와 초기 기독교에서 신(하나님)에 대한 그림이나 형상이 직접적인 예술품으로 발전하기 어려웠습니다. 실제로 가장 이른 시기 그리스도교 작품이라야 로마의 카타콤베나 시리아의 두라-유로포스 같은 곳에서 간간이 발견되는 정도입니다. 게다가 그 어디서도 성부 하나님 형상은 찾을 수 없고, 혹여 성자의 모습이라고 해도 목자나 양처럼 은유적인 방식만 사용될 뿐이었습니다. 

하지만 박해의 시대가 끝나고 4세기 기독교가 제국의 공인 종교로 인준되자 교회 예술은 과감해지기 시작합니다. 그중에서도 가장 눈에 띄는 분야는 '성상(聖像)'이라고도 부르는 아이콘(icon)일 겁니다. 지금이야 '아이콘!' 하면, 어떤 분야를 대표하거나 그 분야에서 최고인 사람, 사물을 이르는 말이지만, 원래는 초상화 또는 형상을 의미하는 그리스어라서 기독교에선 '성상' 아니면 원어 그대로 '이콘'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이콘의 역사는 '성상 파괴' 운동과 함께 복잡하게 얽혀 있습니다만, 동방교회나 일부 개신교에선 여전히 그 의미와 가치를 이어 오고 있습니다.

'만물의 통치자'

현존하는 이콘 가운데 가장 특별한 종류는 그리스도의 형상을 담은 판토크라토르(Pantocrator: παντοκράτωρ)입니다. 판토크라토르는 '만물의 통치자', 또는 '전능자'라는 뜻의 그리스어로, 그리스도의 모습을 담은 이콘을 통칭하는 말입니다. 굳이 오래된 교회당이 아니더라도 흔히 볼 수 있는 그리스도의 이미지입니다. 

그중에서 가장 오래되고 특별한 이콘을 하나 소개해 볼까 합니다. 아래의 이콘은 이집트 동부의 시나이 사막 한가운데 있는 카타리나 수도원의 이콘입니다. 5~6세기 작품으로 추정되지만, 1950년대에 이르러서야 발견되었으니, 거의 1500년 동안 모래바람 속에 갇혀 있다 나타난 셈입니다. 단지 오래되었다거나 이집트 동부 지역을 휩쓸던 8세기 성상 파괴 사건을 피해 살아남았기 때문에 특별하다는 말은 아닙니다. 

작가 미상. 카타리나 수도원의 '그리스도 판토크라토르'. 사진 출처 wikipedia.org
작가 미상. 카타리나 수도원의 '그리스도 판토크라토르'. 사진 출처 wikipedia.org

당신이 고대 어느 오래된 교회당 안에 들어가 이 그림 앞에 서 있다고 상상해 보세요. 5세기 가장 세계적인 도시라고 자랑하던 콘스탄티노플이라 해도 그 흔한 TV나 태블릿, 건물 외벽을 가득 채운 LED 광고판 같은 건 없었습니다. 사람이 만든 신의 이미지, 그의 아들을 그리거나 조각한 이미지는 어디서도 볼 수 있던 시대입니다. 그런 시대에 간절한 기도의 제목을 들고 교회당 안에 들어가 이콘을 보게 된다면 그야말로 경이로운 충격이었을 겁니다. 사람들이 교회 안에 들어가 이콘 앞에 무릎 꿇고 입을 맞추는 행동은 누가 하라고 해서 하는 일이 아닙니다. 그런 행동은 지극히 자연스럽게 우러나는 몸의 기도였고, 경외감의 반응입니다. 그들에게 이콘은 신의 세계에 좀 더 가까이 이르는 통로로 여겨졌을 겁니다.

후광

당신이 5세기 예배자가 되어 이 그림을 만나 보길 권합니다. 눈으로 보고 감각으로 느끼며 좋고 나쁨을 판정하는 데 그치지 말고 그림 안에 담긴 여러 상징과 은유들을 하나하나 읽어 봅시다. 그리스도의 모습입니다. 그분의 섬세한 오른손이 당신의 축복을 위해 들려 있고, 그분의 왼손은 화려하게 장식된 복음서를 들고 있습니다. 그분의 후광은 누구의 것보다 크고 밝은 황금빛입니다. 실제로 금장이었을 겁니다. 게다가 이 후광엔 십자 모양이 새겨 있어서 그리스도라는 것을 단박에 알립니다. 

옛사람들에게 후광은 단순한 빛이 아닙니다. 후광은 '구멍'입니다. 단순한 구멍이 아니라 이 세계 사람들이 저 세계를 볼 수 있는 틈새입니다. 즉 후광은 땅의 사람들이 하늘을 볼 수 있게 하는 통로의 상징입니다. 이런 이유로 예술가들은 후광을 거룩한 이들에게만 그렸고, 그중에서도 그리스도의 후광은 가장 큰 것으로 처리합니다.

그림 상단 좌우편에 빛나는 별이 떠 있습니다. 작가는 별 주위에 둥근 모양으로 빛을 찍어 놓았습니다. 숫자를 세어 보면 각각 여덟입니다. 여덟 개의 빛은 안식 후 첫날(제8일), 즉 부활하신 그리스도가 제자들과 이 그림 앞에 서 있는 당신에게 나타났음을 뜻합니다.

비대칭 얼굴

이 그림이 정말 특별한 점은 그리스도의 얼굴이 비대칭이라는 대목입니다. 잘 보세요. 왼편과 오른편 얼굴이 다릅니다. 머리 맵시도 다릅니다. 한쪽은 단정하게 어깨 뒤로 넘겨 있지만, 다른 쪽은 어깨 아래까지 흘러내려 있습니다. 서로 다른 두 사람을 합성해 놓은 걸까요? 얼굴 반을 가리고 비교해 보면, 한쪽은 온화하고 다른 쪽은 엄숙합니다. 많은 이가 이것을 두고 그리스도의 두 본성을 상징한다고 설명합니다. 즉 왼쪽 얼굴은 거칠고 엄숙한 신적 속성을, 반대편은 온화하고 다가가기 쉬운 그분의 인간성을 보여 주기 위함이라는 것이지요. 

이 작은 이콘에서 고대 교회 교인들이 가졌던 신앙을 발견합니다. 그들은 십자가에 달려 8일 만에 나타난 예수를 평화와 기쁨을 선포하는 분으로, 엄위한 심판과 온화한 은총으로 온 세상을 통치하는 만유의 통치자, '판토크라토르'로 믿었던 것이지요. 1500년이 지난 지금, 예수쟁이라며 열심히 교회 다니는 우리는 그를 어떤 분이라고 설명할 수 있을까요? 당신에게 예수는 누구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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