엊그제 취재차 예전에 다녔던 대학에 다녀왔어요. 거의 2년 만에 다시 찾았는데, 그새 많은 게 바뀌어 있더군요. 본관 건물에는 한자로 적힌 간판 대신 세련된 영어 간판이 붙었고, 1층 로비 한쪽 벽에는 기부자들의 이름이 적힌 '명예의 전당'이 생겨 있더라고요. 가장 놀랍고도 심술이 났던 것은 캠퍼스 한쪽에 위치한 카페 건물이었어요. '저 때'는 나무 구조물에 비닐 천막 같은 것이 덮여 있는 형태여서(기억이 가물가물하네요) 겨울이면 덜덜 떨면서 커피를 마시곤 했는데, 이제는 통유리로 쾌적하게 리모델링됐더라고요. 졸업하고 나면 학교가 더 좋아진다는 말은 진리인 것 같습니다. 

그 아늑한 카페에 앉아 일을 하다가, 오래전 동기 한 명을 만났어요. 정말 오랜만에 다시 만난 터라 그동안 어떻게 지냈는지 안부를 주고받았는데, 그 친구가 내년에 신학대학원에 진학한다고 하더라고요. 사정이 있어서 졸업을 하고 몇 년 쉬다가 이제 다시 공부를 해 보려고 마음먹었다고요. 그 친구는 무척 진보적인 성향은 아니지만 학내 사태 때 농성도 열심히 하곤 했기에 농담 반 진담 반으로 "왜 여기에서 목사를 하려고 하느냐"고 되물었어요. 친구의 이야기를 정리해 보자면, 이전까지 당연하게만 생각해 왔던 교단의 여러 신학적 입장에 대해 한 번쯤 치열하게 공부하고, 직접 부딪혀 보고 싶다는 거였어요. 그러고 나서 다른 목소리를 내는 교회를 만들고 싶다고요. 응원하고픈 마음이 들더라고요. 

오랜만에 찾은 학교에서, 그리고 옛 친구와의 대화에서, 바뀌지 않을 것만 같았던 것들이 시간이 지나면 변화하기도 한다는 걸 새삼 느꼈어요. 그 친구에게 "내년에 신대원 가면 여성 안수 통과되도록 네가 목소리 좀 열심히 내라"고 신신당부를 했는데, 혹시 모르죠. 내년, 아니 3년 안에 보수 장로 교단에서도 여성 안수를 도입하게 될지도요. 성소수자를 지지했다는 이유로 교회에서 사임 압박을 받고, 성소수자 환대 목회를 했다는 이유로 교단에서 출교당하는, 분노할 수밖에 없는 현실이 이어지고 있지만 그 안에서도 변화는 이뤄지고 있을 거라고 믿습니다. 그렇게 생각하니 당장의 참담한 마음도 조금은 누그러지는 것 같네요. 

편집국 수진

이동환 목사 '출교' 재판 일지, 꼼꼼히 정리했습니다

2023년 12월 8일, 기독교대한감리회(감리회·이철 감독회장) 경기연회 재판위원회(박영식 위원장)가 '성소수자 환대 목회'를 펼쳐 온 이동환 목사(영광제일교회)를 '출교'했습니다. 퀴어 문화 축제에서 성소수자를 위해 축복기도를 하는 것은 '동성애 찬성 및 동조'에 해당하며, 교단에서 쫓아낼 만한 범죄였다는 것입니다.

한국교회에는 성소수자에 대한 일방적인 정죄와 허위 정보가 퍼져 있을 뿐, 이들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목회적 입장은 무엇인지 등을 진지하게 논의하지 않아 왔습니다. 이런 가운데 펼쳐지는 이동환 목사의 '종교재판'은 기록할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고, 올해 5월부터 시작된 재판을 모두 찾아 기록해 왔습니다. 종교재판이 어떻게 흘러왔는지, 그 가운데 발생한 문제는 무엇이었는지 등을 정리했습니다.

또다시 시작된 고발

· 이동환 목사는 2022년 10월, 감리회 총회 재판위원회에서 '정직 2년'을 확정받았습니다. 제2회 인천 퀴어 문화 축제에서 '성소수자 축복식'을 한 것이 '동성애 찬성 및 동조'에 해당한다는 것이었습니다. 

· 2022년 11월, 권면서가 날아왔습니다. 감리회 설 아무개 목사 외 11명이 총회 재판이 끝나자마자 '추가 고발'을 위한 권면서를 보낸 것입니다. 이동환 목사가 소셜미디어와 언론 인터뷰로 감리회를 모함·악선전하고, 동성애를 찬성 및 동조하고 있으니 회개하라는 내용이었습니다.

· 2023년 3월 6일, 고발장이 접수됐습니다. 감리회 내 반동성애 진영은 경기연회 심사위원회에 이동환 목사를 고발했습니다.
  - [논란] 교리와장정에 따르면 '동성애 찬성 및 동조'는 '범행으로 인한 피해자'만 고소할 수 있는 범죄로 규정하고 있어 '고발'은 불가능합니다. 
  - [재판부] 재판위원회는 12월 13일 판결문에서 "동성애 찬성·동조 행위는 감리회 교인이라면 누구나 피해자라고 인정할 수 있는 범과"이므로 고발 자체에 문제는 없다고 밝혔습니다.

· 2023년 5월 25일, 이동환 목사는 심사위원회에 피고발인 신분으로 출석해 조사를 받았습니다.
  - [논란] 심사위원회는 이동환 목사에게 '위반 규정' 항목만 알려 줬을 뿐 구체적인 '혐의'에 대해서 알려 주지 않았습니다. 언제, 어디서, 무슨 이유로 고발당했는지도 모른 채 나와 조사를 받아야 했습니다.

· 2023년 6월 8일, 심사위원회가 이동환 목사를 기소했습니다. 이 목사의 담임목사 직무도 정지됐습니다.

지난한 재판

· [무산] 2023년 6월 27일, 1차 재판이 열렸습니다. 
  - [논란] 첫 재판이 열렸는데, 재판위원장이 박인환 목사에서 박영식 목사로 변경됐습니다. 반동성애 세력 고발인들이 박인환 목사가 이동환 목사에게 편향적일 것이라며 교체를 요구한 겁니다. 그러나 규정상 '고발인'은 재판위원장 교체를 요구할 수 없습니다. 뒤늦게 잘못을 깨달은 경기연회는 재판위원장 교체를 번복하고 다시 재판위원장을 박인환 목사로 변경했습니다.

· [무산] 2023년 7월 10일, 2차 재판이 열렸는데, 이번에도 무산됐습니다. 심사위원과 고발인이 '같은 지방회' 소속이라는 것이 뒤늦게 드러났기 때문입니다. 교리와장정은 심사의 공정성을 위해 이를 금지하고 있습니다.

· 2023년 7월 24일, 3차 재판이 열렸습니다. 심사위원과 고발인이 같은 지방회 소속임에도 재판이 강행됐습니다. 재판부는 양측 의견을 들은 후 공소기각 여부를 결정하겠다고 했습니다. 

· 2023년 7월 31일, 4차 재판에서는 심사위원회가 잘못(고발인과 심사위원이 같은 지방회 소속인 것)을 인정하고 공소를 취소하겠다는 의사를 밝혔습니다. 

· 2023년 8월 3일, 경기연회 재판위원회가 공소기각을 선고하고 재판이 끝났다고 통보했습니다.

종결한 지 한 달 만에 다시 살아나시고… 

· 2023년 9월 19일, 심사위원회가 이동환 목사를 재기소했습니다. 이미 자신들이 철회한 사건이지만, 기소를 '부활'시켰습니다. 문제가 된 위원을 교체했다는 겁니다.
  - [논란] 이동환 목사는 이미 끝난 사건을 되살릴 수 있느냐고 재판 과정 내내 문제를 제기했습니다. 처음부터 고발장 제출, 화해조정위원회 개최, 심사위원회 심사 등을 거쳐 기소 여부를 결정하지 않는 게 말이 되느냐는 것이었습니다.
  - [재판부] 재판위원회는 그렇게 하면 "고발인들에게 너무 가혹하다"는 황당한 이유를 판결문에 적었습니다. 정작 담임목사의 직무가 정지되고 불이익을 받는 이동환 목사에 대한 언급은 없었습니다.

· [무산] 2023년 10월 13일, 5차 재판은 경기연회 사무국의 어이없는 실수로 무산됐습니다. 공문 날짜에 재판 기일을 잘못 적어 '10월 5일' 출석하라는 공문을 '10월 5일'에 보낸 것입니다. 이동환 목사는 새롭게 잡힌 10월 24일 재판에는 응하지 않았습니다.

재판다운 재판은 언제쯤?

· 2023년 11월 10일, 6차 재판이 열렸습니다. 이번에는 박영식 재판위원장이 "교리와장정에 어긋난 일을 했으니 고발당한 것 아니냐"며 이동환 목사 탓을 하는 발언으로 물의를 빚었습니다. 

· [무산] 2023년 11월 23일, 7차 재판은 또 경기연회의 행정 실수로 연기됐습니다. 증인신문 질문지를 재판 1주일 전 양측에 보내 주기로 약속했는데, 이 서류가 11월 22일에서야 전달된 겁니다. "준비할 시간도 주지 않고 어떻게 재판에 임하느냐"는 항의가 이어졌습니다.

· [출교 구형] 2023년 11월 30일, 결심공판이 열렸습니다. 이날 증인신문 후 열린 결심공판에서 심사위원장은 이동환 목사에게 출교를 구형했습니다. 감리회가 내릴 수 있는 가장 강력한 처벌입니다. 이동환 목사는 "그리스도의 사랑이 모든 혐오를 이긴다는 것을 증명해 달라"는 최후진술을 낭독했습니다. 
  - [논란] 마지막 재판에서도 절차 하자는 이어졌습니다. 증인신문은 심사위원장이 해야 하지만, 이를 고발인 측에서 맡았습니다. 이는 형사 법정에서 검사가 해야 할 일을 고발인이 하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이 목사 측은 심사위원회가 소속 목사를 출교시킬 정도의 결기를 가졌다면, 재판도 꼼꼼하게 직접 준비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 비판했습니다.

출교

· 2023년 12월 8일, 재판위원회는 이동환 목사에게 출교를 선고했습니다.

[양형의 이유]

피고발인은 동성애를 찬성하거나 동조하는 행위에 대해 사실관계를 인정하지만 찬성하거나 동조하는 행위는 아니라고 주장하는 한편 동성애를 찬성하거나 동조하는 행위를 범과 행위로 규정한 교리와장정이 잘못되었다고 주장하는 등 교리와장정을 부정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또한 동성애를 찬성하거나 동조하는 행위로 종전 총회 재판이 진행되는 중에 자숙하지 않고 계속 유사한 행위를 하였기 때문에 다시 범과를 저지를 가능성 또한 매우 높다. 마지막으로 종전 동성애를 찬성하거나 동조하는 행위에 대해 정직 2년의 징계를 받았음에도 또 다시 동일한 범과를 저지른 부분에 대해서는 엄한 징계가 필요하다고 재판위원회는 판단하였다.

따라서 위와 같은 정상을 참작하여 주문과 같이 판결한다.

재판위원장 박영식
재판위원 김진우 소재송 손진성 최수현 진영탁

 

교리적 이유로 감리회 목사가 '출교'된 것은 1992년 변선환 전 감리교신학대학교 학장의 출교 이후 처음 있는 일입니다. 변 전 학장은 종교다원주의를 주장한다는 이유로 교단에서 파문당했습니다. 이동환 목사는 성소수자를 환대하고, 그들을 축복했다는 이유로 교단에서 내몰릴 위기에 처했습니다.

이동환 목사는 총회 재판위원회에 항소하고, 법원에도 그간 겪은 절차적 하자 등을 호소하며 대응해 나갈 계획입니다. 각계각층에서 '성소수자 환대 목회'를 펼치다 고난을 당하고 있는 이 목사를 지지하고, 응원하고, 연대하겠다는 목소리를 연달아 내고 있습니다.

앞으로 펼쳐질 총회 재판도 꼼꼼히 취재하겠습니다.

편집국 승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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