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여민회 26회 종교개혁제에는 여성 목회자와 활동가 30명이 참석했다. 뉴스앤조이 엄태빈
기독여민회 26회 종교개혁제에는 여성 목회자와 활동가 30명이 참석했다. 뉴스앤조이 엄태빈

[뉴스앤조이-엄태빈 기자] 기독여민회(여혜숙 회장)가 11월 8일 서울 영등포산업선교회에서 '참사와 사회적 고통 앞에 선 그리스도인'이라는 주제로 제26회 종교개혁제를 열고, 연달아 발생하는 사회적 참사 앞에서 여성 목회자와 활동가들이 어떻게 하면 '사회적 영성'을 지닌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갈 수 있을지 논의했다. 

1993년 시작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는 기독여민회 종교개혁제는, 교회와 사회에서 억압받는 이들의 해방과 생명의 가치를 소중히 여기는 여성주의 기독 문화 창출을 위한 활동이다. 종교개혁 정신으로 한국 사회와 교회의 대안을 모색한다. 기독여민회는 이뿐만 아니라 사회적 약자들과 함께하는 금요 밤 기도회 '공명', 여성주의 연합 예배, 선순화 읽기 모임 & 세미나 등의 활동을 통해 교회·사회 개혁을 위해 힘쓰고 있다. 

사회자로 나선 기독여민회 이현아 정책위원장은 삼풍백화점, 대구 지하철 참사, 세월호 참사, 이태원 참사, 오송 지하 차도 참사 등 한국 사회의 수많은 사회적 재난을 언급하며 "진상 규명, 책임자 처벌, 대책 마련, 구조적 문제에 대한 해결 의지 없이 안일하게 처리된 사회적 참사는 또 다른 참사의 고통을 불러왔다. 사회의 아픔을 공동체의 문제로 받아들이지 못한 교회는 참사를 외면하고 혐오했다. 바뀌지 않는 현실에 현장 활동가들은 의미를 잃고 무기력감을 느끼기도 한다"며 이러한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이번 종교개혁제를 준비했다고 전했다.

심도학사 소속 신학자인 정경일 박사는 세월호 참사 유가족과 오랜 시간 함께했다. 뉴스앤조이 엄태빈
심도학사 소속 신학자인 정경일 박사는 세월호 참사 유가족과 오랜 시간 함께했다. 뉴스앤조이 엄태빈

이날 '재난 속의 기쁨: 사회적 우애'라는 제목으로 강연한 4·16생명안전공원예배팀 정경일 박사는, 각종 현장의 최전선에서 고군분투하고 있는 활동가들을 격려하고 위로했다. 정 박사는 알베르 카뮈의 <페스트> 중 등장인물 리유와 타루가 해수욕하는 장면을 인용하며 우정이 재난을 견디게 한다고 말했다. 그는 "기독교 사회운동의 언저리에 있으면서 스스로도 지칠 때가 있고, 주변에도 지쳐 있는 사람이 많다. 하루는 '사회운동가들이 어떻게 아프기 전에 서로를 돌보면서 계속 운동을 해 나갈 수 있을까' 생각했다. 우정과 우애야말로 재난 속에서 기도하고 누군가를 돌볼 수 있는 힘의 원천인 것 같다. 누군가 지쳐서 싸우지 못할 때, 그래서 괴로워하고 있을 때 '너는 잠깐 쉬어. 내가 싸울 테니까'라고 말하는 연대가, 강한 자들의 힘이 아니라 취약한 이들의 우애가 세상을 지킨다"고 했다. 

정 박사는 지더라도 활동을 계속해 나가는 것은 지연 행동으로써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우리가 하는 활동과 행동은 이기는 싸움이 아니라 파괴 속도를 늦추는 것이다. 세월호 참사, 이태원 참사, 강정마을, 김용균법, 노란봉투법, 남북 평화와 환경 보전을 생각해 보면 우리는 계속 져 왔다. 이기지 못했다. 지난 몇십 년 동안 계속 실패했지만, 싸우지 않았다면 우리 세상은 어떻게 됐을까. 우리가 포기하고 버티지 않았다면 이 세상은 정말 지옥이 돼 있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우리의 행동은 파괴를 지연하는 측면에서 매우 유의미하다"고 했다.

지난 10월 29일 이태원 참사 1주기에 열린 4대 종단 연합 기도회에서 개신교 기도회를 인도한 김민아 박사. 뉴스앤조이 엄태빈
지난 10월 29일 이태원 참사 1주기에 열린 4대 종단 연합 기도회에서 개신교 기도회를 인도한 김민아 박사. 뉴스앤조이 엄태빈

기독교사회선교연대회의 집행위원장 김민아 박사는, 인간이 처음 마주하는 상황에 대한 설명과 상처의 치유는 오랜 시간 종교의 영역이었다고 했다. 그는 "2022년 10월 29일 발생한 이태원 참사는, 여전히 국가의 부재 상황임을 증명했다. 이런 때일수록 개신교인들의 역할과 책임은 크고 분명하다. 국가가 부재한 곳에 신이 존재한다. 개신교인은 신의 자리에 함께해야 한다. 유가족들은 △진정한 사과 △철저한 책임 규명 △참사 피해자 소통 보장 및 인도적 조치 등 지원 △희생자에 대한 온전한 기억·추모 △2차 가해 방지를 위한 구체적 대책 마련 등 6개 사항을 요구했지만, 1년이 지난 현재까지 제대로 이뤄진 조치는 단 하나도 없다"고 말했다. 연대는 국가에 대한 피해자들의 구체적 요구 사항들을 채워 나가는 것으로, 요구가 이뤄질 때까지 계속 함께해야 한다고 했다. 

이태원 참사 유가족을 만나며 느낀 개인적 소회도 나눴다. 김 박사는 "나는 목사가 아니고 평신도다. 그런데 유가족들을 만나면 꼭 '목사님'이라는 호칭을 듣는다. 처음에는 '저는 목사가 아닙니다'라고 말했지만 이제는 '네, 저 여기 있어요'라고 대답한다. 내가 목사가 아니라는 말에 유가족이 실망하는 듯한 느낌을 받기 때문이다. 그들은 왜 목사님을 찾게 되는 걸까. 희생자나 유가족이 가진 종교와는 무관하게 목사님이 줄 수 있는 위로와 용기의 무게가 다르기 때문일 것이다. 실제로 유가족들은 힘든 일이나 요청할 것이 있으면 가장 먼저 종교인들을 찾는다. 그 자리에 진짜 목사님이 많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발제자들의 강의 후, 참석자들은 둘러앉아 사회적 참사와 관련한 자신의 이야기를 나눴다. 뉴스앤조이 엄태빈
발제자들의 강의 후, 참석자들은 둘러앉아 사회적 참사와 관련한 자신의 이야기를 나눴다. 뉴스앤조이 엄태빈

이날 참석자들은 사회적 참사와 관련한 여러 경험을 공유했다. 한 참석자는 자신의 남동생이 5·18 민주화 운동 때 겪은 고문으로 아직까지도 가족들이 고통을 겪고 있다며 "우리 가족은 어디 가서 이런 일을 겪었다고 이야기를 할 수 없었다. 그래서 유가족들의 말 못 할 고통을 나누기 위해 세월호 참사 유가족들과 함께했다"고 말했다. 

화상회의 플랫폼 줌으로 참여한 다른 참석자는 자신을 지방에 사는 목회자라고 소개했다. 그는 그동안 참사를 구경꾼이나 관중의 입장에서 바라봤던 것 같다고 말했다. "희생자를 생각하며 울고 기도했지만, 그동안 교회가 기득권자의 편에서 희생자의 얘기를 수용하지 못하게 했던 것을 알기 때문에 목소리를 내는 것이 조심스러웠다. 오늘 강연을 들으며 유가족에게 진정한 사과가 필요하다는 것을 다시 한번 깨달았고, '내 자리에서 과연 어떻게 행동해야 할까' 하는 고민이 생겼다"며 앞으로 계속해서 참사를 기억하고 행동하겠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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