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별과혐오없는평등세상을바라는그리스도인네트워크가 주최한 트랜스 퀴어 신학자 로베르토 체 에스피노자 박사의 '신학을 정치화하기' 강연이 5월 10일 서울 중구 새길기독사회문화원에서 열렸다. 뉴스앤조이 최승현
차별과혐오없는평등세상을바라는그리스도인네트워크가 주최한 트랜스 퀴어 신학자 로베르토 체 에스피노자 박사의 '신학을 정치화하기' 강연이 5월 10일 서울 중구 새길기독사회문화원에서 열렸다. 뉴스앤조이 최승현

[뉴스앤조이-최승현 기자] <되어 가는 몸 Becoming Bodied>과 <활동가 신학 Activist Theology> 등을 저술하고, 신학과 운동을 연결하는 데 앞장서 온 트랜스 퀴어 신학자 로베르토 체 에스피노자(Roberto Che Espinoza) 박사가 한국을 찾았다.

에스피노자 박사는 5월 10일 차별과혐오없는평등세상을바라는그리스도인네트워크가 주최한 '신학을 정치화하기: 신체들, 그리스도교, 그리고 퀴어니스' 행사에 강사로 참석해, 차별과 혐오의 논리가 지배하는 헤게모니에 균열을 내기 위해 더 많은 사람이 연대해야 한다고 말했다. 서울 중구 새길기독사회문화원에서 열린 이번 행사에는 에스피노자 박사를 만나기 위해 50여 명이 현장을 찾았다. 통역은 박희규 교수(이화여대)가 맡았다.

현재 듀크대학교 신학대학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는 에스피노자 박사는 FTM(Female to Male) 트랜스젠더이자 논바이너리(Non-binary) 정체성을 갖고 있다고 스스로를 소개했다. 20년 전 커밍아웃했지만 성 정체성은 단번에 바뀐 게 아니라 여전히 "되어 가는 중(becoming)"이며, "다른 세계가 되는 중"이라고 설명했다.

에스피노자 박사는 "나는 아직도 완성되지 않았다. 나의 성 정체성뿐 아니라 나의 몸 역시 되어 가는(becoming) 과정에 있다"면서 '되어 가는' 과정 자체가 '길을 찾는' 여정인 그리스도교와 연결될 수 있다고 말했다.

"퀴어는 평생 자기 자신을 찾아서 헤맨다. 그런 점에서 퀴어는 신과 연결돼 있다. 우리는 예수님과 다른 영적 지도자들이 그랬던 것처럼, 기존 권력 구조에 위협이 되는 정치적인 몸들이다. 신은 우리 몸에서 그 길을 보여 주셨다."

'정통'이라 불리는 제도권 교회는 규범과 가치를 내세워 정통과 비정통을 구분하고, 어떤 가치가 성경적인지 반성경적인지를 나누어 판단하는 데 익숙하다. 그러나 에스피노자 박사는 그것이 제국주의적인 발상에서 사람을 통제하고 지배하기 위해 나온 가치는 아닌지 의문을 가져야 한다고 말했다.

퀴어한 존재가 공동체 속에서 새로운 씨앗을 틔우고 균열을 낸 것처럼, 그리스도인들은 제국주의적 논리가 지배하는 세상이 아닌 '다른 세계'가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 주는 모델이 '되어 가야' 한다고도 말했다. 이것은 그가 펼쳐 온 '활동가 신학', 즉 신학을 정치화하고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내는 것과도 연결돼 있다.

"미국에서 기독교는 기독교민족주의 또는 백인우월주의를 의미할 때가 많다. 그래서 나는 스스로를 '도를 따르는 사람(follower of the way)'라고 정의하고 싶다. 기독교는 길이기도 하고 과정이기도 하고 되어 가기도 한다. (반면) 제도권 교회는 교리를 이용해 규범에 따르지 않는 사람들을 고립시켜 왔다. 정통이라는 것은 승리한 신화이자 제국이 지지하는 신화일 뿐이다. 정통에는 윤리적 차원이 없고, 규범과 독단만이 있다. 제국과 종교가 함께한다고 넓은 영성이나 존재의 길이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나는 규범에 관심이 없다. 규범은 우리 몸을 통제하고 다른 사람을 통제하고 식민화하는 행위다."

에스피노자 박사는 트랜스젠더이자 논바이너리 정체성을 지닌 신앙인으로, 역사의 바닥에 있는 이들에게 관심 갖는 신학자다. 그는 정통과 규범이라는 이름으로 다양한 사람을 억압하는 질서를 재편하기 위해 함께 협력해 나가자고 말했다. 뉴스앤조이 최승현 
에스피노자 박사는 트랜스젠더이자 논바이너리 정체성을 지닌 신앙인으로, 역사의 바닥에 있는 이들에게 관심 갖는 신학자다. 그는 정통과 규범이라는 이름으로 다양한 사람을 억압하는 질서를 재편하기 위해 함께 협력해 나가자고 말했다. 뉴스앤조이 최승현 

참석자들은 한국의 상황을 에스피노자 박사에게 공유했다. 2021년 헌법재판소가 낙태죄를 헌법 불합치 결정했지만 지금까지 대체 입법이 이뤄지지 않고 있고, 차별금지법 제정에 반대하는 보수 개신교 세력과 대형 교회가 여전히 위세를 떨치고 있는 점을 이야기했다.

에스피노자 박사는 "쉬운 답을 갖고 있지는 못하지만, 나는 희망의 사람이고, 다른 세상이 가능하다고 믿는 사람이다. 계속 이야기하고 저항하고 이어 나가야 한다"며 참석자들을 격려했다. 이어 청중에게 "다름을 안고 살아가는 우리 모두에게 실존적인 위협이 존재하지만, 우리가 바로 제국주의 권력의 전략과 통제를 불안정하게 하는 존재들이라는 점을 기억해 달라"고 말했다.

에스피노자 박사 역시 여러 차례 물리적 위협에 시달려야 했다고 말했다. 미국 의회 폭동에 가담한 그룹 중 하나로 알려진 극우 단체 '프라우드보이스(Proud Boys)'로부터 테러 위협을 받는 등, 6차례나 테러에 시달려야 했다고 했다. 에스피노자 박사는 "집을 나설 때 항상 안전하다고 느끼지 못한다. 트랜스젠더이고 퀴어라는 이유로 공격을 받았다"고 말했다. 그는 이럴 때일수록 더욱 연대해야 한다고 말했다.

또한 "이 싸움은 서양에서 하는 것이 아니라 전 지구적으로 함께해야 하는 일이다. 제국주의는 빠르게 몰락하고 있다. 우리는 공동체와 관계를 계속 연습해 나가야 한다"며 힘을 모아 함께해 나가자고 말했다.

에스피노자 박사는 "해방신학의 전통에서, '역사의 바닥(underside of history)'에 있는 이야기들에 관심을 갖고 있다. 그 바닥에 있는 사람들이 해방될 때까지 우리는 해방될 수 없다고 생각한다. 그것이 바로 내가 여기 온 이유고, 여러분과 파트너십을 맺어 전 지구적으로 윤리적인 미래를 구현해 보고 싶은 이유"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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