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앤조이-구권효 기자] 헌법재판소는 2018년 6월,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자에게 대체 복무제를 지원하지 않는 병역법 조항에 대해 '헌법 불합치' 결정을 내렸다. 이에 따라 정부와 국회는 대체 복무 제도(대체역)를 만들어 2020년 6월부터 시행하기 시작했다. 현재 대체역은 교도소·구치소 등 교정 시설에서 3년을 복무하게 돼 있다.

대체역으로 판정받는 과정은 쉽지 않다. 대체역 신청서를 제출하면 조사관과 일대일로 인터뷰를 하게 되며, 이후 대체역 심사위원회 심사를 거쳐야 한다. 본인뿐 아니라 주변인 3명의 진술서도 필요하고, 학교 생활기록부, 평화주의 신념을 증빙할 수 있는 것들을 모아서 제출해야 한다. 대체역 판정을 받고 2월 27일 입소를 앞두고 있는 김최건희 씨(28)는 "거의 6시간 동안 조사관과 이야기했다. 나는 내 이야기를 할 수 있어서 좋았다"며 웃었다.

건희 씨는 감리교신학대학교 종교철학과를 졸업한 신학생이다. 학업과 휴학을 반복하며 학부를 9년 만에 졸업했다. 오래 학교를 다니면서 그는 여러 현장에 연대해 왔다. 처음엔 감신대 동아리 도시빈민선교회를 통해 재능교육 해고 노동자들을 만났고, 이후 구룡마을에서 도시 빈민들을 만났다. 홈리스를 지원하는 일을 하며 야학 교사로도 활동했다. 장애인활동지원사로 일했고 장애 인권 현장에도 연대했다. 재능교육 농성 현장에서 만난 이동환 목사(영광제일교회)와 연을 맺고 영광제일교회에 다니기 시작했다. 2020년 이동환 목사에 대한 교단 재판이 시작되면서, 최근까지 대책위원회 활동도 했다.

건희 씨의 20대는 노동, 반빈곤, 장애, 퀴어, 평화 등 다양한 운동 현장에 연대해 온 삶이었다. 그에 대한 보답이라도 되듯, 대체역에 들어가는 건희 씨 후원회가 생겼다. 감신대 동기와 선후배들이 그의 선택을 지지해 줬다. 2월 24일 금요일 오후 7시 서울 서대문구에 있는 맑은샘교회(홍보연 목사)에서 '대체 평화'라는 '감리교 병역거부 신학생 김최건희 대체역 후원회 발족 및 파송 기도회'가 열린다.

잘 모르는 사람들이야 '결국 군대 가기 싫은 것 아니냐'고 납작하게 판단하지만, 사실 양심적 병역거부는 수많은 고민과 현실적 장벽을 뛰어넘어야 하는 일이다. 건희 씨는 어떻게 양심적 병역거부를 선택하게 됐을까. 그를 2월 20일 서울 중구 희년평화빌딩에서 만나 이야기를 들어 봤다. 작은 체구에 맑은 눈을 지닌 건희 씨는 담담하게 자신의 이야기를 풀었다.

김최건희 씨는 입소 6일 전 귀한 시간을 쪼개 인터뷰에 응했다. 뉴스앤조이 나수진
김최건희 씨는 입소 6일 전 귀한 시간을 쪼개 인터뷰에 응했다. 뉴스앤조이 나수진

- 지금까지 다양한 현장에 연대하셨는데요. 원래 신앙은 어땠는지 궁금하네요.

저는 모태신앙이고 아버지가 목회자세요. 기독교대한감리회(감리회·이철 감독회장) 교단이긴 하지만 다른 교회와 비슷하게 보수적인 환경에서 자랐어요. 전 고등학생 때까지 큰 목표 같은 게 없어서 대학 가는 것도 고민이 많았어요. 감신대에 진학한 여러 이유가 있지만,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는 신학이라는 것 자체가 궁금해서 공부해 보고 싶었던 것 같아요.

처음에 감신대 서예 동아리에 들어갔는데, 다들 서예는 안 하고 사회운동을 하더라고요.(웃음) 그러다 옆방에 있던 동아리 도시빈민선교회에 관심을 갖게 됐어요. 도시빈민선교회 활동을 시작하면서 여러 현장을 다니게 됐죠. 현장을 다니면서 인권 운동이라는 것에 눈을 뜨게 된 것 같아요. 특히 장애 인권 운동에 연대하면서, 장애인뿐 아니라 해고 노동자, 홈리스, 성소수자 등 사회적 약자들의 권리에 대해 생각하게 됐어요.

동시에 학교에서 신학을 배우면서 제가 가지고 있던 신앙이 많이 깨졌어요. 신학이나 한국사, 사회과학 도서들을 읽으면서 현장과 신학을 연결 지어 생각해 보려고 한 게, 저에게 내재해 있던 교리들을 깨는 데 많은 도움이 됐어요. 어느 순간부터는 제가 사회운동을 하는 것이 어렸을 적부터 배워 왔던 신앙과 크게 다르지 않고 오히려 더 적극적으로 신앙생활을 하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래서 더 다양한 현장에서 연대하게 됐어요.

- 양심적 병역거부에 대한 생각은 언제부터 하게 됐나요?

스무 살 대학교 1학년 때까지는 스물한 살 때 바로 군대에 가야겠다고 생각했어요. 평범하게, '빨리 갔다 와야지'라는 생각밖에 없었어요. 1학년 하반기 때 동아리에서 페미니즘 책 모임을 했는데, 병역거부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어요. 그때 선배들을 통해서 군대라는 곳이 체감상 '싫다' 정도가 아니라 근본적으로 잘못됐다는 이야기를 처음 들었어요.

제 주변에는 병역거부가 옳은 행동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았어요. 저와 친구들은 모두 병역거부에 대한 고민을 한 번씩은 했던 것 같아요. 그냥 '해야지, 해야지'라고 부추기는 친구들도 있었지만, 진지하게 이야기하고 지지해 주는 친구들도 있었어요. 특히 현장에 만난 사람들이 "네가 병역거부하면 진짜 응원해 줄 거다. 쉽지 않은 선택이겠지만 고민하는 것 자체를 지지한다"고 말해 줬어요. 차별 반대 운동을 한다거나 좀 더 감수성이 예민한 친구들은 병역거부가 한국 사회에서 좀 더 상식이 됐으면 하는 바람을 가지고 있더라고요. 그런 데서 힘을 많이 얻었죠.

- 병역거부가 의미 있다고 생각하는 것과 그걸 정말 결정하는 건 또 다른 문제일 것 같은데요.

병역거부에 대한 고민을 시작하기는 했지만 좀 미뤄 뒀어요. 그러다 2018년 처음으로 입영 통지서가 날아오고 정말 군대에 갈 뻔한 상황을 맞으니까 너무 혼란스럽더라고요. 제가 이미 많이 다른 감수성을 갖게 돼서 현역으로는 못 버틸 것 같다는 두려움이 컸던 것 같아요.

그러다 2019년 '전쟁없는세상'에서 했던 병역거부 상담 세미나에 참여했어요. 거기 양심적 병역거부로 수감 생활을 한 분들과 예비역을 거부해 매년 벌금을 내는 분들이 오셨는데, 다들 신중하게 결정해야 한다고 말씀하시더라고요. 적극적으로 권장하지는 않으셨어요. 이 선택에 따르는 책임은 오로지 개인이 져야 하는데, 그게 진짜 권할 만한 일이 못 된다는 거죠. 너무 좋은 분들이고 병역거부가 정말 유의미하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한편으로는 더 겁이 나더라고요.

교회에서 처음으로 제 입으로 "병역거부를 하고 싶다"고 했을 때도 다들 반응이 안 좋았어요. 이분들은 아는 거예요. 예를 들어 어떤 농성 현장에서 누군가 굴뚝에 올라가거나 단식을 하거나 강경하게 투쟁할 때, 그 사람뿐만 아니라 주변에서 조력하는 사람들도 엄청 고생한다는 사실을. 한순간의 혈기로 호기롭게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는 거예요. '주변 사람이나 지금 만나는 애인도 생각하야지'라는 얘기를 많이 들었어요. 

병역거부가 의미 있는 행동이라는 걸 알고 그걸 권하기도 하지만, 자신과 가까운 사람의 이야기가 되니 더욱 신중해지는 거죠. 3년이 너무 기니까 그냥 1년 6개월 빨리 다녀오는 게 어떻겠느냐고 하는 사람도 있었고요. 제가 복무하는 3년간 애인이 기다리고 지원해 줘야 하는 상황이 되니까, 이게 페미니즘적으로도 맞는 건지 모르겠더라고요. 이런 복잡다단한 고민들이 있었어요.

고민 끝에 다 포기하고 작년 1월에는 현역으로 입대하려고 준비하고 있었어요. 근데 제가 3월에 대체역을 신청했거든요. 결국 이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제가 남들보다 학교를 2배 이상 다녔잖아요. 그러면서 깨달은 게, 마냥 시간이 단축된다고 좋은 건 아니라는 사실이었거든요. 두 배가 걸려도 차라리 그 시간 동안 내가 기존에 해 왔고 또 하고 싶은 사회운동의 가치를 버리지 않고 싶다고 결론을 내리게 됐죠.

- 말씀하시는 걸 듣다 보니 사회운동의 일환으로 병역거부를 선택하신 것 같은데요. 신앙적·신학적으로도 고민해 보셨나요?

기독교윤리학 수업에서 페미니즘과 병역거부에 대한 이야기가 한번 나오긴 했어요. 기독교 전통 안에서 병역거부 사례가 종종 있었다고. 기독교 신앙적으로 봤을 때 어쨌든 생명이 중요하다는 가치를 말할 수 있기는 하지만… 솔직히 잘 모르겠네요. 뭔가 기독교적으로 설명할 언어가 잘 없는 것 같아요. 제가 지금 다니고 있는 감리회 같은 경우는 병역거부에 대한 고민을 하기보다는 오히려 병역거부를 좋지 않게 볼 것 같으니….

기독교 전통 안에 이런(병역거부) 사례가 많고, 예수님이 말씀하신 평화나 하나님이 뜻하신 세상은 이렇지 않다고, 분쟁이 있는 세상은 절대 하나님나라가 아니라고 계속 말을 걸고 싶은 생각은 있어요. 근데 어떤 언어로 해야 할지 아직은 자신이 없네요. 사회운동 단체의 언어를 따라가는 것만이 답은 아닐 텐데…라는 생각은 들어요.

건희 씨는 명쾌하고 시원하게 답하지는 않았다. 그런 모습이 정말 많은 고민이 있었다는 사실을 보여 주는 것 같았다. 뉴스앤조이 나수진

- 현재 대체역은 교정 시설에서 3년 복무인데요. 대체역을 만들 때도 많은 논의가 있었는데, 이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그런 말도 있더라고요. 양심적 병역거부자를 예전에는 사법적으로 처벌했다면, 지금은 행정적으로 처벌하는 셈이라고. 교정 시설에서만 3년 복무하는 건 약간 징벌적 성격이 있는 것 같아요. 그래서 대체역까지 거부하는 것도 생각해 보기는 했어요. 해외에서는 대체역을 자꾸 군사주의적으로 이용하려는 시도가 많아서, 대체 복무자들이 단체 행동을 하기도 하고 대체역까지 거부하는 완전 거부자들도 나온다고 하더라고요.

그런데 우리나라는 대체 복무제 도입 초기이기도 하고, 구체적으로 어떤 문제가 있는지도 모르는 상태에서, 대체역을 거부하는 이유와 언어는 또 어떻게 마련할 건가 싶기도 하더라고요. 어쨌든 지금은 평화 활동가들이 만들어 놓은 제도에 동참하는 거라고도 생각했고요.

- 후원회가 결성된다는 소식을 들었어요. 함께해 주는 사람들을 보면 어떠세요?

든든하고 고맙죠. 그들도 이런 행동이 필요하고 확산됐으면 하는 마음에, 동료로서 이 운동을 같이하고 싶어 하는 것 같아요. 그런 면에서 제가 물꼬를 트는 작은 역할을 해 줬다고 생각해 주는 것 같아서 감사해요.

- 입소가 얼마 남지 않았는데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다 하시죠.

저는 기독교 운동이나 사회운동이나 그 운동을 추동하는 원동력은 '사랑'이 아닐까 생각해요. 기독교적인 사랑이든, 좀 더 보편적인 의미의 사랑이든, 거창하지 않은 이유인 것 같아요. 병역거부 운동도 그래요. 지극히 개인 영역에서 일어나는 일이고 이거 자체로 사회를 다 바꿀 수는 없겠지만, 이런 행동이 파괴된 공동체를 좀 더 통합시키는 방향성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전쟁을 준비하고 군비를 경쟁하는 사회보다 좀 더 정의로운, 모두가 공존하는 사회가 될 수 있도록 고민하는 거죠. 그런 이야기를 계속 나눌 수 있으면 좋겠어요.

"저는 전쟁과 폭력이 만연한 세상을 바꾸는 일에 참여하여 모두가 공멸하는 세상이 아닌, 함께 사는 세상을 만들고 싶습니다. 그 체계에 동참하는 것을 거부하는 일 중 하나가 병역거부라고 생각합니다. 전쟁과 폭력을 끝내기 위해 평화를 실천하고, 전쟁 수행과 살인 기술을 훈련하여 실행하는 일을 무력화하는 행동 중에 병역거부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 김최건희 대체역 진술서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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