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음에 답할 준비가 안 된 교회

코로나19 팬데믹은 사회 전반에 막대한 변화를 초래했습니다. 미래학자들이 이미 어느 정도 예측한 변화였지만, 팬데믹으로 그 속도가 급격히 빨라지면서 사회 구성원 대다수가 변혁의 템포를 따라가지 못해 큰 혼란을 경험했습니다. 메타버스를 포함한 비대면 문화의 확산, 그로 인해 전격적으로 체감되기 시작한 산업 패러다임의 변화와 디지털 세상으로의 전환이 대표적이지요.

뿐만 아니라, 생활 패턴의 극심한 변화와 미래에 대한 불안감으로 인해 많은 이가 새로운 우울증에 시달려 '코로나 블루'라는 신조어까지 등장했습니다. 과학 문명의 발달로 언제 어디서나 누구든 만날 수 있게 됐지만, 진실한 인격적 교제를 누리는 일은 점차 어려워진 이른바 '인간소외' 시대가 도래한 것입니다.

이러한 사회적 개변의 여파는 한국 주류 종교 중 하나인 개신교 역시 강타했습니다. 특히 개신교는 다른 종교들과 비교해 매우 큰 위기를 맞았습니다. 일차적인 원인은 코로나19로 사회 전체가 비상시국을 보내고 있었음에도 종교적 충성심을 내세우며 '현장 예배' 방침을 고수한 교회가 너무 많았던 데 있었습니다.

온 사회가 극심한 팬데믹을 경험하던 시기에도 정부 방역 정책을 따르지 않고 현장 예배를 강행하는 교회가 많았습니다. 뉴스앤조이 자료 사진
온 사회가 극심한 팬데믹을 경험하던 시기에도 정부 방역 정책을 따르지 않고 현장 예배를 강행하는 교회가 많았습니다. 뉴스앤조이 자료 사진

사람들이 분노한 지점은 단순히 현장 예배를 고집함으로 방역 체계에 혼선을 줬다는 사실뿐만이 아니라, 사랑의 하나님을 믿는다는 신자들이 그들의 이웃인 다수 사회 구성원을 향해 보인 끔찍할 정도로 '이기적인' 태도에 있었습니다. 개신교인들의 극단적·배타적 종교성과 반지성주의에 화가 난 것이지요.

이 과정에서 수많은 개신교인이 자신들이 문자적으로 숭배하는 성서의 가르침과 정신을 정면으로 반박하는 모순적 행태를 보였습니다. 이는 사회 구성원 다수가 개신교를 역겹고 가증스러운 종교로 인식하는 데 결정적인 계기가 되고 말았지요.

물론 그럼에도 개신교회들은 여전히 철옹성 같은 강고한 기득권을 고수하고, 폭력과 혐오를 조장하는 몇몇 목사들을 비호하며 흔들림 없는 듯한 모습을 유지했습니다. 하지만 앞서 언급한 대로, 평온한 수면 아래 세차게 흘러가는 물살처럼 많은 교회가 알게 모르게 이 사회적 개변의 여파를 체험하기 시작했습니다. 그 첫번째 파도가 바로 '청년층의 급격한 이탈'이었지요.

과거에는 소위 '덮어놓고 믿는 것'을 신앙의 큰 미덕으로 여겼습니다. 전 세계적으로 보면 소수에 해당하는 장로교가 유독 한반도에서 압도적인 교세로 성장하게 된 기저에도, 권위를 향한 맹목적 복종을 종교적 신실함과 연관지어 생각하는 한국인들의 유교적 정서가 자리하고 있었지요. 그러나 세대가 흐르면서 일방적 권위주의에 터한 기존의 신앙 교육은 한계에 봉착했습니다.

작금의 청년들은 신앙의 선배들을 향해, 부모 세대를 향해, 그리고 교회를 향해 가열하게 물음을 던집니다. 이들에게 '믿음'이 없어서가 아닙니다. 청년들의 질문을 분석해 보면, 오히려 자신들의 '믿음'을 지키기 위한 물음이 다수라는 사실을 목도하게 됩니다. 팬데믹을 지나면서 청년층이 배타적이고 이기적인 기성 교회에 실망하고 대거 이탈한 이유도 거기에 있습니다. 이들은 '기독교는 믿을 만한 가치가 있는 종교인가' 하는 본질적인 질문을 던지고 하고 있었던 것이지요.

질문이 답이다

<믿음을 묻는 딸에게, 아빠가>(정은문고)의 전개 방식은 매우 독특합니다. 저자는 딸의 진지한 고민을 듣고 함께 고민하며 나름의 해답을 제시하는 '아빠' 입장에서 기독교 신앙을 변증합니다. 네, 저는 이 책을 '변증서'로 보고 있습니다. '기독교는 정말 믿을 만한 종교인가'라는 정직한 질문에 최선의 변증을 제시하며 담담하게 설득하는 책이지요. 기독교는 가치 있는 고등 종교이며, 그리스도인이란 진리와 이웃, 사회를 향해 이러이러한 태도(저자는 이 태도의 핵심을 '사랑'과 '환대'로 소개합니다)를 지니고 살아가는 사람이 돼야 한다는 걸 말입니다.

<믿음을 묻는 딸에게, 아빠가 - 기독교에 회의적인 교양인과 나누고 싶은 질문 25가지> / 정한욱 지음 / 정은문고 펴냄 / 254쪽 / 1만 8000원 
<믿음을 묻는 딸에게, 아빠가 - 기독교에 회의적인 교양인과 나누고 싶은 질문 25가지> / 정한욱 지음 / 정은문고 펴냄 / 254쪽 / 1만 8000원 

제가 이 책을 높이 평가하는 이유는, 안타깝게도 오늘날 개신교 안에서 이런 수준의 질문을 던지고 받는 청년과 어른의 존재가 매우 희소하기 때문입니다. 솔직히 말하자면 우리가 내놓는 질문들의 수준도 유치할 뿐더러, 거기에 '해답'이랍시고 내놓는 말들은 더욱 가관입니다. 교회의 비극이지요. 더 심각한 문제는 아예 유치한 질문조차 점점 줄어들고 있는 현실이고요.

신앙이란 성서를 '덮어놓고' 믿는 게 아닙니다. 성서를 '들고 펴서 읽으며' 믿는 것입니다. 놀랍게도 성서는 인간에게 답을 주기만 하는 책 또한 아닙니다. 어떤 면에서 성서는, 인간으로 하여금 질문하도록 독려하는 책입니다.

성서를 진지하게 탐독하고 묵상하고 연구하는 사람은 필연적으로 거대한 실존적 모순에 갇히기 마련입니다. 성서는 하나님이 펼쳐 보이시는 위대한 이상과, 우리가 발 딛고 선 비루한 일상을 야멸차게 대조해 부각하는 책이기 때문이지요. 신자들은 그 모순의 감옥을 깨뜨리기 위해 성서를 향해, 그 너머에 계신 하나님을 향해 질문해야 합니다. 그리고 저자의 표현처럼, 모험의 여정인 신앙의 삶을 통해 찬찬히 해답을 찾아 나가야 합니다.

그러니 성서를 신앙의 근간으로 삼는다는 종교에서 '질문'이 소멸되고 있다는 건, 개신교가 더 이상 '말씀의 종교'가 아니게 됐다는 것을 방증합니다. 하나님의 존재와 의미를 추적하기보다는 몇 가지 선동적인 구호에 매몰된 예배, 인생과 고난에 대해 무겁고 진지한 질문을 던질 힘조차 잃어버린 종교, 그저 특정한 신념의 차원으로 격하된 개신교를 다시 신앙의 영역으로 끌어올리기 위해 필요한 것은 '정직하고 묵직한 질문'입니다.

이 책은 저자의 딸이 던지는 깊이 있는 질문 25가지를 우리에게 들려줍니다. 사실 저는 이 모든 질문이 정말 저자의 딸에게서 나온 걸까 하는 의심마저 들었습니다. 그만큼 오늘날 청년들이라면 교회에서 반드시 질문해야 할 항목들이 이 책에 몽땅 수록돼 있었기 때문이지요. 그 어느 때보다 앞이 보이지 않는 시대 한복판을 허우적대며 살아가는 우리 청년들에게는 이러한 질문을 던질 용기조차 없을 때가 많습니다.

그러니 어쩌면 이 책은 이 시대 그리스도인 청년들이 차마 교회에서 제기하지 못한 의문들을 대신 던져 주는 역할을 하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예수 믿는다는 저 어른들의 천박한 행태에도 불구하고 기독교는 정말로 가치가 있는가', '개신교가 이야기하는 하나님은 정말 믿을 만한 분인가', '개신교인이란 어떤 생각과 태도로 세상을 마주해야 하는가' 하면서 말이지요.

이성적 그리스도인의 위대함을 마주하라

오늘날 한국 개신교를 비판하는 데 쓰이는 수식어 중 가장 자주 호출되는 표현은 아마도 '반지성주의'일 것입니다. 덮어놓고 믿는 행태, 더 나아가 성서의 본문과 구절을 취사선택한 후 철저하게 문자적으로 신봉하는 태도는 교회를 점점 반지성주의의 온상으로 만들어 갔지요.

이는 개신교회가 질문을 금기시하게 된 근본적인 이유와도 맞닿아 있습니다. 질문은 불안에서 오는 것이며, 회의적 사유는 곧 불신앙이라는 편협한 사고방식이 교회들의 유교적 전체주의와 꼭 맞아떨어진 셈입니다. 그 결과 우리는 이제 교회에서 지성인들이 점점 실종돼 가는 뼈아픈 상황을 마주하고 있습니다. 파시즘에 가까운 반지성주의 집단에서, 맨정신으로 버틸 수 있는 지성인이란 거의 존재할 수 없을 테니까요.

반면 저자는 아직 교회에 남아 있는, 그야말로 최고 수준의 지성인입니다. 저자의 학력이나 직업을 이야기하는 게 아닙니다. 그가 성서에 접근하는 진중한 태도, 딸의 날카로운 질문에 넘치는 위트로 답변해 줄 수 있는 깊은 내공, 민감한 화두마저 부드럽게 다룰 수 있는 지혜와 여유가 모든 지면에서 그가 지성을 갖춘 '이성적 그리스도인'이라는 것을 강렬하게 입증해 주고 있습니다.

평범한 교회에서 찾아보기 힘든 이런 내공으로부터 솟아 나오는 답변들은 시원하리만큼 명쾌합니다. '그냥 믿는 것이 믿음이며 복'이라는 식의 윽박지름 대신, 사랑하는 딸에게 조곤조곤 설명하는 아빠의 따스함이 감싸고 있어 더욱 대단하게 느껴집니다. 높은 지적 훈련의 경지에 이른 신자, 이성적 그리스도인의 가치와 소중함을 새삼 느끼게 해 주지요. 매 챕터마다 나열돼 있는 참고 문헌 목록이 증거하듯, 저자가 갖춘 깊이 있는 지성의 비결은 바로 '독서'입니다. 폭넓고 깊이 있는 독서가 그를 위대한 지성인이자 이성적 그리스도인으로 빚어 갔다 해도 과언이 아닐 겁니다.

지성이라는 좋은 밭에 뿌려지는 말씀의 씨앗

교회를 다니며 '한 책의 사람이 돼야 한다'는 이야기를 심심찮게 들었습니다. 그 한 권의 책은 당연히 '성서'였습니다. 본디 이 문장은 'The Book'이라 불릴 만한 성서의 세계에 깊이 침잠해 들어가라는 의미에 가깝습니다. 성서의 드넓은 바다에서 맘껏 헤엄치며, 성서가 궁극적으로 계시해 보이는 하나님을 발견하라는 격려인 것이지요. 하지만 많은 이가 이 문장을 오해한 결과, 성서 이외의 다른 책들은 다 '배설물과 같은 세상 학문의 결과물'로 여기는 우를 범해 왔습니다.

성서는 신자의 행동 지침을 정리해 둔 간편 매뉴얼이 아니라 방대한 세계관 위에 그려진 다양한 장르의 이야기이므로 반드시 인문학적 내공과 사유 훈련을 갖추고 탐구해야 하는데, 그저 '인생 사용 설명서' 정도로 여기고 그 구절들만 문자적으로 준수하면 된다는 잘못된 가르침을 주고받은 것입니다. 그 결과 우리는 '이성적 그리스도인'이 아니라, 단단한 음식을 먹을 준비가 안 된 '어린아이 같은 신자'만 양산하고 말았습니다.

하나님 말씀이 우리 가슴에 닿아 복음의 강렬한 공명음을 일으키려면, 내 안에 다양한 독서 경험과 반성적 체험이 어우러져 깊은 호수로 채워져 있어야 합니다. 가시덩굴이나 돌밭에 떨어진 씨앗이 열매를 틔울 수 없듯, 아무 질문도 없이 말라 비틀어진 지표면에 말씀의 빗방울이 몇 번 떨어진들 그것은 영혼의 타는 갈증을 더 증폭할 뿐이지요. 인간 영혼에 하나님 말씀이 심겨 열매 맺게 하려면 좋은 밭이 돼야 하는데, 이때 지적 훈련은 맹신의 잡초를 뽑고 편향적 종교성이라는 가시덩굴을 솎아 낼 좋은 도구입니다.

저자가 딸에게 들려주는 답변들을 통해, 우리는 지적 훈련의 높은 경지에 이른 신자가 보여 줄 수 있는 놀라운 사유의 깊이와 흔들리지 않는 참믿음의 넉넉함을 목도합니다. 인간이 본능적으로 종교를 향해 던지는 질문들에 대해, 사상적 깊이와 폭넓은 관용을 바탕으로 해석된 성서의 가르침으로 적절히 답하는 저자의 내공은 보면 볼수록 놀랍습니다. '꼰대'로 취급받기 쉬운 세대임에도 도리어 젊은이들보다 더 유연한 사고와 설득력으로 청년 세대가 충분히 공감하고 납득할 수 있는 '길'을 제시해 줍니다. 이러한 적확함과 노련함은 다방면의 탐독으로 쌓인 내공과 건강한 정신이 없다면 불가능한 경지겠지요.

기독교 신앙이 무엇인지 묻는 모든 이에게

이 책은 딸의 진지한 질문들에 대한 아빠의 답변을 모아 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기독교 신앙이 무엇인지, 그것이 오늘날에도 여전히 영원불변한 진리로서 가치가 있는지 되묻고 있는 모든 진지한 구도자를 위한 최고 수준의 기독교 변증서입니다. 그러므로 이 책에 등장하는 질문과 대답은 이 시대 그리스도인 청년들과 진지한 신앙인들이 공유하며 함께 고민해야 할 내용들입니다. 기독교에 관해 진지한 고민을 품고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든지 이 책을 즐겁게 읽을 것입니다.

특정 정당이나 정치 세력을 향한 맹목적 지지를 신앙이라 착각하는 사람들, 현대 과학이 제공하는 온갖 이기들을 누리면서도 그것의 근본이 되는 세속 학문들의 가치는 폄훼하는 사람들, 유교와 기독교를 착각하고 가부장제의 폭력성을 하나님의 속성으로 오해하고 있는 사람들이 개신교를 이른바 '개독교'와 '카톡교'로 변질시키고 말았습니다.

긍휼과 환대라는 '십자가의 도'가 아니라 억압과 강제와 착취라는 '십자군의 길'을 확신에 차서 걸어가는 사람들에 맞서서, 우리는 차이를 인정할 줄 아는 교회, 세계종교로서의 품격을 온전히 갖춘 기독교, 각 지역의 다양한 문화적 특징에 따라 본질을 유지하면서도 그 색채를 바꿔 전달되는 복음을 변증해 낼 책무가 있습니다. 이 책은 훌륭한 그를 위한 모델입니다. 어떻게 하면 기독교 신앙의 가치를, 복음의 아름다움을, 하나님이 믿을 만한 분이라는 이야기를 설득력 있게 전달할 수 있을지 고민하는 신자들에게 이 책을 주저함 없이 추천합니다.

"너희 속에 있는 소망에 관한 이유를 묻는 자에게는 대답할 것을 항상 준비하되 온유와 두려움으로 하고" (벧전 3:15b)

정우조 / 부산에 소재한 대안 교회 '광야그리스도인공동체'의 일원이자 예배 섬김이로 살아가는 사람. '기독교 이단' 말고 '극진공수도 2단'을 목전에 두고 있는 MMA 덕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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