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이 사도의 가르침을 받아 서로 교제하고 떡을 떼며 오로지 기도하기를 힘쓰니라 사람마다 두려워하는데 사도들로 말미암아 기사와 표적이 많이 나타나니 믿는 사람이 다 함께 있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또 재산과 소유를 팔아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눠 주며 날마다 마음을 같이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고 집에서 떡을 떼며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먹고 하나님을 찬미하며 또 온 백성에게 칭송을 받으니 주께서 구원받는 사람을 더하게 하시니라." (행 2:42~47)

[뉴스앤조이-김은석 간사] 오래 마음에 품은 구절이다. 이런 교회를 다니고 싶었다. 그런데 우리가 발 디딘 교회의 현실을 위와 같은 초대교회 모습에 비춰 볼수록, 황새 따라가려는 뱁새만도 못해 보였다. 언젠가부터 '초대교회로 돌아가자'는 말도 공허하게 들리기 시작했다. 초대교회 같은 교회를 만드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라고 체념할 때가 많았다.

그럼에도 오늘 이 땅에서 어떻게 교회를 이루며 살아가야 할지 질문은 끊이지 않는다. 비록 연약하고 초라한 모습이지만, 예수를 주로 고백하며 그분을 머리로 둔 교회의 일부라면 계속해서 교회의 길을 묻게 마련이다. 초대교회와 똑같이 될 수는 없더라도 어떻게든 더 나은 교회를 향해 나아가야 한다.

한 달 전, 가슴에 와닿는 문구를 하나 만났다. "지금 우리가 일구어야 할 하나님께서 세우고자 한 교회." 박대영 목사(광주소명교회)가 펴낸 사도행전 강해 시리즈 두 번째 책 <교회의 사도행전>(선율) 뒤표지에 실린 문구의 일부다. 이 문장 때문에 책을 다 읽기도 전에 박대영 목사에게 인터뷰를 요청했다.

"우리는 예수께서 승천하시면서 이 땅에 두신 당신의 부활하신 몸의 현재적 형태인 사도적 교회를 보면서 하나님과 소통하고 이 시대와 소통하는 코이노니아 공동체로서 우리가 어떻게 존재해야 하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11쪽)

'넘사벽'과 같은 초대교회를 어떻게 닮아 갈 수 있을지 조그마한 힌트라도 건지고 싶었다. 경기도 성남시에서 2박 3일간 사경회를 인도한 뒤 과천에서 하루 쉬어 가던 그가 시간을 내주었다. 4월 24일 과천소망교회 로고스홀 앞 정원에서 박대영 목사를 만나 인터뷰했다.

사도행전 4~8장을 강해한<교회의 사도행전>(선율)을 펴낸 박대영 목사(광주소명교회)를 4월 24일 과천에서 만났다. 뉴스앤조이 김은석
사도행전 4~8장을 강해한 <교회의 사도행전>(선율)을 펴낸 박대영 목사(광주소명교회)를 4월 24일 경기도 과천시에서 만났다. 뉴스앤조이 김은석

세 시간짜리 교회론 특강을 들은 느낌이었다. 어떻게 정리할지 궁리하며 책을 한 번 더 읽었다. <교회의 사도행전>은 사도행전 4장 32절~ 8장 40절을 본문으로 삼고 있다. 오순절 성령강림으로 태동한 초대교회 공동체가 어떻게 형성되고 성장하며, 갈등과 고난을 넘어 복음을 안고 세상을 향해 흩어져 가는지 생생하게 그리는 본문이다. 박대영 목사는 9편의 설교를 통해 그 면면을 깊숙이 들여다보면서 교회의 원형原型과 원음原音을 드러낸다. 원의原意와 원리原理를 해석하며 오늘날 교회가 점검하고 변화해야 할 지점들을 짚어 준다.

인터뷰와 책 내용을 토대로 박 목사가 복원해 낸 초기 예루살렘 교회의 원형이 오늘날 교회에 던지는 질문을 다섯 가지로 나눠 봤다.

1. 비움과 나눔의 공동체인가:
부활의 복음이 무너뜨린
소유 지향성과 자기중심성

사도행전 4장 32~37절은 사도들의 설교로 5000명이 회심한 후 예루살렘 교회가 어떻게 공동체를 이뤄 갔는지 보여 준다. 박 목사는 이를 '비움과 나눔의 공동체'라고 명명했다.

"믿는 무리가 한마음과 한뜻이 되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자기 재물을 조금이라도 자기 것이라 하는 이가 하나도 없더라." (행 4:32)

이를 모든 이가 사유재산을 포기하고 전 재산을 공동체에 내놓아 나눠 쓰는 모습이라고 생각한 적이 있다. 박 목사는 이 구절이 그린 것은 그런 모습이 아니라고 풀이한다. 개인이 재산을 가지고 있되, 그 소유권을 주장하지 않고 공동체의 필요가 생길 때마다 내놓았다는 것이다. 특히 바나바와 같은 자산가들(당시 바나바처럼 밭을 가진 사람은 전 인구의 10%에 불과했다. 48쪽)이 가난한 사람들과 나누기 위해 소유의 일부를 팔아 사도들의 발 앞에 갖다 놓으면, 사도들이 그것을 "각 사람의 필요에 따라" 나눠 줬다는 것이다. 당시 예루살렘 사회상을 들여다보면 박 목사의 풀이가 더 설득력 있게 다가온다.

"초대교회에서 먼저 회심한 자들은 대부분 서민이나 하층민이었습니다. 이스라엘은 종교와 권력이 하나인 사회였고, 이곳에서 지도층이 기독교로 회심한다는 것은 자신의 사회적인 특권을 포기한다는 것과 같았습니다. 그래서 권력자들보다는 잃을 것이 없는 서민들이나 죄인들이 주로 회심했습니다. 더군다나 예루살렘에는 디아스포라 유대인들이 많았습니다. 유대인들은 죽을 때는 고향에 묻혀야 한다고 믿었고, 특별히 성전 근처에 묻힌 사람들이 메시아의 시대에 가장 먼저 부활한다는 속설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밖에 흩어져 살던 유대인들이 늙으면 예루살렘으로 몰려들었습니다. 사도행전 6장에 나오는 헬라파 과부들이 바로 그들입니다. 가난하지만 회심한 그리스도인들을 먹여 살리는 문제가 교회의 큰 과제였습니다." (46~47쪽)

"유대교 3대 경건의 표지가 구제·기도·금식이었기 때문에, 헬라파 유대인 과부들은 과거에는 유대교의 도움을 받으며 살았어요. 그런데 그들이 갑자기 기독교로 회심하면서 유대교의 구제 시스템에서 벗어난 거예요. 당시 예수님을 영접한 다른 사람들도 대부분 고위층이 아니었으니, 갑자기 늘어난 과부들의 생계 문제를 어떻게 해결했을까요? 소수의 돈 있는 사람들이 자기 재산 중 일부를 팔아 교회에 내놓아서 그때그때 문제를 해결했던 거죠. 그래서 저는 가난한 사람이 없었다는 표현을 빈곤 문제가 해결됐다는 뜻이 아니라, 생계 자체가 문제인 사람이 없었다는 뜻으로 받아들입니다."

그는 초대교회 공동체가 보여 준 나눔의 체계보다는, 예수를 믿은 사람들이 자기중심성과 소유 지향성을 벗어 버린 것, 그래서 구제 사역을 자신의 일로 여기며 피 같은 재산을 교회 앞에 내놓게 된 것에 주목한다. 그리고 이런 변화의 기저에는 부활한 예수님을 만난 제자들이 하나님나라 개념을 새롭게 깨달은 것이 자리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원래 제자들의 관념 속에서 메시아의 고난이라는 것은 없었습니다. 엠마오로 가던 두 제자가 예수님이 부활했다는 소식을 듣고도 실의에 빠져 고향으로 간 이유도 그 때문이에요. 메시아의 십자가 고난을 믿지 않았기 때문에 그가 부활했다는 소식도 믿지 않은 거예요. 그런데 부활하신 예수님을 직접 만나고 그분의 가르침을 받은 후에 제자들은 십자가와 자기 부인이 하나님나라의 존재 방식임을 깨달았어요. 하나님이 이스라엘에게 주신 언약이 완성하는 나라, 다윗을 통해 이루고자 하신 나라가 어떤 나라인지 비로소 알게 된 거죠."

박대영 목사는 초대교회 공동체가 자기중심성과 소유 지향성을 벗어 버릴 수 있었던 이유는 십자가와 자기 부인이 하나님나라의 존재 방식임을 깨달았기 때문이라고 했다. 뉴스앤조이 김은석
박대영 목사는 초대교회 공동체가 자기중심성과 소유 지향성을 벗어 버릴 수 있었던 이유는 십자가와 자기 부인이 하나님나라의 존재 방식임을 깨달았기 때문이라고 했다. 뉴스앤조이 김은석

사도들을 통해 부활의 복음을 받아들인 예루살렘 교회 성도들 역시 자신들이 가진 잉여 자원이 삶의 안전을 보장하는 게 아니며, 세상 권력이 하나님나라의 힘을 드러내는 게 아니라는 것을 깨닫는다. 자기를 부인하는 것이 하나님나라 백성으로 사는 길임을 알게 된 것이다. 그런 깨달음을 실천으로 보여 준 대표적 인물이 바나바다. 박 목사는 바나바와 같이 "성령과 믿음이 충만한"(행 11:24) 이들이 초대교회를 비움과 나눔의 공동체로 만들었다고 했다.

"성령이 충만할수록 자기 안에서 그리스도의 통치권이 강화됩니다. 내가 나의 주인이 아니고 돈이 나의 주인이 아니게 되는 거죠. 소유가 상대화되고 권력이 상대화됩니다. 누구도 무서워하지 않고, 재산과 외모로 사람을 판단하지 않게 됩니다. 나아가 코이노니아(교제)라는 게 디아코니아(섬김)를 통해서 이뤄진다는 것을 배웁니다.

 

섬김의 다른 차원이 케노시스(kenosis) 즉 '비움'이예요. 자기를 비워 이 땅에 오신 예수님, 죽음으로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화목제가 되신 예수님의 방식은 세상의 방식과 정반대였죠. 그분처럼 자기 자유를 양도하는 것이 사랑이고, 사랑의 원리인 진리에 매일 때 진리가 나를 자유케 한다는 역설, 자유의 확보가 자유를 포기함으로써 이뤄진다는 역설을 십자가가 가르쳐 준 거예요. 결국 돈 포기가 자신이 인간답게 살아가는 방식임을 깨닫고 자기중심성과 소유 지향성을 버린 것입니다."

2. 거룩하고 진실한 헌신의 공동체인가:
아나니아와 삽비라 사건이 주는 경고

아이러니하게도 사도행전은 4장에서 성령 충만한 교회, 그리스도를 주인으로 머리로 섬기는 교회가 얼마나 아름다운 모습을 띠는지 그린 뒤, 5장에서 곧바로 초대교회의 드리워졌던 어두운 그림자를 드러낸다. 바로 아나니아와 삽비라의 거짓말과 즉결심판 사건이다. 아나니아는 아내 삽비라와 공모해 자신이 판 땅값의 일부를 감춰 놓고 전부를 드린 것인 양 거짓말을 했다.

박 목사는 이 부부의 범죄가 "소유를 판 돈을 다 내지 않은 데 있는 것이 아니라 다 낸 것처럼 행세한 데"(77쪽) 있다고 했다. 바로 앞에서 비움과 나눔을 실천한 모범적인 인물로 언급된 바나바와 비교하며, 그들이 바나바의 나눔과 포기의 마음을 본받은 것이 아니라 바나바가 누린 존경심을 얻고 싶었던 것이라고 해석한다. 박 목사는 오늘날 교회 안에서 종교적 경쟁심을 선한 열심으로 가장하는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주의할 점들도 강조한다.

"집이나 땅이나 큰돈을 바치겠다는 성도가 있다면, 그 동기와 의도, 기증자의 영적 수준을 잘 점검해야 합니다. 기증한 액수에 비해 신앙이 미치지 못한다면 만류하기도 해야 합니다. 갑자기 큰 은혜 받았다면서 큰 재산을 내놓으려고 할 때, 그것이 진정한 은혜인지 일시적인 감정의 고양인지를 잘 살피도록 도움을 주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그것이 나중에 그 당사자에게 뿐 아니라 교회에게도 화근이 될 수 있습니다." (77쪽)

실제로 자신의 목회 현장에서 이와 같은 내용을 실천하고 있다고 했다. 한 번에 거액을 헌금하거나 소득이 높아 십일조를 많이 내려는 교인이 있으면 가급적 그중 일부만 하거나, 교회 밖에서 좋은 일에 사용하라고 권면한다는 것이다. 기명으로 헌물도 할 수 없게 한다고 했다. 아무리 신앙 좋은 교인이라도 자신이 헌금(물)한 만큼 교회 안에서 발언권이 커지게 마련이기 때문이다.

다른 이유도 있다. 소수가 아니라 모든 성도가 교회 재정에 기여할 환경을 만들기 위해서다. 박 목사는 헌금 시간이야말로 자신이 돈을 섬기는지 하나님을 섬기는지 점검할 수 있는 시간이라고 말했다. 그러니 하나님 앞에서 신앙을 고백할 기회가 온 성도들에게 돌아가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헌금을 강조하는 것은 아니지만, 다양한 방법으로 헌금을 촉구한다는 이야기가 기억에 남는다.

"저희 교회에 다른 헌금 봉투는 없는데 감사 헌금 봉투는 꼭 따로 둡니다. 감사하는 습관을 만들자는 의도이지요. 그리고 지목 헌금이 있어요. 일종의 교회 내 구제 헌금인데요. 학비나 생활비가 필요할 것 같은 교우를 눈여겨봤다가 그분을 위해 써 달라고 이름을 적어 헌금을 하면, 교회가 그분에게 전달해 줍니다. '살림 펀드'라는 것도 만들었어요. 교회 안에 일회적 구제로 삶의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분들이 있는데, 그분들에게 월 20~30만 원씩 월급처럼 드립니다. 희년은행 기금에도 열심히 참여하지요."

아나니아의 죽음(1515~1516년 작) / 라파엘로 산치오 그림 / 영국 런던 빅토리아앤드앨버트박물관 소장
아나니아의 죽음(1515~1516년 작) / 라파엘로 산치오 그림 / 영국 런던 빅토리아앤드앨버트박물관 소장

충격적이게도 아나니아와 삽비라는 거짓말을 한 현장에서 즉사한다. 박 목사는 이 장면이 여호수아 7장에서 하나님께 드릴 전리품의 일부를 빼돌린 아간의 범죄와 심판을 상기시킨다고 했다. 그리고 사도행전에서 자주 사용되는 '에클레시아'라는 단어가 이 사건에서 처음 등장한 점에 주목한다.

"사도행전에서 '에클레시아'라는 단어가 많이 쓰이는데 처음 쓰인 게 5장 11절입니다. '온 교회와 이 일을 듣는 사람들이 크게 두려워하니라.' 사도행전 저자는 아나니아와 삽비라 부부의 비극적인 죽음을 통해 교회를 교회 되게 하는 중요한 특징이 하나님에 대한 거룩한 두려움, 외경심임을 보여 주려고 한 것이에요. 하나님의 것을 훔치고 성령을 속이는 행동이야말로 교회 공동체를 와해시키는 가장 심각한 요인이라는 것을 알리는 거죠. 또한 물질에 대한 소유권과 사용권을 하나님 앞에 온전히 넘기지 않은 채로 교회는 교회 될 수 없다는 사실을 보여 주기 위해 에클레시아라는 단어를 여기서 처음 썼다고 저는 해석합니다."

3. 삶으로 부활을 증거하는가:
날마다 독배를 마시는 작은 예수의 삶

사도행전 저자는 이어지는 본문인 5장 12~16절에서 아나니아와 삽비라 사건 후로도 사도들이 계속 표적과 기사를 행하여 "백성이 칭송"하고(13절) "믿고 주께로 나아오는 자가 더 많"아진(14절) 교회의 상황을 조명한다.

"교회의 추문일 수도 있는 아나니아와 삽비라 사건이 공동체를 위축시키는 위기가 된 것이 아니라, 안으로는 교회를 교회답게 만들었고 밖으로는 교회를 새롭게 바라보게 하는 계기가 되었던 것입니다. 위기 속에서 조롱을 당하는 교회가 아니라 더욱 영롱한 교회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교회의 추문을 감추고 덮는 것이 아니라 썩은 곳을 도려내어 거룩하고 정결하게 하는 것이 교회를 지키는 길임을 보여 줍니다. (중략) 예수 믿는다는 사람들이 자신들이 믿는 대로 살지 않고 자신들이 전하는 예수님과는 전혀 다르게 사는 것을 보고서 안 믿고 싶어졌다는 말이 나오게 해서는 안 됩니다. 반대로, 초대교회 성도들이 예수님의 분신이 되어 칭송을 받았듯이, 성도들도, 교회도, 세상 앞에 칭송을 받는 작은 예수들이 되어서 그들이 주께로 나아오고 싶게 해야 합니다." (105~106쪽)

5장 17절부터 42절까지는 사도들이 대제사장과 사두개인들의 결박과 핍박에도 "사람보다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이 마땅하다"고 응수하는 모습, 채찍질을 당해도 "그 이름을 위하여 능욕받는 일에 합당한 자로 여기심을 기뻐하면서" 부활한 예수가 그리스도임을 전하는 모습을 보여 준다. 박 목사는 이 본문이 우리에게 던지는 질문을 이렇게 나열한다.

"작은 예수로 살아가고 있는가? 날마다 자신을 부인하고 예수의 십자가의 길을 따름으로써 그 부활의 증거들을 경험하면서 살고 있는가? 말이 아니라 그 부활의 증거들을 통해서 세상에게 예수의 부활과 살아 계심과 그분의 통치를 믿도록 전하고 있는가? 예수의 부활이 만드는 생명의 역사, 평화를 만드는 역사가 일어나고 있는가?" (134쪽)

어느 현직 교사가 말했다고 한다. "부모든 교사든 누군가에게 거울이 되는 사람들은 '말하는 대로 사는 삶'이라는 독배를 마셔야 한다." 이 고백을 인용하면서, 박 목사는 오늘 우리도 부활을 증거하며 생명과 평화를 피우기 위해 날마다 독배를 마시자고 제안한다.

"말로는 진리를 담아낼 수 없습니다. 부활의 복음은 부활의 삶을 사는 것으로 밖에는 증명이 안 돼요. 우리가 하나님 말씀 따라서 십자가 지고 작은 예수로 살아갈 때 생명과 평화의 역사가 일어납니다."

<교회의 사도행전>(선율)에는 사도행전 4장 32절~8장 40절을 본문으로 한 박대영 목사의 설교 9편이 실려 있다. 각 장 첫 부분과 마지막 부분에 실린 QR 코드를 타고 접속하면 박 목사의 육성으로 녹음한 설교 본문과 기도문을 들을 수도 있다. 뉴스앤조이 김은석
<교회의 사도행전>(선율)에는 사도행전 4장 32절~8장 40절을 본문으로 한 박대영 목사의 설교 9편이 실려 있다. 각 장 첫 부분과 마지막 부분에 실린 QR 코드를 타고 접속하면 박 목사의 육성으로 녹음한 설교 본문과 기도문을 들을 수도 있다. 뉴스앤조이 김은석
4. 갈등 해결의 순서와 방법을 아는가:
'매일의 구제'에서 빠진 헬라파 과부들과
예루살렘 교회의 대처

믿는 자들이 점점 불어나지만 예루살렘 교회는 다시 한번 위기를 맞는다. 헬라파 유대인과 히브리파 유대인 사이에 갈등이 발생한 것이다. 갈등의 직접적인 원인은 헬라파 유대인 과부들이 '매일의 구제' 대상에서 빠진 일이었다. 헬라파 교인들은 히브리파 교인들을 원망했다.

보통은 교회에서 직분자를 세울 때 많이 회자되는 사도행전 6장 1~7절에서, 박 목사는 지혜로운 공동체가 갈등과 문제를 해결하는 순서와 방법을 포착해 낸다. 그는 헬라파 과부들이 구제 대상에서 제외된 것은 "자원이 적어서가 아니라 그것을 필요한 사람들에게 전달할 수 있는 조직이 제대로 가동하지 않았기 때문"(147쪽)이라고 해석한다. 사도들의 지시를 받아 구제를 집행하던 히브리파 유대인들이 헬라파 유대인을 자꾸 빠뜨리는 실수를 하기 시작했다는 얘기다. 실수가 오해를 불러일으키고, 오해가 원망으로 자란 상황인 것이다. 열두 사도는 모든 성도들을 불러 놓고 말한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제쳐 놓고 접대를 일삼는 것이 마땅하지 아니하니 형제들아 너희 가운데서 성령과 지혜가 충만하여 칭찬받는 사람 일곱을 택하라. 우리가 이 일을 그들에게 맡기고 우리는 오로지 기도하는 일과 말씀 사역에 힘쓰리라." (행 6:2~4)

박 목사는 사도들의 이 모습에서 우리가 얻어야 할 교훈과 지혜를 다음과 같이 정리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사태를 수습하는 방식이 아니라 우선순위입니다. 해결 방법만큼이나 해결 순서가 중요합니다. 사도들은 먼저 갈등 당사자들에게 책임을 묻지 않고 사도 자신들의 책임을 인정합니다. (중략) 만약 사도들이 말씀과 기도 사역에 더 충실했다면, 행정상의 실수가 큰 갈등으로 비화되지 않도록 성도들이 스스로 해석하고 마음을 다스릴 수 있게 해 주었어야 했는데, 그렇게 하지 못한 것에 대해 자신들의 책임을 통감하고 있습니다. 만약 사도들이 갈등하는 두 편 가운데 한쪽 편을 들었다면 즉시 반발을 불렀을 것입니다. 하지만 사도들이 자신들의 책임을 먼저 거론하고 하나님과의 관계를 점검하자, 이의를 제기한 헬라파 유대인들이나 항의를 받은 히브리파 유대인들 모두 서로를 향하던 마음의 손가락을 자신을 향하게 되었을 것입니다." (169~170쪽)

사도들은 자신들을 대신해 구제 사역을 담당할 사역자들을 직접 세우지 않고 공동체가 택하라고 위임한다. 예루살렘 교회가 택한 사역자들은 놀랍게도 모두 헬라파 유대인이었다. 이 결과에 대한 해석도 흥미롭다.

"예루살렘에는 당연히 히브리파 유대인들이 압도적으로 많았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사도들의 자기반성을 보고는 헬라파 사람들로만 일꾼을 뽑음으로써 자신들의 실수를 인정하고 있는 것입니다. 헬라파 사람들이 구제의 책임자들이 되면 자신들은 그 곁에서 도우면서 모두에게 공평하게 구제가 집행될 수 있도록 돕겠다고 나선 것입니다." (162쪽)
 

"이는 분명 다수의 히브리파 유대인들이 주도한 일이었을 것입니다. 그들은 헬라파 과부들을 구제에서 빠뜨린 자신들의 실수를 인정하고 소수의 헬라파 유대인들을 배려하기로 한 것입니다. 이것을 본 헬라파 유대인들의 마음은 어떠했을까요? 사도들과 히브리파 유대인들을 향해서 품었던 원망에 대해 부끄럽게 여기지 않았을까요?" (171쪽)

박대영 목사는  주로 교회에서 직분자를 세울 때 인용하는 사도행전 뉴스앤조이 김은석
박대영 목사는 주로 교회에서 직분자를 세울 때 인용하는 사도행전 6장 1~7절에서 공동체가 갈등과 문제를 해결하는 순서와 방법을 포착했다. 뉴스앤조이 김은석
5. 경계를 넘어서는가:
스데반과 빌립의 복음 전도법

<교회의 사도행전>이 다루는 나머지 본문의 주요 인물은 스데반과 빌립이다. "은혜와 권능이 충만"하고 "지혜와 성령으로" 복음을 전한 스데반은 공의회에서 명설교를 남기고 순교한다. 스데반의 순교 후 더욱 거세진 박해는 성도들을 예루살렘 밖으로 흩어지게 한다. 빌립이 사마리아와 광야에서 복음을 전한 이야기를 필두로 이방인을 향한 선교가 시작된다. 박 목사는 이 두 복음 전도자의 공통점을 경계를 뛰어넘은 것이라고 했다.

"스데반은 이스라엘이 그동안 어떻게 하나님을 성전과 율법에 가두며 불순종의 역사를 써 왔는지 드러냅니다. 그는 헬라파 유대인이었어요. 팔레스타인 밖에서 살다가 모든 걸 버리고 예루살렘으로 왔을 정도로 극렬한 성전주의자였을 거예요. 그런 그가 예수의 십자가와 부활의 복음을 받아들이고 이스라엘의 지나온 역사를 새롭게 보게 됐어요. 하나님은 성전 건물이 아니라 거룩한 당신의 백성들 안에 머무시는 분임을 깨달은 거죠. 성전과 율법이라는 경계를 뛰어넘은 것입니다. 우리 시대의 교회도 복음에 비추어 지나온 길을 돌아보아야 합니다. 목사는 이래야 하고, 교회는 이래야 한다고 당연히 생각해 왔던 것들을 성찰해야 합니다. 그 결과가 얼마나 처참한지 목격하고 있잖아요."

박 목사가 책에 써 놓은 한국교회 현실 진단은 좀 더 신랄하다.

"우리 시대의 기독교를 보십시오. 밑천이 얼마 안 남았는데, 팬데믹으로 그 근본부터 흔들리고 있는데, 전혀 각성이나 긴장이 없이 여전히 율법주의적인 공간 중심의 종교로만 회귀하려고 하고 있습니다. 건물 중심의 종교, 성직자 중심의 종교를 고집합니다. 분명히 믿는 자는 모두 제사장이라고 했는데, 목사가 제사장이고 장로는 그 밑이고 집사와 권사는 다시 그 밑이라고 생각하는 종교적인 위계질서를 만들고 있습니다.

 

형식 중심의 종교를 고수하고 있습니다. 삶의 예배보다는 주일에 교회에 나와서 드리는 공예배만을 전부로 여기는 풍조도 여전합니다. 내 인격이 변하는 것보다는 교회 안에서 일을 많이 하는 것이 좋은 신앙이라고 생각합니다. 눈에 보이는 인간 지도자를 섬기는 것이 눈에 안 보이는 예수님을 잘 섬기는 길이라고 생각합니다. 하나님나라를 교회 안으로 국한시킨 채 세상에서의 삶과 교회 안에서의 삶이 달라도 문제로 여기지 않습니다. 교회는 천국 가는 표를 가진 자들이 잠시 머물러 기다리는 대합실 정도로 여깁니다. 이것이 중세의 타락한 교회의 모습이었는데, 지금의 풍경이 그와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다시 프로테스탄트 교회가 필요합니다." (196쪽)

스데반에 이어 등장하는 빌립은 교회가 세상 속으로 나아갈 때 본이 되는 인물이다. 박 목사는 그를 민들레 홀씨에 비유한다. 우리 시대 복음 전도자들이 빌립처럼 성령의 바람을 따라 움직일 수 있도록 가벼워지고, 영적인 허기를 느끼는 공동체 안팎의 이웃에게 성경을 풀어 주는 실력을 갖춰야 한다고 강조한다.

"빌립은 계속해서 자기 세계 밖으로 경계를 넘은 사람이에요. 사마리아를 원수처럼 여기고 아무도 그리로 나아가지 않던 때에, 예루살렘과 사마리아 사이의 반목의 장벽을 뛰어 넘어 복음의 홀씨를 뿌렸거든요. 빌립의 사역이 성공하자 사도들은 금단의 땅이었던 사마리아를 찾아가고 사마리아인들도 성령을 받게 되죠. 그리고 나서 빌립은 에디오피아 내시를 만난 광야로 또 떠납니다. 그 후로도 아소도의 여러 성과 가이사랴로 계속해서 넘어가요. 그는 환대의 사람이었습니다. 사마리아인들과 내시에게 먼저 다가가잖아요. 환대는 강력한 선교예요."

"어쩌면 우리 시대의 수많은 성도들이 그 내면에 영적 허기를 느끼며 고독하게 광야를 지나고 있는지 모릅니다. 교회에는 나가지 않지만 예수를 믿는다고 대답하는 숱한 '가나안 성도들'이 바로 광야를 지나고 있는 에디오피아의 내시 같은 사람들입니다. 교회를 정하지 못하거나 교회에 앉아 있어도 영적으로 갈급하다고 말하는 성도들이 이 내시와 같은 사람입니다. 부족하지만 이런 시대에 이 시대의 말씀 사역자들이 빌립과 같은 사람이 되도록 애써야겠습니다."(343쪽)

중간중간 오늘 이 시대의 교회를 이야기하는 박 목사의 어감에서 목회 현장의 치열함과 고투의 흔적이 묻어났다. 하지만 그는 인터뷰 중에 광주소명교회 이야기를 가급적 삼려고 애썼다. 모두가 자기네 교회가 같을 수 없는데 광주소명교회 사례가 모범 답안처럼 제시되는 것은 원하지 않는다고 했다. 모든 교회가 실존적으로 고민하며 나름의 교회상·목회자상·집사상·교사상 등을 만들어, 하나님께서 세우고자 하신 교회를 형성해 가는 게 중요하다는 이야기였다. 광주소명교회 역시 이 시대 속에서 무엇을 감수하고 어떤 훈련을 해 나가야 할지 찾아가는 중일 뿐이라고 했다.

이 책의 에필로그는 독일의 헤른후트 공동체에 다녀온 후 썼다고했다. 말씀과 기도, 성찬과 성령, 선교를 철저히 붙들며 300년가량 이어온 이 공동체가 '씨'를 중요한 상징으로 삼고, 공동묘지를 '하나님의 밭'이라고 부르더라는 이야기가 인상적이었다. 그리스도인이 죽어 땅에 묻히는 것을 씨를 심는 일로 해석하는 것이다. 박 목사는 그들을 "당장 현실에서 큰 성과를 내려고 하지 않고 먼 훗날 주님께서 이루실 일을 기대하며 무명의 한 사람으로 잊히기를 기뻐하는 사람들"(351쪽) 이라고 했다.

그리고 헤른후트 공동체의 그런 모습에서 박 목사는 한국교회가 맞닥뜨린 위기를 극복할 빛을 발견했다. "말씀과 기도, 성찬과 성령, 선교적 사명이라는 근본을 회복하되, 이름 없는 한 톨의 씨로 살다가 즐거이 사라지기를 간절히 구하는 일"(351쪽)이 그것이다. 이는 그가 사도행전 4장 32절부터 8장 40절에서 길어 올린 교회의 원리이기도 하다. <교회의 사도행전>은 독자들을 그 '거룩한 단순함'으로 초대하고 있다.

<교회의 사도행전>은 박대영 목사의 사도행전 강해 시리즈 중 2권이다. 1권은 지난해 나온 <부흥의 사도행전>이었다. 박 목사는 사도행전 강해 시리즈 3~5권을 올해 다 펴낼 예정이라고 했다.<환대의 사도행전>, <선교의 사도행전>, <하나님 나라와 사도행전>이라고 제목도 벌써 정했다. 뉴스앤조이 김은석
<교회의 사도행전>은 박대영 목사의 사도행전 강해 시리즈 중 2권이다. 1권은 지난해 나온 <부흥의 사도행전>이었다. 박 목사는 사도행전 강해 시리즈 3~5권을 올해 다 펴낼 예정이라고 했다.<환대의 사도행전>, <선교의 사도행전>, <하나님 나라와 사도행전>이라고 제목도 벌써 정했다. 뉴스앤조이 김은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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