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앤조이-구권효 기자] 구럼비바위를 한 번이라도 본 사람이라면 마음 한편에 어떤 부채감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제주 강정마을에 있던 구럼비는 길이 1.2km에 달하는 너럭바위로 마을의 상징과 같았다. 바위에서 느껴지는 아름다움과 생명의 힘은 단지 경제 논리로 이야기될 종류가 아니었다. 하지만 정부는 해군기지 건설이라는 국책 사업을 이유로, 2011년 9월 2일 구럼비바위로 가는 길을 막았고 이듬해 3월 7일 바위를 발파했다. 

제주 해군기지 건설은 지역 선정 과정부터 문제가 있었다. 원래 화순리와 위미리에 지으려고 했다가 주민들의 반대에 부딪혀 무산됐다. 그러다 갑자기 2007년 해군기지 건설 부지가 강정마을로 결정됐다. 당시 마을회장이 주민 87명만 모아 박수로 해군기지 유치를 결정한 것이었다. 이 사실을 알게 된 주민 725명이 모여 투표했을 때 94%가 반대했다. 하지만 정부는 대대적으로 강정마을에 해군기지 건설을 밀어붙이기 시작했다. 

공권력이 한 마을과 자연을 헤집는 것을 보고 마을 주민뿐 아니라 육지에서도 많은 사람이 반대했다. 게다가 제주 해군기지는 미국의 동북아시아 전초기지 역할을 하며, 중국과의 군사적 긴장을 높일 것이 뻔했다. 생명과 평화의 가치로 해군기지 건설을 반대하는 사람들을 정부는 무자비하게 탄압했다. 해군기지 반대 투쟁은 연행 697명, 기소 881명, 구속 24명, 벌금 3억 원이라는 기록(?)을 세웠다. 결국 2016년 2월 제주 해군기지는 완공됐다. 

다 지어진 지도 한참인데 지금 이런 말을 늘어놔 봐야 무슨 소용이냐 싶을 수도 있다. 하지만 강정마을에서는 여전히 '해군기지 반대 투쟁'이 이어지고 있다. 평화운동가 송강호 박사의 말처럼, 다 지어졌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불법이 없었던 일처럼 되지는 않기 때문이다. 절차상 불법, 환경 파괴, 마을 공동체 파괴, 제주의 군사기지화 등 어느 하나도 해결된 것은 없기 때문이다. 

강정마을이 파괴되는 걸 못 견딘 사람들
<돌들의 춤 - 강정에 사는 지킴이들의 이야기> / 딸기, 호수 정주 지음 / 카카포 펴냄 / 276쪽 / 1만 8000원
<돌들의 춤 - 강정에 사는 지킴이들의 이야기> / 딸기, 호수 정주 지음 / 카카포 펴냄 / 276쪽 / 1만 8000원

그리고 그곳엔 여전히 '지킴이'들이 있기 때문이다. 지킴이들은 강정마을 원주민은 아니지만 해군기지 반대 투쟁에 이끌려 여러 곳에서 건너와 강정에 정착하게 된 사람들을 말한다. 3월 7일 출판된 <돌들의 춤 - 강정에 사는 지킴이들의 이야기>(카카포)는 현재 강정마을에 사는 지킴이 11명의 구술 인터뷰집이다. 인터뷰어이자 인터뷰이인 강정 지킴이 '딸기'와 '호수 정주'가 썼다. 

이 책을 보면 해군기지 반대 투쟁이 어떻게 이어지고 있는지 알 수 있다. 지킴이들이 강정마을에 온 시기와 이유 등은 각자 다르다. 이들은 짧게는 8년에서 길게는 12년까지 강정마을에서 살고 있다. 해군기지에 반대한다는 큰 뜻은 같아도, 강정마을에 정착한 이유와 현재 활동은 조금씩 차이가 있다. 지킴이로 불리지만, 하나로 뭉뚱그려서 이야기할 수 없는 존재들이다. 

해군기지 건설을 막는 투쟁이 한창일 때 정부는 이들을 '외부 세력', '전문 시위꾼'이라고 칭했다. 불온한 목적을 가진 사람들이 강정마을 주민들을 충동질해 국책 사업을 막는다는 이미지를 씌운 것이다. 권력을 가진 이들이 연대자들을 외부 세력이라고 갈라 치는 모습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지만, 정부의 선전 효과로 이런 마타도어를 진실로 믿는 사람이 많다.

"친하게 지냈던 친구가 교회분들이랑 같이 와서 식사를 했는데, 그중 한 분이 '강정 해군기지 반대는 북한을 위하는 일이기 때문에 사탄을 위하는 일이다'고 말했어요. 내 친구는 그냥 듣고만 있었고 교회 사람들에게 아무 말도 하지 않았어요. 생각이 다르다는 정도가 아니라 종교재판처럼 판단하는 건 진짜 위험하다고 느껴요. 강정을 방문하는 사람들이 질문을 할 때 단순히 궁금함일 수 있지만 '지킴이들은 이념적으로 어떤 사람들인가?' 하고 확인하려는 사람도 있어요. 지킴이들이나 나를 사람으로서 이해하려는 의지가 없이 '악'으로 보겠다는 입장이라면 진짜 무서운 일이죠. 

 

한번은 기지 정문 앞에서 한 해군이 '여기 평화 활동 하는 사람들 돈은 어디에서 나오느냐'는 질문을 했어요. '아르바이트하는 사람도 있고 단체에 소속돼서 활동하는 사람도 있다'고 설명했어요. 해군이 '그렇구나' 하면서 '이 시위(인간 띠 잇기)할 때는 돈을 얼마 받느냐?'고 물었어요. '인간 띠 잇기 오는 것으로 돈 버는 것 아니다'라고 했어요." (87~88쪽, 지킴이 카레 이야기)

당연히 지킴이들은 (그런 게 있는지도 모르겠지만) '전문 시위꾼' 같은 것이 아니다. 이들은 생명이든 인권이든 평화든 가톨릭 혹은 개신교 신앙이든 각자의 신념에 따라 강정마을로 왔다. 강정마을에 와서 평화 활동가로 살고 있지만, 그전에는 평범한 종교인, 예술가, 고시생, 꽃집 사장 등 다양한 일을 했다. 물론 전부터 평화운동을 해 온 사람도 있다. 굳이 공통점을 찾자면 강정마을이 파괴되는 것을 보고 견디지 못했던 사람들이라는 점일 것이다. 

"2012년 3월 7일, 구럼비가 깨지고 사람들이 연행되는 걸 보면서도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무기력한 상태에 있었어요. 내가 너무나 아끼고 사랑하는 것이 부서지고 깨지고 죽임을 당하는데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것이 너무 힘들었어요. 온몸으로 지킨 구럼비가 눈앞에서 부서지는 걸 보니까 돌아 버리겠더라고요. 3월 9일 새벽에 몇몇 활동가들과 함께 바다를 통해 구럼비로 갔어요. '구럼비가 폭파되는 것을 보고만 있을 수 없다'는 마음이었죠. 구럼비바위에 폭약을 넣기 위해서 굴착기로 바위를 깨려고 하는 순간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몸이 먼저 튀어 나갔어요. 순식간에 굴착기를 타고 올라갔죠. 벤자민이라는 프랑스 친구도 올라왔어요. 그 모습을 보고 사람들이 철조망을 뚫고 구럼비로 우르르 들어왔어요. 해가 질 때까지 공사를 막았고 경찰서에 끌려갔죠. 

 

폭파되는 구럼비를 눈앞에서 본 내가 사랑하는 구럼비를 지키기 위해 할 수 있었던 최선이었어요." (66쪽, 지킴이 테라 이야기) 

강정마을로 주소지를 옮겼다고 해서 공동체성을 느낀 것만은 아니었다. 원주민과의 마찰도 있었다. 공사 초기에는 마을 주민 대부분이 반대했지만, 구럼비로 가는 길이 막히고, 구럼비가 발파되고, 그 자리에 해군기지가 들어서고, 보란듯이 관함식이 열리고… 시간이 지나며 반대했던 사람들도 점점 지쳐 갔다. 지킴이들은 이미 강정마을 주민이면서도 원주민과는 다른 자신들의 위치와 정체성을 고민하고, 각자의 방식으로 이를 받아들이며 살고 있다. 

지킴이들이 매일 하는 활동은 아침 7시 생명 평화 100배와 11시 가톨릭 미사, 12시 인간 띠 잇기다. 인간 띠 잇기 때는 모두가 원을 그리고 '강정 4종 댄스'를 춘다. 이후 '할망물식당'에서 함께 점심을 먹는다. 이 루틴은 10년 넘게 해 온 것이다. '이미 다 지어진 마당에 그런 행동이 무슨 효과가 있느냐'는 질문도 지킴이들이 안고 갈 문제다. 그러나 이 루틴이, 해군기지는 불법이며 반대 투쟁이 끝나지 않았다는 상징이 된 것은 부인할 수 없다. 

끝났다고, 소용없다고 하지 말자
2011년 9월 1일 찍은 구럼비바위 사진. 멀리 희미하게 범섬이 보인다. 뉴스앤조이 구권효
2011년 9월 1일 찍은 구럼비바위 사진. 멀리 희미하게 범섬이 보인다. 뉴스앤조이 구권효

나는 2011년 9월 1일 친구와 제주 여행을 갔다가 강정마을에 들렀다. 구럼비바위를 맨발로 밟고 한참 동안 바다를 바라봤다. 구멍마다 물이 고여 있고 작은 생명들이 움직이던, 경외심을 불러일으키던 구럼비. 다음 날 구럼비로 가는 길이 막혔다는 소식을 듣고 가슴이 철렁했다. 이후에도 소셜미디어에서 강정마을 소식을 보고 슬퍼했지만, 그뿐이었다. 그 투쟁은 그들이 해 줄 거라고 애써 생각했다. 어쩌면 내 마음 한편의 부채감은 그런 것일지도 모른다. 

가끔씩 강정마을 소식을 기사로 전할 때마다, 사람들은 '지금 와서 해군기지 반대 투쟁이 무슨 의미가 있느냐'고 싸늘하게 반응했다. 너무하다고 생각하다가도, 나 역시 어느 순간 그 의미와 효과에 의문을 품었던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이번 <돌들의 춤>에 나오는 지킴이들의 삶을 보며, 해군기지 반대 투쟁의 의미나 효과는 내가 판단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유는 간단하다. 사실 육지에 있는 나는 잘 모르기 때문이다.

"강정뿐 아니라 평택 대추리, 밀양이나 성주 소성리처럼 강정과 함께 역사를 쌓아 가는 현장들이 있잖아요. 멀리서 볼 때와 직접 현장에서 함께할 때 그 투쟁에 대한 감각은 분명 달라요. 오랜 시간 이어지는 투쟁 사례를 보지 못한 사람들은 그런 현장에 대해 상상하기 어렵죠. 자신들이 경험한 세계만큼 질문할 수 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해요. 싸움이 졌다거나 끝났다거나 하는 말들로 현장의 투쟁을 평가해서는 안 돼요." (143쪽, 지킴이 호수 정주 이야기)

"우리가 매일 투쟁하지만 우리가 있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들이 많을 거예요. 그래도 세상 돌아가는 것에 대해 노력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걸 알게 되면 더 이상 쉽게 보지 않게 되죠. 세상이 망가져 가니까 그것만 보게 되면 삶이 의미가 없어질 수도 있는데, 가치를 추구하며 다르게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다는 걸 알면 나도 그렇게 살아 보고 싶다 생각하게 될 것 같아요." (164쪽, 지킴이 반디 이야기)

"강정에 온 사람들은 돈 때문에 이곳에 온 것은 아니에요. 이 땅 위에 서서 모멸감을 받으면서도 왜 이 일을 하고 있냐면 순수한 이상과 가치에 대한 희망 때문 아닐까 싶어요. 우리는 생명을 살리기 위해 이곳에 있어요. 나는 꿈을 꿔요. 구럼비 속에 죽어 가는 생명들이 다시 살아나는 것을 보게 되는 꿈을요." (39쪽, 지킴이 정선녀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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