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앤조이-김은석 간사] 서울 서대문구 연희동은 익숙한 동네입니다. 제가 딸아이의 주 양육자로 지내며 프리랜서 일을 하던 때의 기억이 소환되는 동네이기도 합니다. 아내 직장이 마포구 서교동에 있는데, 집에서 아내 직장으로 가는 길에 늘 연희동을 지나쳤거든요. 혼자서 아이를 돌보는 고달픈 시간을 어떻게든 줄이고 싶어서 아내 퇴근 시간에 맞춰 아이를 차에 태우고 회사 앞까지 마중 나간 것입니다. 그때 많이 달린 길이 연희로와 홍제천로를 이어 주는 증가로입니다. 

증가로 언덕배기를 오르내리며 수없이 지나친 상가 건물이 있습니다. 3층짜리 빨간 벽돌 건물인데, 1층에 영어로 큼직하게 'master'라고 쓴 간판을 단 자동차 정비소가 있어서 눈에 잘 띄었습니다. 그런데 그 건물 3층에 교회가 숨어 있다는 건 이번에 처음 알게 됐습니다. 정의의느티나무숲교회(장재령 담임목사)입니다. 십자가 종탑은 물론, 보통 상가 교회가 건물 외벽에 큼직하게 걸어 놓는 간판도 없습니다. 1층 출입구에 붙은 조그마한 간판이 전부입니다. 

계단을 오르는데 겉보기와 달리 건물 내부가 깔끔한 편입니다. 예배당에 들어서면 전체를 하얗게 칠한 벽과 예배당 앞쪽에 나뭇가지로 엮어 만든 십자가와 넝쿨 장식, 아이들을 위해 평상 모양의 벤치들로 꾸민 놀이 공간이 시선을 사로잡습니다. 그리고 파이프오르간. 상가 교회에 파이프오르간이? 놀라웠습니다. 낡은 빨간 벽돌 건물 안에 이렇게 멋진 예배당이 있을 줄은 상상도 못했습니다.

서울 서대문구 증가로 29에 정의의느티나무숲교회 예배당이 있습니다.  3월 5일 사순절 둘째 주일예배에 참석했습니다. 뉴스앤조이 김은석
서울 서대문구 증가로 29에 정의의느티나무숲교회 예배당이 있습니다.  3월 5일 사순절 둘째 주일예배에 참석했습니다. 뉴스앤조이 김은석

예배가 시작되려면 20분쯤 남았습니다. 자리를 잡고 앉아 주보를 들여다봅니다. 디자인이 정갈하고 세련됐습니다. 헌데 주보 치고는 내용이 많습니다. 총 8면입니다. 표지면과 교회 소식이 담긴 마지막 면을 뺀 6면에 걸쳐 예배 순서가 빼곡하게 담겨 있습니다. 예배 시간이 얼마나 소요될지 슬슬 걱정이(?) 엄습하려는데, 파이프오르간 연주 소리가 울립니다. 음악이 공간을 채워 가자, 속속 도착하는 교인들로 빈 자리도 하나둘 채워집니다. 

장엄하고 신비한 소리의 틈을 비집고 아이들이 재잘거리는 소리가 들려옵니다. 이상하게도 두 소리가 섞여 들리는 게 조화롭습니다. 평화롭기도 합니다. 부모 곁에 자리 잡은 아이들, 예배당 뒤편 놀이 공간에서 그림책을 뒤적이는 아이도 눈에 들어옵니다. 다시 음악에 집중하며 예배 시작을 기다립니다. 흐르고 있는 연주곡 제목이 참 좋습니다. "우리는 걸어갑니다. 보이는 것이 아닌 믿음에 의지해서 걸어갑니다." 

정의의느티나무숲교회 예배 풍경
교회력에 따른 성서 일과 중심으로
아이들과 함께하는 예배

11시가 되자 장재령 목사가 설교대 앞으로 나와 사순절 둘째 주일 예배의 시작을 알립니다. 오르간 반주에 맞춰 찬송가 81장을 부릅니다. 몸은 분명 상가 건물 3층에 있는데 귀는 500년쯤 된 고딕 건축물 안에 있는 듯한 기분입니다. 

정의의느티나무숲교회 파이프오르간. 사진 제공 정의의느티나무숲교회 
정의의느티나무숲교회 파이프오르간. 사진 제공 정의의느티나무숲교회 

정의의느티나무숲교회 주보가 긴 첫 번째 이유는 교회력에 따른 성서 일과(Revised Common Lectionary)를 중심으로 예배를 드리기 때문입니다. 예배 중에 함께 읽는 시편과 구약, 서신서, 복음서 본문이 모두 실려 있습니다. 두 번째 이유는 노래하는 순서가 많아서입니다. 8곡의 악보가 담겨 있습니다. 그중 일반 교회에서 부르는 찬송가는 3곡입니다. 5곡은 이 교회에서 처음 봅니다. 

노래는 성서 일과 말씀을 읽는 중간중간에 함께 부릅니다. 시편의 경우, 절반을 교독한 뒤 시편 23편 3절에 선율을 붙인 노래를 부르고 남은 절반을 마저 교독합니다. 구약과 서신서 본문을 읽고 나서는 응답송을 부릅니다. 한 줄짜리 짧은 노래를 따라 부르는데 여운이 쉬 가시지 않습니다. "보이지 않아도 보이고, 들리지 않아도 들리네. 절망 속에 주님의 승리가." 

복음서 본문까지 다 읽고 나니, 흩어져 있던 아이들이 우르르 예배당 앞으로 몰려갑니다. 맨 앞 줄이 아이들로 꽉 찼습니다. '작은 나무 이야기' 시간입니다. 아이들은 하얀 벽 위에 빔 프로젝터가 비추는 그림을 보며, 어른이 읽어 주는 그림책 이야기를 듣습니다. 이날 아이들이 보고 들은 것은 다비드 칼리가 쓰고 세르주 블로크가 그린 <나는 기다립니다>(문학동네) 이야기였습니다.

'작은 나무 이야기' 순서가 되면 아이들이 예배당 앞 줄로 나와 그림책 이야기를 보고 듣습니다. 뉴스앤조이 김은석.
'작은 나무 이야기' 순서가 되면 아이들이 예배당 앞 줄로 나와 그림책 이야기를 보고 듣습니다. 뉴스앤조이 김은석.

그림책을 읽은 뒤 아이들과 함께 드린 기도 내용도 인상적이었습니다. 

"나를 기다리시는 주님, 저는 예수님의 붉은 피로 살아가요. 
소중한 삶을 주셔서 감사해요. 주님의 붉은 끈을 꼭 잡고 살아갈래요.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기도 후  아이들이 예배당 옆방으로 자리를 옮기는데, 또 다 같이 노래 한 소절을 부릅니다. "키가 자란다. 발이 커진다. 성큼성큼 걸어간다. 말씀 속으로." 설교와 봉헌 순서를 마칠 때까지 아이들은 담당 교역자와 함께 '작은 나무 활동'이라는 시간을 보냅니다. 오감으로 말씀을 체화하는 다양한 활동을 한다고 합니다. 

정성스레 준비한 전례典禮들이 
음악과 회중의 참여 위에
자연스럽게 이어지다

'숲에 주신 말씀'이라고 이름 붙인 설교 시간이 이어집니다. 장재령 목사는 이날 성서 일과의 복음서 본문인 요한복음 3장 1~17절을 바탕으로 설교했습니다. 어두운 밤에 예수님을 찾아온 니고데모가 훗날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을 장사 지내러 오기까지 어떤 내적 변화를 겪었을지 헤아려 보는 내용이었습니다. 바리새인 니고데모가 어둠을 뚫고 빛이신 예수님께 나아온 이야기를 차분한 목소리로 전합니다.

제 마음에 와닿은 한 대목을 옮겨 봅니다.  

"요한복음 3장에서 19장에 이르는 긴 시간 동안, 니고데모는 마치 어두운 땅에 묻힌 씨앗처럼 어둠을 견뎌 냅니다. 어둠 속에서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것 같은 날들이 많았고, 때때로 마음 한편이 욱신거리기도 했지만, 그는 그 시간을 묵묵히 살아 냅니다. 그리고 마침내 어둠을 뚫고 여리지만 전혀 새로운 한 줄기의 싹을 틔웁니다. 이러한 맥락에서 믿음은 어둠을 견디는 일입니다. 어둠 속에서 내가 다 이해할 수 없는 그분의 말씀을 품고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일입니다."

'숲에 주신 말씀' 시간에 교회력 본문을 가지고 설교하는 장재령 목사. 뉴스앤조이 김은석
'숲에 주신 말씀' 시간에 교회력 본문을 가지고 설교하는 장재령 목사. 뉴스앤조이 김은석

설교 후 봉헌 순서까지 마무리되면 아이들이 돌아옵니다. 장재령 목사가 빵과 잔을 높이 들고 회중을 성찬의 식탁으로 초대하자 교인들은 노래로 신앙의 신비를 고백합니다. "그리스도는 죽었고, 살아나셨고, 다시 오시리." 이어서 주기도를 올린 후 떡과 잔을 받기 위해 길다랗게 줄을 섭니다. 장재령 목사가 허리를 90도로 숙여 내민 성찬 키트를 "아멘" 하면서 고사리손으로 받던 어린아이의 뒷모습이 아직 잔상으로 남아 있습니다. 20분 정도 걸렸을까요. 아이들까지 어림잡아 60명쯤이 모두 떡과 잔을 받고 난 뒤 특별한 기도문을 함께 읽습니다. 2세기 초 기독교 예배에서 사용된 책 <디다케>에서 인용한 내용이라고 합니다.

"(전략) 한때 여러 산들 위에 흩어졌던 이 빵의 성분들이 한데 모여 하나를 이루듯 저희도 거룩한 교회를 이루어 당신 나라와 하나 되게 해 주십시오."

성찬 후 예배를 마무리하는 순서들이 이어집니다. "나를 형성한 완고한 세상에서 나를 구원하시는 예수님을 따라, 삶을 다시 건축하는 사순절을 살아갑시다"라고 장 목사가 회중에게 건넨 '보내는 말씀'도 인상적이었습니다. 축복기도에 이어 오르간 후주가 흘러나옵니다. '길고 긴 길(Long Road)'이라는 제목의 곡이었습니다.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 어둠을 견디며 내디딜 믿음의 발걸음을 잔잔히 응원해 주는 것 같습니다. 

그렇게 예배가 끝났습니다. 100분 정도 흘렀는데, 길다는 느낌을 별로 못 받았습니다. 정성스럽게 준비된 전례들이 자연스럽게 이어지고, 노래와 성찬 등 참여할 수 있는 순서가 잘 배치되어 그랬던 것 같습니다. 이런 표현이 괜찮을지 모르겠지만 예배가 아주 잘 기획되었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정의의느티나무숲교회 성찬에는 아이를 포함한 모든 이들이 초대됩니다. 사진 제공 정의의느티나무숲교회
정의의느티나무숲교회 성찬에는 아이를 포함한 모든 이들이 초대됩니다. 사진 제공 정의의느티나무숲교회
목사와 교회음악가가 동역하는 
5년 차 개척 교회

실제로 기획된 예배였습니다. 주보 7면 하단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아주 작은 글씨로 기획자의 이름이 나옵니다. 김현지, 윤인아. 두 사람 모두 정의의느티나무숲교회 교역자입니다. 한 명은 교회음악가이자 오르간 연주자고 한 명은 교육전도사입니다. 네, 이렇게 작은 교회에 교역자가 세 명이나 있었습니다. 정의의느티나무숲교회 예배에서 단순히 성서 일과 본문을 따라 전례를 강조하는 것 이상의 무언가가 있다는 느낌을 받은 것은 세 교역자가 매주 머리를 맞대고 치열하게 예배를 기획하기 때문이었습니다.

특히 교회음악가를 교역자로 두고 있다는 게 남다릅니다. 반주자, 지휘자, 음악 전도사, 음악 목사 정도가 익숙한 한국교회에서 '교회음악가'는 낯선 직함입니다. 그런데 김현지 교회음악가의 경력을 보니 앞서 나열한 직함들보다 교회음악가라는 직함이 훨씬 어울립니다. 대학에서 오르간을 전공한 그는 미국 유학을 가서 교회 음악(MSM)과 예배학(STM)을 공부했습니다. 다니던 신학대학원 채플에서 음악부감독을, 성공회 교회에서 음악감독을 역임했습니다. 한국에 돌아와서는 한국기독교100주년기념교회에서 약 6년간 4부 예배 성가대 지휘자로 일했습니다. 그리고 2018년 12월 2일부터 정의의느티나무숲교회 교회음악가로 살고 있습니다.   

2018년 12월 2일은 그해의 대림절 첫 주일이었고, 정의의느티나무숲교회가 시작된 날입니다. 장재령 목사와 김현지 교회음악가는 처음부터 교역자로 동역해 온 것입니다. 두 사람의 만남은 100주년기념교회에서 시작됐습니다. 장 목사 역시 100주년기념교회에서 청년부 교역자로 오래 일했는데, 4부 예배 성가대 담당 목사이기도 했습니다. 청년부 교역자와 성가대 지휘자로 함께하며 청년들과 '재의 수요일 예배', '세족식', '성금요일 예배' 등 다양한 예배를 시도했다고 합니다. 

"교회음악가님은 그냥 지휘자가 아니셨어요. 저에게 먼저 오셔서 제가 책에서만 보던 재의 수요일 예배를  실제로 해 보자고 제안을 하시더라고요. 성가대라는 작은 청년 공동체 안에서 교회음악가님과 다양한 예배를 함께 준비하고 경험하면서, '만약 다음에 교회를 새로 시작하게 된다면 동역하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죠." (장재령)

정의의느티나무숲교회 세 교역자입니다. 장재령 담임목사, 김현지 교회음악가, 윤인아 교육전도사(왼쪽부터). 뉴스앤조이 김은석
정의의느티나무숲교회 세 교역자입니다. 장재령 담임목사, 김현지 교회음악가, 윤인아 교육전도사(왼쪽부터). 뉴스앤조이 김은석

실제로 그런 상황이 2018년에 찾아왔습니다. 2017년을 끝으로 100주년기념교회에서 사임한 장재령 목사는 1년간 목회 공백기를 갖고, 여러 교회를 탐방도 해 보면서 교회 공동체가 무엇인지 톺아보는 시간을 보냈습니다. '무수히 많은 교회가 있는데 굳이 또 하나의 교회가 필요할까'라는 질문이 '아, 이 시대에 또 하나의 교회를 시작해 보는 것도 괜찮겠다'는 마음으로 바뀌자, 함께 교회를 시작하고 싶은 사람들을 한 명씩 찾아나섰습니다. 물론 그중에 김현지 교회음악가도 있었습니다.

"저는 30대의 대부분을 100주년기념교회에서 청년들과 보냈어요. 하지만 교회를 시작할 때, 한 집사님의 조언에 따라 오래 담당했던 20대 청년들에게는 연락하지 않았습니다. 제가 교회를 떠난 뒤에도 여전히 관계가 닿았던 분들 중에서, 결혼해 가정을 이루거나, 아이를 양육하며 다른 삶의 국면을 맞이하신 분들, 잠시 신앙생활을 쉬고 있던 분들을 많이 만났어요." (장재령)

"그때 저는 성가대 지휘자 6년 차였고 둘째 아이가 두 살이었는데, 예배와 가족에 대한 고민을 심각하게 하고 있었어요. 주일마다 저희 가족은 뿔뿔이 흩어져 보냈거든요. 남편은 출근하고, 아이들은 친정 부모님에게 맡겨야 했죠. 성가대 청년들과는 신앙 공동체로 같이 성찬도 하고, 재의 수요일 예배도 드리고, 세족식도 하는데, 제 아이들과는 찬송가 한 곡조차 공유하지 못하고 있더라고요. '이게 맞나? 뭔가 결단을 해야겠구나' 생각하던 시기였어요. 그래서 목사님이 같이 교회를 시작하고 제안하셨을 때 자연스럽게 받아들였던 것 같아요." (김현지)

파이프오르간을 연주 중인 김현지 교회음악가. 뉴스앤조이 김은석
파이프오르간을 연주 중인 김현지 교회음악가. 뉴스앤조이 김은석
처음부터 아이들과 함께 예배하는 게 원칙,
"함께하는 예배가 아이들 신앙 형성의 중요한 토대"

김현지 교회음악가가 오르간 연주를 하지 않고 있을 때 딸아이가 조용히 다가가 다소곳이 옆에 앉던 모습이 떠오릅니다. 현재 정의의느티나무숲교회 교인 중에서 아이들을 키우고 있는 비율은 80%에 가깝다고 합니다. 아이들은 20명이 넘습니다. 어쩌면 아이들과 함께 예배하는 것은 처음부터 이 교회의 중요한 정체성이었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공동체에서 부모와 함께, 또 다른 어른들과 함께,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섬기고 예배하는 것은 아이들의 신앙을 형성하는 중요한 토대라고 생각해요. 저도 어릴 적 교회에서 보낸 시간이 선명하게 기억나거든요. 제 손에 500원짜리 동전을 쥐어 주시던 집사님, 저에게 깊은 속 이야기를 나눠 주신 선생님. 아이들이 단순히 교회 예배에 참여하는 게 아니라, 우리가 성령이 함께 계시다고 고백하는 예배의 공간에 함께 있으면서, 그 분위기와 감각들을 어른들과 아이들이 공유해야 한다는 것을 처음부터 원칙으로 세웠어요." (장재령)  

아직 아이들 담당 교역자가 없던 시절에 아이들을 위한 예배 순서로 만들어 낸 게 '작은 나무 이야기' 시간입니다. 어른들이 돌아가며 그림책을 골라 와 읽어 주고, 그 내용에서 얻은 교훈을 바탕으로 아이들과 함께 드릴 수 있는 '작은 나무 기도문'을 올립니다. 

올해 초 교육전도사로 부임해 아이들과 '작은 나무 활동' 시간을 꾸려 가는 등  정의의느티나무숲교회 어린이 교육을 맡고 있는 윤인아 전도사는, 기존에 사역한 교회들에서 가졌던 문제의식이 정의의느티나무숲교회에 와서는 해소되었다고 합니다. 

"사역을 해 오면서 늘 부딪히는 지점이 있었어요. 아이들은 부모님과 분리될 수 없는 존재인데 교회에 오면 자연스럽게 분리가 되는 거예요. 그런데 이 교회에서는 아이들과 부모를 분리하려 하지 않아요. 그렇다고 굳이 계속 붙어 있게 하지도 않고요. 설교 시간에 어른들이 어른들의 감각으로 말씀을 듣듯이 아이들은 옆방에서 말씀을 소재로 무언가를 만지고, 듣고, 만들어 보면서 시간을 보내요. 그리고 다시 예배당으로 돌아가죠. 그렇게 예배 전체 과정 속에서 어른들과 아이들이 자연스럽게 잇닿아 있다는 게 느껴져요." (윤인아)

어른들이 설교를 들을 때 아이들은 예배당 옆방에서 '작은 나무 활동' 시간을 보냅니다. 사진 제공 정의의느티나무숲교회
어른들이 설교를 들을 때 아이들은 예배당 옆방에서 '작은 나무 활동' 시간을 보냅니다. 사진 제공 정의의느티나무숲교회

아이가 태어난 후로 예배에 집중하는 게 불가능하고 참여하기도 어려웠다는 30대 후반의 교인은 정의의느티나무숲교회에서 아이들과 함께 예배하며 느끼는 기쁨과 깨달음을 이렇게 표현합니다. 

"예배의 자리에 아이와 함께할 수 있다는 것 자체로 감동적이었어요. 물론 처음에는 예배 흐름에 내 아이가 방해가 되지는 않을까 신경이 많이 쓰였죠. 어느 주일 예배 때 유독 아이들이 소란스러웠던 순간이 있었는데, 목사님께서 부모들에게 아이들을 제지해 달라고 부탁하시는 게 아니라, 성도들에게 양해를 구하시는 걸 보고 '아, 아이들도 우리 교회 성도구나' 다시 생각하게 됐어요." (이형주)

장 목사 말로는 아이들과 예배드리는 게 힘들어 교회를 떠난 청년들도 있다고 하는데, 싱글인 30대 초반의 교인은 정의의느티나무숲교회에 속하기로 결심한 가장 큰 이유가 아이들과 함께 예배하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자모실 등의 이름으로 어린이가 내는 자연스러운 소리와 움직임을 유리막으로 차단하지 않는 것, 돌봄을 특정인에게만 맡기지 않는 것이 옳다고 생각했어요. 어린이와 성인이 동일하게 존중받는 공간이 아름답다고 느껴졌습니다. 많은 사람이 어린이였던 저를 견디고 돌봐 주어서 지금의 제가 되었고, 앞으로 저도 누군가를 견디고 돌봐야 하는 존재가 될 텐데, 의식적으로 그 순환의 일부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홍미소)

정의의느티나무숲교회 예배당 뒤쪽에는 아이들과 부모님이 편하게 앉아 예배드릴 수 있는 공간이 있습니다. 뉴스앤조이 김은석
정의의느티나무숲교회 예배당 뒤쪽에는 아이들과 부모님이 편하게 앉아 예배드릴 수 있는 공간이 있습니다. 뉴스앤조이 김은석
교회력, 예수님의 생애 따라 한 해를 사는 리듬

아이들과 함께하는 예배 못지않게, 아니 어쩌면 그보다 더 정의의느티나무숲교회에서 강조하는 게 교회력입니다. 심지어 교회 설립도 교회력이 시작되는 대림절 첫째 주일에 맞추어서 했습니다. 앞서 적은 것처럼 교회력에 따른 성서 일과를 따라 예배를 드릴 뿐 아니라, 교인들의 일상을 교회력에 중첩하기 위한 다양한 노력을 기울입니다. 

일단 특별한 달력을 만들어 교인들에게 나누어 줍니다. 1년을 12달이 아닌 5개의 절기로 분류한 교회력 달력입니다. 미술을 전공한 교인이 멋진 그림으로 각 절기를 표현해 낸 그림도 실었습니다. 오시는 예수님을 기다리고 맞이하는 '대림과 성탄', 공적 생활을 하신 예수님을 따라 걷는 '주현', 예수님의 고난과 죽음에 동참하는 '사순', 다시 사신 예수님과 살아나는 '부활', 성령과 함께 일상을 살아가는 '성령 강림'. 이렇게 흘러가는 교회력을 인식하며 "예수님의 생애를 따라 한 해를 사는 리듬"을 만들어 내자는 것입니다. 

절기가 바뀌면 김현지 교회음악가는 시편 찬송과 응답송 등 예배에서 부르는 노래를 새롭게 만들어 냅니다. 혼자서 만들지 않고 교인들과 함께 만듭니다. 요즘 부르고 있는 응답송도 교인 중 한 분에게 요청해 받은 노랫말과 선율을 다듬어 채보한 것이라고 합니다. 

절기를 기념하는 예배를 정성껏 준비합니다. 대표적인 게 재의 수요일 예배와 성금요일 예배입니다. 올해 사순절이 시작되던 2월 22일에는 재의 수요일 예배를 드렸습니다. 장재령 목사는 사순절인 요즘 매일 아침 6시 30분에 유튜브 채널에서 사순절 아침 기도를 실시간으로 송출합니다. 4월 7일에는 성금요일 예배도 드립니다. 

정의의느티나무숲교회는 교회력에 따른 성서 일과를 따라 예배를 드릴 뿐 아니라, 교인들의 일상을 교회력에 중첩하기 위한 다양한 노력을 기울입니다. 뉴스앤조이 김은석
정의의느티나무숲교회는 교회력에 따른 성서 일과를 따라 예배를 드릴 뿐 아니라, 교인들의 일상을 교회력에 중첩하기 위한 다양한 노력을 기울입니다. 뉴스앤조이 김은석

왜 이렇게 교회력을 강하게 붙들고 있는지 물었습니다.

"처음 교회를 시작할 때 교인 대부분이 30~40대였는데요. 결혼과 육아, 사회생활 등을 거치며 20대 때 형성한 신앙을 잃어버리는 경험을 하는 거예요. 해외 선교도 가고, 찬양도 뜨겁게 했던 과거의 신앙이 어디론가 사라져 버린 거죠. 전처럼 다시 뜨겁게 찬양하고, 열심히 모이면 첫 사랑이 회복될까요? 그건 아닌 것 같아요. 인간이 세월의 흐름에 따라 성숙해 가는 것처럼, 신앙도 우리가 여러 환경에 노출되고 다양한 경험을 하면서 변해 가는 거죠. 그렇다면 이제 조금 다른 맥락에서 우리의 신앙과 삶을 세워 가야 하지 않을까 하는 마음으로 교회력을 붙잡게 된 것 같아요. 교회력이 지닌 장점들을 먼저 경험하고 시작한 게 아니라, 기독교의 오랜 전통인 교회력에 근거해 살아갈 때 우리 신앙은 어떻게 뿌리내리게 될까'라는 기대감으로 교회력을 따르기 시작한 거예요." (장재령)   

대부분 교회력에 익숙치 않은 채로 교회에 온 교인들은, 여전히 낯설기도 하지만 조금씩 교회력의 리듬에 신앙과 일상을 포개어 가는 듯합니다.

"저는 원래 기질적으로 교회력은커녕 하루 일과도 머릿속에 그리며 살아가기 어려운 사람이었어요. 절기를 의식하며 살아 본 적은 거의 없었죠. 그런데 무슨 일인지 이번 재의 수요일 예배를 기점으로 사순절을 깊이 느끼며 하루하루 살고 있습니다. 심지어 하루 일과에 선명한 루틴이 생겼고, 그것을 따라 생활하는 게 아주 즐겁습니다." (강신유)

영성 훈련으로 새로운 신앙 걸음 내딛는
"복잡한 도시 속 작은 수도회"

정의의느티나무숲교회에는 주일예배 외에 교인들이 참여할 수 있는 다섯 가지 모임이 있습니다. △기도와 지향 △숲 모임 △거룩한 독서 연습 △성찰 연습 △정기 피정. 많은 교회에서 일반적으로 운영하는 구역 모임이나 셀 모임 같은 건 없습니다. 다섯 가지 모임도 상시적으로 운영하는 게 아닙니다. 시즌제입니다. 그리고 모임 이름에 묻어나듯이 영성 훈련에 가깝습니다. 그나마 이름이 평범한 '숲 모임'조차 침묵 기도와 책 나눔, 기도 나눔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이렇게 영성 훈련을 중심으로 모임을 진행하는 이유는 교회력을 붙잡고 가는 것과 맞닿아 있었습니다. 

"신학대학원 들어갔을 때 의무적으로 1년간 영성 훈련을 받았어요. 능동적으로 말씀 안에 들어가고 침묵 기도를 하면서 예수님을 새롭게 만날 수 있다는 게 너무 놀랍고, 좋았어요. 이전까지의 신앙과 다른 방식으로 예수님을 만나는 법을 알게 된 거죠. 그렇게 3년을 보내고 나니까 새로운 신앙의 걸음이 시작된 느낌이었어요. 그렇기 때문에 과거의 신앙이 무용해지는 경험을 하고 있는 교인들과 어떻게 신앙을 새로이 형성해 갈까 했을 때 과거 제가 경험한 영성 훈련의 맥락에서 지향점을 찾게 된 것 같아요. 조금 낯설 수는 있지만 침묵 기도 안에서 하나님의 현존 앞으로 깊이 나아가고, 거룩한 독서 연습을 하며 능동적으로 말씀 안에 계신 그리스도를 만나는 연습을 하는 거죠. 저는 그런 것들이 교회력과 성서 일과라는 전통을 풍요롭게 해 주는 토양이 된다고 느끼고 있습니다." (장재령)

정의의느티나무숲교회에서 진행하는 모임들이 "복잡한 도시 속 작은 수도회처럼 보인다"고 한 강신유 님은 거룩한 독서 연습 모임, 그리고 사순절 아침 기도에 참여하면서 교리에 대한 관심과 그리스도를 알고 싶은 마음이 커졌다고 합니다. 이형주 님은 숲 모임에서 침묵 기도를 배우고 연습하는 게 조금 어려웠지만 "나의 의지와 생각 너머 깊은 곳에서 하나님이 들려주시는 말씀은 무엇일지 점점 궁금해져서 계속 침묵 기도를 어어 나가 보고 싶다"고 했습니다. 팬데믹 전 거룩한 독서 연습 모임에 참여했던 홍미소 님은 이전까지 한 번도 해 보지 않은 질문도 하게 되고, 성경을 읽는 새로운 관점이 생기기도 했다고 합니다.

장재령 목사는 "느슨한 관계 안에서 우리 만의 예배와 기도를 통해 고유한 공동체성이 형성되어 가는 중"이라고 했습니다. 뉴스앤조이 김은석
장재령 목사는 "느슨한 관계 안에서 우리 만의 예배와 기도를 통해 고유한 공동체성이 형성되어 가는 중"이라고 했습니다. 뉴스앤조이 김은석
전통의 길 위에서 창조적으로 형성해 가는 교회

"우리는 삶을 길 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여정으로 이해합니다. 이 길 위에서 만난 우리는, 서로의 다채로운 삶과 믿음을 존중하고, 벗 되어 함께 살아갈 것입니다." 

정의의느니타무숲교회가 내세우고 있는 지향 중 1번 '길과 벗'의 내용입니다. 멋진 표현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궁금했습니다. 이들이 어떻게 "벗 되어 함께" 살아가고 있는지. 더 직설적으로는 교인들이 서로 어떻게 교제하고, 공동체성을 키워 가는지.

"저희가 교인들 간에 서로 엄청 끈끈한 관계를 맺고 있지는 않아요. 그래서 때로는 어서 리더를 양성하고 소모임을 꾸려야 하지 않느냐는 조언을 듣기도 합니다. 그런데 한편으로는 어느 정도까지 가까워져야 그 사람을 사랑한다고 말할 수 있는 관계인지 질문이 생겨요. 저는 좀 다른 방식의 관계와 사랑도 성립될 수 있지 않나 싶거든요. 그리고 지금은 많은 교인이 아이들을 키우고 있어서 주중에 시간을 내기도 힘든 상황이죠. 그렇다고 서로에게 아예 무심한 것도 아니에요. 누군가 가족의 장례와 같이 힘든 일을 만나게 되면 마음이 모이기도 하거든요." (장재령)

"많은 교회가 해 온 것처럼 자주 같이 밥 먹고, 고민도 나누고, 서로 일상을 자세히 공유해야만 진짜 공동체성이 생길까요? 저는 그러지 않고도 다양한 것을 공유하며 영적 우정을 나눌 수 있는 것 같아요. 얼마 전 교인 한 분이 단편영화를 찍었는데 교회에서 시사회를 했어요. 스무 명쯤 앉아서 김밥 먹으며 영화를 봤죠. 서로 친하지 않은 사이였어요. 그런데 쭈뼛거리면서도 손 들어 질문도 하고 그랬어요. 그 모습이 너무 사랑스러운 거예요. 예전의 획일적인 방식 말고, 새로운 방식으로 서로 우정을 맺고 사랑할 수 있는 지점들을 교회가 개발해 줘야 한다고 생각해요." (김현지)

"저는 요즘 아침 기도를 하면서 공동체성을 느끼고 있어요. 함께 기도하는 시간을 통해 어떤 우정과 친밀감이 쌓이는 것 같거든요. 그리고 우리가 함께 한 하나님을 예배하는 동안 엄청난 성령의 소통과 운행이 일어나는 것 같아요. 내가 성찬을 받는 모습을 내 옆의 공동체 일원이 지켜보고, 나도 그가 주님의 몸인 것을 매주 확인하는 것을 통해 우리가 공동체임을 느끼기도 하죠. 느슨한 관계 안에서, 우리만의 예배와 기도를 통해 고유한 공동체성이 형성되어 가는 중인 것 같습니다." (장재령)

장재령 목사와 김현지 교회음악가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작은 교회라면 교인들이 서로 친밀한 관계를 맺기 위해 자주 만나 부대끼며 삶을 나눠야 한다는 저의 관념이 흔들렸습니다. '오래된 새 길'이라는 형용모순 표현이 떠오릅니다. 개척 5년 차인 정의의느티나무숲교회는 기독교 2000년 역사가 남겨 놓은 전통을 창조적으로 따르면서, 새로운 색깔의 신앙 공동체를 세워 가는 길을 걷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 4월 7일 저녁 8시 정의의느티나무숲교회가 예배 음악 프로젝트 합창단 베스퍼스와 함께 드리는 '성금요일 예배'를 <뉴스앤조이> 유튜브 채널에서 실시간 중계합니다. 현장 참가자도 20명에 한해 신청받습니다. 아래 링크에서 신청서를 작성해 주세요. 

참가 신청서: https://forms.gle/oRY5LbQ2JfgoEsoK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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