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앤조이-박요셉 간사] 일요일 오전 서울 종로는 어제를 잊은 듯 했습니다. 오징어잡이 배처럼 도로를 수놓은 포장마차는 모두 사라지고 거리는 조용했습니다. 갈매기살로 유명한 이 동네를 이전에 방문한 적이 있습니다. 주말 저녁, 취객인지 행인인지 구분하기 어려운 무리들이 점령군처럼 골목 곳곳을 차지하고 있었죠. 아침과는 사뭇 다른 풍경이었습니다.

행인 없는 도로를 가로질러 낙원상가로 이동했습니다. 옷을 말끔히 차려입은 사람들이 상가 안으로 하나둘씩 들어갑니다. 뒤따라가 엘리베이터에 함께 올라탔습니다. 목적지는 5층 청어람홀. 새맘교회(이수연 목사)가 매주 주일예배를 드리고 있는 곳입니다.

청어람홀에서 예배드리는 새맘교회 교인들. 뉴스앤조이 박요셉
청어람홀에서 예배드리는 새맘교회 교인들. 뉴스앤조이 박요셉

새맘교회는 <뉴스앤조이> 후원회원이시라면 모르는 분이 없을 거라 생각합니다. 교회 개혁과 사회 선교 현장에서 선봉에 서 온 박득훈 목사가 시무했던 곳으로 잘 알려져 있죠.

이뿐만 아니라 민주적 정관, 투명 회계, 목사·장로 임기제라는 교회 개혁을 상징하는 제도와 가치를 일찍부터 도입한 교회이기도 합니다. 개척한 지 10여 년이 흘렀고, 박득훈 목사라는 상징적 인물이 떠난 새맘교회가 지난 시간을 어떻게 평가하고 지금은 어떤 공동체를 꾸리고 있는지 궁금했습니다. 6월 5일, 새맘교회 주일예배에 참석했습니다.

모두의 설교

별게 아니지만 교회에 갈 때 저만의 의식이 있습니다. 분주하게 예배에 참석하면 아무 생각 없이 시간만 보내고 나올 때가 많아, 집중도를 높이기 위해 착안한 방법입니다.

매주 일요일 교회 가는 길에 시장을 가로지릅니다. 문 닫은 상점 사이를 천천히 걸으며 마음을 정리해 보는 겁니다. 복잡한 생각을 달래며 한 걸음, 나쁜 마음을 밀어내며 두 걸음, 오늘 있을 예배를 생각하며 세 걸음…. 그렇게 규칙적인 보폭과 속도는 제 안에 소음을 잠재우고 분산된 마음을 모아 줍니다. 청어람홀로 향하는 긴 복도를 통과할 때 이 의식을 치러 봤습니다.

전임목사인 이수연 목사가 어떤 내용으로 설교할지 궁금했습니다. 하지만 이날은 다른 사람이 강단에 섰습니다. 시각예술 활동가 '제람'입니다. 그는 전시회·워크숍·영상물 등을 기획해 난민들의 목소리를 사람들에게 전하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시각예술 활동가 제람. 뉴스앤조이 나수진
시각예술 활동가 제람. 뉴스앤조이 나수진

제람은 '난민은 누구이고 난민 아닌 사람은 누구인가'라는 제목으로 설교했습니다. 자신의 이야기를 짧게 소개한 그는 최근 제작한 다큐멘터리 '암란의 버스'를 보여 줬습니다. 영상에는 예멘인 암란과 야스민, 이집트인 아나스와 자이남이 등장해, 자신들이 어쩌다 난민이 됐는지, 어떻게 한국에 들어왔고, 이곳에서 어떤 일들을 겪었는지 들려줬습니다.

그러고 보니 설교자가 제람만이 아니었네요. 교인들은 제람뿐 아니라 암란·야스민·아나스·자이남의 말에도 귀를 기울였으니까요. '난민'을 주제로 피부색이 다른(심지어 국적과 종교도!) 여러 사람에게 설교를 듣는 예배. 이런 모습이 저만 낯선 걸까요.

새맘교회는 교인 설교 비율을 매월 1회로 늘릴 계획입니다. 새맘교회 유튜브 채널 갈무리
새맘교회는 교인 설교 비율을 매월 1회로 늘릴 계획입니다. 새맘교회 유튜브 채널 갈무리

새맘교회에서는 목사가 아닌 교인이 주일예배에서 설교를 전하는 모습이 낯설지 않다고 합니다. 매달 1~2회 교인 혹은 외부에서 초청한 사람들을 설교자로 세우고 있고, 1년에 4~6회 정도인 교인 설교 비율을 매달 1회로 늘릴 계획을 갖고 있습니다. 이수연 목사는 평신도에게 설교를 맡기는 이유를 이렇게 말합니다.

"강단에서 선포되는 말씀은 목회자뿐 아니라 우리들 모두의 목소리도 포함돼야 한다고 생각해요. 목회자가 설교를 독점하는 현상이 어떻게 보면 목회자의 권력을 강화한다고 보거든요. 다양한 목소리를 듣기 위해 교회 안팎 여러 사람을 강단에 세우고 있습니다."

상처와 실망을 딛고

'슬프게도 오늘날 적지 않은 한국교회는 그 본연의 사명을 저버리고 그리스도의 이름을 이용하여 자신의 왕국을 확장해 나가는 데 힘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기복신앙, 율법주의적인 죽은 믿음, 사회적 책임의 방기, 교회 내 다양한 차별, 개교회 성장주의, 권위주의적 정치 구조, 불투명하고 이기적인 재정 운영과 비리 등으로 얼룩지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이러한 한국교회의 부패에 동참해 온 죄인임을 고백합니다. 그리고 한 걸음 더 나아가 하나님께서 은혜로 부어 주시는 새 맘으로 한국교회의 건강을 회복해 나가는 일에 참여하고자 합니다.'

새맘교회 정관에 나오는 일부 내용입니다. 10여 년 전에 작성한 문구지만, 안타깝게도 비판하는 내용이 지금과 크게 달라 보이지는 않네요.

새맘교회는 2010년 언덕교회에서 분립해 나온 교인들이 세웠습니다. 이후 박득훈 목사를 초대 전임목사로 청빙했지요(새맘교회는 담임목사라는 표현 대신에 전임목사라는 말을 씁니다).

정관에는 한국교회를 향한 새맘교회 교인들의 걱정과 우려가 담겨 있습니다. 교인들 중 대다수가 담임목사의 전횡과 독단적인 교회 운영, 불투명한 재정 운용, 목사와 당회를 중심으로 소수에게 집중된 의사 결정 구조 등에 실망해 교회를 떠난 이들이었습니다.

교회를 떠난 이들이 '교회'를 떠나지 못해 만든 곳이 바로 새맘교회였던 것이죠. 이들은 교회에서 겪은 상처와 실망을 바탕으로 새로운 교회의 틀을 세우기 시작했습니다. 민주 정관 3인방 '목사·장로 임기제'와 '운영위원회' 그리고 '투명한 교회 재정'이 대표적입니다.

'모두의 교회'를 위한 민주 정관

아래는 민주 정관 3인방 주요 내용을 간략하게 요약한 것입니다.

1. 목사·장로 임기제 

- 목사는 임기를 5년으로 두고, 3년씩 연임할 수 있습니다.
- 장로는 임기를 3년으로 두고, 임기를 마치고 안식년 1년을 보낸 후 장로 후보로 재추천받을 수 있습니다.

2. 운영위원회 

- 운영위원회는 확대된 당회 개념으로, 교회 업무를 총괄하여 수행하는 기구입니다.
- 전임목사, 장로회 대표, 각 부장, 여선교회장, 남선교회장, 청년회장, 구역장 대표로 구성합니다.
- '당회장 = 담임목사'인 교회 구조가 익숙한 분에게는 생소할 수 있을 텐데요. 운영위원장은 전임목사가 아닌 교인들 중에 선출합니다. 임기는 1년이고, 1회 연임할 수 있습니다. 운영위원회에서 목사의 의견은 n분의 1인 셈이죠.

3. 투명한 교회 재정

- 교회 재정은 최대한 공개합니다. 매달 운영위원회가 회계 보고서를 제출하고 교회 게시판에 상세히 게시합니다(물론 교인들만 볼 수 있습니다).
- 돈은 어떻게 쓰는지도 중요합니다. 재정 지출 30% 이상을 나눔과 사회 선교 용도로 편성합니다.

이태웅 운영위원장과 이수연 목사 말을 종합하면, 민주 정관의 장점은 아래와 같습니다.

1) 담임목사 개인에게 권한이 집중되는 것을 막을 수 있습니다.
2) 소수가 교회를 좌우지하는 것을 방지할 수 있습니다.
3) 여성·청년 등 다양한 구성원이 교회 운영에 참여할 수 있습니다.
4) 궁극적으로 모든 교인이 교회 사역에 참여해, 이들이 스스로 교회를 세워가는 것을 지향합니다. 

이 운영위원장은 "새맘교회가 만들어졌을 당시 한국교회 주요 문제점 중 하나가 제왕적 목사, 소수가 독점한 교회 권력이었다. 이러한 부작용을 막기 위해 이 같은 제도를 만들었다"고 말했습니다.

새맘교회 이수연 목사(사진 왼쪽)와 이태웅 운영위원장. 뉴스앤조이 박요셉
새맘교회 이수연 목사(사진 왼쪽)와 이태웅 운영위원장. 뉴스앤조이 박요셉

여기서 명심해야 할 점은 좋은 제도가 꼭 완벽한 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법은 최소한의 장치라고 하죠. 정관은 목적이 아니라 출발입니다. 이루고 싶은 교회의 윤곽을 담은 밑그림일 뿐이죠. 어떤 빛깔과 명암을 줄지 정하는 건 교인들의 몫이고요. 결국 아무리 좋은 가치와 의미를 담았다고 해도, 사람이 이를 제대로 이해하고 지키지 않는다면 아무 소용 없는 법입니다.

이 운영위원장은 "이전에 다니던 교회에서도 좋은 취지로 정관을 만든 적 있다. 하지만 그것을 제대로 지키려는 노력을 하지 않아 나중에는 유야무야됐다"며, "교회는 사람들이 모인 곳이다. 결국 어떤 사람들이 모여 있느냐에 달렸다. 새맘교회는 정관에 따라 민주적으로 교회를 운영하려는 사람들이 모였으니 정관의 가치가 제대로 구현됐던 것 같다"고 했습니다.

이수연 목사는 "교인들이 정말 엄격하게 정관을 지키려고 한다. 언제는 정관 내용을 꼼꼼하게 들여다보면서 회의를 진행하다 보니까, 회의 시간이 5시간을 넘겼다. 이러한 모습들이 새맘교회가 처음에 품은 그 마음을 지켜 온 동력이 된 것 같다"고 말했습니다.

회의에 실제로 참석하지 않았기에 '5시간 회의'를 얼마나 믿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더군다나 정관을 펼쳐보며 회의하는 생경한 모습을 상상하기도 어렵습니다.

하지만 새맘교회 교인들이 민주 정관에 얼마나 진지하고 자부심을 갖는지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 있습니다. 정관 개정 횟수입니다. 교회는 2010년 제정 이후 지금까지 총 10차례 정관을 개정하고, 시행세칙(3차 개정)까지 만들어 놓았습니다. 1~2년에 한 번꼴로 정관을 개정한 건데요. 이들이 정관에 얼마나 진심인지 느껴지시나요?

개정 내역을 보면 교인들이 얼마나 정관에 진심인지 알 수 있습니다. 새맘교회 정관 갈무리
개정 내역을 보면 교인들이 얼마나 정관에 진심인지 알 수 있습니다. 새맘교회 정관 갈무리
박득훈 없는 새맘교회

새맘교회 초기 전임목사였던 박득훈 목사는 교회 개혁 운동 진영에서 상징적인 인물입니다. 1997년 기독교윤리실천운동을 비롯해 <뉴스앤조이>·교회개혁실천운동·평화누리 등에서 활동하며, 민주적 정관, 한기총 해체, 교회 세습 반대, 교회 재정 투명성 운동 등에 앞장서 왔습니다.

2008년 MBC '100분 토론'에 패널로 참석해 종교인 과세를 주장하면서, 많은 사람에게 호평을 받은 화제의 인물이 되기도 했죠.

교계 안팎으로 영향력이 컸던 그는 2017년 8월 새맘교회에서 돌연 사임했습니다. 교인들에게 만 65세가 되면 은퇴하겠다고 공공연하게 한 약속을 잊지 않고 지킨 것입니다.

새맘교회는 목사 한 사람만을 의존하지 않겠다는 취지로 시작한 교회지만, 교인들은 리더이자 동료인 '박득훈'을 신뢰하고 사랑했습니다. 교인들은 그의 은퇴 의사를 존중했고, 빈자리를 채우기 위해 다 함께 노력했습니다. 그런데 은퇴가 결정되고 곧바로 전임목사 청빙 과정을 진행했지만 1년 반 동안 적합한 대상자를 찾지 못했습니다.

박득훈 목사. 뉴스앤조이 구권효
박득훈 목사. 뉴스앤조이 구권효

차기 전임목사로 청빙된 인물은 다름 아닌 새맘교회 교육전도사로 지내던 이수연 당시 전도사였습니다. 40세에 신학을 시작한 중년 여성이었기에, 그의 소식은 교회 안팎에 적지 않은 이야깃거리가 됐습니다.

곤란한 질문일 수 있겠지만 무례를 감수하고 이태웅 운영위원장과 이수연 목사에게 '교인들이 왜 이 목사를 청빙했다고 생각하는지' 물었습니다.

"교회에서 공고를 내고 청빙을 진행했습니다. 그런데 교인 총회에서 두 번이나 부결된 겁니다. 이후 전임목사 없이 시간을 보내다 내부에서 다른 의견이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교육전도사였던 이수연 전도사님을 전임목사로 세우자고요. 목사를 청빙할 때 저희가 중요하게 여긴 건 하나밖에 없습니다. 새맘교회가 세운 가치와 방향성에 관한 동의 여부였고, 이 전도사님이 가장 부합하다고 봤습니다." (이태웅)

"박 목사님이 사임하신 뒤, 유일한 교역자였던 제가 교육전도사 신분으로 예배와 목양, 각종 교회 행정을 백업했습니다. 그런 과정에서 교인들이 저를 좋게 보았던 것 같습니다.

사실 저는 고민이 많았습니다. 교회를 대표하는 목사들은 대부분 중년 남성이잖아요.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갖고 있는 '목사 이미지'가 저와 어울리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나 저를 믿어 주는 교인들을 저도 믿어야겠다고 다짐했습니다. 새맘교회가 교회 개혁, 사회 개혁을 말하듯이 제게도 목사 개혁을 향한 책임이 있을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전까지 없던 새로운 목사가 되려고요." (이수연)

박득훈 목사는 은퇴한 이후부터 3년간 새맘교회와 모든 연락을 끊었다고 합니다. 청빙이 완료되기 전부터 교인들이 연락해도 일절 응하지 않았다고 하는데요. 교인들이 전임목사 없이도 스스로 선택하고 결정하며 교회를 잘 세워 갈 거라는 믿음이 컸기 때문이었을 거라고 이수연 목사는 말합니다.

지금은 다시 박 목사와 새맘교회 교인들과 편하게 연락을 주고받게 됐다고 하는데요. 이 목사가 필요할 때면 언제든지 자신의 지혜와 경험담을 나눠 주는 멘토 역할을 하고 있다고 합니다. 1년에 4번씩 새맘교회 예배에서 설교를 전하기도 하고요.

박득훈 목사의 사임부터 후임 전임목사의 청빙 과정, 현재 전임 목사와 후임 목사의 관계까지. 알파부터 오메가까지 참 '새맘'스럽다는 생각이 들게 하는 모습이었습니다.

새맘교회 교인들. 사진 제공 새맘교회
새맘교회 교인들. 사진 제공 새맘교회
약한 것을 아름답게 보는 교회

새맘교회는 지난달 대면 예배를 재개했습니다. 비대면 예배 전까지는 서울 강서구에 있는 한 교육기관을 이용해 왔는데 코로나19 때문에 장소를 사용할 수 없게 되자, 서울 종로구 낙원상가에 있는 청어람홀로 예배 장소를 변경했습니다.

코로나19는 한국교회에 적지 않은 영향을 끼쳤습니다. 그중 하나가 예배의 확장성이죠. 예배의 확장은 교회의 확장이기도 합니다. 이사나 건강 등의 사정 때문에 그동안 새맘교회 예배에 함께하지 못한 교인들이 다시 연결될 수 있었으니까요. 새맘교회는 이들을 배제할 수 없어, 지금도 매달 1회씩 비대면 예배를 드리고 있습니다.

예배 장소가 바뀌었고, 예배 형태도 비대면에서 대면으로 바뀌고 있습니다. 새맘교회는 자의와 타의로 변화의 시기를 맞이하고 있습니다. 이수연 목사에게 앞으로 비전을 물었습니다.

"교회 표어처럼 '세속화된 한국교회를 개혁해 나가는 교회', '불의한 세상의 개혁을 추구하는 교회'로 이끌고 싶습니다. 특히 기성 교회에 적응하지 못하고 실망해서 나오는 분들이 희망을 발견하게 해 주는 교회가 되고 싶습니다.
 

아울러 모든 다양성을 인정하고 포용하는 교회가 됐으면 좋겠습니다. 연약한 사람들이 와서 그 자체로 귀하게 여김을 받는 교회, 약한 것을 아름답게 바라봐 주는 이들과 위로와 우정을 주고받는 안전하고 신명 나는 교회를 꿈꿉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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