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개통된 원산안면대교. 사진 제공 보령시
2019년 개통된 원산안면대교. 사진 제공 보령시
원의제일교회 가는 길

[뉴스앤조이-김은석 간사] 우리나라 서해안과 남해안을 'ㄴ' 자 모양으로 잇는 77번 국도는 곳곳에 절경을 품고 있습니다. 그중 충남 태안군 안면도에서 충남 보령시로 이어지는 길은 생긴 지 얼마 안 된 따끈따끈한 구간입니다. 안면도 한복판을 가로지르는 77번 국도를 타고 내려가다 보면, 바다 위로 뾰족 솟은 탑에 걸친 쇠줄이 길다란 다리를 지탱하고 있는 사장교斜張橋가 나옵니다. 2019년 말 개통한 원산안면대교입니다.

다리 옆으로 넓게 펼쳐진 바다에 크고 작은 섬들이 둥둥 떠 있고 은빛 물결이 일렁입니다. 왜 이 일대 해안이 해상 국립공원으로 지정됐는지 알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우리나라 서쪽 바다를 황해라고 부르는 게 맞는 일인가 싶을 만큼 푸르고 아름답습니다.

다리를 건너면 보령시 오천면이 나옵니다. 도로 표지판에 쓰인 행정구역 이름만으로는 알 수 없지만, 사실 이곳은 원산도입니다. 인구가 1000명이 채 되지 않는 작은 섬입니다. 원산안면대교에서 3분만 달리면 원산도의 동서남북을 이어 주는 원의교차로가 나옵니다. 좌측 전방에 오래된 학교 건물이 보이는데, 지금은 폐교한 원의중학교입니다. 원의중학교 본관을 지나 조금 들어가면 우거진 수풀 속에 그림 같은 예배당이 보입니다. 1973년에 준공해 50년째 이 자리를 지키고 있는 원의제일교회입니다.

원의제일교회 전경. 뉴스앤조이 김은석
원의제일교회 전경. 뉴스앤조이 김은석
폐교 부지 수풀 속 그림 같은 예배당
15년째 동고동락하는
젊은 목회자와 나이 든 교인들

원의제일교회는 기독교대한성결교회에 속한 교회로 1962년 창립됐습니다. 원의중학교 설립자이자 1970~1980년대 이 지역에서 국회의원으로 세 차례 당선했던 김옥선 장로가 세운 교회입니다. 스물 일곱 명의 전임자를 뒤이어 2008년 4월 안대정 목사가 부임했습니다. 현재 40대 중반인 안 목사는 70~80대 할머니들이 주축인 스무 명 남짓한 교인들과 15년째 동고동락하며 목회하고 있습니다.

안대정 목사는 ㈜보령커피를 운영하는 사업가이기도 합니다. 그의 특별한 커피 사업 이야기는 <뉴스앤조이>에 소개된 바 있습니다. 육지와 섬을 오가며 교인들을 돌보고 사업을 경영합니다. 2년 전 보령시 남곡동에 있는 보령커피 로스터리를 방문했을 때, 섬에도 한번 놀러 오라고 했던 안 목사의 말을 마음에 품고 있었습니다. 할머니들과 맛있게 밥도 해 먹고 커피도 내려 마신다는 얘기에 혹했더랬습니다. 젊은이들이 대부분 떠난 섬마을에서 그가 어떻게 고령의 교인들과 예배하고 교회를 이뤄 가고 있는지 궁금했습니다.

예배 시작 시간보다 30분쯤 일찍 도착했습니다. 예배당 안으로 들어가니, 한 어르신이 곱고 푸근한 미소로 맞아 주며 주보를 건네십니다. 강단에서 예배를 준비하던 안대정 목사가 가지런히 깔려 있는 좌식 의자 사이를 가로질러 다가와 반갑게 인사했습니다. 그리곤 주보를 건네준 어르신을 원의제일교회를 "부목사급"으로 섬기고 계신 송향춘 권사님이라고 소개합니다.

좌식 의자 위에 폭신하게 놓여 있는 방석들을 보니, 어린 시절 친구들과 예배당 한 귀퉁이에 높게 쌓인 방석 위에서 뛰어놀던 때가 떠오릅니다. 미리 사진도 찍어 둘 겸 예배당 밖으로 나왔습니다. 고즈넉한 시골 교회의 정취에 젖어 주변을 둘러보다 보니, 할머니들을 가득 태운 구형 승합차 한 대가 도착합니다. 송향춘 권사의 짝꿍인 신경환 집사가 마을을 한 바퀴 돌며 할머니 권사님·집사님들을 모시고 온 것입니다.

원의제일교회 안대정 목사. 뉴스앤조이 김은석
원의제일교회 안대정 목사. 뉴스앤조이 김은석
원의제일교회 주일예배 풍경

자리를 잡은 교인들이 안대정 목사의 인도를 따라 찬송을 부르고 예배를 준비하는 기도를 드립니다. 어린 시절에는 촌스럽다고만 느껴졌던 찬송가 반주기 소리에 맞춰 찬송을 부르는데, 왠지 정겨웠습니다. 오랜만에 외쳐 본 '주여 삼창'도, 부르짖는 기도가 익숙하실 어르신들을 생각하니 예전보다는 덜 억지스레 나온 것 같습니다.

안대정 목사는 창세기 3장 16~24절을 본문 삼아 '고통의 근원'이라는 제목으로 설교했습니다. 인간이 하나님과 맺은 관계가 깨지고 단절된 것이 실낙원 사건 이래 인간의 삶에 고통이 시작된 근원적 이유라는 이야기였습니다. 임마누엘 하나님께서 몸소 사람이 되어 인간에게 손 내미시고, 제자들과 함께 먹고 자고 슬퍼하고 기뻐하며 지내시다 십자가에 달리심으로써 우리가 고통으로부터 해방될 수 있는 길을 열어 놓으신 것처럼, 우리가 성령 하나님과 함께하고 교우들과 함께하는 삶을 살아갈 때 고통의 문제를 넘어설 수 있다고 했습니다. 대화하듯 조곤조곤 풀어놓는 강론에 집중하며 간간이 "아멘"으로 호응하는 교인들의 모습이 평화로워 보였습니다.

원의제일교회 주일예배 풍경. 뉴스앤조이 김은석
원의제일교회 주일예배 풍경. 뉴스앤조이 김은석

원의제일교회를 방문하면서 가장 기대했던 시간은 예배 후 식탁 교제 시간이었습니다. 할머니들과 밥상 앞에 앉아 원산도에서 살아오신 이야기, 신앙 이야기 같은 것들 두런두런 듣고 싶었습니다. 어르신들이 손수 내리신다는 커피 맛도 궁금했고요. 그런데 아쉽게도 이날 원의제일교회는 식탁 교제를 한 주 건너뛰기로 했습니다. 휴가철을 맞아 고향을 방문한 자녀들을 둔 교인들이 몇몇 있었고, 코로나19에 감염됐다 격리 해제가 된 지 얼마 안 된 분들도 있었기 때문에 조심하자는 취지였습니다. 속으로 '다음에 한 번 더 찾아올 이유가 생겼구나' 하며 아쉬운 마음을 달랬습니다.

예배 후 안대정 목사, 송향춘 권사·신경환 집사 부부와 함께 인근 음식점으로 이동해 식사를 했습니다. 밥 먹는 중간중간 식당에 온 다른 주민들과 눈인사를 나누고, 식당을 떠나면서도 가볍게 안부를 나누는 안 목사를 보며 '이 섬마을 목사님 맞구나' 싶었습니다. 30년 전쯤 크게 병을 앓았던 게 계기가 되어 원의제일교회를 다니기 시작한 송향춘 권사는, 여러 목회자들을 떠나보낸 뒤 새로 맞은 30대 초반의 안대정 목사를 처음 만났을 때 "웬 꽃미남이 왔나 싶었다"고 합니다. 젊은 목사가 차분하게 노인들 마음을 헤아리고 눈높이를 맞춰 주는 게 참 좋았다고 했습니다. 교회에 드문드문 나오던 신경환 집사가 열심을 내기 시작한 것도 안대정 목사가 부임한 후부터라고 합니다.

식사를 마치고 교인 중 한 분이 운영하는 카페로 이동했습니다. 안대정 목사가 고령의 섬마을 교인들과 함께 펼쳐 온 다양한 활동에 대해 들었습니다. 부임 초기 몇 년간 목회 방향을 고민하던 안 목사가 마을과 함께하는 목회로 방향을 잡은 것은 2011년 무렵부터입니다. 지금은 원산도 특산물이 된 한과를 처음 상품화한 곳이 원의제일교회라고 합니다. 농사짓고 조개 캐며 살아가는 교인들과 주민들에게 겨울 농한기는 몸과 마음이 움츠러드는 시기입니다. 어느 날 권사님 댁에 심방을 갔다 먹어 본 한과 맛에 감탄한 안 목사가 아이디어를 내, 교회를 거점으로 주민들과 한과를 만들어 판매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원산도전통한과'가 탄생했습니다. 이런저런 이유로 교회는 1년 만에 한과 사업을 접었지만, 원산도 주민들이 겨울나기를 할 수 있는 매력적인 사업 모델을 만들어 낸 것입니다.

예배를 마친 뒤 경운기를 타고 귀가하는 하성란 집사. 뉴스앤조이 김은석
예배를 마친 뒤 경운기를 타고 귀가하는 하성란 집사. 뉴스앤조이 김은석
고령의 교인들과 펼쳐 온 마을 목회
커피 교육과 봉사 활동으로
마을 공동체 활동에 활기 불어 넣다
"90세 넘은 권사님도 핸드 드립 가능"

바리스타 자격증을 가지고 있던 안대정 목사가 취미 생활로만 누리던 커피를 로스터리 및 카페 사업으로까지 확장하게 된 것도 마을 목회를 펼쳐 나가기 위해서였습니다. 나이 든 교인들과 주민들이 크게 힘들이지 않고도 배우고 누릴 수 있는 게 바로 커피였기 때문입니다. 교인들을 주축으로 점촌 마을(원산도 2리) 주민 15명과 '점촌실버바리스타'라는 동아리를 만들었습니다. 취미반·자격증반 교육을 마치고 핸드 드립 커피를 내릴 수 있게 된 어르신들과 함께 섬마을 곳곳을 다니며 커피 봉사 활동을 펼치고 있습니다. 보령시에서 연 축제에도 나가고 마을 만들기 대회에도 참가해 상도 탔습니다. 교회가 속한 기독교대한성결교회 목회 페스티벌에 초청돼 커피 시연을 하기도 했습니다. 송향춘 권사는 "봉사를 받아만 봤던 사람들이 커피를 가지고 봉사를 할 수 있다는 게 너무 보람 있다"고 했습니다. 2019년에는 보령시에서 추진하는 마을 단위 문화 예술 창작 공간 조성 사업에 선정돼 마을회관을 카페로 리모델링해 활동 거점으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얼마 전 중단했지만 교인들과 감자 재배에도 도전했다고 합니다. 한국에 온 최초의 선교사로 알려진 카를 귀츨라프(Karl Friedrich August Gutzlaff, 1803~1851)가 이 지역에 정박해 주민들에게 복음을 전하며 감자 재배법을 함께 전해줬다는 점에 착안한 것입니다. 3년 넘게 실시했지만 지속적으로 감자를 상품화해 판매하는 일이 고령의 교인들에게 현실적이지 않고, 비싼 땅값 때문에 재배할 부지를 마련하기도 어려워 중단했다고 합니다. 좋은 사업 아이템인 것 같은데, 어르신들과 같이 일할 젊은이들이 몇 명만 있었다면 어땠을까 하는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습니다.

안 목사는 일단 바리스타 활동에 중점을 두고 마을 목회 활동을 이어 갈 계획이라고 했습니다. "90세가 넘어도 핸드 드립이 가능한 권사님들을 뵈었기 때문에" 마을 카페 운영이나 신규 카페 창업 등 지속 가능한 모델을 모색해 볼 수 있다는 것입니다.

한과를 만들고 감자를 키우고 커피를 배우며 봉사한 활동들이 교인들의 신앙과 삶에 활기를 불어넣고, 지역사회와 마을 공동체에 귀감이 되기까지 평탄한 길만 걸어온 것은 아닙니다. 교인들이 처음부터 안 목사의 목회 활동에 협조적이었던 것은 아니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안 목사는 다음 세 가지를 지속적으로 강조하며 일관성 있게 마을 목회를 펼쳐 나갔습니다.

'측은지심의 마음을 지닐 것'
'풍성하고 넉넉하게 나누며 살 것'
'육신은 쇠하더라도 영혼은 죽는 순간까지 성장한다는 것'

초기에는 방관했던 분들이 지금은 적극적 협력자가 돼 주시는 것을 보면서, 안 목사는 영적 성장의 실재를 목격하는 것 같다고 했습니다.

안대정 목사는 주민들과 함께 로스터리 카페 사업, 감자 재배 사업 등을 하며 마을 목회 활동을 이어 왔습니다. 뉴스앤조이 김은석
안대정 목사는 주민들과 함께 로스터리 카페 사업, 감자 재배 사업 등을 하며 마을 목회 활동을 이어 왔습니다. 뉴스앤조이 김은석
행정 타운 건설 계획으로 예배당 퇴거 명령
땅값 치솟아 새 예배당 구할 엄두 안 나

사실 원의제일교회는 최근 큰 어려움에 봉착해 있습니다. 2020년 4월 이후, 보령시로부터 예배당 건물에서 나가라는 퇴거 명령을 받고 있다고 합니다. 폐교가 된 원의중학교 부지에 행정 타운을 만들 계획이 수립돼 있으니 예배당을 비우라는 것입니다. 안 목사는 당장은 버틸 수 있다고 해도 2~3년 후에는 실질적으로 철거가 진행되지 않을까 예상하고 있었습니다. 거기다 원산안면대교와 보령해저터널이 개통하고 원산도가 보령시와 안면도를 잇는 관광지로 급부상하면서 땅값이 천정부지로 솟았습니다. 원의제일교회의 재정 형편으로는 새로운 예배당을 마련할 엄두도 낼 수 없는 현실입니다.

안 목사는 조용하고 아름다운 섬, 특별한 기독교적 가치를 지니고 있는 섬 원산도가 단순한 관광지로 급변해 가는 상황을 안타까워했습니다.

"원산도는 귀츨라프를 중심으로 한국교회사와 기독교 영성사에 있어 의미와 가치가 특별하다고 생각해요. 원산도 성도들의 흥미로운 간증들이 존재하고 한국교회에 귀감이 될 만한 이야기들이 풍성합니다. 그런 면에서 '귀츨라프 기념 교회'가 생겼으면 좋겠어요. 원의제일교회가 그 일을 감당할 수 있다면 더없이 좋겠고요."

사실 귀츨라프가 정박해 활동한 섬은 원산도 옆 고대도로 더 많이 알려져 있습니다. 대한예수교장로회 합신에서 세운 귀츨라프 선교사 기념 교회가 있기도 합니다. 그러나 여러 정황상 고대도보다는 원산도가 실제로 귀츨라프가 머물렀던 섬일 것이라는 주장도 한쪽에서 제기되고 있습니다.

꼭 귀츨라프를 기념하는 교회가 아니더라도, 원의제일교회 교인들이 원산도 주민들과 함께하며 써 내려간 복음의 이야기, 고령의 교인들이 형성해 온 선교적 교회 모델은 지속될 가치가 충분해 보입니다. 땅값이 20년 전에 비해 최대 100배가 오르고 원산도 부동산의 80%가량을 외지인이 소유하게 됐을 정도로 극심해진 개발 논리에, 원주민들이 반세기 넘게 지켜 온 교회가 예배 처소를 잃어버리게 된다면 얼마나 큰 비극일까요. 세 분과 헤어져 집으로 돌아오는 내내 원의제일교회가 새로운 터전을 마련할 길을 열어 달라는 기도가 절로 나왔습니다.

(사진 왼쪽부터) x하성란 집사, 안대정 목사. 뉴스앤조이 김은석
(사진 왼쪽부터) 하성란 집사, 송향춘 권사, 안대정 목사. 뉴스앤조이 김은석
영화 '밥정', 섬마을 목사 안대정
"함께한다는 게 능력이고 치유"

'밥정'이라는 영화가 있습니다. 안대정 목사가 설교에서 언급한 다큐멘터리영화여서 일부러 찾아봤습니다. '방랑식객'이라는 TV 프로그램으로 대중에게 이름을 알린 고 임지호 셰프가 시골을 돌아다니며 만난 할머니들에게 자연에서 채취한 재료로 정성스레 만찬을 대접하며, 어린 시절에 여읜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을 치유하는 내용입니다. 임지호 셰프가 걸어 주는 말 한마디에, 종일 함께 있으며 정성껏 차려 준 밥상에 주름진 노인들의 얼굴마다 웃음꽃이 피어나는 장면들이 기억에 남습니다.

안대정 목사는 "이 영화를 보면서 '함께한다는 게 참 능력이 있구나', '이게 바로 치유고 감동이구나' 싶었다"라고 했습니다. 저는 영화를 보는 내내 임지호 셰프의 얼굴에 자꾸 안대정 목사의 얼굴이 오버랩됐습니다. 2016년 <뉴스앤조이> 강도현 대표와 한 인터뷰에서 안 목사는 "성도님들이 신앙생활 잘 하시다가 주님 부름받으실 때까지 옆에서 잘 지켜 드려야겠다는 마음으로 목회한다"고 얘기했습니다. 지금도 그 마음은 변함이 없다고 합니다. 오히려 "고령의 성도들의 영혼이 죽는 그 순간까지 성장할 수 있도록 도와드려야겠다는 마음"으로 더 깊어진 것 같습니다.

한 분 한 분 총기 있어 보이던 원의제일교회 어르신 교인들의 얼굴이 떠오릅니다. 그 기저에 10여 년간 안대정 목사와 축적한, '함께할 때 생기는 힘'에 대한 믿음이 깔려 있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했습니다.

이 기사는 <뉴스앤조이> 월간 뉴스레터 '처치독M'에 발행된 기사입니다. - 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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