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 연휴를 한 주 앞둔 주말, 교회를 열심히 섬기고 있던 다른 교회 친구를 오랜만에 만났는데요. 뜻밖의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교회를 옮기기로 마음먹었다는 것입니다. 이태원 참사를 대하는 교회의 태도가 계기라고 했습니다. 그동안 친구가 해 왔던 오랜 고민들의 연장선상에서 내린 결심이었습니다.

이태원 참사가 친구에게 큰 슬픔과 충격으로 다가왔으나, 그 감정을 공동체에서 쉽사리 공유하지 못하는 데서 외로움과 낯섦을 느꼈던 것 같았습니다. 친구는 교회가 참사에 무관심해 보였다며, 교회가 품는 청년의 범위는 어디까지인지 고민하게 됐다고 했습니다.

심적으로 고통스러운 시간을 보냈을 친구의 아픔을 전혀 모르고 있던 것이 미안했습니다. 같은 마음을 가진 교인도 분명 많았을 텐데, 왜 아무도 먼저 터놓고 이야기할 수 없었을까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습니다. 가만히 친구의 마음을 헤아려 보았는데요. 문득 교회에 바라는 점이 있고, 교회와 함께 추구하기 원하는 방향성이 있는 친구 모습이 건강하게 느껴졌습니다.

친구와 달리 저는 더 이상 이상향을 그리지 않고, 아무것도 바라는 것 없이 교회에 출석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씁쓸한 마음이 들면서 반성도 해 보게 됐네요. 저희 교회 공동체가 자유롭게 고민을 터놓을 수 있는 곁이 될 수 있도록 저부터 조금 더 주변을 살펴보려고 합니다.

사역기획국 세향

친절한 뉴스B

그리스도인들은 '세상 사람'보다 낫다?
평등 인식은 별 차이 없는데…

어느 교회에서든 정말 많이 듣는 말이 있습니다. '세상 사람'이라는 말이죠. 그리스도인과 구분할 때 교회에서는 꼭 '세상 사람'이라는 표현을 씁니다. 세속적인 것을 추구하고 늘 계산적인 '그들'과 달리, '우리'는 세상의 빛과 소금이자 소망으로서 아낌없이 베풀고 섬기는 삶을 산다는 자부심이 들어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지 그리스도인들이 '세상 사람'과 다를 게 뭐냐는 비판을 많이 받습니다. 선행과 겸손에서 오히려 안 믿는 사람들이 더 낫다는 소리도 있죠.

이번 1월에 발표된 개신교인 인식 조사에서는 이러한 점이 두드러지게 나타났습니다. 한국기독교사회문제연구원이 개신교인 1000명, 비개신교인 1000명을 대상으로 주요 사회 현안에 대해 물어봤는데요. 특히 '평등'에 관한 질문을 많이 했습니다. 정치·외교·안보에서부터 성 역할, 임신과 출생, 사회복지 등 사회 전반에 대한 의견을 물어봤죠. 결과는? 이름표를 가리면 이것이 개신교인인지 비개신교인인지 알 수 없을 정도로 차이가 없었습니다. 딱 두 가지, '동성 결혼'과 '임신 중지'에 대한 응답에서는 오히려 개신교인들의 부정적 응답이 훨씬 높았죠.

그렇다고 해서 개신교인들의 평등 의식 수준이 낮게 나온 것도 아닙니다. '모든 사람은 평등하다'라는 명제에 개신교인은 80% 가까운 사람이 동의한 반면, 비개신교인은 70%만이 동의해 10% 가까이 차이가 났는데요. 이를 두고 학자들은 개신교인이 '세상 사람'보다 나은 점을 찾을 수 없다면 그것이야말로 문제라고 지적했습니다. '정답'이 무엇인지 알고 있으면서도 특정 그룹에 대한 혐오나 반감은 더 심하고, 이를 개선하려는 의지도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죠.

이런 결과들을 놓고 보면, 과연 교회에서 설교·기도 시간에 '세상 사람'이라는 말을 써도 좋은 것인지 머뭇거려집니다. 인식 조사 결과 및 자세한 내용은 기사연 홈페이지에 있는 발표 자료집을 참고해 주세요.

편집국 승현


어? 칸트가 읽어지네!

1월 중순에 연재를 시작한 칸트 박사 정제기 씨(34)의 '칸트와 희망의 신학' 잘 보고 계신가요? 어렵기로 정평이 난 칸트철학을 이렇게나 쉽게 풀어 주다니, 게다가 칸트철학과 기독교 신앙의 관계까지 조명해 주다니…! 역시, 박사는 괜히 박사가 아닌가 봅니다. 저도 필자와 소통하고 글을 편집하면서 많이 배우고 있어요.

총 10편의 연재 글 중 지금까지 2편이 나왔는데요. 첫 번째 글에서는 칸트의 철학을 왜 '비판철학'이라고 부르는지, 인간 이성의 한계는 무엇이며, 그런 의미에서 '지식'과 '믿음'이 어떻게 구분되는지 풀어냈고요.

두 번째 글에서는 칸트가 던진 '나는 무엇을 해야만 하는가?'라는 도덕적 질문이 인간의 '행복'과 어떤 연관이 있는지, 그것이 어떻게 '나는 무엇을 희망해도 좋은가?'라는 '희망-물음'으로 이어지는지 쉽게 풀어냈어요. 모든 연재의 첫 번째 독자인 편집기자로서, 남은 8편의 글도 기대가 됩니다.

독자님도, 정제기 씨의 안내를 따라 칸트의 세계로 들어가 보실까요?

편집국 운송


유가족이 말하는 '우는 자와 함께 우는 방법'

이태원 참사가 벌어진 지 89일이 지났습니다. 그 사이 경찰 특수수사본부의 수사와 국회 국정조사도 모두 종료됐습니다. 조사도 끝났으니 가족들이 원하는 진상 규명과 책임자 처벌은 제대로 이뤄졌을까요? 또다시 비극적인 참사가 벌어지지 않도록 재발 방지 대책은 잘 마련됐을까요?

이태원 참사로 딸 박가영 씨(21)를 잃은 최선미 집사의 대답은 '아니다'입니다. 지난주 처치독에서 그의 인터뷰를 소개하기도 했는데요. 최 집사는 1월 26일 대한예수교장로회 통합(이순창 총회장)이 주최한 포럼에 참석해 한국교회를 향해 호소했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이 진정으로 우는 자와 함께 울 수 있는 방법에 대해서요. '조사도 끝났으니 그만 울라'고 말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그리스도인들이 앞장서 풀어 나가야 할 과제들에 대해서요.

유가족들이 원하는 것은 참사를 독립적으로 조사할 기구를 설치하고 특별법을 제정하는 일, 그리고 유가족들이 함께 모여 버팀목이 될 수 있는 추모 공간을 마련하는 일 등입니다. 끝까지 유가족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고, 예배와 기도, 그리고 행동으로 함께해 주시길 바랍니다.

편집국 수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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