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소수자를 비롯한 한국 사회 소수자의 인권 증진을 위해 헌신해 온 섬돌향린교회 임보라 목사가 2월 4일 별세했다. 뉴스앤조이 자료 사진
성소수자를 비롯한 한국 사회 소수자들의 인권을 위해 헌신해 온 섬돌향린교회 임보라 목사가 2월 4일 별세했다. 뉴스앤조이 자료 사진

[뉴스앤조이-구권효 기자] 섬돌향린교회를 담임하며 성소수자를 비롯한 사회적 약자들과 함께했던 임보라 목사가 2월 4일 별세했다. 향년 55세.

임보라 목사는 1987년 한신대학교 영어영문학과에 입학했으나, 당시 시대상과 신앙을 고민하며 자연스럽게 신학에 관심을 가지게 됐다. 학부 졸업 후에는 한신대 신학대학원에 진학했다. 1993년 향린교회가 강남향린교회를 분립할 당시 전도사 신분으로 어린이부를 맡아 목회를 시작했다. 이후 캐나다 유학 길에서 한인 교회를 만나 목회에 더욱 매진했다. 2003년에는 한국에 들어와 향린교회 부목사로 사역을 이어 갔다.

2013년 향린교회가 60주년 기념으로 섬돌향린교회를 분립하면서 임보라 목사는 담임 목회를 시작했다. 섬돌향린교회는 지난 10년간 성소수자 크리스천을 비롯한 사회적 약자들의 피난처가 됐다. 임 목사는 이들을 목양하는 한편, 한국교회에 만연한 성소수자 혐오에 적극적으로 맞섰다. '동성애 반대'를 표명하지 않으면 반동성애 세력에 좌표를 찍히고 집요한 공격을 당하는 상황에서도, 임 목사는 각종 토론회나 인터뷰 등에서 "성소수자는 성경적으로도 죄인이 아니며 당연히 사회에서 차별받지 않아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임보라 목사는 몇몇 목회자·신학자와 함께 2015년 <퀴어 성서 주석>(무지개신학연구소) 번역본 발간을 위해 출판위원회를 구성했다. 이 소식이 전해진 후 국내 대형 교단들은 <퀴어 성서 주석>, 퀴어신학, 심지어 임 목사 개인까지 이단으로 규정했다. 2017년 9월 총회에서 대한예수교장로회 합동, 고신, 합신이, 2018년 9월 총회에서 통합과 백석대신(현 백석)이 임 목사를 이단 혹은 이단성이 있다고 결의했다. 그러나 교권의 방해에도 <퀴어 성서 주석>은 2021년 5월 출간됐다. 출간에 앞서 진행된 크라우드펀딩에서 목표액 500만 원을 훨씬 상회하는 4400만 원이 모인 바 있다.

최전선에서 성소수자는 죄인이 아니며 차별하지 말아야 한다는 목소리를 내 왔다 보니, 임보라 목사는 흔히 '성소수자와 함께한 목회자'로 알려졌다. 하지만 임 목사의 관심은 거기에만 있지 않았다. 비교적 진보적이라고 평가되는 한국기독교장로회(기장)에서도 여성 목회자가 설 자리는 녹록지 않다. 여성 담임 목회자로서 임 목사는 교단 내 여성 문제에도 적극적이었다. 기장 전국여교역자회에서 활동하며 교단 내에서 여성 목회자의 권리를 위한 제도를 세우는 데도 열심을 냈다.

특히 교단 내 성폭력 문제 해결에 앞장섰다. 기장 혹은 한신대에서 성폭력 사건이 발생했을 때, 피해자들은 알음알음 임보라 목사를 찾아갔다. 임 목사가 그동안 해 온 사역들이 교회 성폭력 피해자들에게 신뢰를 줬기 때문이다. 그는 피해를 입은 사람들에게 충분히 공감해 주면서 정의로운 해결과 재발 방지 대책을 위해서도 노력했다.

임보라 목사는 성소수자 차별 반대 운동, 여성 인권 운동, 평화운동 등 다양한 방면에서 활동해 왔다. 한편으로는 30년간 목회자로 헌신하며 성소수자를 비롯한 사회적 약자들과 함께, 혹은 그들을 대신해 혐오의 화살을 맞았다. 인터뷰를 할 때면, 임 목사는 늘 먼저 간 사회적 약자들을 언급하며 눈물짓곤 했다. 그의 갑작스런 부고에 많은 사람이 충격을 받고 추모의 메시지를 보내고 있다.

임보라 목사의 빈소는 서울 강동경희대학교병원 장례식장 22호실이며, 발인은 2월 7일 화요일 오전 7시, 장지는 서울시립승화원이다. 5일 일요일 오후 4시에는 임 목사가 소속했던 기장 서울노회 예배가, 5시에는 섬돌향린교회 예배가, 7시에는 강일교회 예배가 마련됐다. 6일 월요일 오후 12시에는 입관 예배, 7시에는 추모 문화제가 있을 예정이다. 유족으로는 남편과 딸 2명이 있다.

*2월 6일 오후 7시 빈소에서 진행될 예정이던 추모 문화제는 장소가 협소한 관계로 연기됐다. 추후 일정은 섬돌향린교회 홈페이지에 공지될 예정이다.   
2018년 11월 '트랜스젠더 추모의 날' 행사에서 연대 발언 중인 임보라 목사. 뉴스앤조이 자료 사진
2018년 11월 '트랜스젠더 추모의 날' 행사에서 연대 발언 중인 임보라 목사. 뉴스앤조이 자료 사진
2019년 8월 삼성 해고 노동자 김용희 씨를 위한 향린 공동체 연합 예배에서 기도 중인 임보라 목사. 뉴스앤조이 자료 사진
2019년 8월 삼성 해고 노동자 김용희 씨를 위한 향린 공동체 연합 예배에서 기도 중인 임보라 목사. 뉴스앤조이 자료 사진
2019년 9월 김천 한국도로공사에서 농성 시위 중이었던 톨게이트 수납원들에게 말씀을 전하고 있는 임보라 목사. 뉴스앤조이 자료 사진
2019년 9월 김천 한국도로공사에서 농성 시위 중이었던 톨게이트 수납원들에게 말씀을 전하고 있는 임보라 목사. 뉴스앤조이 자료 사진
2019년 11월, 일부 장로교단으로부터 이단 정죄를 받은 후 <뉴스앤조이> 주최 '내가 임근옥이다' 좌담에서 발언 중인 임보라 목사. 뉴스앤조이 박요셉  
2019년 11월, 일부 장로교단으로부터 이단 정죄를 받은 후 <뉴스앤조이> 주최 '내가 임근옥이다' 좌담에서 발언 중인 임보라 목사. 뉴스앤조이 박요셉  
2021년 5월 국회 앞 차별금지법 제정 촉구 목요 행동에서 발언 중인 임보라 목사. 뉴스앤조이 나수진
2021년 5월 국회 앞 차별금지법 제정 촉구 목요 행동에서 발언 중인 임보라 목사. 뉴스앤조이 나수진
2022년 6월, 퀴어 성서 주석 번역 출간 기념 행사에 참석한 임보라 목사. 뉴스앤조이 나수진
2022년 6월, 퀴어 성서 주석 번역 출간 기념 행사에 참석한 임보라 목사. 뉴스앤조이 나수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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