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대교란 무엇인가. 이에 대한 기독교인들의 답변은 어쩌면 꽤 단순할지도 모른다. '예수를 살해한 종교' 혹은 '기독교를 박해한 종교'. 하지만 유대교를 그렇게 단순하게 정의할 수 있을까? 마르시온의 유산을 물려받았다면 그럴 수도 있다. 구약성서를 없애고 신약성서도 누가복음과 바울서신만 취한다면 말이다. 나아가 독일 제3제국에서 일어났던 일처럼, 구약이든 신약이든 유대교와 관련된 모든 것을 부정적으로 취급하고 심지어 예수조차도 아리아인으로 만들어 버린다면 말이다.

하지만 '정통'은 이와 다른 길을 택했다. 구약성서를 받아들였으며, 신약성서 가운데 마르틴 루터가 '지푸라기 서신'으로 취급한 야고보서도 여전히 간직하고 있다. 이신칭의에 반하는 껄끄러운 서신을 어떻게든 다른 서신들과 조화시키려 애쓴 셈이다. 어디 그 뿐인가. 마태복음 또한 바울과 다르다. 이러한 점을 참조하면, 경전 중의 경전은 로마서이며 성서 전체를 이를 중심으로 해석해야 한다는 극단적(?) 프로테스탄트들의 주장과 달리, 신약성서는 사실 훨씬 복잡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이와 같은 사실을 잘 이해하지 못하는 이들, 즉 '사영리'와 같은 단순한 메시지가 기독교의 진수를 전하는 데 가장 간편하고 핵심적인 도구라고 생각하는 이들도 있다. 그들은 복음은 단순한데 성서는 왜 이리 복잡한가 불평하면서, 문자적 진리는 거추장스럽고 복잡하지만 영적 진리는 단순하고 명쾌하다고 주장한다. 그러면서 유대교를 상당히 적대적으로 다룬다. 그들에게 유대교와 율법은 성서보다 더 거추장스럽고 복잡한 것이며, 예수는 유대교와 율법을 철저하게 개혁 또는 혁파하기 위해 하느님으로부터 보냄을 받은 구세주다. 예수와 바울이 구분돼 있지 않은 셈이다. 그들에게는 예수의 제자들보다 바울이 더 소중하다.

1. 이 책 제목은 왜 하필 '초기 유대교'인가?

위의 서두를 읽으면서 찜찜했던 분들이 있을 줄 안다. 개신교가 유대교를 오해했다는 말인가? 율법에 대한 바울의 말이 틀렸다는 말인가? 예수가 율법의 끝이 아니었다는 말인가? 예수와 제자들 그리고 바울이 단일 대오로 '율법에 반하는 은혜의 기독교'를 세운 게 아니었다는 말인가? 기독교의 창시자는 예수가 아니었다는 말인가? 당신은 그게 바울이었다고 이야기하고 있는 것인가? 그렇다면 우리의 구원은 대체 어떻게 되는 것인가? 등 다양한 질문을 쏟아 낼 수도 있겠다. 그렇다. 이 부분은 학자들 사이에서도 논쟁이 치열하게 진행되고 있다. 또한 홀로코스트 이후 성서 읽기 혹은 신학적·성서학적 경향은 이와 같은 질문들에 대해 다른 방향에서 대답하고 대안을 제시하고자 애쓰고 있다.

민감한 독자라면, 방금 앞으로 이어질 글과 관련해 내가 방금 중요한 단어 하나를 말했다는 것을 염두에 둘 것이다. 바로 '홀로코스트(Holocaust)'다. 유대인 600만 명을 학살한 히틀러의 만행에 기독교의 책임이 전혀 없었다고 할 수는 없다. 수잔나 헤셀은 <아리아인 예수>에서 히틀러의 프로파간다에 동의하고 참여한 독일 신학자들을 나열한다. <신약성서 신학 사전>(요단출판사)을 만든 게르하르트 킷텔을 비롯해, 우리가 이름만 들어도 아는 유명한 신학자들이다. 물론 유대인에게 저주를 퍼부었던 루터를 생각하면, 이들이 벌인 괴기한 신학적 행각은 그리 별나거나 이상한 일도 아니었다. 또한, 이와 같은 협조와 참여의 근간에는 단순히 루터뿐만 아니라 '예수를 죽인 유대인'이라는 복음서와 바울서신의 이야기, 사람을 죽이기 위해 '우물에 독을 탄 유대인'이라는 중세의 비방, 돈에 환장해 사람의 살점까지 요구한 유대인 '샤일록'과 '시온 의정서'라는 근대의 발명이 놓여 있었다.

이와 같은 반유대주의적 계기들은 18세기부터 점차 인종주의 및 민족주의와 뒤섞였고 급기야 우생학적 양상을 띠기도 했으며, 결국 나치 시기에는 '아리아인 예수'를 탄생시켰다. 사실 이러한 이야기들은 이미 너무나 잘 알려져 있는데, 한국어로도 번역된 <신앙과 형제 살인>(대한기독교서회)을 뒤져 보면 기독교가 그 기원에서부터 얼마나 반유대주의에 물들어 있었는지 확인할 수 있다.

<초기 유대교> / 존 J. 콜린스·대니얼 C. 할로우 지음 / 김규섭·김선용·김승주·박정수·이영욱 옮김 / 감은사 펴냄 / 752쪽 / 4만 9800원
<초기 유대교> / 존 J. 콜린스·대니얼 C. 할로우 지음 / 김규섭·김선용·김승주·박정수·이영욱 옮김 / 감은사 펴냄 / 752쪽 / 4만 9800원

따지고 보면 뒤늦은 감은 있지만, 최근 한국에서 논의되고 있는 '바울에 관한 새 관점'도 이러한 맥락과 무관하지 않다. E. P. 샌더스의 <바울과 팔레스타인 유대교>(알맹e)는 유대교에 대한 개신교인들의 전통적 시각에 의문을 제기하고, 유대교를 새롭게 보게 만들었다. 특히 샌더스가 주조한 '언약적 율법주의'라는 용어는 확실히 유대교를 이전과 다르게 이해할 수 있게 했다. 전통적 개신교인들에게 '바리새인'이라는 단어는 '내면은 버려 두고 외면만 화려하게 치장하는 회칠한 무덤'과 같은 뜻으로 쓰이며 예수와 바울에게 적용하기는 어려운 일종의 금기어였지만, 이제는 '랍비 예수' 심지어 '랍비 바울'이라는 말을 쓰기도 한다. 콜린스와 할로우가 엮어 이번에 국내에 번역·출판된 <초기 유대교>(감은사)도 마찬가지다.1)

이 책의 첫 부분을 펼치자마자 독자는 단어 하나를 접하게 된다. '말기 유대교'라는 뜻의 독일어 '슈패트유덴툼(Spätjudentum)'이다. 콜린스는 이 용어와 관련해 "에밀 쉬러(Emil Schürer)나 빌헬름 부세트(Wilbelm Bousset)와 같이 19세기 후반에서 20세기 초 중반에 활동한 독일 학자들은 이 시기(기원전 4세기 알렉산드로스대왕의 정복 활동에서부터 기원 후 2세기 초 마지막 유대 봉기 사이의 기간)를 '슈패트유덴툼(Spätjudentum)', 곧 '말기 유대교'라고 불렀다. 여기에 내포된 '말기' 개념은 예언자들의 가르침과 관련이 있었는데, 이 용어에는 연대기적 시기뿐 아니라 쇠퇴의 의미도 담겨 있었다. 이 쇠퇴는 율법의 종교로 간주됐던 랍비 유대교 시기에 최저점에 이르렀다"(23쪽)라고 설명한다.

물론 콜린스는 연대기적으로 유대교의 시작이 기원전 5세기가 아니라 기원전 2세기 후반부라는 샤이 코헨의 논의를 잊지 않고 소개한다. 그렇지만 "유대교/유다이즘을 제2 성전기의 현상으로 여길 만한 타당한 근거들이 있기에"(24쪽), 콜린스는 유대교 역사의 최초 시발점을 기원전 4세기 알렉산드로스대왕의 정복 활동으로 본다. 또한 흔히 이 시기를 '신구약 중간기'라고도 부르지만, 이 용어는 기독교적 시각이 반영된 결과라고 지적한다. 이 외에도 '제2 성전기 유대교' 같은 용어가 있지만, 콜린스는 '초기 유대교'가 가장 적절한 용어인 것 같다고 말한다. 이와 같은 지적을 통해, 우리는 종종 기독교 서적이나 연구들에서 접하게 되는 '말기 유대교'나 '신구약 중간기' 같은 용어들이 객관적인 학문적 용어가 아니라 사실은 다분히 '기독교적인' 시각이 반영된 용어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하지만 이보다 더 중요한 것은 (비록 콜린스가 상세하게 설명하지 않았지만) '말기 유대교'라는 용어에는 유대교를 경멸하는 소위 '반유대주의'가 전제돼 있다는 점이다. 아쉽게도 콜린스는 쉬러와 부세트가 '말기 유대교'라는 용어를 사용했다는 것을 지적하면서도 '반유대주의'라는 용어를 꺼내지 않는다. 따라서 이들과 관련한 콜린스의 논의를 읽다 보면, '쉬러와 부세트가 문제인 이유는, 단순히 유대교를 기독교 변증의 수단으로 사용하거나 학문적으로 부정확하게 사용했기 때문인가 보다' 하는 인상을 받게 된다. 물론 고맙게도 첫 부분에서 "이 쇠퇴는 율법의 종교로 간주됐던 랍비 유대교 시기에 최저점에 이르렀다"고 간단하게 정리해 주고 있지만, 콜린스는 쉬러와 부세트의 저서에 어떠한 문제가 있는지 구체적으로 소개하는 28~29쪽에서 한 번쯤 '반유대주의'라는 용어를 꺼낼 법도 한데 전혀 사용하지 않는다.

콜린스는 쉬러의 저서와 관련해 "유대교의 역사에 관한 것이 아니라 기독교를 변증하기 위한 것이었다. 말하자면, 유대 최고 권위자들을 빌려서 복음서와 바울서신에 나타난 유대교에 대한 비난이 완전히 정당하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하여 기록된 것이다"(28쪽)라는 조지 푸트 무어의 말만 적시할 뿐이다. 거기다가 이상하게도 "이 시기의 주요한 특징은 바리새주의의 중요성이 커져 간다는 데 있다. (중략) 성서의 일반적인 율법들이 막대한 수의 세세한 가르침으로 분화됐다. (중략) 종교의 세목들을 형식적으로 준수하려는 것에 대한 관심은 주류 유대교의 특징이 됐다"(28~29쪽)라는 버메스의 말을 인용하는 것으로 끝내 버린다.

부세트와 관련해서도 마찬가지다. 콜린스는 "이 작품은 유대학자들로부터 세찬 비난을 받았다", "몇몇 유대 비평가들은 부세트가 유대교를 교리적 관점에서 '복음에 대한 예비'로 축소한 것에 대해 반박했다"(29쪽)라고 소개할 뿐이다. 그리고 "부세트가 자신의 묘사를 길어 낸 출처는, 우리가 아는 한, 유대교에서 결코 어떠한 권위도 인정받을 수 없는 것들이기에 자신의 저서를 <유대 종교>라고 불러서는 안 된다. 그는 언제나 규범적인 것으로 간주되어 왔던 것들을 의심하면서 대개는 무시했다"(31쪽)라는 조지 푸트 무어의 말을 언급하는 것으로 끝낸다. "규범적인 것으로 간주되어 왔던 것들"인 랍비 유대교를 무시하는 태도에 기독교의 반유대주의와 담겨 있다는 것쯤은 쉽게 알 수 있지만, 콜린스는 이를 언급하지 않는다. 물론 콜린스에 따르면 오늘날의 유대교 연구에서는 랍비 유대교가 더 이상 규범적인 것으로 간주될 수 없기 때문에 그랬는지도 모른다.2)

사실 슈미트에 따르면, 제2 성전기 유대교를 지칭하는 말로서 '말기 유대교'라는 개념은 1870년에서 1970년까지 서구의 성서학, 특히 독일 개신교 성서학에서 지배적으로 사용됐다.3) 하지만 이전보다 훨씬 오래 전인 1794년에 Karl Heinrich Ludwig Pölitz가 이 용어를 처음으로 주조했는데, 칸트의 역사철학 개념을 따른 것이었다. 알다시피 칸트의 역사철학에서 유대교는 부정적으로, 그리스는 긍정적으로 묘사돼 있다. 근대 자유주의신학의 아버지격인 슐라이어마허 역시, 칸트를 따라 <종교론>에서 유대교를 기계적으로 움직이는 불쾌한 현상이자 오래전에 사멸된 종교라고 주장했다.

구약학자인 드베테는 구약을 히브리즘의 산물로 간주했지만, 유대교는 히브리즘이 퇴화한 것이며 새로운 창조가 아니라 혼돈이라고 말했다. 드베테의 이해를 물려받은 벨하우젠도 마찬가지였는데, 슈미트는 이러한 벨하우젠을 '악당'이라고 묘사한다. 그리고 부세트가 벨하우젠이 <이스라엘과 유대교 역사>에서 사용한 개념을 차용하여 말기 유대교를 랍비 유대교와 동일시했다고 지적한다. 재미나게도 슈미트는 "어느 누구도 말기 유대교와 중세 가톨릭 간에 존재하는 밀접한 관계를 놓칠 수 없다: 똑같은 형식성, 행위로 인한 의는 신학과 율법 사이에 동일한 관계가 있다"4)는 부세트의 말을 인용하면서, 개신교신학이 유대교와 관련해 어떠한 자세를 취했는지 폭로한다. 결국 '말기 유대교'라는 용어는 전반적으로 서구의 반유대주의 유산과 밀접하게 뒤섞이는 가운데 주조되고 차용된 용어였던 셈이다. 그렇기에 이제는 그를 대신해 '고대 유대교' 혹은 '초기 유대교'라는 용어가 쓰이고 있다.5)

물론 쉬러·부세트와 관련해 '반유대주의'라는 용어를 사용하지 않았다고 해서, 콜린스가 틀렸다거나 나쁘다는 게 아니다. 콜린스도 이쯤은 너무나 잘 알고 있을 것이다. 게다가 콜린스는 우리에게 유대교라는 현상이 얼마나 폭넓은 현상이었는지 잘 소개해 준다. 또한 지난날의 학자들이 이 폭넓은 현상을 자신의 입맛에 따라 - 비록 반유대주의라는 용어를 쓰진 않았을지라도 - 얼마나 축소시켰는지 잘 보여 준다. 그런 점에서 콜린스의 다음과 같은 지적은 유대교 연구가 어떻게 흘러왔고 앞으로 어떻게 흘러가야 할지 보여 주는 상당히 중요한 말이다.

"현대 학계의 초기 유대교 연구에 대한 이야기는 대부분 (재)발견의 이야기다. 랍비들은 이 시대에 작성된 어떠한 문헌도 보존하지 않았다. 랍비들은 디아스포라의 그리스 문헌을 접하지 못했던 것 같다. 묵시 문헌과 사해문서의 대부분은 이데올기적 이유로 거부됐다. 현대에 이르러 복원된 이러한 문헌들은 19세기 학계의 견해와는 매우 다른 초기 유대교 이해를 가능하게 해 주었다. 심지어 랍비 유대교를 규범적인 것으로 여기고 그 틀에서 초기 유대교를 바라보는 근래의 연구보다 더욱 새로운 이해에 도달하게 해 주었다. 의심의 여지없이 초기 유대교에 대한 현재의 이해는 여전히 불완전하다." (60쪽)

상황이 이러하다면, 이제 적어도 쉬러나 부세트처럼 유대교와 그 문헌을 복음서나 바울서신을 변증하기 위한 혹은 반유대주의를 설파하기 위한 수단으로 사용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이 '말기 유대교'가 아니라 '초기 유대교'라는 용어를 사용했다는 점은, 기독교의 오랜 반유대주의 유산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노력이라는 것을 간접적으로 확인할 수 있다.

2. 초기 유대교·기독교 이해와 관련한 이 책의 유익들

콜린스의 서론을 접한 뒤, 독자는 어떤 면에서 이제 유대교에 관한 기독교적 시각을 걷어 내고 보다 객관적 입장에서 유대교를 바라볼 수 있는 괜찮은 책 하나를 손에 넣게 됐다는 안도감을 가질 법하다. 개인적으로도 좋은 책이라고 말하고 싶다. 특별히 '디아스포라 유대교'에 관한 파트는 상당히 흥미롭게 다가올 수 있다.

"헬라 세계에서 유대인들이 불편함 없이 익숙한 삶을 살았다고 해도 그것이 자신들의 독특한 정체성을 버렸다거나 타협했다는 의미는 결코 아니다. '동화(assimilation)'와 '적응(accommodation)'이라는 용어는 잘못된 인상을 줄 수 있으므로 쓰지 않아야 한다. (중략) 사실은 그 반대다. 그들은 자신들의 고유한 특징적 요소들에 당당하게 주의를 기울였다." (196쪽)

위 진술을 참조하면, 보통의 디아스포라 유대인에 비해 바울이 상당히 유별났던 것처럼 보인다. 게다가 "유대인들은 조상으로부터 물려받은 전통의 독특한 측면을 디아스포라 세계에 내보이는 데 전혀 거리낌이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리스와 로마의 작가들이 가장 빈번하게 언급한 행습들 - 안식일 준수, 음식 규율, 할례 - 만 보아도 이 점을 충분히 알 수 있다"(197쪽)는 지적을 참조하면 더욱 그러하다. 아래 '유대교에 매료된 이방인들' 부분은 어질어질하게까지 한다.

"수많은 이방인이 유대교를 매력적으로 느꼈다. (중략) 사람들은 때때로 유대교가 매우 오래됐다는 사실 때문에, 유대교의 윤리적 규율 때문에, 율법에 대한 엄격한 준수 때문에, 전통 준수가 요구하는 훈련 때문에, 회당이 제공하는 사회적 연결 고리 때문에, 축일 기념 때문에, (중략) 매력을 느꼈다. (중략) 사실 요세푸스의 글을 신뢰한다면, 안식일을 준수하고 유대 음식 규정을 지키거나 여러 기술들, 그리고 율법 준수를 따라 지키려는 이방인이 세상 모든 곳에 있었다고 볼 수 있다." (202~203쪽)

율법은 이방인들에게 낯설 뿐만 아니라 거추장스러워서 지키기 힘든 것이라는, 바울서신을 통해 율법에 대한 부정적·반유대주의적 편견을 갖고 있을 수도 있는 전통적 기독교인 독자라면 충격을 받을 만한 대목이다. '이방인이 율법을 지키고자 열망했다고? 그렇다면 바울은 무엇인가' 하는 질문이 떠오르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래 '그리스인과 로마인 가운데 있었던 유대인' 파트는 이러한 충격을 다소 완화해 준다.

"유대인들은 그리스-로마 문화의 여러 측면을 포용했고 조상으로부터 전해 내려온 관습과 율법 준수에 관한 특정 권리와 혜택을 누렸으며 유대인이 아니지만 유대교에 공감하는 자들, 지지자들, 회심자들로부터 존경을 받았다. 다른 한편으로, 이와 같은 자료들은 유대인들이 이웃들로부터 경쟁과 분노, 심지어 노골적인 적의에 자주 직면했다는 것과 때로는 그리스 및 로마 군주들과 충돌했음을 보여 준다. (중략) 때론 긴장된 이러한 관계의 근원에는 유대인 자신들의 배타주의 또는 분리주의가 자리 잡고 있었다. (중략) 유대인들의 유일신 사상과 우상숭배에 대한 반대로 인하여 이방인들은 무신론과 인간 혐오(misanthropy)의 혐의로 유대인들을 고발했다." (605~606쪽)

이 지점에서 이방인들이 율법 준수와 관련해 무조건 긍정적 태도를 비친 것은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렇기에 "유대교에 매료된 지역 주민들의 경우도 잘 증명된다. 시리아의 각 도시에 '유대화하는 자들'이 있었다. 다마스쿠스에서는 많은 여인들이 유대 종교를 따랐다. 안티오키아의 유대인들은 지속적으로 자신들의 종교 관습에 대해 '상당수의 그리스인들을 매료시켰는데, 이들에게 있어서 어느 정도 자신의 일부가 됐다'라고 말했다. (중략) 그러나 우호적인 관계가 항상 어디에서나 증명되는 것은 아니다"(620쪽)라는 진술이 좀 더 공평하고 객관적인 것으로 보일 수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질문은 남는다. 시리아, 다마스쿠스, 안티오키아 지역과 바울이 관련이 있었다는 것을 참조하면, '바울을 과연 어떻게 바라봐야 하는가' 고민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우선, 전통적 기독교인 독자의 상상과 달리 이방인 전부가 바울의 관점을 쌍수를 들고 환영한 것은 아니었다고 보는 게 낫다. 사실 이 점은 바울서신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하지만 반대로 생각하면, 이방인을 설득하기 위해 바울이 얼마나 혼신의 힘을 다해야 했는지, 왜 그렇게 온갖 험담을 해 가며 자신의 적대자들과 투쟁을 벌였는지 더 잘 이해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초기 기독교에서 왜 그렇게 바울이 빠르게 잊혔다가 다시 부상하게 됐는지에 대해서도 잘 이해하게 될 것이다.

바울 이해와 관련한 이와 같은 유익은 '초기 유대교와 초기 기독교' 파트에서도 드러난다. 다시 말해, 바울의 유별남은 이 파트의 저자인 할로우의 말을 통해서도 확인된다

"갈라디아서는 토라에 관해 훨씬 부정적으로 말한다. (중략) 바울은 예수를 하나님으로 절대 부르지 않았고 바울의 기도는 예수에게 드려진 것이 아니라 예수를 통해 하나님에게 드려졌다. 그럼에도 바울의 기독론은 초기 유대교의 중개자적 존재(other mediator figure) 숭배보다 훨씬 더 나아갔다. 쉐마를 원시적 '이위일체(binitarian)'의 모습으로 재서술하면서 바울은 한 분 하나님의 생명 안에 예수를 포함시켰고, 예수를 창조를 행한 신적 행위 주체와 동일시했다. (중략) (빌립보서의) 찬가는 그리스도와 천상의 '지혜(Wisdom)'를 실질적으로 동일시한다. 여기서 메시아 신앙이 유일신 신앙을 침범한다. (중략)

 

아브라함 언약과 메시아와의 연합이 시내산 언약과 토라로 말미암은 삶을 능가한다는 생각은 초기 유대교에서 전례를 찾을 수 없다. 메시아의 도래가 토라의 가치를 없애 버리는 이유 역시 초기 유대교 사상을 통해서는 설명할 수 없다. (중략) 언약적 선택이라는 개념을 대단히 과격하게 재정의함으로써 바울은 대다수 유대인의 유대적 정체성의 중핵을 가격했다. (중략) 그의 신학은 분명 '이스라엘'을 새롭게 정의하는 것을 함의하며, 생물학적 유전과 제의적 규정 준수를 통해 형성된 역사적 이스라엘의 공동체적-언약적 자기 이해의 자리를 없애는 것을 함의한다." (658~664쪽)

내가 보기엔 타당한 주장이다. 바울을 '랍비 바울'이라고 말하는 이들이 있는데, 그건 바울을 너무 유대화하는 것이고 동시에 바울의 의중을 희석시키는 일 아닌가 싶다. 바울을 유대교의 맥락에 위치시킬 순 있겠지만 쉽지 않아 보인다. 할로우의 주장이 더 합리적이다.6)

더구나, 유대교뿐만 아니라 예수 및 초기 예루살렘 공동체와 관련해서도 바울은 유별나다. 왜냐하면 할로우는 "예수는 토라의 중요한 면면을 모두 받아들인 신실한 유대인이었다. (중략) 예수가 당시의 유대교 전체를 반대하며 맞섰다고 말할 수는 없다. (중략) 설령 공관복음서에 기록된 할라카 논쟁이 실제로 있었던 일이라도 하더라도 복음서의 예수가 취한 입장은 받아들여질 만한 유대적 행습의 경계선 안에 있었다. (중략) 수십 년 동안 예루살렘 공동체는 유대적 성격을 유지했다. (중략) 성전에서 희생 제사를 바치고, (중략) 그들 중에는 제사장과 바리새인도 있었다. 30년 후에도 여전히 이 유대인들은 '모두 율법에 열성'(행 21:20)을 가지고 있었다. 제1차 유대 봉기로 와해되기 전까지 예루살렘 공동체는 (중략) 전통적 유대 종교 행습을 행했다"(646~654쪽)라고 말하기 때문이다.

예수와 바울을 같은 선상에 놓고 예수의 제자들보다 바울이 예수의 정신을 훨씬 잘 표명했다고 생각하는 전통적 기독교 신자들에게는 충격적인 주장일 것이고, 예수와 바울을 잇고 싶어 하는 변증가들은 예루살렘 교회가 재유대교화됐다고 말하겠지만 말이다. 어쨌든, 이 책의 유익한 점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복음서나 사도행전 및 비바울서신들이 유대교와 관련해 어떠한 입장을 취하는지(반유대주의적인지 아닌지) 거칠게나마 언급해 주기 때문이다. 독자는 신약성서 각 문헌이 유대교와 관련해 어떠한 입장을 취하는지 알게 될 것이다.

3. 아쉬운 점 한 가지

이 책은 최근에 한국어로 번역된 <초기 유대교와 예수 운동>(새물결플러스)과 함께 상당히 좋은 책이다. 비록 두 책이 각각 10년과 20년 전에 출판된 책이지만 말이다. 개인적으로는 아쉬운 측면이 하나 있다. 바로 '유대 기독교(Jewish Christianity)'에 관한 부분이다. 초기 예루살렘 공동체를 이은 것일 수도 있는 유대 기독교에 관한 부분이 이 책에는 빠져 있는데, 예수와 예수 운동을 유대교의 맥락에 위치시키고자 하는 관점에서 뿐만 아니라, 바울 및 그 후예들의 투쟁을 이해하는 데 있어서도 유대 기독교는 꽤 유용하다. 혹시 책의 편집 과정에서 에비온주의과 영지주의는 피해야 한다는 슐라이어마허의 해석학적 원칙이 작동했기 때문일까? 그렇게 생각하고 싶지는 않다. 단지 최근에 유대 기독교에 관한 연구가 이전과 달리 상당히 많이 나오고 있기에 아쉬울 뿐이다. 어쨌든 이 책 <초기 유대교>는 예수와 초기 기독교를 이해하려면 읽어야 하는 매우 좋은 책이다. 최근에 필론과 관련한 책들이 한국에서도 번역되고 있는데, 이 책을 통해 독자는 필론에 관해서도 좋은 정보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이해청 / 성공회대학교 신학대학원에서 성서해석학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번역서로 R. S. 수기르타라자의 <탈식민주의 성서 비평>(분도출판사)과 로버트 M. 프라이스의 <복음서의 탄생>(예린출판)이 있으며, 현재 반유대주의와 탈식민주의 입장에서 복음서를 다시 읽는 작업에 몰두하고 있다.


1) 물론 이 책 <초기 유대교>의 편집자인 콜린스는 샌더스가 주조한 용어인 '언약적 율법주의'에 대해 다소 비판적이다. 이에 대해서는 John J. Collins, Between Athens and Jerusalem: Jewish Identity in the Hellenistic Diaspora, Wm.B.Eerdmans-Lightning Source, 2000, pp.21-24를 참조하라. 하지만 이것은 세부적 비판이지 전반적인 맥락, 다시 말해 홀로코스트 이후의 논의를 고려한다는 점에서는 크게 다르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2) 토라에 대해서도 콜린스는 토라가 단일한 하나의 의미가 아니라 역사를 따라 다양하게 변주돼 왔다고 말한다. 이에 대해서는 John J. Collins, The Invention of Judaism: Torah and Jewish Identity from Deuteronomy to Paul, University of California Press, 2017을 참조하라.
3) Konrad Schmid, The Interpretation of Second Temple Judaism as "Spätjudentum" in Christian Biblical Scholarship, An End to Antisemitism!, Edited by Armin Lange, Kerstin Mayerhofer, Dina Porat, and Lawrence H. Schiffman, Vol 2, De Gruyter, 2020, pp.141-153
4) Konrad Schmid, 앞의 책, p.149
5) '초기'라는 용어와 관련해 흥미로운 것은 유대교뿐만이 아니다. 기독교의 기원과 관련해서도 이 용어는 흥미로운데, 18세기 말 독일에서는 'Urchristentum'이라는 단어가 사용됐다. 영어로 'Primitive'에 해당하는 이 단에는 퇴화된 후대의 기독교와 구분되는 순수한 기독교를 찾고자 하는 신앙적 열망이 반영돼 있었다. 하지만 오늘날에는 이 용어를 거의 사용하지 않는다. 기독교 신앙의 열망보다는 중립적인 사실을 기술한다는 의미에서 독어로는 'Frühchristentum'이 영어로는 'Early'라는 용어가 사용된다. 이에 대해서는 Udo Schnelle, The First One Hundred Years of Christianity, trans by James W. Thompson, Baker Academic, 2020, pp.8-10을 참조하라.
6) 이런 점에서 바울은 유대인이라기보다는 급진적으로 헬라화된 인물에 가깝다는 유대교 학자 마코비의 말이 옳은 것처럼 보인다. 이에 대해서는 Hyam Maccoby, Paul and Hellenism, Trinity Press International, 1991과 The Mythmaker: Paul and the Invention of Christianity, Barnes & Noble Books, 1998을 참조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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