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클 왈저(Michael Walzer)가 쓴 <성도들이 일으킨 혁명>(대장간)의 원래 제목은 'The Revolution of the Saints'다. 한국어판에서 '성도'로 번역된 'Saints'는 '청교도(Puritan)'를 가리킨다. 청교도는 종교개혁에 찬동한 영국인 가운데 칼뱅주의를 선택한 이들이며, 칼뱅주의는 막스 베버가 <프로테스탄트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을 구상하는 데 결정적 구실을 했다. 베버는 칼뱅주의가 세속 내 금욕주의와 직업에 대한 소명 의식을 이끌어 냈고 그로부터 기업가형 인간이 양산됐다고 말했다.

이 책을 번역한 류의근 전 교수(신라대학교)는 왈저의 <성도들이 일으킨 혁명>이 베버의 <프로테스탄트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보다 양적으로나 질적으로 우수한 측면이 있다고 강조한다. 양적으로 베버의 책은 두 편의 장편 논문일 뿐이지만 왈저의 책은 그 두 배에 달하고, 청교도 관련 조사와 인용 문헌의 폭도 대단하다는 것이다.

이 책은 1장에서 중세가 정치 없는 사회였던 반면, 청교도와 칼뱅주의는 정치적이었다는 것을 보여 준다. 2장에서는 칼뱅주의의 이데올로기적 성격과 국가론·정부론 등을 해명하고, 시민 저항과 개혁의 종교적 토대를 밝힌다. 3장에서는 칼뱅주의 정치의 대표 사례로 프랑스 개신교도 '위그노'와 영국 개신교도 '청교도'를 들고, 이들의 정치사상과 혁명적 주체성을 규명한다. 4장에서는 청교도 목회자들을 당시 영국 사회에서 새롭게 출현한 지식인 집단으로 보고, 이들이 지닌 여러 특징과 면모들을 다양하게 살핀다. 5장에서는 청교도 목회자 지식인들이 전통적 사회 존재론, 정치 이론, 가족 이론 등을 어떻게 비판하는지를 구체적으로 논구한다.

6장에서는 청교도들이 변화하는 사회적·경제적 현실에 대응하는 과정에서 일, 즉 직업이 '소명'으로 규정되고 신앙이 노동의 규율로 작용하는 양상을 규명한다. 7장에서는 청교도의 정치적 변화 과정을 다층적으로 조사한다. 8장에서는 청교도의 전쟁 개념과 전쟁론 발전 과정을 설명함으로써, 청교도의 '정당한 전쟁 이론'을 살피고, 청교도가 전쟁하는 '종교 군인'이 돼 가는 과정을 기술한다. 9장 결론에서는 청교도주의를 자유주의, 자본주의, 급진 정치와의 연관 속에서 규정한다. 종합적으로 이 책은 청교도 운동이 칼뱅주의에 토대를 두고 혁명을 추구했으며, 정치적 급진주의로 진화했다는 것을 보여 준다.

<성도들이 일으킨 혁명 - 프로테스탄트 윤리와 급진주의 정치> / 마이클 왈저 지음 / 류의근 옮김 / 대장간 펴냄 / 448쪽 / 2만 5000원
<성도들이 일으킨 혁명 - 프로테스탄트 윤리와 급진주의 정치> / 마이클 왈저 지음 / 류의근 옮김 / 대장간 펴냄 / 448쪽 / 2만 5000원

사유의 질적인 차원에서 봐도, 베버가 종교와 자본주의의 관계를 규명할 때 다루는 주제보다 왈저가 종교와 급진 정치를 연결해서 논의할 때 다루는 주제들이 훨씬 풍부하고 자세하다. 청교도의 내적 양심과 경건한 규율이 '앙시앵 레짐(구체제)'에 저항하고 전쟁하며 혁명하는 의식으로 발전하는 변혁 과정을 보며, 왈저는 칼뱅주의를 시대 전환의 종교적 이데올로기로 작용하는 효과이자 영향이라고 규명한다. 즉 베버는 칼뱅주의를 자본주의 발흥의 심리적 원인 정도로 축소했으나, 왈저는 자본주의의 태동은 청교도의 부차적 결실일 뿐, 청교도가 실제로 추구한 바는 기성 교권과 정치 체제 모두와 대립하는 '급진주의적 정치'였다는 점을 보여 준다.

청교도들은 왕정과 봉건 체제에 저항한 최초의 시민이자 근대적 정치 주체이기도 했는데, 왈저는 자코뱅파(프랑스혁명)과 볼셰비키(러시아혁명)와 같은 정치적 급진주의의 기원이 청교도였다고 말한다. 종교개혁 당시 영국은 중도적인 개혁(Via Media) 노선을 취했는데, 신앙과 교리는 종교개혁의 노선을 따르고, 제도와 의식은 중세 교회의 것을 그대로 남겨 두는 식이었다. 이같은 중도적 개혁은 다수의 영국인들에게 지지를 받았지만, 철저한 개혁을 바라던 사람들에게는 만족을 주지 못했다. 이에 영국교회 안에 있는 가톨릭의 잔재를 완전히 정리하려 했던 이들이 청교도다.

청교도들은 17세기 잉글랜드의 사회적·정치적 분란의 중심에 있었다. 그들은 급진주의 정치를 이끌면서 민주주의 수립에 많은 영향을 줬다. 다시 말해 청교도 운동은 17세기 중반에 이르기까지 국왕과의 전쟁에서 승리하는 혁명으로 나아갔고, 국가 체제의 엄청난 변화를 가져왔으며, 전제정치를 민주정치로 바꿔 냈다. 영국의 청교도혁명, 미국의 독립혁명, 프랑스 칼뱅주의자들의 위그노 혁명, 네덜란드 칼뱅주의자들의 독립 전쟁 등이 그것이다.

그런데 한국교회에는 이에 대한 이해와 성찰이 결여돼 있는 것 같다. 한국교회는 청교도 급진 정치의 양상과는 다른 길을 걸어왔다. 물론 한일 협정 비준 반대 운동 이래로, 3선 개헌 반대 투쟁 및 유신 독재에 맞선 민주화 인권 운동 등을 주도하며 세상의 빛과 소금으로서 예언자적인 소임을 감당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것은 교계 일부에 불과했고, 다수는 여전히 정교분리에 안주했다.

특히 한국 보수 장로교회는 '청교도 개혁주의'를 골자로 한다 하면서도, 1950~1980년대 독재자들에게 심각하게 저항하지 않았다. 그중 일부는 '민족 복음화'와 '심령 구원'을 앞세워, 기독교 민주화 운동에 날을 세우기도 했다. 그 결과 한국 보수 장로교회 다수는 자신들의 민주적 전통을 배반하는 정치 성향을 가진 집단이 돼 버렸다는 비판을 받았다.

지난 70년 간 한국 보수 교회들은 불의한 권력에 저항했던 청교도 정신을 제대로 구현하지 못했다. 이는 현대사회에서 지도자 역할을 감당하는 데 필요한 역사의식과 정치적·사회적 교양의 결핍, 그리고 좁은 세계관에서 비롯했다. 이를 극복하는 것이 향후 한국 보수 교회들이 한국 사회에서 순기능적 역할을 하기 위한 관건이다.

현대사회에서 교회가 선지자적 역할을 감당하려면, 교회와 사회 혹은 교회와 국가 간 관계에 대한 역사적·신학적 지식을 갖춰야 한다. 지나간 과거는 어쩔 수 없지만, 다가오는 미래에 한국 장로교회 지도자들이 사회적·정치적 책임을 감당하기 위해서는 16~17세기 종교개혁 이후 청교도 혁명의 선조들이 신학적·실천적으로 민주주의 형성 과정에 어떤 역할을 감당했는지 배울 필요가 있다.

<성도들이 일으킨 혁명>은 청교도 운동이 얼마나 공공신학적·정치신학적 차원에서 전통 있는 사조인지 보여 준다. 따라서 주로 개인 경건과 개인 윤리에 치중해 온 한국 보수 교회에 새로운 역사 이해와 성찰을 제공해 줄 것이다. 보다 성경적이고 통전적인 청교도 신앙 및 정치를 성찰하고 실천하는 데도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최용성 / 성서한국 실행이사, 부산교회개혁연대 사무국장, 부산대 윤리교육과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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