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챕터를 읽은 뒤 상당한 충격을 받았다. 최근에 읽은 책 가운데서도 내가 감히 평가할 수 없는 수준이었고,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그동안 공공신학을 공부하면서 이 주제에 어느 정도 익숙해졌다고 자부했지만, '성령님'과 공공신학을 연결하는 저자의 작업은 나의 좁은 이해와 신학적 사유를 완전히 바꿔 놓았다. 나는 이렇게 경고하고 싶다. 한국교회의 편협한 성령 이해로는 창조 세계를 돌보시고 이끄시는 하나님의 섭리와 구원 사역을 온전히 이해하지 못할뿐더러 오히려 왜곡하는 위험성을 안고 있다. 신비주의와 은사주의에 치중된 성령론은 신자들의 현실적인 신앙을 병들게 하고, 사교邪敎나 주술적 믿음으로 교회를 쇠퇴시킬 것이다.

다니엘라 C. 어거스틴의 <성령은 어떻게 공동선을 증진하는가?>(새물결플러스)는 피조 세계를 돌보시는 성령님의 활동을 공공선의 관점에서 서술한다. 성령님은 모든 존재 사이를 왕래하시고, 자신의 집인 우주를 돌보며 활동하시는 하나님이시다. 그분은 파괴된 관계와 존재를 회복시키시고, 그리스도를 닮은 성인다운 삶으로 우리를 인도하신다. 폭력으로 얼룩진 세상에서 타자를 신적 형상으로 인정하며 환대하게 하신다. 돈으로 물든 자본주의사회에서 거룩한 성찬으로 서로를 사랑하게 하신다. 또한 참된 사랑과 용서를 통해 평화를 이룩하게 하신다.

<성령은 어떻게 공동선을 증진하는가? - 성령 안에서 인류와 세계의 참된 번영을 모색하기> / 다니엘라 C. 어거스틴 지음 / 김광남 옮김 / 새물결플러스 펴냄 / 360쪽 / 1만 9000원
<성령은 어떻게 공동선을 증진하는가? - 성령 안에서 인류와 세계의 참된 번영을 모색하기> / 다니엘라 C. 어거스틴 지음 / 김광남 옮김 / 새물결플러스 펴냄 / 360쪽 / 1만 9000원
1. 공동 형상에서 공동선으로

삼위일체이신 성령님은 성부·성자와 사랑의 관계 안에 머무신다. 이들의 존재 형식과 공동 사역은 모든 존재의 근거이자 목적일 수밖에 없다. 존재한다는 것은 곧 사랑하는 것이며, 사랑하는 것은 곧 타자(비존재)를 향해 열려 있는 개방성과 신뢰적 관계성을 의미한다. 우주적 성령님은 이 모두를 연결하시는 '공동의 끈'으로, 타자와 더불어 타자 안에서 살아가는 모든 것의 근거와 근원을 하나로 엮는 살아 있는 현존이시다. 이 땅에서 펼쳐지는 폭력과 갈등, 혐오와 파괴는 이 '공동의 끈'에서 단절된 상태에서 비롯한다. 그것은 또한 '하나님의 형상'인 타자를 인정하지 않은 삶으로 이어진다.

'하나님의 형상'과 '공동의 끈'은 기독교신학의 출발점이자 종착점이다. 타자의 삶에 깊이 공감하며 시대의 부정의에 항거하는 것도 어그러진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하시는 성령님의 관계적 사역에 동참하는 일이다. 저자는 셀리 맥페이그의 말을 인용해 그리스도를 닮은 성인의 삶을 '우주적 자아'로 표현하면서, 그리스도의 몸으로 연결된 모든 존재의 생명과 번영을 추구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그것이 바로 '공동의 선'이다. 공동선은 공리주의자들이 말하는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으로 계산할 수 있는 선의 총량이 아니다. 지구 전체를 이롭게 하시는 신령한 영의 활동이자, 세상을 치유하시는 하나님의 목적과 의도를 조금이나마 깨닫게 하는 표현이다.

저자는 우주를 하나님이 거하시는 거대한 '성전'으로 묘사한다. 하나님의 집으로서, 세계는 그분이 거하시는 장소이자 우리 인간을 위한 집이다. 하나님은 백성들 가운데 거하시며 인간들 사이의 구속된 관계 안에 머무르기를 기뻐하신다. 하나님이 머무시는 성전으로서, 우주는 하나님의 돌봄 대상일 뿐 아니라 모든 피조물을 그분의 가족, 즉 신적 공동체로 한데 묶는다. 인간은 만유가 신적 공동체가 될 때까지 세계를 하나님의 공동체적 삶의 모양으로 변화시키는 중재자의 역할을 맡았다. 우리는 지구라는 성소를 담당하는 관리자이자 하나님의 동반자다.

2. 폭력이라는 성상 파괴 행위에서
사랑이라는 새 창조의 삶으로

타자에 대한 폭력은 하나님의 형상, 즉 거룩한 형상에 대한 폭력이다. 최초의 살인을 저질렀던 가인을 향해서 하나님은 "네 형제가 어디 있느냐"고 물으셨다. 인간은 하나님 앞에서 동료 인간을 향한 책임이 있을 뿐 아니라, 타자의 안녕과 번영이 곧 우리 모두의 생명과 연결돼 있다는 것을 고백할 필요가 있다. 저자는 폭력으로 가득 찬 사회의 해독제는 삼위일체적 포용과 환대를 실천하는 것이며, 그러한 삶을 가능하게 하는 것은 성령 충만한 인간 공동체라고 제안한다. 폭력에 대한 치료제는 성령님의 능력 안에서 그리스도를 닮은 삶을 살아가는 인간이다.

삼위일체 하나님은 사랑 안에서 서로를 향해 공간을 내어 주신다. 삼위의 형상을 닮은 인간 역시 타자를 향한 사랑의 공간을 내어 주며 새 생명을 나눌 수 있다. 우리는 타자의 얼굴을 통해 하나님을 인식하며 환대를 경험하게 된다. 삼위의 공동체적 삶은 '타자를 위하는 삶'이 어떻게 세상을 치유하고 변화시키는지 깨닫게 한다. 하나님의 형상인 타자의 얼굴은 우리로 하여금 생명·번영·정의를 구하게 하는 세상의 얼굴다.

3. 시장이 된 세상에서 성찬적 존재의 회복으로

성령님은 삼위일체의 공동체적 삶을 통해 신자들의 공동체적 삶을 가능하게 한다. 타자와 공유하고 연대하는 삶을 통해 자기중심적인 자본주의의 문화를 거스르게 한다. 현대사회는 시장 자체를 신성시하면서, 보이지 않는 인간 욕망의 총합이 사회를 자율적으로 조절할 것이라 믿게 만들었다. 물질의 욕망으로부터 자유로워지는 방법은 탈물질화가 아니라 물질의 거룩화, 즉 '성화'다. 물질 자체는 거룩할 수 없지만, 하나님의 생명과 삶이 물질 안으로 임했던 성육신 사건과 성만찬은 물질 세계를 초월하게 하는 토대가 된다. 

급진정통주의(Radical Orthodoxy) 신학자들이 지적한 것처럼, 인간은 '성찬적 존재'다. 세속주의의 한계를 극복하고 신성의 복구를 구현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 바로 성찬이다. 이는 단순히 물질을 공유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공동체적 삶과 정치가 어떻게 가능한지 그 방식을 보여 주는 것이기도 하다. 따라서, 성령 충만한 공동체는 경제(oikonomia)를 포함한 모든 영역에서 삼위일체 하나님을 구현한다. 생명을 나누는 하나님의 가정으로서 지구적 공동체를 섬기며, 탐욕과 자본에 물든 세속의 경제 원리를 극복할 것이다. 이것은 곧 지구의 공공선과 연결된다. 이러한 신적 환대와 일치가 사랑과 정의를 실천하게 하며 급진적인 변혁을 가져온다.

4. 평화를 위한 새로운 비전,
화해와 용서에서 공동선으로

구약의 예언자들이 선포했던 '샬롬'은 고대 근동 당시엔 찾아볼 수 없던 유형의 것이었다. 제국주의·신비주의·자본주의·쾌락주의에 빠져 있던 여타 국가와 다르게, 패망한 이스라엘의 신성한 이들은 '평화'를 국가와 경제의 이상적인 모델로 제시한다. 물론 인간적 관계든 국가 간 관계든 이익을 중시하므로, 선한 공동체를 지향하는 것은 꿈과 같은 일이었다. 모두의 번영이 아닌 자국의 번영을 지향하는 것이 정치인들의 덕목이었기 때문이다. 폭력과 복수가 일상이었던 사회에서, 용서와 화해는 곧 나약함과 패배를 의미하기도 했다. 하지만 성령의 공동체는 평화를 위한 새로운 비전을 제안한다.

화해는 삼위일체적인 정의의 행위이자 세상의 치유적 갱신으로, 구원의 중심에 자리잡고 있는 개념이다. 이 땅에서 평화의 길(darkhei shalom)을 걸으며 산다는 것은 무모하고도 불가능한 일인지도 모른다. 평화의 길은 세상이 망가졌다는 사실을 인식하고 동료 인간들과 함께 고통을 감수하겠다는 약속이다. 그리스도를 닮은 삶은 곧 모두의 생명과 평화와 번영을 위해 자발적으로 십자가를 짊어지는 것이다. 이 모든 과정에 성령님께서 깊숙이 안내하며 함께하신다. 

우리는 그동안 성령님을 신비한 힘이나 기도를 들어주는 알라딘과 같은 존재로 오해하고 치부해 왔는지 모른다. 하지만 삼위일체적 삶, 공동체적 번영을 가능하게 하는 성령님의 활동은 인간의 생명과 관계를 풍성하게 하신다. 그런 의미에서 오순절신학은 한두 교단이 점유할 수 있는 것이 아니며, 파괴된 세상을 다시 살릴 수 있는 동력과 가능성을 확인하게 하는 우리 모두의 귀한 전통이다.

김승환 / 장로회신학대학교에서 기독교와 문화 전공으로 박사 학위를 마쳤으며 현재 초빙교수로 강의하고 있다. 공공신학과 도시신학을 전공했으며 <도시를 어떻게 구원할 것인가?>(새물결플러스), <공공성과 공동체성>(CLC), <우리 시대의 그리스도교 사상가들 1·2>(도서출판100·공저), <혐오와 한국교회>·<바이러스에 걸린 교회>(삼인·공저) 등을 저술했다. 도시공동체연구소와 기독교윤리실천행동 기독교윤리연구소 연구원이기도 하다. 호주 알파크루시스칼리지와 기독연구원느헤미야에서 강의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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