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앤조이-최승현 기자] 서울경찰청 공공안보수사대는 지난 11월, 한국기독교장로회 파송 사회선교사인 정대일 전도사(52)를 체포했다. 경찰은 앞서 7월에도 정 전도사의 자택과 연구실을 압수 수색하고 정 전도사를 체포하기도 했다. 정 전도사는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를 받고 있다.

정대일 전도사는 한국학중앙연구원에서 국내 최초로 '주체사상'을 연구해 박사 학위를 받은 북한 전문가다. 그는 주체사상이 북한에서 김일성을 숭배하는 '종교'로 기능하고 있다는 관점으로 연구를 계속해 왔다. 또한 북한의 종교와 다름없는 주체사상을 어떻게 이해해야 기독교인들의 북한 선교에 도움이 될지 <에큐메니안> 등에 연재를 이어 오기도 했다.

북한 전문가가 북한을 연구하고 관련 글을 쓰는 자연스러운 행위에, 경찰은 반국가 단체인 북한을 찬양·고무한다는 혐의를 씌웠다. 정 전도사가 김일성 회고록 <세기와 더불어>를 판매한 것을 두고, 이적표현물 반포 혐의를 적용해 수사하기도 했다. 선교적 관점에서 북한의 '국교'를 이해하기 위해 연구해 왔고, <세기와 더불어> 역시 교육 목적에서 판매가 가능하다는 대법원 판례가 있는데도 수사를 진행한 것이다. 체포된 후 풀려난 정 전도사는 현재 경찰의 검찰 송치 여부를 기다리고 있다.

정대일 전도사 등 시민사회 연구자와 활동가에 대한 국가보안법 수사가 지속되는 상황에서, 교계 19개 교회와 단체가 국가보안법 폐지를 요구하는 기독교대책위원회를 출범했다. 뉴스앤조이 최승현
정대일 전도사 등 시민사회 연구자와 활동가에 대한 국가보안법 수사가 지속되는 상황에서, 교계 19개 교회와 단체가 국가보안법 폐지를 요구하는 기독교대책위원회를 출범했다. 뉴스앤조이 최승현

정권이 바뀐 뒤, 경찰뿐 아니라 국정원·검찰 등 수사기관은 국가보안법 위반 여부를 두고 여러 정당·시민단체 관계자들에 대한 수사를 진행하고 있다. 이에 따라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교회협) 인권센터 등 19개 교회·단체는 12월 27일 서울 종로구 한국기독교회관에서 '국가보안법피해자들을위한기독교대책위원회' 출범식 및 세미나를 열고 대책을 논의했다.

교회협 인권센터 소장 황인근 목사는 "인권센터가 파악한 국가보안법 사건 연루자가 2022년에만 15명에 이른다. 국가보안법이라고 하면 1970~1980년대를 생각하지만, 지금도 그게 망령처럼 살아서 움직이고 있다. 이번 출범식을 계기로 많은 분이 마음을 모아 기독교대책위원회를 시작한다"고 대책위 출범 취지를 밝혔다.

이날 증언자로 나선 정대일 전도사는 "나는 하나님만 이롭게 하기 위해 산 사람인데, (경찰이) 적을 이롭게 하는 '이적 행위'를 했다고 둔갑시켰다. 내 개인 연구 건을 키워서 전국 조직 사건으로 만들려고 노력하는 것 같다. 경제가 어려워지고 민생이 위기에 처하니 대대적인 간첩단 사건을 만들어 덮으려고 하는 게 아닌가 생각한다"고 말했다.

정 전도사는 "평화를 사랑하고 민주주의를 수호하려는 목회자와 기독교인들까지 빨갱이에 동조하는 세력으로 몰아서 탄압하지 않을까 걱정된다"며 "국가보안법은 결국 '혐오 조장법'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이 혐오의 고리를 넘어서기 위해 함께 손잡고 소망과 희망을 품었으면 한다"고 말했다.

정대일 전도사는 주체사상을 종교적 관점에서 연구해 박사 학위를 받은 북한 전문가다. 그는 국가보안법이 혐오를 조장하는 법이라면서, 정부가 시국 전환용으로 국가보안법을 이용하고 있다고 말했다. 뉴스앤조이 최승현
정대일 전도사는 주체사상을 종교적 관점에서 연구해 박사 학위를 받은 북한 전문가다. 그는 국가보안법이 혐오를 조장하는 법이라면서, 정부가 시국 전환용으로 국가보안법을 이용하고 있다고 말했다. 뉴스앤조이 최승현

참여연대 공동대표를 맡고 있는 헌법학자 한상희 교수(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는 "국가보안법은 민족 분단의 현실을 반영한 법이 아니라, 권위주의 군사정권이 자기 권력을 정당화하는 수단으로 써 온 법"이라며 국가보안법은 폐지돼야 한다고 말했다.

한 교수는 "보통의 형사사건은 행위나 사건이 발생한 후에 수사하지만, 국가보안법은 먼저 기획한 후에 수사를 하면 사건이 구성된다. 행위를 (국가기관이) 만드는 것이다. 이념적인 논란을 다 떠나서, 국가보안법은 너무나 애매모호한 조항으로 가득 차 있어 국가권력의 오·남용, 즉 전횡 여지를 본질적으로 담고 있다. 언제든지 눈에 거슬리는 사람을 처벌하고 빨갱이로 몰기 위한, 통치와 지배를 위한 법인 것이다. 민주 사회의 시민이자 인간으로 대접받기 위한다면, 우리 존재 자체를 부정하는 국가보안법부터 없애야 한다"고 말했다.

민주노총 김은형 부위원장은 "국가보안법이라고 하면 정치나 학생운동, 또는 진보적인 분들에게 해당되는 평화나 통일의 담론이라고 생각하겠지만, 실제로 국가보안법은 자신의 생존권을 지키기 위해 발버둥 치는 사람들의 목을 먼저 조여 왔다"고 말했다. 김 부위원장은 생존권 보장, 노동권 보장을 외치며 투쟁하는 이들에게 찍히는 '빨갱이'라는 낙인이 이를 잘 보여 준다고 말했다.

장경욱 변호사(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국가보안법폐지TF 단장)는 "결국 (국가보안법 존치를 주장하는) 정부의 논리는, 분단 체제의 한국민은 자기 생각을 자유롭게 표출하고 공동체에 참여할 수 있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정대일 전도사와 내가 만나서 주체사상에 대해 토론하거나 100명 앞에서 강연한다고 우리 사회가 위험해지지는 않는다. 말로는 학문적 목적에 의한 연구는 자유롭게 할 수 있다고 하는데, (정 전도사 사건에서 보듯이) 실제로는 우리 사회에 그런 자유가 전혀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리스도교 신앙으로 바라보는 국가보안법'이라는 주제로 발표한 최형묵 목사(천안살림교회)는 "우리는 신의 형상을 부여받은 보편적 인권을 가지고 있고, 예수님께서도 한 영혼이 천하보다 귀하다고 인간 내면의 자유를 강조했으며, 사도 바울도 그리스도인의 자유를 역설했다. 이런 신학적 입장은 국가보안법이 초래하는 반인권적 행태를 다룰 때 중요한 근거가 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개인의 자유를 침해하고 강탈하는 국가보안법은 폐지돼야 한다고 말했다.

최 목사는 "자유민주주의의 가장 첫 번째 요건은 신앙·양심의자유다. 그런 관점에서 국가보안법을 존치하면서 자유민주주의를 말하는 것은 대한민국의 정체성 자체를 스스로 부정하는 행위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른바 '찬양·고무죄'라고 불리는 국가보안법 7조 "국가의 존립·안전이나 자유민주적 기본 질서를 위태롭게 한다는 점을 알면서 반국가 단체나 그 구성원 또는 그 지령을 받은 자의 활동을 찬양·고무·선전 또는 이에 동조하거나 국가 변란을 선전·선동한 자는 7년 이하의 징역에 처한다" 조항은 현재 헌법재판소에서 위헌 심판을 진행하고 있다. 지난 9월 공개 변론을 연 데 이어 심판을 계속해 왔다. 장경욱 변호사 등 이 사건에 참여하고 있는 이들은 내년 초 헌법재판소가 의미 있는 결정을 내릴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이날 행사에 참석한 이들은 정부에 "소수의 권력자가 아니라 국민을 위해 복무하고 자유와 정의의 가치를 지키며, 국가보안법을 폐지하라"고 요구하는 입장문을 발표했다.

다음은 성명서 전문.

모든 이들이 존엄하게 사는 것이 정의입니다.

모든 것을 얼려 버릴 듯한 추운 겨울에 우리는 더 참혹한 현실의 대한민국을 바라보며 이 자리에 모였습 니다. 10·29 이태원 참사 앞에 정부가 보였던 무책임하고 불의한 행태, 21세기에 벌어진 강제 노역을 명령하는 초법적 업무 개시 명령, 국민의 알 권리를 막아서고 제멋대로 언론을 조정하려는 반시대적 행태 등 오늘 한국 사회가 직면한 현실은 큰 위기입니다. 이 암울한 시기에 더욱 우리를 참담하게 하는 것은 망령처럼 살아나 다시 사람을 옥죄고 암울한 시대로 회귀하려는 국가보안법이 활개 치고 있다는 것입니다.

신앙의 오랜 질문과 궁극의 답은, 모든 이들이 하나님의 형상으로 존엄하게 사는 일입니다. 모든 법과 제도의 궁극은 인류의 존엄함이 지켜지는 행복한 사회를 만드는 데 있습니다. 특히 성경은 인간의 존엄을 훼손하는 일을 용납하지 않으시는 하나님의 역사를 우리에게 들려줍니다. 복음서에는 악한 권력을 빗댄 귀신 이야기(막 9:25)가 나옵니다. 사람의 삶을 피폐하게 만드는 귀신을 두고 "말 못 하게 하고 못 듣게 하는" 것이라고 분명하게 일러 주십니다. "말 못 하게 하고 못 듣게 하는" 것은 악한 권력의 속성입니다. 그리고 악한 것은 반드시 망하고 맙니다.

국가보안법이 꼭 그렇습니다. 국민이 말 못 하게 하고 못 듣게 합니다. 국가의 안전을 지킨다고 선전하지 만 우리는 지난 70여 년간 이 법이 어떻게 악하게 사용되었는지 참혹하게 경험했습니다. 사람의 안전이 아니라 소수 악한 권력을 유지하는 데 사용되었습니다. 온 국민의 삶을 검열하며 자유와 존엄을 훼손하였습니다. 지금도 민주 사회를 만드는데 큰 벽이 되고 있습니다. 몇 장 되지 않는 해묵은 악법으로 '국가'의 안전을 지키려 든다니 이것이야말로 시대의 비극입니다.

또다시 이 시대착오적인 국가보안법이 활개 치며 사람의 생각과 양심을 재단하려 들고, 여러 피해자들을 만들고 있으니 우리는 이 정부가 어떤 불온한 의도를 갖고 있는지 심히 우려합니다. 아직도 갈라치기와 혐오 조장으로 사람을 압제하려는 헛된 망상을 내려놓으십시오. 악법으로 사람을 겁박하려는 헛된 시도를 멈추십시오. 독재 정권에 맞섰고 폭력 정치를 몰아낸 역사 가운데 노동자, 농민, 상인, 학생, 교수, 예술인, 종교인 등이 있어 왔습니다. 사람이 국가의 주인이고, 모든 법과 제도는 국민의 안녕과 존엄을 지키는 방편임을 명심하십시오. 여기 모인 신앙인들 역시 결연하게 맞설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일러 주신 생명의 존엄을 반드시 지켜 낼 것입니다.

다음과 같이 강력히 전합니다.

1. 정부는 소수의 권력자들이 아니라 국민을 위해 복무하고 자유와 정의의 가치를 지키십시오. 국민이 뽑아 준 행정부답게 국민을 섬기고, 피와 땀으로 일궈 낸 자유와 정의을 지키는 일에 힘을 다하십시오.

1. 사람의 존엄을 위해 일하십시오. 그 무엇도 인간의 존엄을 해칠 수 없습니다. 사상과 자유를 재단하려는 시도는 악하고 헛된 일입니다. 모든 사람이 하나님의 형상입니다. 모든 이들이 존엄하게 사는 사회가 건강한 사회입니다.

1. 국가보안법을 폐지하십시오. 대한민국에는 헌법이 있습니다. 헌법을 준행하며 나라와 국민의 안전을 지키십시오. 헛된 권력에 악용되던 해묵은 악법을 끊어 내야 합니다. 그리하여 정의로운 사회를 만드는 데 힘쓰십시오.

새로운 세상을 만드는 데 용기가 필요합니다.

오늘 여기 모인 이들은 모든 사람이 존엄하게 살아가는 온전한 사회를 만들고, 서로를 지키기 위해 용기를 내어 나아갈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일러 주신 하나님나라를 고백하며 헛된 권세에 물러서지 않겠습니다.

2022년 12월 27일
국가보안법피해자들을위한기독교대책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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