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앤조이-이은혜 기자] '항인치항港人治港', '고도자치高度自治'. 1997년 홍콩이 중국으로 반환될 때 덩샤오핑은 향후 50년간 '홍콩은 홍콩 사람이 다스리는 고도의 자치를 보장한다'는 '일국양제一國兩制'를 약속했다. 하지만 30년도 채 지나지 않은 시점에 중국은 입장을 바꿔 홍콩을 압박하고 있다.

지난해 6월, '범죄인인도 법안'(송환법)에 반대하는 홍콩 시민 수백만 명이 거리로 쏟아져 나왔다. 역사상 유례없는 대규모 집회였다. 시위는 몇 달간 계속됐다. 학생들은 홍콩 시내 곳곳에서 집회를 열거나 대학을 점거하는 방식으로 저항했다.

홍콩 정부와 경찰은 시위대를 과잉 진압했다. 정부 청사 부근으로 행진하는 시위대를 향해 최루탄과 고무탄을 발사하는 등 과도하게 물리력을 사용했다. 몇몇 경찰은 실탄을 쏴 미성년 학생까지 중상을 입었다. 1100명 이상이 체포됐고 수천 명이 다쳤다. 유혈 사태에도 집회가 멈추지 않자, 홍콩 행정장관 캐리 람은 9월 송환법을 철회한다고 발표했다.

그 후 잠잠하던 홍콩이 다시 요동치고 있다. 이번에는 속칭 '홍콩 국가보안법' 때문이다. 2014년 홍콩 민주화 시위 '우산 혁명'을 이끈 데모시스토당 비서장 조슈아 웡은, 중국이 이 법을 빌미로 민주화를 열망하는 시민들의 언론·표현·집회의자유를 탄압할 것이라며 국제사회에 연대를 요청했다. 특히 홍콩인들은 현재 상황을 40년 전 5·18민주화운동과 비교하며 한국인들에게 관심을 촉구하고 있다.

현재 홍콩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듣기 위해 6월 2일 서울 한 카페에서 재한 홍콩인 조안 씨(가명·33)를 만났다. 조안 씨는 2012년 한 시민 단체 인턴으로 한국 생활을 시작했고, 2014년부터 올해 2월까지 기독교 시민 단체 간사를 지냈다.

조안 씨는 홍콩 국가보안법 문제는 중국이 홍콩의 자치를 보장하지 않고 자신들 발 아래 두려는 큰 그림을 그리는 과정이라고 설명했다. 지난해 송환법 시위도 중국의 홍콩 지배 시도에 대한 시민의 반발로 봐야 하며, 이에 위기의식을 느낀 중국 정부가 계속 같은 취지로 홍콩을 압박하고 있다고 했다.

'일국양제' 흔드는 중국 정부
홍콩 기본법 무시하며 민주주의 위협
"반중 시위 참여하면 언제든 잡혀갈 수 있어"

유례없는 반송환법 시위가 잦아든 지난해 11월, 홍콩 구의회 선거가 열렸다. 이 선거는 그동안 홍콩에서 시행한 모든 투표 중 최고 투표율을 기록했다. 선출직 의원 452석 중 389석을 범민주파가 가져갔고, 민주화를 열망하는 시민들이 압승을 거뒀다. 조안 씨는 송환법 시위로 깨어난 홍콩 시민이 대거 투표에 참여하면서 압승을 거둘 수 있었다고 평했다.

"엄마 세대(50대)는 사실 이렇게까지 정치에 관심을 두지 않았다. 우리 엄마만 해도 집과 일터를 오가는 단조로운 생활을 하는 평범한 중년 여성이었다. 그런데 평소 다니던 곳이 시위로 차단되고 경찰이 시위 참가자들에게 마구잡이로 폭력을 행사하는 모습을 보며, 대체 왜 이렇게 하는지 의문이 들어 알아보기 시작했다고 한다. 친구 부모님들도 마찬가지다."

구의회 선거에서 홍콩 민심을 확인하고도 중국 정부는 홍콩을 중국 영향력 아래 두려는 시도를 멈추지 않았다. 일례로, 중국 국가인 의용군 행진곡을 장례식이나 공공장소 배경 음악, 상업 광고 등에 사용하게 하고 노랫말을 바꿔 부르지 못하도록 하는 법안이 5월 열린 입법회에서 2차 심의까지 통과했다. 이 법을 위반하면 최고 징역 3년 또는 벌금 5만 홍콩달러(약 800만 원)에 처할 수 있다.

그 연장선상에서 이번 '홍콩 국가보안법' 사태가 일어났다. 홍콩에는 헌법 역할을 하는 '기본법'이 존재한다. 이 기본법 23조가 국가보안법에 해당한다. 반국가 행위를 한 외국 정치 조직 혹은 단체를 처벌한다는 내용이다. 이는 한국의 국가보안법과도 비슷하다. 이미 존재하던 것인데 왜 홍콩인들은 반발하는 걸까.

'일국양제' 체제에서 홍콩은 중국이 아닌 홍콩 기본법 영향력 아래 있다. 그런데 5월 28일, 중국 전국인민대표대회에서 이를 뒤집을 수 있는 '홍콩특별행정구의 국가 안전을 수호하는 법률제도와 집행 기제 수립 및 완비에 관한 전국인민대표대회의 결정'이 나왔다.

이 결정은 '전국인민대표대회 상무위원회가 홍콩 기본법 23조를 해석할 수 있다'는 내용을 홍콩 기본법 부칙에 삽입한다는 내용이다. 기본법 23조 위반 여부를 중국 정부가 판단할 수 있게 하는 것이다. 명확한 기준도 없다. 중국 정부 판단에 따라 국가보안법 위반 여부가 결정 난다. 조안 씨는 이 법안이 홍콩 민주주의에 상당한 위협을 불러올 것이라고 예상했다.

"내가 한국에서 이번 결정에 문제를 제기하는 기자회견에 참여했다고 가정해 보자. 한국 시민단체들과 연대한 나를 중국 정부가 기본법 23조 위반으로 잡아들이라고 홍콩 경찰에 명령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내가 홍콩에 발을 딛는 순간 언제든 체포될 수 있는 상황이 펼쳐진다. 여기에 송환법까지 통과됐다면 나는 홍콩에서 잡혀서 중국 본토로 이송될 수 있다. 어디서 어떻게 재판받는지 전혀 모른 채 사라질 수 있는 셈이다. 위협이 실제로 느껴져 아찔하다."

말하면서도 소름이 돋는지 조안 씨는 살짝 몸을 떨었다. 그는 중국 전국인민대표대회가 홍콩 민심을 거스르기 위해 절차적으로도 꼼수를 부렸다고 지적했다. 원래 법안을 만들려면 홍콩에서 입법회를 거쳐야 하는데, 이미 2003년 비슷한 법안이 입법 추진되다가 대규모 반대로 무산된 적이 있었다. 그러자 이번에는 절차를 밟지 않고 중국 전국인민대표대회가 홍콩 기본법을 해석할 수 있게 하는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는 말이다.

지난해 홍콩은 반송환법 집회로 몸살을 앓았다. 경찰의 과잉 진압은 시민들의 반발을 샀다. 사진 출처 플리커
지난해 홍콩은 반송환법 집회로 몸살을 앓았다. 경찰의 과잉 진압은 시민들의 반발을 샀다. 사진 출처 플리커

송환법 시위에 이어 국가보안법 사건이 불거지며, 집회의자유가 침해받을 조짐도 나타나고 있다고 했다. 홍콩에서 천안문 민주화 시위 유혈 진압 희생자를 추모하는 촛불 집회가 6월 4일 열릴 예정이었지만 경찰이 이를 불허했다. 1990년 추모 집회가 시작된 이래 처음 있는 일이다. 경찰은 코로나19 확산을 예방한다는 이유를 댔다.

국제적으로 고립될 수 있는 위기
"민주화 이룬 한국인들 연대해 달라"

간사 활동을 끝낸 조안 씨는 현재 한 대학교에서 공부하고 있다. 그는 오랜 시간 한국 생활을 하며 지난해만큼 홍콩 문제를 많이 고민하고 이를 한국인들에게 어떻게 전할지 고민해 본 적이 없다고 말했다. 혹시라도 한국 사람들이 홍콩 상황을 오해하지는 않을까 단어 하나, 문구 하나도 세심하게 골랐다고 했다. 그럼에도 그는 한국 언론 보도에 아쉬움을 표했다.

"중국 유학생이 홍콩 지지 현수막을 훼손했다는 기사는 많다. 하지만 중국 유학생이 함께하지 못해 미안하다며 익명으로 쓴 쪽지를 전해 주거나, 홍콩 사람과 함께 마주 앉아 이야기 나누며 눈물짓는 모습은 잘 보도되지 않는다. 중국 사람이라고 무조건 홍콩을 미워하지도, 자국 정부를 지지하지도 않는다. 다양한 결의 이야기가 존재한다는 것도 알아 주면 좋겠다."

송환법 반대 시위에는 청년 세대 참여가 두드러졌다. 이 때문에 시위가 세대·경제 갈등에서 촉발한 것이라는 분석도 있었다. 하지만 조안 씨는 이런 분석은 운동의 핵심 가치를 흐리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시위대가 원하는 건 중국 본토의 간섭을 받지 않는 일국양제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물론 일부 극소수가 다른 의견을 내긴 하겠지만, 대부분은 민주화에 대한 열망으로 시위에 참여했다"고 말했다.

중국 정부 대 홍콩의 문제를 공산주의 대 자본주의로 비추는 것도 불편한 지점이라고 했다. 그는 "지난해 시위할 때 태극기 부대가 와서 '우리는 공산주의 반대한다'며 힘내라고 하고 갔다. 그런데 곰곰히 생각해 보면 이게 꼭 공산주의 문제인가 싶다. 반공이라고 무조건 우리 편이라고 볼 수 있을까. 그보다는 민주적이지 않은 체제 문제라고 하는 게 정확하다. 현재 미국 상황만 봐도 그렇다. 미국은 대표적인 민주주의국가이지만, 시위를 막기 위해 군대를 내보낸다는 게 과연 민주주의다운 것인가"라고 말했다.

조안 씨는 언론 기사만 보고 판단하지 말고 홍콩 '사람' 이야기를 직접 들어 달라고 했다. 기독교인이기도 한 조안 씨는 자신을 비롯한 홍콩 사람을 초대해 이야기를 듣는 한국교회가 많아지면 좋겠다고 했다.

"사실 한국인들도 보면서 질문이 많을 것이다. 왜 송환법에 그렇게 반대하는지, 송환법 철회한 후에도 왜 시위를 계속했는지. 이 시위가 어떤 의미인지. 왜 '광복 홍콩, 시대 혁명'이라는 슬로건을 쓰는지. 광복을 주장하는 것이면 홍콩 독립을 원하는 건지. 수많은 질문이 떠오를 텐데, 홍콩 사람과 이 주제로 직접 이야기 나누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파니 씨는 유례없이 많은 인원이 왜 거리로 나와야 했는지 홍콩 사람에게 직접 듣는 기회가 많아지면 좋겠다고 했다. 사진 출처 플리커
파니 씨는 유례없이 많은 인원이 왜 거리로 나와야 했는지 홍콩 사람에게 직접 듣는 기회가 많아지면 좋겠다고 했다. 사진 출처 플리커

홍콩은 국제적으로 고립될 수도 있는 처지다. 중국이라는 힘센 공룡의 눈치를 보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지난해 송환법 반대 시위가 3개월 이상 이어졌고, 이 과정에서 비인도적인 일들이 전파를 타고 세계로 퍼져 나갔다. 하지만 한국을 비롯한 각국 정부는 거의 대응하지 않았다. 평화 이슈에 적극 목소리 내 온 WCC(세계교회협의회) 역시 홍콩 상황에 미온적이었다.

미국은 그동안 홍콩에 관세·투자·무역, 비자 발급 등에서 본토인 중국과 다르게 특별 대우 지위를 부여하고 있었다. 하지만 '홍콩 국가보안법' 개정을 계기로 이 지위를 박탈할 수도 있다며 중국을 압박하는 중이다. 그러나 이는 홍콩 시민의 자유와 안전을 위해서라기보다, 중국과의 여러 대결 구도에서 우위를 점하기 위해서라는 분석이 많다.

전 세계적 침묵 상황 속에서도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국제위원회는 지난해 6월 "인권과 민주주의, 시민권 보장을 요구하는 홍콩기독교협의회와 홍콩 시민들에게 깊은 연대를 표명한다"고 성명을 발표했다. 조안 씨는 다시 홍콩이 어려워지는 상황에서 한국 개신교인들의 연대를 요청했다.

"지금은 홍콩만의 문제처럼 보이지만, 과거와 미래를 연결해 보면 홍콩만의 문제가 아니다. 한국이 미국과 중국 사이에 껴서 희생양이 됐던 것처럼, 홍콩도 미국과 중국 싸움의 희생양이 될 수 있다. 전 세계적인 문제로 발전할 수도 있다. 민주화를 이룬 경험이 있는 한국 기독교인들이 이런 상황을 이해하고 연대해 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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