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앤조이-나수진 기자] '기독교 X 퀴어 X 페미니즘 매거진'. 잡지 <새날> 앞에 붙은 수식어다. <새날>은 기독교 신앙을 가진 여성·퀴어·앨라이 청년들이 겪은 교회·사회를 가감 없이 기록한다. 성별 이분법과 폭력적인 경쟁 시스템을 비틀면서 여성들의 연대를 보여 준 '스트릿 우먼 파이터(2021년 Mnet에서 방영된 프로그램 - 기자 주)'에 열광한 이유, 유학 중 아시아인이라는 이유로 받았던 차별, 혐오 속에서도 뜨겁게 신앙을 고백하는 퀴어들을 마주하며 느낀 벅참, 여성 목회자 후보생으로서 겪는 답답함과 분노 등을 꾹꾹 눌러 기록했다.

향린교회(김희헌 목사) 퀴어·페미니즘 팀은 1월 7일 <새날> 창간 준비호를 발행했다. 김정원 부목사를 비롯해 임솜이·유건 씨 등 15명이 제작에 참여했다. 향린교회는 지난해 미래선교연구위원회를 만들고 사회 선교를 위한 6개 주제를 선정했다. 2030 청년들을 주축으로 한 '퀴어·페미니즘 팀'도 이때 출범했다.

향린교회는 진보적인 곳으로 유명하다. 그동안 사회 선교 운동에 앞장서 왔지만, 정작 여성·성소수자 이슈는 교회 내에서 화두가 되지 못했다. 청년들은 "진보적인 교회가 '통일'이나 '민주화'는 이야기하면서 왜 '퀴어'나 '페미니즘'은 말하지 않는지" 의문이 들었다. 매주 모여 이야기를 나누고, 관련 서적을 함께 읽으며 토론했다.

<새날>은 그러한 생각들을 모아 교회 안팎에 드러내는 첫 번째 결과물이다. 흑백 표지에는 독립 출판물 특유의 통통 튀는 '힙함'이 묻어나고, 마지막 페이지 귀퉁이에 있는 '<새날> 출간 기념행사 음료 교환권'은 아날로그적인 향수를 불러일으킨다. 창간 준비호에는 7편의 글과 사진들이 실렸다. 출판 편집자 임솜이 씨가 교정과 편집·디자인을 맡고, 이공계 종사자 유건 씨는 웹 페이지를 만들었다. 김정원 목사는 성소수자들이 주로 모이는 로뎀나무그늘교회 교인들을 인터뷰했다.

1월 27일 늦은 저녁, 서울 중구 내자동 향린교회 사무실 근처 카페에서 김정원 목사와 임솜이·유건 씨를 만났다. 임솜이·유건 씨는 "다시는 못 만들 것 같다. 너무 힘들었다"며 운을 떼더니, 다음 호 주제를 '민족주의'로 하면 어떻겠느냐며 자연스럽게 대화를 이어 갔다. 옆에 있던 김정원 목사도 "교회 내에 자리 잡은 민족주의 한번 건드려 보는 거냐"며 거들었다. 마치 친한 친구 세 명이 오랜만에 모인 듯 이야기가 끊이지 않아 인터뷰 도중 한 차례 장소를 옮기기도 했다. 디지털 시대에 종이 잡지를 만든 이유부터, 각자가 담고 싶었던 이야기, 퀴어·페미니즘을 고민하는 동료 청년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까지 이들과 나눈 대화를 날것 그대로 담았다.

기독교 X 퀴어 X 페미니즘 잡지 <새날>을 펴낸 향린교회 김정원 부목사(사진 왼쪽)와 유건·임솜이 씨. 뉴스앤조이 나수진
기독교 X 퀴어 X 페미니즘 잡지 <새날>을 펴낸 향린교회 (사진 왼쪽부터) 김정원 부목사, 유건 씨, 임솜이 씨. 뉴스앤조이 나수진
"진보가 좀 더 진보적이게 되려면"

- 디지털 시대에 종이 잡지를 펴냈네요.

임솜이 / 인쇄물에는 디지털 매체로는 전할 수 없는 메시지나 감각 같은 것이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예를 들어 잡지 맨 마지막 글인 설교문의 끝부분을 보면 영상을 볼 수 있는 QR 코드가 있고, "파송사는 뒤표지에 있습니다"라는 문구가 있어요. 다른 정보를 접하기 위해 스크롤을 아래로 내리거나 링크를 클릭하는 것과는 다른 행위가 필요한 거죠. 이런 게 재미있고 또 필요하다고 생각했어요.

- 잡지 이름이 <새날>이에요. 발간사에도 "새날은 우리의 것입니다"라는 표현이 있고요. 어떤 뜻으로 이런 이름을 짓게 됐나요?

김정원 / 저희가 잡지 이름을 놓고 투표를 했는데, 일부러 '뉴트로(New와 Retro를 합친 신조어로, 복고를 새롭게 즐기는 경향을 이르는 말 - 기자 주)'한 느낌의 '복음자리', '행복으로의 초대' 같은 걸 후보로 냈어요. 그런데 결국 '새날'에 투표하게 되더라고요. 저는 '새날'이라고 하면 바로 하나님나라가 떠올라요. 복음은 새날을 꿈꾸는 거고요. 이때 새날은 퀴어와 페미니즘, 그리고 기독교가 같이 있는 게 아닐까 생각해요.

임솜이 / 그랬구나. 저는 '새날'이 되게 힙한 이름이라고 생각해서 후보로 낸 건데. '새소년'이라는 밴드도 생각나고.(웃음) 저는 일상에서 새날을 꿈꾸기가 너무 어렵다고 느껴요. 그래서 말씀해 주신 문장을 쓰면서도 스스로 좀 기만적인 게 아닌가 하는 고민도 있었어요. "새날은 우리의 것입니다"라는 표현은 우리의 것이 아니면 새날이 아니라는 의미일 수도 있고, 새날을 열 수 있는 사람들은 우리밖에 없다는 의미일 수도 있어요. 여기서 '우리'는 성별 정체성, 성적 지향, 출신 국가, 인종 등으로 차별받는 사람들, 계급적인 의미에서 '가진 것 없는 대다수' 정도가 될 것 같아요.

2030 청년들에게 퀴어·페미니즘은 삶의 주요한 화두다. 하지만 유독 교회에서는 다루지 않는다. 보수든, 진보든. 뉴스앤조이 나수진
2030 청년들에게 퀴어·페미니즘은 삶의 주요한 화두다. 하지만 유독 교회에서는 다루지 않는다. 보수든, 진보든. 뉴스앤조이 나수진

- 대다수 교회는 '퀴어'나 '페미니즘'을 낯설어할 텐데요. 어떤 이야기를 담고 싶었나요.

임솜이 / 지금 기독교에서 가장 시급하게 이야기해야 할 주제가 퀴어·페미니즘이라고 생각했어요. 교계가 워낙 퀴어 혐오와 가부장주의로 결속해 왔고, 차별금지법 반대 목소리도 강하게 내고 있으니까요. 그나마 저희 교회는 예전부터 여성·성소수자에 대한 이야기를 해 왔지만, 그마저도 내용이 좀 피상적이라는 느낌을 받았어요. 그래서 교회 청년들이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이 세계를 어떻게 느끼고 있는지 좀 더 구체적인 언어로 전달하고 싶었어요.

김정원 / 향린교회는 성소수자 인권 단체인 '무지개예수'에 소속돼 있고, 성소수자에게 친화적인 '무지개 교회'로도 소개되고 있어요. 한국 사회에서 향린교회라고 하면 진보 성향을 띠는 대표적인 교회로 알고 있잖아요. 그런데 교회 내에서 퀴어·페미니즘 문제는 유독 부차적인 걸로 여겨졌어요. 예를 들면, 저희 교회가 '차별금지법 제정' 현수막을 작년에 처음으로 내걸었어요. 그전까지 30년 가까이 걸려 있던 건 '국가보안법 폐지' 현수막이었어요. 그간 통일·민주화·노동문제가 주류 담론이었던 셈인데, '소수자' 이슈가 드디어 수면 위에 오른 거죠. 현대사회에서는 여성·성소수자를 이야기하지 않고서 진보가 될 수 없다고 생각해요. 향린의 진보가 좀 더 진보적이게 되려면, 세대를 막론하고 퀴어·페미니즘을 이야기할 수 있어야 해요. 이런 점을 교회 구성원들과 함께 이해하기 위한 또 하나의 계기가 필요했어요.

유건 / 저는 살면서 단 한 번도 어떤 존재를 혐오하는 게 신앙이라고 배운 적이 없어요. 오히려 신앙을 통해 비가시적인 존재들과 연대해야 한다는 걸 깨달았거든요. 사실 이 안에 담긴 주제·존재들이 우리 일상에서 잘 안 보이잖아요. 평소에 보이지 않고, 이야기되지 않는 것들을 담았어요. 교회 다니는 사람 중에서는 이 이야기를 불편하게 느낄 분도 있을 수 있어요. 그렇지만 '교회 다니면서 퀴어·페미니즘을 이야기하는 우리가 여기 있다'는 걸 알리고 싶었어요.

- 향린처럼 진보적인 교회 안에서도 "우리가 있다"를 외쳐야 했던 거네요.

김정원 / 과도기적인 것 같아요. 사실 요즘에는 어느 조직에나 세대 갈등이 있고, 386 세대에 대한 비판 담론이 형성돼 있잖아요. 기성세대가 여성·성소수자 문제를 빠뜨리고 간다고요. 향린 안에도 퀴어·페미니즘에 '동의'하고 지지하지만 선두에 서지는 않겠다는, 청년과 기성세대의 의제를 나누는 분위기가 있어요. 제가 여성·성소수자에 대해 설교할 때마다 불편하게 여기는 사람도 더러 있고요. 다른 교회들처럼 나서서 반대하지는 않지만, 아직 낯설고 잘 알지 못한다는 생각에 머뭇거리는 경향이 있는 같아요.

김정원 목사는 "현대사회에서는 여성·성소수자를 이야기하지 않고서 진보가 될 수 없다"고 말했다. 뉴스앤조이 나수진
김정원 목사는 "현대사회에서는 여성·성소수자를 이야기하지 않고서 진보가 될 수 없다"고 말했다. 뉴스앤조이 나수진
욕먹어서 다행인지도 몰라

- 잡지가 나온 후 교인들 반응은 어떻던가요.

김정원 / 저희가 교인들 한 분 한 분에게 우편으로 잡지를 발송했거든요. "이런 이야기가 계속되면 나보고 교회를 떠나라는 거냐"라고 말한 교인도 있었다고 들었어요. 교회 바깥에서는 담임목사가 아닌 부목사 이름으로 발송했다면서 문제 삼는 분들도 있었다고 해요. 부목사나 청년이 주체가 된 문건이 익숙하지 않다는 건데, '무엇을 말하는지'보다 '대표성을 누가 갖는지'에 집중하는 모습이 조금 씁쓸하더라고요. 교회 내 권위주의나 정상성 너머의 이야기를 담고 있는 이 잡지가 누군가에게는 도전이 될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임솜이 / 우리 교회에서 더 자주 이야기해 온 '통일·생태'를 주제로 잡지를 만들었다면 비슷한 문제 제기가 있었을까 싶기도 해요. 늘 하던 이야기이고 비교적 듣기 편하니까요. 필진 중에는 이 이야기를 듣고 속상해하는 사람도 있었는데, 저는 "욕먹지 않는다면 우리가 잘못 만든 걸지도 모른다"고 격려하기도 했어요. 교회에서는 하나 마나 한 좋은 말을 많이 하잖아요. 욕을 먹었다는 이야기를 들으니까 오히려 논쟁적인 부분을 건드리긴 했다는 생각이 들어서 좋더라고요. 우리가 의미 없는 일을 벌인 게 아닌지 걱정했거든요. 물론 좋은 반응을 전해 준 교인들이 훨씬 많아요.

유건 / 저는 잡지를 발간하는 순간 너무 힘들어서 '이게 시작이자 끝이다'라고 생각했는데, 비판적인 피드백이 들어오면서 생각이 달라졌어요. 오히려 이런 피드백 때문에 사람들이 하고 싶은 말이 목 끝까지 더 차오를 수도 있겠다. 그런 마음이 꽉 차면 다음 호가 나올 수도 있겠다.(웃음)

- 잡지를 통해 공감과 위로를 받는 사람도 있지 않을까요.

김정원 / 맞아요. 부정적인 반응도 있었지만, 제 또래 주변 목회자들은 다들 감동받았다면서 응원해 줬어요. 타 교단에 있는 교역자들이 개인적으로 발송을 요청하기도 했고요. 교단·교회가 보수적인 탓에 잡지를 공개적으로 받지는 못하지만, 직접 보고 주변 청년들에게 꼭꼭 씹어 설명해 주겠다고요. 전 여기서 희망을 읽었어요. 학교 다닐 때는 진보적 담론을 함께 이야기하던 사람들이 현장으로 가면 아무것도 하지 않거든요. 그런 점에서 <새날>이 '노스탤지어'가 됐으면 좋겠어요. 모든 교회 공간이 향린처럼 교역자들을 안전하게 지켜 주지는 않는다는 걸 알지만, 그래도 각자 할 수 있는 만큼은 해냈으면 좋겠어요. 적어도 성소수자를 혐오하는 얘기는 하지 않았으면 좋겠고요.

유건 씨는 잡지 <새날>을 통해 교회 내에서 퀴어·페미니즘을 고민하는 청년들이 더 연결되기를 바란다고 했다. 뉴스앤조이 나수진
유건 씨는 잡지 <새날>을 통해 교회 내에서 퀴어·페미니즘을 고민하는 청년들이 더 연결되기를 바란다고 했다. 뉴스앤조이 나수진

- <새날>을 통해 바라는 점이 있나요.

임솜이 / <새날>의 목적은 독자들을 설득하거나 비난하는 게 아니에요. 단지 우리의 안부를 전하고 싶었어요. 코로나19 때문에 교회에서 교우들 얼굴 본 지가 엄청 오래돼서, 잡지를 발송해 인사를 전하고도 싶었고요. 저희 교회 교인이 아니더라도 특별히 비수도권 지역에 있는 분들, 그래서 좀 더 외롭다고 느끼는 분들께 이 잡지가 전해지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서울을 비롯한 수도권에는 이런 담론을 나눌 수 있는 공간이 비교적 있지만 비수도권 지역에는 상대적으로 적으니까요. 이 잡지를 읽는 분들이 덜 외로웠으면 좋겠고, 죽지 말고 어떻게든 살아남았으면 좋겠어요.

유건 / 살다 보면 절망할 때가 되게 많잖아요. 정말 이런 세상에서 계속 살아갈 수 있을까 싶고요. <새날>을 통해, 절망하는 사람들에게 같이 절망하자고 말하고 싶어요. 같이 힘들어하다 보면 비슷한 처지에 있는 주변 사람들이 점점 보일 거고, '생각보다 절망하는 사람이 많네' 생각하게 되는 날도 오지 않을까, 그래서 절망이 희망으로 바뀌면 좋지 않을까 기대해요.

김정원 / 향린은 아무래도 진보적인 교회이다 보니까 주변에서 '향린 애들 또 그런 거 했구나', '쟤네는 우리랑 다르니까' 하는 반응을 보이는 게 가장 아쉬운 것 같아요. '그래도 향린이 이런 목소리를 내 주고 있구나' 기억해 줬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이번 호는 '창간 준비호'니까, 다음이 있을 거라고 상상하고 싶어요. 향린이라는 비교적 안전한 공간에 있는 우리가 해야 할 일인 것 같아요. '진보 메가 처치'에 있는 사람들이 이런 거 안 하면 누가 해.(웃음)

<새날> 창간 준비호. 뉴스앤조이 나수진
<새날> 창간 준비호. 뉴스앤조이 나수진

- 교회 안에서 퀴어·페미니즘을 고민하는 사람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요.

김정원 / 교회 내 혐오·차별을 겪다가 힘에 부쳐서 향린을 방문하는 분을 종종 만나게 돼요. 페미니즘은 단순한 운동이 아니라 정치라고들 하지만, 소수자들에게 교회를 바꿔 내라고 하는 건 너무 이상적이에요. 교회는 여전히 수직적이고 많은 장벽이 있으니까요. 소수자 본인에게 교회가 여러 이유로 소중한 공간이라면 '페르소나'를 쓰고 지내는 것도 존중해요. 하지만 갈등이 심하고 정말 견디기 힘든 상황에 내몰려 있다면, 떠나는 것도 필요하다고 봐요. 교회 안에 있다 보면 자기가 처한 상황이 신앙의 전부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절대 그렇지 않거든요. 완벽한 공간은 아무 데도 없지만, 좀 더 안전한 공간은 분명히 있는 걸 기억해 줬으면 좋겠어요.

임솜이 / 교회 내에도 퀴어·페미니즘을 고민하고 실천하는 사람들이 있으니까 힘들면 언제든지 도움을 청하라는 말을 전하고 싶어요. 어떻게든 도움을 받고, 구질구질한 방식으로라도 살아남기를 바라요.

유건 / 요즘에 제일 많이 하는 생각은 우리가 토마토를 벽에 계속 던지고 있는 것 같다는 거예요. 상대는 벽 너머에 있는데, 아무리 토마토를 던진다 한들 벽을 뚫거나 상대에게 닿는 데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어요. 그럴 땐 그냥 두고 다른 데 힘을 쓰는 게 좋지 않을까요. 벽을 바라보고 서 있는 이 자리에 더 많은 사람이 모인다면, 상대가 알아서 그 벽 밖으로 나올 테니까요. 그런 점에서 우리가 더 함께해야 할 필요가 있는 것 같아요.

잡지 <새날>은 온라인·오프라인에서 읽을 수 있다. 종이 잡지는 아래 링크로 발송을 신청하면 된다. 코로나19 상황에 따라 추후 출판기념회도 진행할 예정이다. 뉴스앤조이 나수진
잡지 <새날>은 온라인·오프라인에서 읽을 수 있다. 종이 잡지는 아래 링크로 발송을 신청하면 된다. 코로나19 상황에 따라 추후 출판기념회도 진행할 예정이다. 뉴스앤조이 나수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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