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현장에서 그리스도인의 정체성을 갖고 살아가는 '진격의 교인'들을 소개합니다. 성서가 강조하는 가치와 뜻을 실천하기 위해 일상에서 진격하는 크리스천들의 모습에서 진정한 기독교의 역할과 모습을 찾고자 합니다. - 편집자 주

 

"주님께서 주신 귀한 생을 따뜻하게 보듬어 안고, 사랑하고 섬기라 하신 소명 받들며 아름답게 생을 사시다가 이제 당신의 품에 안기셨습니다.
 

두 분의 생을 위로하시고, 살아오면서 품었던 고통과 아픔을 우리 하나님 품어 안아 주시고, 이제 고통도 눈물도 없는 당신의 품에서 영원한 안식을 누릴 수 있도록 함께해 주시옵소서."

[뉴스앤조이-박요셉 간사] 김경환 목사(동녘교회)가 고 이성일(가명·67) 님과 고 남영호(가명·61) 님을 위해 기도했습니다. 11월 2일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에 있는 서울시립승화원에서 두 분을 위한 장례가 진행됐습니다. 두 분은 모두 병원에서 생을 마감했습니다. 이성일 님은 9월 28일 위암으로, 남영호 님은 10월 5일 전이성 대장암으로 사망 판정을 받았습니다.

고인들은 무연고 사망자로 분류됐습니다. 가족들이 시신을 인도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경우에는 대다수 지자체가 시신을 화장해 '처리'합니다. 하지만 다행히 두 고인은 빈소가 마련될 수 있었습니다. 서울시와 비영리법인 나눔과나눔(박진옥 상임이사)이 장례를 도왔습니다.

빈소는 박진옥 이사를 비롯해 서울시 장례지도사, 나눔과나눔 자원봉사자들이 지켰습니다. 뒤늦게 소식을 들은 이성일 님의 처제와 지인이 함께했습니다.

서울시립승화원에서 진행된 공영 장례 모습. 뉴스앤조이 박요셉
서울시립승화원에서 진행된 공영 장례 모습. 뉴스앤조이 박요셉

생명이 우리 곁을 떠났습니다. 어떤 모습이든, 어느 위치에 있든 그 삶은 가볍지 않았으리라 생각합니다. 누구라도 떠나는 그 순간에는 위로와 격려를 받을 자격이 충분하다는 걸 사람들은 알았던 것 같습니다. 고인들이 어떻게 살았는지 자세히 알지는 못했지만, 모두가 두 분의 마지막을 기리는 예식에 진심으로 임했습니다.

"아무리 슬퍼도 헤어져야 하는 것이 이 세상의 이치인 것을 어찌하겠습니까. 외롭고 힘들어서 삶의 무게를 내려놓고 영원히 가시는 길이 아쉬워 이렇게 술 한 잔 올려 드립니다. 안타까운 마음 그지없습니다. 고이 길 떠나소서."

박진옥 이사가 예식을 시작하며 축문을 읽었습니다.

고인의 유골은 서울시립승화원 뒤편에 있는 유택동산에 산골(뼛가루를 뿌림)합니다. 뉴스앤조이 박요셉
고인의 유골은 서울시립승화원 뒤편에 있는 유택동산에 산골(뼛가루를 뿌림)합니다. 뉴스앤조이 박요셉

나눔과나눔은 11년 전부터 우리 사회에 '존엄한 죽음'의 필요성을 알려 왔습니다. 그동안 장례를 치러 줄 가족이 없는 죽음은 '애도'되는 죽음이 아니었습니다. 경제적·위생적 이유로 '관리'되고 '처리'되는 죽음이었습니다.

이러한 문제의식이 반영돼, 최근 관련 법과 제도가 만들어지기 시작했습니다. 2018년 서울시를 비롯한 지방자치단체 14곳이 공영 장례 지원에 관한 조례를 마련했습니다. 저소득층의 장례를 지원하는 법안입니다.

같은 해 서울시는 광역 단체 중 최초로 공영 장례 제도를 도입했습니다. 현금이나 현물만 지원하는 다른 곳과 달리, 서울시는 위탁 업체를 선정해 예식을 직접 진행합니다. 모두 나눔과나눔이 일으킨 변화입니다.

그동안 우리 사회가 인지하지 못한 '존엄한 죽음'이라는 가치를 일깨우고, 공영 장례 제도로 이 가치를 지키는 데 앞장서 온 박진옥 이사를 11월 2일 서울시립승화원에서 만났습니다.

위안부 할머니들 장례 돕다 알게 된
무연고 사망자들의 현실
죽음에도 돈이 필요하다

나눔과나눔은 11년 전, 일본군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의 장례를 지원하면서 만들어졌습니다. 박진옥 이사가 처음부터 단체를 만들 생각은 아니었습니다. 장례 지원 대상이 늘어나면서, 단순히 시작한 봉사 활동이 단체로 발전했습니다.

- 언제부터 무연고 사망자의 장례를 돕기 시작했나요?

"처음에는 할머니들을 외롭지 않게 잘 보내 드려야겠다는 생각뿐이었어요. 그런데 장례를 지원하는 과정에서 현장의 필요가 보이기 시작하더라고요. 돈이 없어서 장례를 치르지 못하는 사람들, 가족과 연결이 단절된 무연고 사망자들. 이들을 알게 되며 자연스럽게 저희들의 활동 범위도 조금씩 넓어졌어요."

- 무연고 사망자가 매년 얼마나 발생하나요?

"매년 늘어나는 추세예요. 재작년 전국 무연고 사망자가 약 2900명, 작년에는 약 3600명이었어요. 서울 같은 경우에는 작년에 800여 명을 기록했는데, 올해는 1100명이 넘을 것으로 예상하고 있습니다."

서울시는 공영 장례 지원에 관한 법률에 따라, 시에서 발생한 모든 무연고 사망자들의 장례를 서울시립승화원에서 치릅니다. 나눔과나눔은 작년까지만 해도 매일 두 사람의 장례를 진행했습니다. 그러나 올해부터는 무연고 사망자가 늘어나 매일 네 사람을 모신다고 합니다.

서울시 공영 장례 빈소. 뉴스앤조이 박요셉
서울시 공영 장례 빈소. 뉴스앤조이 박요셉

통상 무연고 사망이라고 하면 '고독사'를 떠올리기 쉽습니다. 우리나라가 법으로 정의하는 무연고 사망자 개념은 아래와 같습니다.

1) 연고자가 없는 사망자
2) 연고자를 알 수 없는 사망자
3) 연고자가 있으나 시신 인수를 거부·기피(무응답)하는 사망자

무연고 사망자 중 70%가 가족들이 시신 인수를 거부하거나 기피하는 경우입니다.

- 가족들이 장례를 지자체에 위임하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고인과 수십 년 동안 관계가 끊긴 경우도 있고요. 장례를 치를 비용을 감당하기 어려운 이유도 있습니다.

보통 장례를 치르는 데 약 1500만 원이 듭니다. 최근 정부가 이태원 참사 희생자 유가족분들에게 지원금 1500만 원을 주겠다고 밝혔죠. 장례 비용입니다. 참고로 코로나19로 사망하신 분 가족들에게는 1300만 원이 지급됐고요."

- 장례를 치르는 데 그렇게 많은 돈이 들어가는 줄 몰랐습니다.

"장례를 가장 간소하게 진행해도 약 300만 원이 들어갑니다. 그런데 이게 전부는 아니에요.

오늘 모신 이성일 님과 남영호 님의 경우에는, 모두 병원에서 돌아가셨습니다. 병원비가 최소 300만 원입니다. 거기에 유가족과 연락이 닿기까지 보통 일주일이 걸려요. 하루에 시신 안치료가 10만 원입니다. 결국 이 모든 비용을 더하면 가족들이 당장 부담해야 할 돈이 600만 원이 넘습니다.

한번 생각해 보세요. 월 200만~300만 원 버는 보통 사람들이 갑자기 이런 목돈을 마련하기는 쉽지 않잖아요. 더군다나 수십 년간 관계가 단절된 사이라면 그렇게 큰돈을 들여 장례를 치르기가 더욱 어렵겠죠."

2021년 보건복지부 제출 자료에 따른 연도별 국내 무연고 사망자 현황.
2021년 보건복지부 제출 자료에 따른 연도별 국내 무연고 사망자 현황.

박진옥 이사는 아들의 장례를 위임한 한 어머님의 이야기를 들려줬습니다.

어머님은 팩스(fax)로 위임장을 제출했습니다. 거기에는 고인이 된 아들이 생전에 저지른 잘못들이 적혀 있었습니다. 말썽을 부리고, 부모 속을 썩이고, 집을 나갔다는 등. 위임장 맨 밑에는 본인들이 나이가 들고 소득이 없어 경제적으로 어렵다는 내용이 적혀 있었습니다.

박진옥 이사는 마지막 부분이 아마도 유가족들이 가장 하고 싶은 이야기일 거라며, 이들을 탓할 수는 없는 문제라고 말했습니다.

삶이 존엄하듯이, 죽음도 존엄합니다. 저는 이 존엄을 기본적인 권리로 이해했습니다. 누구나 먹고 자고 삶을 영위할 수 있는 권리가 있듯이, 죽음에 있어서도 세상과 이별하고 생을 잘 마감할 기회를 주어야 한다고요. 

"무연고 사망자의 존엄성을 지키기 위해서는 세상과 이별할 수 있는 의례가 보장되어야 한다. 이때 재정적 어려움으로 시신 인수를 포기한 연고자가 있다면 이들이 최소한 망자와 이별할 수 있도록 장례가 보장되어야 하고, 장례할 사람이 없다면 사회 공동체가 이를 진행해야 한다. 이렇게 하는 것이 이들을 공동체의 구성원으로 인정하는 것이자, 공동체의 구성원이었던 무연고 사망자의 죽음을 제대로 애도하는 것이다." [<인문사회21> 제10권 2호, '무연고 사망자 장례 실태 및 개선 방안 연구', 박진옥]

산 사람을 위한 공영 장례

- 사회가 구성원들의 존엄한 죽음을 보장해 줘야 한다는 말에 일견 동의합니다. 다만, 반론도 있을 것 같아요. 산 사람도 먹고살기 힘든데 굳이 죽은 사람들을 위해 재정을 써야 하느냐고요.

"제가 쪽방촌에 음식을 갖다 드리러 자주 방문해서 주민분들과 무척 가깝게 지내요. 하루는 한 어르신 방에 들어갔는데 벽에 제 핸드폰 번호가 적혀 있더라고요. '무연고 담당 010-XXXX-XXXX'라고요. 그걸 보고 깜짝 놀랐어요.

공영 장례가 고인의 존엄함을 지켜 준다고 말하지만, 사실 어떤 분들에게는 피상적인 이야기로 들릴 수 있어요. 그런데 장례 지원이 꼭 돌아가신 분들 뿐만 아니라 살아 있는 분들에게도 긍정적인 기능을 하거든요."

- 살아 있는 분들에게도 말이죠.

"쪽방촌에 사는 분들은 고독사가 두렵지 않대요. 오히려 자신의 시신 처리가 걱정이라고 해요. 대부분 가족들과 연락이 끊겨서 장례를 치러 줄 사람이 없기 때문이죠. 그러니 자신의 몸뚱이가 사람들에게 민폐가 되거나 함부로 갖다 버려지는 건 아닌지 걱정해요.

장례 지원은 궁극적으로 홀로 남겨진 사람들에게 끊임없이 인기척을 내는 일이에요. '당신은 혼자가 아니에요', '우리가 마지막을 함께할 거예요' 라면서요. 어렵게 하루하루를 먹고사는 '산 사람'들이 가장 걱정하는 문제 중 하나인 죽음 이후를 해결해 주는 일이고요."

박진옥 이사는 종종 쪽방촌 주민의 장례를 치를 때가 있다고 했습니다. 가족들과 연락이 닿지 않아 고인이 무연고 사망자로 분류되더라도, 빈소는 쓸쓸하지 않다고 합니다. 부고를 들은 쪽방촌 이웃들이 함께하기 때문입니다.

장례를 치르며 이웃들은 애도하는 동시에 안도합니다. '내가 죽어도 이렇게 해 주겠구나', '오늘 본 것처럼 우리 사회가 내 마지막을 이렇게 챙겨 주겠구나' 하고 말이에요. 박진옥 이사는 장례 지원은 산 사람을 위한 일이라고 말했습니다.

나눔과나눔 박진옥 상임이사. 뉴스앤조이 박요셉
나눔과나눔 박진옥 상임이사. 뉴스앤조이 박요셉

- 2018년 서울시를 포함해 전국 지자체에서 공영 장례 지원에 관한 조례가 통과됐습니다. 서울시는 공영 장례 제도를 도입해 무연고 사망자를 위한 빈소도 별도로 만들었고요. 현장의 목소리가 제도로 반영되는 모습을 보면서 무척 뿌듯하실 것 같습니다.

"너무 기뻤어요. 지금까지 존엄한 죽음의 필요성을 이야기해 왔지만,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막연했거든요. 그런데 법으로 개념화·구체화되는 모습을 보면서 기뻤습니다. 특히 서울시가 지자체 최초로 공영 장례 서비스를 도입하고, 2020년에는 보건복지부가 '가족 대신 장례' 지침을 마련하는 모습을 보면서, 이제 정말 변화가 시작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 공영 장례 제도가 앞으로 더 개선해야 할 부분은 무엇인가요?

"지자체마다 상황이 조금 다른 것 같습니다. 우선 공영 장례라는 취지에 맞게 실제로 장례식을 지원하고 있는지 따져 봐야 할 것 같고요. 만약 지자체가 제대로 관심을 갖지 않으면, 이 제도를 또 다른 영리 수단으로 악용하는 사례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 정부가 통일된 매뉴얼과 지침을 마련할 필요도 있고요."

- 지자체마다 장례 방식이 다른가요?

"우리나라 전통 장례를 치른다는 점에서는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다만 서울시 같은 경우에는 저희가 함께 장례 예식을 설계하면서 몇 가지 추가했습니다. 종교인 봉사자를 모집해 요일별로 불교·개신교·천주교 예식을 진행하고요. 유가족이 없는 경우에도 빈소를 지켜 줄 자원봉사자를 구하고 있습니다.

또 하나 강조하고 싶은 건 '부고'입니다. 서울시 무연고 사망자들은 모두 나눔과나눔 홈페이지 혹은 인터넷 언론사 <비마이너>에 부고가 올라옵니다.

- 원래 부고는 명망 있거나 사회적 지위가 있는 이들의 경우에만 게재하는 걸로 알고 있는데요. 무연고 사망자들의 부고는 어떻게 시작하게 된 건가요?

"처음에는 우리 사회에 무연고로 돌아가신 분들이 존재한다는 걸 알리자는 취지로 시작했어요. 그런데 생각보다 많은 가족이나 지인이 부고를 보고 장례식에 찾아오더라고요. 무연고 사망자들은 장례를 치르기까지 보통 일주일에서 한 달이 걸립니다. 가족을 찾거나 시신을 인도할지 대답을 기다리는 과정이죠. 오늘 장례한 이성일 님과 남영호 님도 각각 9월 말과 10월 초에 돌아가셨습니다."

박진옥 이사는 부고를 보고 오는 분들 중에는 고인의 지인들이 많다고 했습니다. 친구가 무연고 사망자가 된 것을 안 지인들이 언제 장례식이 열리는지 알기 위해, 인터넷에 친구의 이름과 '부고'라는 단어를 함께 검색해 찾아온다는 것입니다. 행방불명된 가족이 혹시나 무연고 사망한 건 아닌지 부고 목록을 뒤지고, 나눔과나눔에 문의하는 분도 있다고 합니다.

인터넷 언론사 <비마이너>에 올라오는 무연고 사망자 부고. <비마이너> 홈페이지 갈무리
인터넷 언론사 <비마이너>에 올라오는 무연고 사망자 부고. <비마이너> 홈페이지 갈무리
죽은 이와 남겨진 이를 위한
장례의 의미

- 혹시 기억에 남는 장례가 있나요?

"지금도 머릿속에 생생하게 남은 몇몇 장면들이 있어요. 저희가 장례를 치르기 전, 고인을 관한 기록을 보면서 삶의 궤적을 따라가 보거든요. 그래야 조금이나마 더 진심으로 모실 수 있을 것 같아서요.

고인은 40대 중·후반의 여성이었습니다. 화재로 돌아가셨고요. 저희가 원래 입관에는 참여하지 않는데, 그분의 경우에는 기관에서 도와 달라고 하셔서 따라갔습니다. 시신 상태가 깨끗했어요. 질식사였던 것 같더라고요.

자녀가 셋이었습니다. 첫째와 둘째가 고등학생, 막내는 5살. 세 명의 자녀들 성씨가 모두 달랐어요. 자세한 이유는 모르지만, 편안한 삶은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아이들은 장례식에 오지 않았어요. 아마 몰랐을 가능성이 커 보여요. 위임장은 냈더라고요. 주변 어른들이 시켰는지 어떻게 된 건지 알 수 없지만, 아이들이 무척 안타깝게 느껴졌습니다. 어린 나이에 어려운 결정을 했으니까요.

막내는 엄마가 떠난 사실을 제대로 인지하지 못할 나이이죠. 나중에 성장하면서 엄마의 부재를 어떻게 받아들일지, 그리고 세 자녀를 두고 떠나는 고인의 심정은 또 어땠을지, 이런 생각들이 꽤 오랫동안 제 안에 맴돌았어요."

- 아이들이 엄마와 제대로 이별하는 시간을 가졌으면 좋았을 텐데, 어떤 사정인지는 모르지만 그런 결정을 내렸군요.

"서류상으로만 보고 느꼈던 감정이라 실제로는 어떤지 모르겠어요. 아이들이 엄마를 애도하고 정리할 수 있는 시간을 갖도록 장례에 함께했으면 좋았을 텐데 말이죠. 그 아이들이 커서 친구들의 부모님 장례식에도 방문할 텐데, 스스로를 자책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박진옥 이사는 또 다른 여성의 이야기를 들려줬습니다. 이번에는 나이 많은 남성이 혼자 돌아가셨습니다. 그의 부고는 먼 지방에 살고 있는 딸에게 전해졌습니다. 딸은 오랫동안 고민했다고 했습니다. 심한 가정 폭력 때문에 성인이 된 이후로 다시는 보지 않겠다며 관계를 끊은 아버지였기 때문입니다.

딸은 결국 장례식에 참여했습니다. 그리고 아빠의 영정을 보며 지난날의 분노와 상처를 내려놓기로 결심했다고 했습니다. 박진옥 이사는 "오랜 기간 쌓여 온 감정이 한순간에 완전히 씻겨지긴 어렵겠죠. 그래도 딸에게는 아빠와의 갈등을 어느 정도 매듭짓는 시간이었던 것 같아요" 라고 말했습니다.

- 가만히 보면 장례는 돌아가신 분들을 위한 시간인 것 같지만, 동시에 남겨진 사람들을 위한 시간이기도 하네요.

"애도라는 건 상실의 고통을 해소하고 치유하는 과정입니다. 이러한 과정이 없다면 그 트라우마는 우리 삶에 계속 영향을 끼칠 수 있어요.

지난해 3000명이 넘는 무연고 사망자가 발생했다고 했죠. 가족들이 어림잡아 만 명이 넘을 겁니다. 우리 사회가 애도하지 못하는 사람들을 매년 만 명씩 만들어 내고 있는 거예요."

"오늘날의 장례는 고인의 죽음을 수용하며 가족과 지인들에게는 사별의 슬픔과 아픔 그리고 고통을 해소하는 데 도움을 주는 정밀한 기제가 작동하는 의례라고 할 수 있다. 다시 말해 장례는 망자에게는 인간의 존엄성을 지키는 의례이면서, 동시에 가족과 지인에게는 애도와 치유의 기능을 병행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인문사회21> 제10권 2호, '무연고 사망자 장례 실태 및 개선 방안 연구', 박진옥]

죽은 이를 위해
기도조차 할 수 없다는 목사들

박진옥 이사는 어릴 때부터 교회를 출석했습니다. 중학생 때부터 신앙에 진지해지기 시작했고, 그때부터 예수의 삶을 본받아 살아야겠다고 다짐했습니다. 성인이 된 뒤로는 금융권에서 사회생활을 시작했습니다.

- 금융권에서 비영리단체로 직업을 변경한 이유가 있나요?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경험한 이후, 내 삶이 그분을 닮았으면 좋겠다고 소망했어요. 그 방법 중 하나가 저에게는 비영리 활동이었어요. 일반 기업에서 계속 일했더라면 생활은 여유로웠을지 모르겠지만, 오래가지는 못했을 것 같아요. 제가 진짜로 하고 싶은 건 그게 아니었으니까요."

- 나눔과나눔에서는 거의 최저임금을 받으며 일하신다고 들었어요.

"저를 비롯해 팀장님 세 분이 근무하는데 최저임금을 겨우 맞춰 드리고 있어요. 어느 후원자께서 고액을 내놓으신 덕분에 올해 1명을 더 채용할 수 있었고요. 저는 이런 삶이 너무 감사해요. 풍요롭지 않은 건 사실이지만, 솔직히 부족하지도 않거든요.

후원하시는 분들을 생각하면 놀랍고 감사해요. 누가 다른 이의 장례를 위해 기꺼이 돈을 내놓겠어요. 그분들이 저희를 믿고 지지해 준 덕분에 이 활동을 유지할 수 있는 것 같아요."

- 무연고 사망자 장례식을 위해 지역 목사님들께 섭외를 부탁드렸을 때, 부정적인 대답을 들었다고 들었어요. 목사님들이 참여를 거부하셨신 이유가 있다면서요?

"크게 두 가지였어요. 하나는 돌아가신 고인의 종교를 이분들이 모르잖아요. 만약 고인이 예수님을 믿었다면 크게 상관은 없지만, 믿지 않았다면 자신은 특별히 할 수 있는 게 없다고 하시더라고요. 고인의 가족이 온다면 그들을 위해서 기도할 수 있지만, 안 오는 경우가 많으니까요.

또 다른 이유는 전통 장례 방식의 상차림에 대한 거부감이었어요. 공영 장례는 전통 장례 방식을 따르거든요. 상차림은 먼 길을 떠나는 고인을 위해 마지막으로 식사를 대접하는 의미를 지니고 있어요. 하지만 목사님들은 우상숭배라며 이를 용납하지 않았어요."

전통 장례에서 상차림은 고인을 위한 마지막 식사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뉴스앤조이 박요셉
전통 장례에서 상차림은 고인을 위한 마지막 식사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뉴스앤조이 박요셉

- 같은 기독교인으로서 서운하셨겠습니다. 공영 장례의 의미를 생각한다면 그렇게 부정적으로 보기 어려울 것 같은데요.

"목사님들의 반응이 그럴 줄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어요. 제가 기독교인이라서 교회가 익숙하잖아요. 그래서 장례식장 주변 교회에 먼저 도움을 요청했던 건데, 그 과정에서 상처를 많이 받았어요.(웃음)"

지금은 다행히 공영 장례 개념이 사회에 알려지면서 고양 지역 목사들이 개신교 예식을 돕고 있습니다. 해마다 늘어나는 장례 횟수에 비해, 자원봉사에 참여하는 목사들의 수는 아직 적은 편이지만요. 혹시나 봉사를 희망하는 목회자는 나눔과나눔에 문의하면 됩니다.

- 교회에 특별히 당부하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요.

"어떤 목사님은 제게 이런 말씀을 하시더라고요. 점심을 먹고 한 시간 동안 동네를 다녔는데 가난하고 어려운 사람을 보지 못했다는 거예요. 특별히 대꾸하지 않았는데, 속으로는 조금 안타까웠습니다.

요즘은 옛날처럼 사람들이 길거리에서 헐벗고 굶주리고 있는 게 아니잖아요. 겉으로는 다들 비슷하게 삽니다. 하지만 한 걸음 더 들어가면 다르죠.

가끔 뉴스에 고독사로 돌아가신 분들 이야기가 나오잖아요. 지역에서 교회 역할이 너무 중요합니다. 주변에 혼자 사시는 어르신들 정기적으로 찾아 뵙고 식사 대접하고 가끔 안부 묻는 것만으로도 정말 충분하거든요. 교회가 정말 잘할 수 있고, 또 해야 하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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