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앤조이-박요셉 간사] 복도가 소란스럽습니다. 초등학생 3~4학년으로 보이는 아이들이 거친 발걸음으로 상가 계단을 오릅니다. 입구에는 자전거들이 어지럽게 놓여 있습니다. 벽에 '일렬로 잘 정돈해 세워 주세요'라는 안내 문구와 예시 사진까지 붙어 있건만, 이를 아는지 모르는지 아이들은 앞다퉈 상가에 들어가기 바쁩니다. 주일예배를 앞둔 세상의벗교회(이민우 목사)의 풍경입니다.

세상의벗교회는 기독교대한성결교회 소속입니다. 8년 전, 이민우 목사가 신학대학원을 졸업하고 가정에서 예배를 드리며 시작했습니다. 지금은 서울 강서구에 있는 한 상가를 빌려 예배당 겸 학원 공간으로 쓰고 있습니다.

학원은 이민우 목사가 4년 전 시작한 초·중등 논술 학원을 말합니다. 이 목사는 평일에 원장 선생님, 주일에는 목사 '버디'(세상의벗교회에서는 교역자를 포함한 성인 교인들을 '버디'라고 부릅니다. 우리말 '벗'에서 따온 말이라고 합니다)라는 두 가지 캐릭터를 지니고 있습니다. 교회 공간 역시 평일에는 학원, 주일에는 예배당으로 바뀝니다.

이외에도 세상의벗교회에는 기성 교회와 다른 면이 하나 있는데요. 교회 구성원 중 대다수가 '아이들'이라는 점입니다. 정확히는 초등학생 4학년부터 중학교 2학년 사이 학생들인데, 교인 40여 명 중 30명이 아이들이라고 합니다.

한국교회가 노령화하고 다음 세대가 사라지고 있다는 지적이 십수 년 전부터 제기돼 온 가운데, 아이들이 바글거리는 세상의벗교회 모습은 좀처럼 보기 힘든 풍경입니다. 아이들이 교회에 오는 특별한 이유라도 있는 걸까요. 9월 25일, 세상의벗교회 유년부(초4 이하) 예배와 초·중등부 예배(초5~중3)에 참석해 봤습니다.

세상의벗교회 이민우 목사. 뉴스앤조이 박요셉
세상의벗교회 이민우 목사. 뉴스앤조이 박요셉
교회와 예수님이 낯선 아이들 
예배 참석 이유는 '선생님이 좋아서'

유년부 예배 시작 전, 박진아 전도사가 노트북과 TV를 연결하고 찬양을 준비합니다. 아이들은 박 전도사를 바라보며 의자에 앉는데요. 한시라도 가만히 있지 못할 시기에 아이들이 웬일로 얌전히 자리에 앉아 있나 생각하는데, 역시나 한 친구가 입을 엽니다.

"전도사님~ 예배 언제 끝나요?"

이를 계기로 속사포처럼 쏟아지는 아이들의 질문과 요구.

"교회는 방학 안 해요?"
"오늘 점심 뭐 먹어요?"
"마술 보여 주세요."

하지만 박 전도사는 익숙하다는 듯이 노련하게 웃음으로 대응합니다.

"그러게, 애들아~ 자, 예배 시작합니다. 모두 일어나세요."

아이들은 언제 그랬냐는 듯 음악 소리에 맞춰 노래합니다. 손을 높이 들고 이쪽저쪽 흔들면서요. 예배는 지루해도 노래와 춤은 역시 아이들을 일으켜 세우는 '만능 치트키'인 것 같습니다.

율동하는 유년부 학생들. 뉴스앤조이 박요셉 
율동하는 유년부 학생들. 뉴스앤조이 박요셉 

초·중등부 예배가 열리는 옆 강의실로 이동합니다. 나이 차이가 있어서인지 유년부와 달리 분위기가 사뭇 무거운데요. 학생들 체구도 유년부 친구들보다 훨씬 큽니다.

다음 세대 사역 전반을 맡고 있는 조재환 전도사가 설교를 전합니다. 조 전도사는 설교 도중 간간이 아이들에게 질문을 던지기도 하는데요. 처음에는 잘 대답하던 아이들이 점점 머리 큰 티를 냅니다.

"전도사님, 그만 좀 물어보세요. 머리 터질 거 같아요."

어떤 아이는 눈썹을 찡그리며 조 전도사를 향해 레이저를 쏩니다. 조 전도사는 어색하게 웃은 뒤 다시 설교합니다.

이날 설교 제목은 '넌 아무것도 아니야(nobody)에서 아니 나는 소중한 사람이야(somebody)'였습니다. 조 전도사는 학생들에게 학교나 외부에서 듣게 되는 부정적인 평가나 무시에 자신감을 잃지 말라고 이야기했습니다.

"너희들이 언젠가 밖에서 사람들에게 평가받고 그것 때문에 힘들어할 때가 찾아올지 몰라. '너희는 아무것도 아니야'라는 말을 들으며 무시와 조롱을 겪을지도 모르고. 그럴 때마다 거기에 휘둘리고 허우적거리지 않았으면 좋겠어. 오히려 당당하게 '아냐, 난 소중한 사람이야. 함부로 대하지 마'라고 대응해. 그렇게 말하는 이들이 민망해할 정도로 말야.

선생님은 옛날에 그걸 몰랐어. 처음에는 다 내 책임이고, 내가 부족하고 못나서 이런 말을 듣는다고 생각했지. 그런데 아니였어. 성경을 읽으면 읽을수록, 예수님이 우리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으면 들을수록, 우리는 쓸모없는 존재가 아니라는 걸 알게 됐어. 소중하고 사랑스럽고 가치 있는 존재였지. 우리들 모두가 이런 사실을 앞으로 배워 갔으면 좋겠어."

이민우 목사와 조재환 전도사가 앞에서 율동을 하지만, 역시 초·중등부 아이들은 아무도 따라하지 않습니다. 뉴스앤조이 박요셉
이민우 목사와 조재환 전도사가 앞에서 율동을 하지만, 역시 초·중등부 아이들은 아무도 따라하지 않습니다. 뉴스앤조이 박요셉

아이들은 마음을 감추는 법을 몰랐습니다. 꾸미거나 가꾸지 않은, 있는 모습 그대로 교역자와 어른 '버디'들을 스스럼없이 대했습니다. 예배 중에도 말이죠. 어릴 때부터 예배 시간은 조용하고 엄숙해야 한다고 배워 온 제게는 생경한 모습이었습니다.

이민우 목사는 대다수 학생이 교회를 처음 경험하는 친구들이라고 했습니다. 이들에게 예배나 설교는 낯선 시간이었죠. 기독교 문화도 생소하고요. 그렇기에 선입관도 없었습니다. 따분하고 지루한 예배라는 이미지도 없고요.

이민우 / "어릴 때부터 교회에 쭉 다녔던 친구는 교회를 따분한 곳이라고 생각하고, 설교를 훈화 말씀 듣는 것으로 기억해서 아예 마음을 닫는 경우가 있어요. 사실 저를 포함해 우리 교회 버디들도 기성 교회에서 그런 어린 시절을 보냈죠.
 

그런데 이 아이들은 대부분 교회를 경험해 보지 않는 친구들이에요. 예수님을 잘 알지도 못하고요. 그런 친구들에게 이 교회가 정말 재밌고, 행복이 가득하고, 좋은 친구들과 함께 꿈을 키우는 곳이라는 사실을 심어 주고 싶어서, 어떻게 예배를 드릴지 고민을 많이 해요." 

조재환 / "설교를 최대한 아이들 눈높이에 맞추려고 해요. 요즘 세대는 30초, 1분짜리 짧은 영상에 익숙하잖아요. 이 친구들은 그나마 오랫동안 논술 수업을 들어서 그런지 앉아 있는 데 익숙하긴 하지만, 그래도 일방적으로 이야기한다고 그대로 전달되는 건 아니더라고요. 설교 중간에 아이들에게 필요한 내용, 관심 있는 요소를 넣으려고 노력해요."

처음에는 목사라고 하지 않았어요

이민우 목사가 4년 전 학원을 시작할 때부터 지금 같은 상황을 예상하거나 기대한 건 아니었습니다. 처음에는 학생들에게 목사라는 사실도 알리지 않았죠. 이 목사는 "아이들을 교회에 빨리 인도하고 싶지 않았어요. 그러면 너무 성급한 답을 줄 수 있다고 생각했거든요. 아이들에게 삶이나 종교에 대해 충분히 깊게 고민하는 시간을 만들어 주고 싶었어요"라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이민우 목사가 놓친 게 하나 있었습니다. 요즘 아이들의 정보력이었죠. 아이들은 유튜브와 인터넷 기사를 통해 원장 선생님이 목사라는 사실을 이미 알고 있었습니다. 학부모들도 마찬가지고요.

"원래는 제가 목사라는 사실을 말할 마음이 없었어요. 그런데 학원을 시작하고 2년 정도 지났을 때, 어느 날 아이들이 제가 나온 유튜브 영상을 봤다며 목사님이냐고 물어보더라고요. 그러면서 학부모님들도 알게 됐어요.
 

학부모님들 가운데 교회를 잠깐 쉬고 계신 분이 있었어요. 어느 날 그분이 자녀를 교회에 보내고 싶은데 보낼 만한 곳이 없다면서, 제가 출석하는 교회가 있다면 그곳에 보내고 싶다고 하시더라고요. 저희가 사실 학원에서 예배를 드리고 있다고 하니까 그러면 이곳에라도 보내겠다고 하시는 거예요."

이 목사는 그때부터 아이들이 한두 명씩 교회에 오기 시작했다고 했습니다. 학부모 중에는 신앙을 갖고 있지만 안 좋은 일을 겪거나 바쁘고 무신경해져서 교회를 떠난 이들이 여러 있었습니다. 이들은 더 이상 교회를 출석하지 않았지만 자녀들은 신앙을 갖길 바랐습니다. 이 목사가 평소 성심성의껏 수업을 진행하는 모습에 믿고 아이를 맡긴 것이었습니다.

"초기에는 전부 수업으로 맺게 된 관계를 통해서 아이들이 들어왔어요. 아이들이 직접 오고 싶다고 하거나 부모님이 보내시거나요. 지금은 점점 아이들이 자기 친구들을 데리고 오는 단계로 넘어가고 있는 것 같아요."

논술 학원답게 두꺼운 책이 많았습니다. 뉴스앤조이 박요셉
논술 학원답게 두꺼운 책이 많았습니다. 뉴스앤조이 박요셉

세상의벗교회는 올해 여름 전 교인 수련회를 갔습니다. 코로나19 이후로 처음입니다. 사실 타이틀을 전 교인 수련회로 내세웠지만, 초점은 아이들에게 맞췄습니다. 어른 버디들은 모두 수련회 스태프로 섬겼고요.

신앙이 없는 아이들, 복음을 모르는 친구들이 교회에 찾아오는 건 반갑고 신나는 일입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이들을 위한 세심한 노력이 요구되는 일이기도 합니다. 교회 안에서만 통용되던 익숙한 기독교 언어를 아이들 눈높이에 맞는 말로 번역하는 작업이 필요하니까요.

조재환 / "우리가 평소 교회에서 사용하는 단어나 표현이 이 친구들에게는 익숙하지 않잖아요. 이러한 말들을 초·중등 수준으로 바꿔 줘야 해요. 수련회를 준비할 때도 이런 점을 고려하느라 쉽지 않았어요.

 

보통 청소년 수련회를 진행하면 '복음', '십자가' 등을 핵심 주제로 내세우잖아요. 이 친구들은 복음도 십자가도 잘 모르고 예수님도 누군지 모르니까, 저희는 우선 정체성을 심어 주는 데 주력했어요. 기독교가 어떤 종교이고, 교회는 무엇인지 각종 게임과 레크리에이션으로 소개해 줬어요."

세상의벗교회 버디들이 수련회에서 기독교를 어떻게 전할지 이렇게 열심히 고민하고 준비했다는 사실을 아이들이 얼마나 아는지 모르겠습니다. 어쩌면 잘 모르는 게 당연할 수도 있겠죠. 코로나19 때문에 수학여행을 못 간 터라, 아이들은 교회 수련회를 마냥 노는 시간으로만 이해했다고 하니까요. 잔소리하는 부모님도 안 계시고, 또래 친구들과 바비큐를 먹으며 밤새 놀 수 있으니 그도 그랬겠죠.

이 아이들이 언젠가 복음을 받아들이고 세례를 받게 되는 순간을 세상의벗교회 버디들은 기대하며 기다리고 있습니다.

조재환 전도사(사진 오른쪽 세 번째)와 중등부 학생들. 집에 가는 걸 겨우 붙잡고 찍었습니다. 뉴스앤조이 박요셉
조재환 전도사(사진 오른쪽 세 번째)와 중등부 학생들. 집에 가는 걸 겨우 붙잡고 찍었습니다. 뉴스앤조이 박요셉
6개월 동안 원생 0명
푸드 트럭, 카페 접고 마지막 도전

세상의벗교회 또 다른 특징은 모든 교역자가 자비량 목회를 지향한다는 점입니다. 이민우 목사를 포함해 교역자 5명이 논술 학원 교사로 근무하고 있는데요. 지금 논술 학원에 다니고 있는 초·중등 학생이 약 300명이라고 합니다.

개원 초기 6개월 동안 원생이 아무도 없던 때도 있었습니다. 이 목사는 어쩌다 수강생이 찾아오면 "사역하는 마음으로" 아이들을 대했다고 했습니다. 어차피 남는 건 시간밖에 없었으니, 아이들을 도서관이나 박물관 같은 곳에 데려가고 밥을 사 주며 공부를 가르쳤다고 합니다.

"아이들과 거의 일대일 수업을 진행하면서 성심성의껏 가르쳤어요. 나중에는 속 깊은 이야기도 나누게 됐고요. 그러다 보니 아이들이 저와 만나는 시간을 재미있어 하고 좋아해 주더라고요. 부모님들도 상업적으로 운영하지 않고 진심을 다해 교육한다며 만족스러워 하셨고요.
 

오면서 보셨겠지만 저희 학원은 간판도 없어요. A4 용지로 이름만 붙여 놓은 정도죠. 지역 신문이나 인터넷에 광고도 안 했어요. 다들 입소문으로 듣고 찾아와요."

자비량은 이민우 목사가 신학대학원을 다닐 때부터 실천한 목회 방식입니다. 학원을 열기 전에는 푸드 트럭, 카페, 작은 사업을 운영했습니다.

차라리 기성 교회에 들어가 목회하면 몸이라도 편할 텐데, 지금까지 자비량을 고수한 이유가 무엇인지 물었습니다.

"현장, 현장 그 자체가 목회지가 되잖아요. 이건 포기할 수 없는 자비량의 강점인 것 같아요. 현장에서 만나는 사람들을 섬기고 교회로 인도할 수 있고, 그곳에 교회를 세울 수도 있어요. 저는 지금도 수업마다 강단에 서는 마음으로 들어가요."

물론 몇 번의 실패와 부침을 겪으면서 생각이 달라진 면도 있습니다.

"이전에는 자비량 목회를 하는 게 중요하지, 어떤 업을 하든 상관없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초반에 푸드 트럭과 카페를 했던 시기를 돌아보면, 그때 목회는 실패했던 것 같아요. 바쁘고 힘들다는 핑계로 설교 준비나 목양을 제대로 하지 못했거든요. 지금은 후배들이 찾아와서 조언을 구하면, '가르치는 일'을 하라고 조언해요."

세상의 벗이 되기까지

이민우 목사는 올해 7월 강서교육복지센터와 업무 협약식을 맺었습니다. 취약 계층 청소년들이 논술 학원에서 무상으로 교육받을 수 있다는 내용입니다. 최근 몇몇 친구들이 수업을 듣기 시작했다고 하는데요. 아이들끼리는 서로 누가 누군지 모른다고 합니다.

세상의벗교회가 꿈꾸는 미래 중 하나는 학생들과의 동역입니다. 지금은 어리고 미숙한 아이들이지만, 나중에 이들이 성인이 되면 자신들이 받은 사랑과 헌신을 지역 후배들에게 나눠 주는 모습을 꿈꾸고 있습니다.

"학생들에게는 아직 공유하지 않았지만, 5년 계획을 다 세워 놓았죠.(웃음) 저희가 했던 것처럼 학생들이 대학생이 되어 지역 아동들의 멘토 역할을 하면 정말 멋지지 않을까요. 이 아이들을 지원하고 학교도 세우기 위해서는 지금부터 부지런히 일하며 저축하려고 합니다.(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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