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앤조이-김은석 간사] 서울 마포구 성산동의 한 시민단체 건물은 일요일 오후가 되면 예배 공간으로 변신합니다. 예배 시간인 2시보다 10분쯤 빨리 도착했습니다. 1층 입구에서 환영해 주는 교인분에게 주보를 건네받고 2층으로 올라가니 제법 큰 강의실이 나옵니다. 일찌감치 자리에 앉아 기도를 하거나 담소를 나누는 사람들이 듬성듬성 있습니다. 예배 시작을 기다리는 그소망교회(이택환 목사) 교인들입니다.

강의실 정면에는 녹색 강대상보를 내린 설교대와 흰색보를 덮은 성찬대가 있고, 하얀 가운에 녹색 스톨(stole)을 두른 이택환 목사의 모습도 보입니다. 잠시 후 조명이 어두워지고 그레고리오성가 소리가 스피커를 타고 흘러나옵니다.

"오늘은 주후 2022년 10월 9일 성령강림 주일 후 열아홉 번째 주일입니다. '오소서 창조주 성령이여(Veni Creator Spiritus)' 찬양과 함께 삼위일체 하나님의 신비를 묵상하면서 다 같이 예배의 자리로 나아가겠습니다."

공간을 휘감는 그레고리오성가 소리 위에 이택환 목사의 목소리가 덧입히면서 강의실은 완연한 예배 처소로 변신합니다. 조금 늦게 도착한 사람들이 하나둘 자리를 더 채워 공간의 밀도도 높아졌습니다.

그소망교회 이택환 목사. 뉴스앤조이 김은석
그소망교회 이택환 목사. 뉴스앤조이 김은석

그소망교회의 주일예배는 특별하지 않지만 짜임새가 있습니다. '교회력에 따른 성서 정과'에 나오는 성경 본문을 중심으로 예배를 드리기 때문입니다. 구약·서신서·복음서 말씀이 주보를 한가득 채우고 있습니다. 원래는 세 가지 말씀을 다 읽었는데, 코로나19 이후 성경 읽기를 최소화해 그중 한 가지 말씀을 함께 읽고, 설교자는 그 내용을 강론합니다. 예배 초반 함께 읽는 고백의 기도 역시 그날 다루는 본문 내용을 중심으로 죄 고백을 할 수 있게 쓰여 있습니다.

제가 방문한 10월 9일 설교 본문은 '교회력에 따른 성서 정과' 서신서 부분인 디모데후서 2장 8~18절 말씀이었습니다. 이택환 목사는 '은밀하게 그러나 위대하게'라는 제목으로 설교했습니다. 바울이 당시 초대교회에 "부활이 이미 지나갔다"(18절)며 그릇된 부활 사상을 퍼뜨리던 거짓 교사들의 언행을 지적하며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8절)의 '몸의 부활'을 강조하는 본문입니다. 이 목사는 거짓 교사들과 이로울 것 없는 말다툼을 하지 말고 그리스도의 부활을 기억하라고 권면한 바울의 메시지가 이 시대 우리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지 풀이해 줬습니다.

예배를 마친 후에는 조별 모임이 이어집니다. 교인들이 삼삼오오 둘러앉아 진솔하게 삶과 신앙을 나누는 시간입니다. 저는 이 시간에 교인 네 명과 따로 앉아 그소망교회에 대해 이야기 나눴습니다. 세 분은 초창기부터 함께했고, 한 분은 2018년에 합류한 교인이었습니다. 이때 나눈 대화에다 교회 방문 전 이택환 목사와 따로 진행한 인터뷰 내용을 포개니, 그소망교회가 어떤 교회인지 어렴풋하게나마 그릴 수 있게 됐습니다.

소박한 시작

 그소망교회는 올해로 개척 15년 차입니다. 다소 늦은 나이인 40세에 목사 안수를 받은 이택환 목사는 2002년부터 7년간 한국누가회 전임간사로 사역했습니다. 캠퍼스에서 청년들을 만나야 하는 간사 생활을 50대가 돼서도 계속해야 할지 고민하던 차에, 협동목사로 섬기던 교회에서 뜻하지 않게 담임목사로 내정됩니다. 전 담임목사가 갑자기 사망해 청빙위원회가 이 목사를 후임으로 결정한 것입니다.

그런데 교회 당회에서 두 달이 지나도록 이 목사를 새 담임목사로 공표하지 않았습니다. 당회 안에 이 목사를 원하지 않는 당회원들이 있었던 것입니다. 교회에 분란을 일으키고 싶지 않았던 이 목사는 사임을 하고 약 1년간 여러 교회를 떠돌았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한 교회 주일예배에서 이전에 사임한 교회 출신의 몇몇 교우를 만나게 됩니다. 이들은 만남을 이어 가다 자연스럽게 '우리끼리 모여 예배를 하면 어떻겠느냐'는 생각에 이릅니다. 그렇게 2008년 1월 6일 경기 군포시 산본의 한 피아노 학원에서 다섯 가정과 청년 서너 명이 모여 첫 예배를 드렸습니다.

교인들은 대부분 의료인이었습니다. 레지던트나 인턴 과정을 밟고 있던 의사들, 누가회 소속 대학생들, 전문의가 된 지 얼마 지나지 않은 40세 안팎의 의사들과 그들의 가족이었습니다. 일요일 오전에도 일을 해야 하거나, 일요일 오전에는 좀 쉬어야 하는 사람이 많았습니다. 교인들이 예배 공간인 산본까지 오는 데 걸리는 시간도 감안해, 예배 시간을 지금처럼 오후 2시로 정했습니다. 몇 차례 예배 시간을 바꿔 볼까 논의해 봤지만, 현행 유지를 원하는 교인이 많아 지속하고 있습니다.

그소망교회 주일예배 풍경. 뉴스앤조이 김은석
그소망교회 주일예배 풍경. 뉴스앤조이 김은석
당연하지만 쉽게 놓치고 마는
교회의 본질을 지향하다

 교회마다 주보에 표어를 내겁니다. 표어를 보면 그 교회가 지향하는 바가 무엇인지 가늠해 볼 수 있습니다. 그소망교회의 표어도 주보 1면에 크게 쓰여 있습니다.

- 하나의·거룩한·보편적·사도적 교회를 지향하는 교회
- 복음이 순수하게 선포되고 성례전이 바르게 집행되는 교회
- 통전적인 하나님나라 신앙에 집중하는 교회
-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과 다시 오심에 참소망이 있음을 고백하는 교회

어찌 보면 너무 당연해 보이는 내용들인데, 그소망교회는 초창기부터 주보 1면에 이 네 가지를 교회의 지향으로 내세워 왔습니다.

이택환 목사 / "교회들이 매년 인위적으로 새로운 목표나 구호를 만드는 게 이상했어요. 전도의 해, 봉사의 해, 예배의 해가 따로 있어야 하는지도 의문이었고요. 교회는 구호나 목표, 비전 선언문 같은 게 없어서가 아니라 기본과 본질에 충실하지 않아서 문제가 생기는 것이죠.

저희는 개척 초기에 성경 공부도 하고, 다니엘 L. 밀리오리의 <기독교 조직신학 개론>(새물결플러스) 같은 책도 읽으면서 '교회란 무엇인가', '성경이란 무엇인가' 이런 질문을 함께 나누면서 교회관을 세워 나갔어요.

신학교에서 공부한 사람들은 다 알겠지만 교회사에 나타난 교회의 본질은 다음 네 가지입니다. 하나의 교회, 거룩한 교회, 보편적 교회, 사도적 교회. 그리고 종교개혁자들은 교회의 표지가 '복음이 순수하게 선포되고 성례전이 바르게 집행되는 교회'에 있다고 보았죠. 또 저희 교회가 속한 대한예수교장로회 통합의 기본적인 신학은 '통전적인 하나님나라에 집중하는 교회'라고 할 수 있어요.

마지막 내용은 교회 이름과 관련이 있어요. 한국교회에서 전통적으로 믿음·소망·사랑 가운데 사랑을 많이 강조하잖아요? 그런데 데살로니가전서 1장을 보면 소망이 더 강조되더라고요. 한국교회에 지금 필요한 게 뭘까 생각했을 때, 사랑도 중요하지만 소망이 더 필요하다고 생각했어요. 교회가 사회의 소망도 되지 못하고, 교회 스스로 소망하는 것도 그리스도가 아니라 물질이나 성공 같은 게 된 이상한 상황이니까요.

그래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만을 소망하는 교회, 더 풀어서 설명하면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과 다시 오심에 참소망이 있음을 고백하는 교회'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교회 이름을 조금 특이하긴 해도 그소망교회로 정한 거죠."

40세에 늦깎이로 안수를 받은 이택환 목사는2002년부터 한국누가회 전임간사로 일하다가 2008년 1월 그소망교회를 시작했습니다. 뉴스앤조이 김은석
40세에 늦깎이로 안수를 받은 이택환 목사는2002년부터 한국누가회 전임간사로 일하다가 2008년 1월 그소망교회를 시작했습니다. 뉴스앤조이 김은석

앞서 언급했듯이, 그소망교회는 교회력에 따른 성서 정과에 기초해서 설교합니다. 장로교회·감리교회·성공회·루터교회 등 전 세계 수많은 개신교회, 그리고 가톨릭교회에서도 교회력에 따른 성서 정과를 지키고 있습니다. 전 세계의 모든 교회가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라는 사실을 일상 속에서 깨닫고 실천하는 방법으로, 매주 교회력에 따라 설교하는 것보다 더 좋은 게 없다고 이택환 목사는 말합니다. 설교 주제를 선택할 때 담임목사의 사적 관심사가 반영되지 않게 하는 효과도 있다고 합니다.

건물 대신 교육부서에 투자하는 교회

그소망교회는 그동안 예배 장소를 다섯 번이나 옮겼습니다. 3년에 한 번 꼴로 옮긴 셈입니다. 15년쯤 됐으면 교회 공간을 마련했을 법도 한데, 여전히 일요일에 비는 다른 단체의 공간을 저렴하게 빌려 사용하고 있습니다. 재정이 충분하지 않아서이기도 하지만, 교회가 건물을 얻는 데 무리하게 돈을 쓰지 않겠다는 철학이 있기 때문입니다. 교회 개척도 피아노 학원에서 공간을 무료로 사용하게 해 줘서 무일푼으로 했다고 합니다.

이택환 목사 / "보통 수도권 도시에서 상가 교회를 얻어 개척하려면 보증금, 월세, 인테리어 비용, 물품 구입비 등 포함해 1~2억 원은 기본으로 든다고 해요. 3~4억 원으로도 모자란 교회도 있다고 하고요. 이 돈을 마련하려면 목사든 성도든 누군가 거금을 헌금해야 하죠. 그렇게 헌금을 많이 한 사람은 교회의 주인 행세를 하는 경향이 있고요.

그리고 개척 헌금을 많이 한 목사들의 경우 교회가 양적으로 크게 성장하지 못한 채 은퇴하게 될 경우, 퇴직금 명목으로 자신이 낸 개척 헌금의 일부 또는 그 이상을 받아 가려는 풍토가 있습니다. 그 퇴직금을 마련할 사람은 성도들보다 후임 목사가 될 가능성이 높고요.

이런 부작용을 피하려면 애초에 무일푼으로 개척하는 게 상책이죠. 그소망교회는 처음부터 교회는 건물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고백하는 사람들의 모임'이라는 것을 확실히 했어요. 개척 헌금 낸 사람이 아무도 없어요."

조석현 집사 / "개인적으로 교회 건물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요. 저희가 1년에 한 번씩 다른 교회를 방문하는데, 공간에 담긴 신앙적 상징들이 참 좋더라고요. 하지만 저희는 형편이 안 되니까 무리하지 않는 거죠. 그게 합리적인 거고요."

그소망교회는 성인 30여 명, 어린이와 청소년 15명가량이 모이는 작은 교회입니다. 그런데 교역자는 세 명이나 됩니다. 이택환 목사 외에 어린이부와 청소년부를 담당하는 사역자가 각각 1명씩 더 있습니다. 다른 교회의 한 달 치 공간 임대료쯤에 해당하는 재정을 파트타임 사역자를 청빙해 교육부서를 살리는 데 투자하는 것입니다. 어떻게 이런 파격적인 투자를 강행할 수 있었던 걸까요? 개척 초기에는 당시 대학생이었던 박정은 집사가 아이들 돌보는 일을 전담했다고 합니다.

박정은 집사 / "처음에는 교회에서 가장 큰 아이가 초등학교 저학년이었으니까, 그냥 놀아 주거나, 미술 재료 같은 거 가져와서 활동하는 정도였죠. 그런데 아이들이 점차 커 가다 보니 저도 감당하기 힘들어지더라고요. 마침 취업도 하고 졸업도 해야 해서 자연스럽게 아이들을 더 돌볼 수 없게 됐죠."

조석현 집사 / "저희 첫째는 처음에는 교회를 같이 다니다가 중학생이 되고 나서는 청소년부가 있는 다른 교회로 옮겼어요. 그때까지는 교육부서를 따로 운영하지 않고 교인들끼리 돌아가면서 아이들을 돌봤는데, 아이들이 자랄수록 신앙 교육의 필요성이 느껴지더라고요.

교회가 어떤 곳인지도 잘 모르고, 집사님들이 돌아가면서 뭘 해 보려고 해도 일관된 교육 방향이 있는 게 아니니까 아이들이 적응하기 힘들어하더라고요. 교인들이 약간 위기의식을 느꼈어요."

박정은 집사 / "제 기억으론 그럴 때마다 목사님이 의견을 모아 보자며 모두를 집합시켰어요. 저희 교회 규모가 작으니까 다 같이 모여서 이야기를 할 수 있거든요."

조석현 집사 / "만약 아이들이 교회에서 신앙 교육을 받을 수 없다면 계속 다녀야 할지 고민해 보겠다는 이야기도 나왔죠. 그래서 당시 교회에 여력이 좀 없더라도 교육전도사를 한번 모셔 보기로 결정했어요. 저희가 사례비도 넉넉치 않고 교회도 작아서 올 사람이 있을까 반신반의했는데, 너무 좋은 분이 오시더라고요.

저희 교회에 아이들이 몇 명 안 되니까 담당 교역자와 아이들 사이에 인격적인 교제가 가능해지는 것 같아 무척 감사하죠. 얼마 전에는 저희 넷째가 오더니, 제가 묻지도 않았는데 저한테 교회 설교 시간에 들은 이야기를 먼저 해 주는 거예요. 그것도 대부분 교회에서 좋은 점만 이야기하는 다윗이 전쟁 중에 분노에 사로잡혀 장애인을 차별하는 듯한 발언을 한 것에 문제를 제기하는 이야기였죠."

김사라 집사 / "저희 딸은 일곱 살인데, 사회성이 좀 떨어져서 처음에는 어린이부에 안 가려고 했어요. 그래서 한동안 제가 예배를 제대로 못 드리겠더라고요. 그러다 코로나19 터지고 온라인으로만 예배하다가 거리 두기가 해제되고 교회에 왔는데, 어린이부에 또래 아이들이 확 늘어난 거예요. 저희 아이도 그 사이에 많이 자랐고요.

올해 부활절에 처음으로 아이를 어린이부에 보내고 혼자 예배를 드릴 수 있게 됐는데, 정말 만세를 부르면서 조별 모임에도 참여하고 그랬던 것 같아요. 지금은 아이가 어린이부에서 율동도 따라하고, 집에서 식사 시간에 스스로 기도도 해요. 아이 키우면서 제 신앙 지키기도 어려운데, 아이들 눈높이에 맞춰서 신앙에 젖어 들게 한다는 게 정말 어려운 일인 것 같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이렇게 작은 교회에서 저도 예배에 참여할 수 있고 아이도 이렇게 신앙의 여정을 시작할 수 있다는 게 너무 감사하더라고요."

저도 아이들 포함해 스무 명 남짓 모이는 교회에서 교역자 없이 아이들을 돌보며 비슷한 고민을 하고 있던 중이라, 그소망교회 교인들의 이야기 하나하나에 귀가 쫑긋했습니다. 아이들을 위한 담당 교역자가 있는 게 조금 부러웠습니다. 그렇다고 그소망교회가 아이들을 위한 교육에만 투자하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기존에 해 오던 어른들을 위한 신앙 교육 시간을 2014년에 '엘피스포럼'으로 발전시켰습니다. 엘피스포럼은 그소망교회 교인들은 물론, 외부 전문가들을 강사로 초청해 일상 속에서 하나님나라를 살아가는 그리스도인이 직면하는 문제들을 함께 고민하고 토론하는 시간입니다. 외부인에게도 열려 있는 공개 행사로 1년에 적게는 3회, 많게는 9회까지 열었습니다.

(사진 왼쪽부터) 그소망교회 조석현 집사, 김명선 집사, 박정은 집사. 뉴스앤조이 김은석
(사진 왼쪽부터) 그소망교회 조석현 집사, 김명선 집사, 박정은 집사. 뉴스앤조이 김은석
투명하게 운영되는 교회가
헌금 유용 사고를 처리하는 방법

그소망교회는 아직 당회가 없는 미조직 교회입니다. 하지만 매우 투명하게 운영됩니다. 교회의 중요한 결정은 담임목사를 비롯한 교역자들과 남녀 집사 대표, 청년 대표, 회계, 서기로 구성된 운영위원회가 매월 한 번씩 모여서 합니다. 운영위원회는 회의록과 교회 헌금 입출금 내역을 매월 전 교인에게 보고합니다.

교회 운영이 투명하게 이루어진다는 것을 보여 주는 사건이 2018년에 있었습니다. 회계 담당자가 헌금을 유용한 것입니다.

사건의 전말은 이렇습니다. 어느 날 이택환 목사는 교육전도사로부터 사례비 지급이 안 되고 있다는 이야기를 듣습니다. 회계 담당자에게 전화했더니, 깜빡했다며 곧 입금하겠다고 답하길래 그러려니 했습니다. 그런데 같은 일이 반복돼 은행에 가서 통장을 확인했습니다. 잔고를 보니 회계 담당자가 교회에 문서로 보고한 내역과 달랐습니다. 금액이 턱없이 모자랐습니다. 이택환 목사는 이 사실을 운영위원회에 알리고 다음 주일 전 교인에게도 공개했습니다. 그리고 이 목사를 비롯한 모든 운영위원이 교인들 앞에서 사과했습니다. 이택환 목사는 이 사고 처리 과정을 그소망교회를 목회하면서 가장 힘들고도 기뻤던 시간으로 꼽았습니다.

이택환 목사 / "담임목사로서 저도 잘못한 부분이 있다고 생각해 6개월 감봉을 자처했습니다. 회개 담당자가 왜, 어떻게 헌금을 유용했는지 조사하고, 운영위원회 중심으로 이 일을 처리해 나가는 전 과정을 교인들에게 계속 공개했어요. 그 와중에 교회에 새로 나오신 분들도 있었는데 그분들에게도 이 문제가 다 공유됐지요. 그분들이 시험에 들면 어쩌나 걱정을 했는데 오히려 사고 처리 과정을 공개하고 목사도 책임지는 모습을 보여 준 것에 감사해하는 분이 많더라고요."

당시 이 사건은 청년부는 물론 청소년부에도 공개됐고, 전 교인이 이 사건을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조별로 토론했다고 합니다. 당시 운영위원이었던 조석현 집사는 청소년부에서 나온 의견에 충격을 받았다고 합니다.

조석현 집사 / "처음에 운영위원들은 경찰에 신고해서 형사 처리를 하는 쪽으로 방향을 잡고 있었어요. 그런데 청소년부 아이들이 '용서해 줘야 하지 않느냐'는 의견을 낸 거예요. 장발장 같은 사람이 교회 돈 몇백만 원 가져간 거라고 생각하고 봐주면 안 되냐는 거죠. 너무 충격적이었어요. '아, 이 사건은 급하게 처리하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박정은 집사 / "모든 걸 다 투명하게 공개하고 교인들이 의사 결정에 참여할 수 있어서 그나마 상처가 최소화된 것 같아요. 그 과정에서 교회를 떠난 분들도 좀 있었지만, 만약 그렇게 안 했으면 더 많은 사람이 떠났을 것 같아요."

김명선 집사 / "그때 저희 부부는 그소망교회에 새로 왔거든요. 제가 전에 다니던 교회에서는 주중에 일을 너무 많이 해서 주일이 되면 교회에 가기 싫어질 정도로 진이 다 빠져 있었어요. 그래서 대형 교회가 아니라 하나님나라 가치를 추구하는 작은 교회, 주중에 아무런 부담도 주지 않는 교회를 찾다가 그소망교회에 오게 된 거예요. 그래서인지 저희는 그런 사건이 처리되는 중에도 이 교회에서 예배하며 쉼과 치유를 누렸고 이렇게 정착한 거죠. 사실 그때 사고 처리 과정에 대한 이야기는 귀에 잘 들어오지 않았던 것 같아요. 나중에 들어 보니까 그소망교회 교인들은 그렇게 힘든 시기에 저희가 정착한 게 큰 위로가 됐다고 하더라고요. 은혜인 것 같아요."

시간이 좀 걸렸지만 다행히 유용된 헌금은 회계 담당자 분의 아내가 대신 갚았고, 회계 담당자는 출교 조치를 하는 것으로 사건이 마무리됐습니다.

그러나 이 일을 처리하는 과정에서 지치거나 마음이 상한 교인들이 나오기도 했습니다. 그소망교회는 전문가를 불러 작은 공동체에서 이런 문제가 발생했을 때 어떻게 처리하면 좋을지 특강을 듣고, 치유를 위한 실습을 통해 서로 더 깊이 알아 가는 시간을 보냈습니다.

이택환 목사는 이 사고 처리 과정을 목회 기간 중 가장 힘들고도 기뻤던 시간으로 회고했습니다. 뉴스앤조이 김은석
이택환 목사는 이 사고 처리 과정을 목회 기간 중 가장 힘들고도 기뻤던 시간으로 회고했습니다. 뉴스앤조이 김은석
공동체 유대감 강화라는 숙제

건물 없는 교회가 지니는 최대 약점은 주일 외에는 모이기가 힘들다는 것입니다. 예배 장소를 주일에만 쓸 수 있으니 주중에는 교인들이 다 같이 모일 장소를 찾기 어렵습니다. 이택환 목사는 '모이는 교회'로는 주일예배에 집중하고 주중에는 '흩어지는 교회'로 존재하는 것이 그소망교회에게 최선의 생존 전략이었다고 말합니다.

그래서 담임목사가 흩어지는 교회인 교인들의 일터 또는 삶터에 연 1회 이상 찾아가 만나기도 합니다. 공동체 결속을 다지는 활동으로 봄가을에 야외 나들이와 여름철 전 교인 수련회, 겨울철 전 교인 MT를 진행합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교인들 사이의 유대감을 끈끈하게 형성하기가 힘든 것 같기도 합니다.

김명선 집사 / "저희 교회가 코로나19 전에는 1년에 방문하는 사람들이 40~50명쯤 됐다고 하더라고요. 매년 15%정도 등록은 하지만 길게 볼 때 정착하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은 것 같아요. 저희 부부는 좀 특이한 케이스죠. 저희 교회를 오래 다니신 분들이 주로 의료인에 누가회 출신들이시다 보니 사실 저 같은 전업주부나 평범한 사람들에게는 의도치 않게 진입 장벽이 있더라고요.

물론 아무도 직업을 내세우거나 잘난 척하는 분들이 없지만, 처음 온 사람들이 관계 속으로 쉽게 스며들기는 어려운 것 같아요. 우리가 가진 공간적 어려움도 있고 많은 분이 직업 특성상 주중에 시간을 내기 힘든 부분도 있긴 한데, 그런 면에서 교회 공동체가 주중에 뭔가 함께하는 게 전혀 없다는 것은 교회를 새로 찾아온 사람이 정착하는 데 있어 좀 아쉬운 부분인 것 같아요."

박정은 집사 / "저희가 주중에 모여 보려고 시도를 안 한 건 아니에요. 그런데 현실적으로 주중에 모일 수 있는 공간 하나 빌리는 것도 되게 힘든 일이더라고요. 그리고 공간을 빌리더라도 대부분 멀리서 오시니까 많이 참석하지 못해서 지속하기 어려웠던 것 같아요.

저도 조별 모임에서 집사님들과 허심탄회하게 대화를 나누기는 하지만, 우리 교회 교인들이 내 신앙의 동반자 같다는 느낌까지는 들지 않거든요.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주체적으로 혼자 고민을 많이 해 볼 수 있었던 것 같기도 하고요. 앞으로 교인들 사이의 유대감을 더 깊게 만들기 위해 뭘 해 볼 수 있을지 계속 고민해야 할 것 같아요."

"어느 교회를 가도
실망하지 않기 힘든 시대에
존재 자체로 큰 의미가 된 곳"

15년 전 이택환 목사는 경제적으로 안정되고, 노후가 보장되는 중형 교회 담임목사가 되는 길에서 벗어나 20~30대 청년들과 교회를 개척했습니다. 그리고 주류 한국교회와는 조금 다른 목소리를 내며 소신 있는 목회의 길을 걸어왔습니다.

이택환 목사는 그소망교회에서 목회한 시간을 돌아보며, 전통을 지나치게 답습하는 교회 조직과 비신학적·비성경적·비상식적 상황이 만들어 내는 스트레스를 받지 않을 수 있어 감사하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15년이 흐른 지금, 코로나19 이후 20~30대 청년들이 교회로 돌아오지 않는 현실 속에서 60대에 접어든 자신은 더 이상 청년들과 함께하기 어렵다는 생각에 무력감을 느끼기도 합니다.

청년들이 교회를 떠나고 있는 거대한 흐름을 손쉽게 거스를 방법은 없겠지요. 그럼에도 교회가 당연히 추구해야 하지만, 쉽게 놓치고 마는 본질에 소망을 두고 뚜벅뚜벅 비범한 발걸음을 내디뎌 온 그소망교회의 지난 시간은 가치 있어 보입니다. 교인분들과 나눈 대화 중에 개척 당시 대학생이었던 김사라 집사의 이야기가 기억에 남습니다.

김사라 집사 / "저에게는 그소망교회의 존재 자체가 큰 의미였던 것 같아요. 요즘 어느 교회를 가더라도 실망하지 않기가 어렵잖아요. 한국교회 자체에 부정적인 이슈도 많고, 문제 없는 교회를 찾기가 힘들어요. 교인들이 방황하고 표류하게 돼 있죠. 그런데 방황하지 않고 내 삶의 방향성을 잡아 주는 말씀이 그소망교회에 있었어요.

목사님이 권위적이지 않고, 교인들 이야기를 경청하시고, 쉽게 정답을 내리지도 않으세요. 조별 모임에서는 어디서도 듣지 못할 소중한 나눔이 오가고요.

저는 15년 동안 그소망교회가 제 신앙의 기본기를 탄탄하게 만들어 줬다고 생각해요. 어디 가서 사람들에게 내가 신앙인이라고 자랑스럽게 말할 수 있는 바탕에 그소망교회가 있어요."

이 기사는 <뉴스앤조이> 월간 뉴스레터 '처치독M'에 발행된 기사입니다. - 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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