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앤조이- 박요셉 간사] 서울 한강 북서쪽에 있는 홍제천은 불광천과 함께 지역을 대표하는 개천입니다. 서울 동쪽에 중랑천, 남쪽에 양재천, 서쪽에 안양천과 비교하면 깊이와 크기가 작습니다만, 누구나 부담 없이 들어가 물장구치고, 급할 때는 큰 돌을 징검다리 삼아 넘어갈 수 있는 아담한 홍제천을 주민들은 무척 아끼고 좋아합니다. 개나리와 벚나무, 은행나무와 단풍나무가 계절마다 색색의 풍경을 자아내는 모습도 일품이죠.

홍제천은 종로구 평창동에서 시작해 마포구 망원동까지 흐릅니다. 하류에 이르면 서대문구 남가좌동을 지나는데, 가좌동을 우리말로 '가재울'이라고 부릅니다. '가장자리 마을', '한갓진 동네'를 일컫지요. 서울 중심부에서 떨어진 외곽에 있다는 이유로 이런 이름이 붙여진 듯 합니다.

동네 풍경도 '도시'의 모습과는 거리가 좀 있었다고 합니다. 10여 년 전, 남가좌동을 처음 방문한 하.나.의.교회 김형원 목사는 동네를 둘러보고는 "서울에 아직도 이런 곳이 있는 줄 몰랐습니다. 마치 시골 읍내와 다름없더군요"라고 말했습니다. 지금은 키 작은 빌라와 주택, 상가가 모두 철거되고 '가재울 뉴타운'이라는 이름으로 아파트 대단지가 들어섰으니, '10년이면 강산이 변한다'는 옛말이 정말 틀리지 않은 것 같습니다.

이번에 소개할 교회는 서울 서대문구 남가좌동에 있는 느헤미야교회협의회 소속 하.나.의.교회(김형원 목사)입니다. 하.나.의.교회는 교회를 '한 지역에서 함께 살아가는 지역 공동체'로 정의합니다. 실제로 서울·의정부·수원·안산 등 여러 도시에 살던 교인들 중 절반 이상이 교회 주변으로 터전을 옮겼다고 합니다. '함께 살기' 위해서요. 더 나아가 교인들이 서로 의기투합해 공동체 주택을 짓기도 했습니다. 4월 15일 교회 예배당 겸 마을 극장이 있는 공동체 주택 '하의재'에서 김형원 목사를 만났습니다. 그는 지역사회에 융화되어 하나님나라를 일궈 나가는 하.나.의.교회의 도전과 과제를 들려주었습니다.

"진정한 의미의 '함께함'은 시간과 공간의 기초 위에 가능하다. 인간은 근본적으로 시간과 공간에 영향을 받는 3차원적 존재이기 때문이다. 마음을 나누고 하고 싶은 것을 함께하는 것을 가능하게 하는 출발점은 시간과 공간의 함께함이다. 그러므로 진정한 의미에서 '함께하는 것'은 공동 공간의 기초 위에 가능하다." [김형원, <교회는 어떤 공동체인가?>(느헤미야), 185쪽]

서울 서대문구 남가좌동에 위치한 하.나.의.교회. 뉴스앤조이 박요셉
서울 서대문구 남가좌동에 위치한 하.나.의.교회. 뉴스앤조이 박요셉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구하라

하.나.의.교회는 2003년, 미국 유학을 마치고 귀국한 김형원 목사가 지인들과 함께 개척했습니다. 초기에는 교회 이름과 예배당이 없었습니다. 한 선교 단체 사무실을 빌려 예배를 드리기 시작했습니다. "교회를 시작하자"는 지인들의 권유로 개척이 예정보다 빨라졌다고 하는데요. 그때도 한국교회는 세습이나 목회자 비리 같은 사건으로 사람들에게 비판을 받고 있었습니다. 김형원 목사는 "그저 욕먹지 않는 건강한 교회를 세우고 싶었다"고 말했습니다.

교회 이름을 지은 건 한참 후였습니다. 교인이 20여 명으로 늘었을 때 처음 간 수련회에서 교회명을 정했습니다. 여러 사람이 아이디어를 모아 투표로 결정한 안이 현재 이름입니다. 마태복음 6장 33절 말씀을 축약했습니다.

사명(Mission):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구하라."(마 6:33)

하.나.의.교회는 이 말씀을 교회 이름에 반영하고 사명으로 삼았습니다. 아울러 자신들을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와 주로 고백하고 따르는 제자들의 공동체입니다. 우리는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구하라'는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에 기초하여, 이 땅에서 성령과 더불어 하나님의 뜻을 구하고 그 뜻대로 살아 내고자 합니다"라고 소개합니다.

집을 지을 때 기초를 다듬고 주춧돌을 놓으면 이어서 기둥을 세우고 돌보·서까래·지붕을 얹습니다. 하.나.의.교회가 초기에 진행한 작업을 보면 마치 건축 과정을 보는 것 같습니다.

이름과 사명을 만들었으니 다음에는 비전과 핵심 가치를 세울 차례였습니다. 2008년, 교회는 준비위원회를 만들고 어떤 비전과 가치를 추구해 나갈지 논의하기 시작합니다. 바람이 불어도, 땅이 흔들려도, 설령 안에서 불이 난다 해도 무너지지 않을 단단한 기둥을 세워야 하는 작업이었던 만큼, 교인들이 함께 모여 6개월간 치열한 공부와 토론을 거쳤다고 했습니다. 김형원 목사도 설교 시간 틈틈이 자신이 생각하는 교회 역할과 방향을 제시했다고 했습니다. 그렇게 해서 다음과 같은 비전과 핵심 가치가 만들어졌습니다.

비전

우리의 비전은 그리스도의 온전한 제자로 성장하고, 하나님나라의 공동체로 살아가며, 이 땅에서 창조적 변혁을 이루어 내는 것입니다.

- 온전한 제자도: 우리는 그리스도 예수의 완전한 모습에 이르는 제자로 끊임없이 성장하기를 꿈꿉니다. 그것은 온 몸과 마음을 그리스도께 복종시켜 인격과 삶이 그리스도를 닮아 가며, 세상 속에서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여 온전하고 균형 있는 사람으로 자라는 것입니다.

- 하나님나라 공동체: 우리는 하나님나라의 모델이 되는 살림의 공동체를 꿈꿉니다. 그것은 공동체 속에서 개인의 삶을 살리고, 나아가 공동체의 그 생명력으로 이웃을 살리는 참 살림의 공동체를 이루는 것입니다.

- 창조적 변혁: 우리는 세상을 새롭게 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손길이 되기를 꿈꿉니다. 그것은 이 시대 이 땅에 우리를 부르신 하나님의 뜻대로 세상의 모든 영역을 회복시키시는 그리스도의 사역에 동참하는 것입니다.

핵심 가치

창조(Creative): 우리는 습관과 관습과 고정관념에 매이지 않고, 모든 일에 철저한 본질을 추구하는 가운데서 하나님께서 주신 창조성을 발휘한다.

자발(Spontaneous): 우리는 강제적인 분위기와 억압적인 권위주의에 의해서가 아니라, 오직 흘러넘치는 그리스도의 사랑과 은혜로 자발적으로 역동한다.

유연(Flexible): 우리는 머리 되신 그리스도의 유기적인 지체로서 그리스도로부터 공급되는 생명력으로 끊임없이 변화한다.

인내(Perseverant): 우리는 그리스도의 최후 승리의 날을 소망하며, 그날까지 하나님나라를 위해 분투하며 인내한다.

상호 책임(Accountable): 우리는 한마음으로 하나님나라를 이루어 가는 형제로서 서로 의지하고, 서로 책임지고, 서로 참아 주고, 서로 붙든다.

"교회를 시작하면서 나름의 생각과 방향성을 갖고 있었지만, 그렇다고 '내 생각은 이거야' 라고 일방적으로 선포하고 결정하지 않았어요. 목사의 역할은 어디까지나 무언가를 제시하는 일이라고 생각했거든요. 그렇게 제가 가진 생각을 제안하면 교인들은 그걸 어떻게 수용할지 이야기했습니다. 서로 생각을 나누고 토론하며 수정과 보완을 거쳐 나갔죠."

혼자서는 집을 짓지 못합니다. 머리를 맞대어 구조를 설계하고 무거운 짐을 함께 나를 동료들이 필요하기 마련입니다. 교회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이전에는 창립자가 강력한 카리스마로 교회를 진두지휘할 때가 있었습니다. 그때는 그게 맞다고 여기는 시각이 지배적이었습니다. 이런 방식으로 큰 성장을 이룬 교회도 많았고요.

그러나 오늘날 우리는 교회가 한 개인에게 과도한 권한을 부여하거나 지나치게 의존할 때 발생하는 부작용을 목도하고 있습니다. 하.나.의.교회가 개척 초기 비전과 핵심 가치를 세워 갔던 과정은 앞으로 한국교회가 어떤 방식으로 공동체를 세워 나가야 할지 보여 주는 것 같습니다.

김형원 목사. 뉴스앤조이 박요셉
김형원 목사. 뉴스앤조이 박요셉
온전한 제자도, 창조적 변혁

△온전한 제자도 △​하나님나라 공동체 △창조적 변혁.

하.나.의.교회에서 이뤄지는 주요 사역은 위 세 비전에 근거하고 있습니다. 하나씩 간략하게 소개하겠습니다.

'온전한 제자도'를 위해 교회가 주로 집중하는 일은 '교육'입니다. 대다수 교회가 신앙 성장을 돕기 위해 교육을 합니다. 자체 과정을 만들거나 외부 프로그램을 도입하죠. 하.나.의.교회 역시 여러 제자 훈련 과정을 두고 있습니다. 그중 가장 인상 깊었던 건, 2010년 이후 지금까지 시행하고 있는 '오후 강좌'입니다.

'오후 강좌'는 다른 말로 'AS(After School)'라고 부릅니다. 매년 2~3회 열리고, 시간은 매주일 오후 1시 30분 ~ 3시 30분입니다. '오후 강좌'에서는 목사와 교인들이 강사가 되어 다양한 강의를 개설합니다. 꼭 신앙이나 제자도, 말씀 묵상에 관한 주제가 아니어도 상관없습니다. 누구나 원하는 강의를 수강할 수 있습니다.

아래는 지난 3월에 개설한 2022년 상반기 오후 강좌 시간표입니다.

"교역자가 모든 교육 훈련을 주도하는 게 아니라 교인들 누구나 가르치는 자가 되는 프로그램을 구상했어요. 성경에는 '피차 가르치며 권면하라(골 3:16)'는 말씀이 있잖아요. 교회에서 가르치는 역할을 교역자에게만 부여할 때 교인들은 의존적이고 수동적인 존재가 될 수 있습니다. 이런 것을 피하자는 취지도 있습니다. 또 역할을 맡을 때 개인이 더 성장합니다."

김형원 목사는 교인들이 목사보다 더 잘 가르칠 수 있는 영역이 많다고 했습니다. 과학, 경제, 음악, 미술 등에 관한 주제를 다룰 때는 관련 지식이나 경력을 보유한 교인이 아무래도 목사보다 낫다는 말입니다.

'창조적 변혁'을 위해 교회는 교인들에게 세상을 향한 책임감을 강조합니다. 가난하고 어려운 이들을 돕는 구제·봉사 활동을 권하는 동시에 정치·사회·경제 등에 관심과 고민을 갖게 합니다. 교회는 '운영위원회'와 가족 모임 및 교회학교를 돕는 '공동체' 그리고 5개 센터 활동을 지원하는 '운동체' 세 조직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그중 '운동체' 내 '사회변혁센터'가 위와 같은 역할을 주도하고 있습니다.

하.나.의.교회 전 교인 수련회 모습(사진 위)과 성탄절 가족 합창 공연(사진 아래). 사진 제공 하.나.의.교회 
하.나.의.교회 전 교인 수련회 모습(사진 위)과 성탄절 가족 합창 공연(사진 아래). 사진 제공 하.나.의.교회 
총체적 삶의 공동체를 꿈꾸다

'하나님나라 공동체'는 하.나.의.교회가 중요하게 여기는 비전입니다. 앞서 소개한 다른 두 비전이 중요하지 않다는 건 아닙니다만, 하.나.의.교회가 지난 20년간 걸어온 길을 돌아보면 바로 이 비전을 실현하기 위해 치열하게 고민하고 도전해 왔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이들에게 '공동체'는 막연하고 추상적인 개념이 아니었습니다. 일상에서 서로 얼굴을 마주하고 삶이 부딪히는 '실재'였습니다.

하.나.의.교회는 개척할 때부터 지금까지 '가족 모임'을 강조해 왔습니다. 대다수 교회가 '구역 모임', '사랑방', '소그룹'이라고 부르는 모임과 비슷한 형태지만, 특별한 점이 있다면 교회와 교인들이 모임을 대하는 마음가짐일 겁니다. 대부분 가족 모임을 교회 근간이라고 생각할 정도로 중요하게 여깁니다.

2010년에 들어서 교회는 큰 전환을 겪습니다. 사실 하.나.의.교회에 부족한 점을 꼽는다면 '지역성'이었습니다. 당시 교회는 서울 서대문구 창천동에 있는 상가를 임대하고 있었는데요. 인근에 사는 교인보다 다른 지역에서 오는 이들이 더 많았습니다.

"전통 교회는 수십 년간 어느 정도 지역성을 갖고 있습니다. 대다수 교인이 인근에 살고, 지역명을 따서 교회 이름을 짓기도 하고요. 하지만 2000년대 이후 새로 만들어진 교회, 특히 저희처럼 젊은 교회 중에는 지역성이 없는 곳이 많을 겁니다. 저희도 교인들이 여러 지역에서 살고 있었으니까요. 의정부·수원·남양주 등 경기도에서 출석하는 교인도 있었습니다.
 

서로 이렇게 떨어져서 살고 있으니 한번 모이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연락은 자주 하지만 그래도 모이려면 한두 시간 이동해야 하니까요. 어느 날부터 이런 모습이 공동체라고 하기에 적절한지 고민이 들었습니다. 성경을 보면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코이노이아'는 삶의 전반을 공유하는 의미를 지니고 있거든요. 초대교회가 보여 준 모습 역시 그랬고요. 2008년 말부터 이런 생각을 교인들에게 나누기 시작했습니다."

주말 동안 교회 안에서는 교인들의 단합력이나 공동체성이 높았습니다. 하지만 교회 밖 일상은 이에 미치지 못해 보였습니다. 교인들이 서로 얼굴 한번 보기 쉽지 않았으니까요. 이러한 문제의식을 느낀 교회는 결국 마을 공동체를 이루며 살기로 결정합니다.

"공동체는 거창한 이론이나 멋진 수사법이 아니다. 그것은 물리적으로 함께하는 것이며, 함께 대화를 나누면서 생각을 맞추는 것이며, 다양한 과업들을 같이 하는 것이다. 아무리 친밀한 사이라도 자주 만나지 않거나, 함께하는 일이 적어지면 관계가 소원해진다. 그것을 공동체라고 말할 수 없다." [김형원, <교회는 어떤 공동체인가?>(느헤미야), 231쪽]

교회는 예배당에서 약 2km 떨어진 남가좌동을 함께 살 지역으로 정했습니다. 처음에는 예배당과 가까운 연남동·서교동이 후보로 거론됐지만 홍대 상권 확장으로 땅값이 너무 올라 다른 지역으로 방향을 돌렸습니다. '가재울 뉴타운' 개발 전 남가좌동은 다세대 밀집 지역으로 지대가 저렴해, 교회가 공동체를 형성하기 적절해 보였습니다. 교인들은 2010년부터 대거 이곳으로 이주하기 시작했고, 지금까지 약 70가구가 남가좌동에 터전을 잡았습니다. 교인 중 약 절반에 가까운 수라고 합니다.

삶의 터전을 옮기는 건 쉬운 일이 아닙니다. 여전히 교인 중 절반은 다른 지역에 살며 교회에 출석합니다. 아무리 사랑하고 신뢰하는 공동체에서 결정한 일이라 해도 회사나 가족 일로 쉽게 이사를 결정하기 어려울 수 있죠. 교회에서도 이들을 탓할 수는 없는 일입니다.

하지만 일부 교인들은 이러한 결정에 동의하지 못해 교회를 떠나기도 했습니다. 누가 옳고 그르다고 말하기 어려울 것 같습니다. 서로 생각이 다를 뿐이지요. 다수가 아무리 중요하고 옳다고 생각하며 추진했다 해도 이러한 갈등과 부침은 피할 수 없는 일인 것 같습니다.

하심재·하의재·하담재를 지은 이유

하.나.의.교회가 마을 공동체를 형성할 때 함께 추진한 프로젝트가 있습니다. '공동체 주택 프로젝트'입니다. 교인들이 마음을 모아 함께 살 집을 짓는 일이었습니다. 2010년 여름 수련회에서 김형원 목사가 공동체를 주제로 설교한 이후, 이 프로젝트가 본격화했습니다. 그해 말부터 공동체 주택에 관심 있는 사람들이 모여 프로젝트를 준비했고, 지금까지 약 세 채가 세워졌습니다. 창천동에 있던 하.나.의.교회 예배당도 2016년 두 번째 공동체 주택 '하의재' 지하로 이전했습니다.

하.나.의.교회 공동체 주택 '하의재' 식구들(사진 위)과 '하담재' 식구들(사진 아래). 사진 제공 하.나.의.교회

- 하심재嘏心齋: 하나님의 마음을 품은 집 / 12가구 거주 / 2013년 입주.
- 하의재嘏意齋: 하나님의 뜻을 품은 집 / 8가구 거주 / 2016년 입주.
- 하담재嘏談齋: 하나님의 말씀을 품은 집 / 5가구 거주 / 2021년 입주.

프로젝트에 참여하는 교인들은 처음부터 집을 함께 설계합니다. 층수와 방향, 방 배치를 정하고 복층이나 집 구조 등을 결정합니다. 원하는 조건이 서로 부딪힐 수 있습니다. 모두가 남향이나 복층을 선호할 수 있죠. 갈등이 발생하고 배가 산으로 가는 건 아닌지 우려할 수 있지만, 교인들은 서로의 필요를 이야기하며 의견을 조율해 나간다고 합니다.

이들이 설계하는 건 집만이 아닙니다. 삶을 함께 설계합니다. 하의재 입주민이기도 한 김형원 목사는 저서 <교회는 어떤 공동체인가?>(느헤미야)에서 이렇게 썼습니다. "멤버들은 정기적으로 모여서 설계에 대해 이야기하고, 자신의 생활 방식에 대해 이야기하고, 바라는 것이 무엇인지, 무엇을 좋아하고 싫어하는지, 어떤 삶을 꿈꾸는지, 어떤 공동체 생활을 하고 싶은지에 대한 다양한 이야기들을 나누었다. 이 모두가 공동체를 만들어 가기 위한 과정들이었다."(226쪽)

"공동체 주택이라고 하면 필수적으로 공동의 공간을 두어야 한다. 함께 모이고, 함께 먹고, 함께 놀고, 함께 아이를 키우는 공간을 확보해야 한다. 공동체는 일상을 나누는 모임이기 때문에 함께 활동하는 공간의 필요는 당연하다. (중략)
 

'하심재'는 공동 공간을 어디에 둘 것인지, 크기는 어느 정도로 할지, 그 비용은 어떻게 마련할지에 대한 논의를 거쳐서, 건축비가 많이 들더라도 넓은 공간이 확보되는 지하에 마련하기로 합의했다. 그곳에는 공동 부엌, 모임 공간, 어른들을 위한 휴식 공간, 아이들을 위한 놀이방, 화장실, 공동 세탁실과 같은 시설을 갖추기로 했다." [김형원, <교회는 어떤 공동체인가?>(느헤미야), 226~227쪽]

여기서 위에서 소개한 하.나.의.교회 비전을 다시 소개하고 싶습니다. 두 번째 비전에 나오는 마지막 문구입니다. "공동체의 그 생명력으로 이웃을 살리는 참 살림의 공동체를 이루는 것." 교회가 마을 공동체를 형성하기 위해 대거 이주를 결정하고 공동체 주택을 세운 이유는, 자신들만의 왕국을 세우기 위한 게 아니라 바로 이웃 주민들을 섬기겠다는 비전에 있습니다.

이러한 정신을 공동체 주택에서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세 채 모두 지하나 1층에 교인들이나 주민들이 이용할 수 있는 커뮤니티 시설을 구성했습니다. 하.나.의.교회가 예배당으로 쓰고 있는 하의재 지하 공간의 또 다른 이름은 '가재울 마을 극장'입니다. 교회가 이곳에서 주민들을 위한 문화 행사를 열거나 인근 단체가 대관해서 이용할 수 있습니다. 건물 외벽에 교회 간판이나 십자가도 달지 않았습니다. 하담재 1층에는 지역 청년들을 위한 공유 사무실을 마련했습니다.

사실 지난 2년간 코로나19로 외부 활동이 중지되거나 이전보다 위축됐습니다. 사회적 거리 두기가 해제된 지금, 하.나.의.교회는 다시 주민들 곁으로 다가갈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절반의 개혁 너머로

마지막으로 하.나.의.교회 조직과 그에 관한 철학을 소개합니다.

하.나.의.교회는 주요 안건을 처리하는 의결기관으로 운영위원회를 두고 있습니다. 흥미로운 건 운영위원을 세우는 방식입니다. 센터장이나 대가족장(여러 가족 모임들을 지원하는 이)처럼 각 조직 책임자들이 당연직처럼 운영위원을 맡습니다. 책임자가 바뀌면 운영위원도 교체가 되는 구조인 거죠. 청년부에서도 매년 돌아가며 리더 2명을 운영위원회에 파송합니다. 김형원 목사 역시 운영위원회에 참여하지만, 운영위원장이 따로 있지는 않습니다.

김형원 목사는 운영위원회를 기능 조직으로 운용하고 싶었다고 했습니다. 어떤 사람이 특정 방면에 재능이 있으면 실무와 의사 결정을 맡기는 방식입니다. 기성 교회에서는 반대되는 모습을 봐 왔기에 새롭게 다가왔습니다. 장로나 안수집사들이 부서 사정을 잘 모른 채 위원장이나 부장·고문이라는 중요 직책을 맡는 경우가 왕왕 있었거든요.

교회 조직이나 구조를 민주적으로 개편하는 일은 중요합니다. 그런데 김형원 목사는 이게 전부가 아니라고 말했습니다.

"사람들이 교회 개혁을 말할 때 구조적인 측면만 너무 강조하는 경우가 있는 것 같습니다. 권위주의적이고 권력 지향적인 구조를 바꿔야 하는 건 맞습니다. 모범 정관, 운영위원회 체제, 목사·장로 임기제가 강조됐죠. 하지만 교회를 너무 조직적인 관점에서 보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구조만 바꾸는 건 절반의 개혁입니다.
 

아무리 좋은 제도를 만들어 놓는다 해도 제도를 운용하는 건 결국 사람입니다. 사람이 바뀌지 않으면 교회는 바뀌지 않습니다. 그리스도의 온전한 제자가 되기 위해, 지속적인 관심과 노력을 기울여야 합니다. 모든 구성원이 끊임없이 교육받고 훈련받으며 변화하는 작업이 계속돼야 합니다."

뜻밖의 이야기였습니다. 김형원 목사는 '조직'과 '사람' 둘 중 굳이 무엇이 우선인지 묻는다면, '사람'이라고 말했습니다. 사람이 바뀌는 게 더 중요하다는 거죠. 그리스도의 온전한 제자로 변화된 그리스도인들이 관계를 형성하고 합의된 정신과 문화를 공유하는 곳이 결국 교회가 되기 때문입니다. 교회가 개개인의 성장과 변화에 집중할 때 공동체 역시 더욱 단단해진다는 점이야말로, 그동안 하.나.의.교회가 건강한 공동체를 형성해 온 비결인 듯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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