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앤조이-구권효 기자] '촉법소년.' 현재 한국에서는 만 10세 이상 만 14세 미만이라면 범죄행위를 해도 형사처벌을 받지 않는다. 보호처분만 할 수 있다. '청소년이 흉악한 범죄를 저질렀는데 촉법소년이라 처벌을 못 한다'는 식의 언론 보도가 잊을 만하면 온라인을 달군다. 이 때문에 촉법소년 연령을 낮춰야 한다는 여론이 형성됐고, 실제로 현재 법무부는 촉법소년 연령을 만 12세로 낮추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회복적 정의(Restorative Justice)'에 공감하고 이를 실천하려는 사람들에게 촉법소년 연령 하향은 피해 갈 수 없는 의제다. 회복적 정의가 청소년 범죄에서 태동하기도 했고 교육 영역과도 밀접하게 연결돼 있기 때문이다. 이에 한국회복적정의협회(이재영 이사장) 회복적정의연구소 사법연구회가 8월 31일 '촉법소년 연령 하향화 정책, 이대로 괜찮은가'라는 주제로 아카데미를 열었다. 온라인 회의 플랫폼 줌을 통해 80명이 참가했다.

본격적인 발제에 앞서, 이재영 이사장은 인사말을 전하며 촉법소년 연령 하향에 우려를 표했다. 그가 우려하는 점은 두 가지였다. 아이들이 처벌을 받고 돌아오면 다시 지역사회에 통합돼야 하는데, 지역 주민이 과연 이들을 환영할 준비가 돼 있느냐는 것이다. 또 한 가지는 아이들 또한 형사처벌로 범죄에 대한 책임을 다했다고 생각하게 될 것이라는 점이다. 촉법소년 연령을 만 12세 미만으로 낮추면 초등학교 고학년 아이도 형사처벌을 받을 수 있다. 이렇게 어렸을 때부터 공동체에서의 배제와 엄벌주의만을 배우게 된다면, 이는 더 큰 사회비용을 불러올 수 있다.

발제는 경기남양주남부경찰서 여성청소년계 박기영 경위와 서울동부구치소 김영식 소장이 맡았다. 둘 다 각자의 자리에서 회복적 정의 패러다임을 실천하기 위해 노력해 온 사람들이다. 어찌 보면 공무원이 공식적인 자리에서 정부가 추진하는 법안에 우려를 표하는 일 자체가 부담스러울 수 있다. 하지만 박 경위와 김 소장은 회복적 정의를 고민하는 사람들에게 현장 이야기를 들려주기 위해 기꺼이 발제를 맡았다. 두 사람 모두 개인 의견이라는 점을 분명히 했다.

촉법소년 연령 하향에 많은 국민이 동의하고 있다. 하지만 법 개정으로 우리가 원하는 효과를 얻을 수 있을까. 넷플릭스 드라마 '소년심판' 갈무리
촉법소년 연령 하향에 많은 국민이 동의하고 있다. 하지만 법 개정으로 우리가 원하는 효과를 얻을 수 있을까. 넷플릭스 드라마 '소년심판' 갈무리
"청소년 비행 예방,
엄벌주의로는 효과 얻을 수 없어"

박기영 경위는 촉법소년 연령 하향은 얻는 것보다 잃는 것이 더 많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현장에서 그가 깨달은 것은, 경찰이 아무리 엄격하게 비행 청소년들에게 법률을 적용해도 이들은 다시 범죄를 저지른다는 사실이었다. 그는 "오히려 강하게 드라이브를 걸면 걸수록 더 다른 방향으로 튕겨져 나갔다"며 수사의 범위를 넓히고 강도를 높이는 것이 능사가 아니라고 했다.

이들이 범죄를 반복할 수밖에 없는 다른 이유가 있기 때문이다. 청소년들은 또래 집단의 압력, 우울과 불안, 범죄 기회의 충동 등에 취약하다. 박 경위는 "오랜 시간 선도 프로그램을 진행하다 보니, 청소년을 보통 청소년과 비행 청소년으로 나눌 수가 없더라. 정말 종이 한 장 차이다. 보통 청소년도 범죄의 기회가 생기면 범죄를 저지를 수 있다. 그것이 나쁜 행동인 것은 알지만 충동을 제어할 수 있는 힘이 부족한 시기이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최근에는 초등학생과 중학생들이 온라인 게임 채팅창에서 성적으로 모욕적인 말을 했다고 고소나 진정을 당하는 일이 빈번하다고 했다. 박기영 경위는 "이러한 통신 매체 이용 음란은 성폭력 범죄로 취급되기 때문에 조금이라도 선처를 받기 위해 합의금을 주고 합의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이런 이유 때문인지 최근 학생들이 고소당하는 경우가 부쩍 늘었다. 물론 온라인상에서 다른 사람을 성적으로 모욕하고 명예를 훼손하는 것은 잘못된 일이지만, 이렇게 처음부터 사법절차를 거치게 하는 것보다 진정한 사과와 교육, 선도 프로그램을 통해 기회를 한 번 더 주는 것이 청소년을 건전하게 성장시키는 데 도움이 될 것 같다"고 언급했다.

현실적인 이유도 있었다. 지금도 밀려드는 사건·사고에 수사력이 부족한 상황인데, 촉법소년 연령을 낮추면 그만큼 더 사건이 많아진다. 경찰뿐 아니라 소년사건의 컨트롤 타워인 소년부 판사는 절대적으로 부족하고 사후 관리를 담당하는 보호관찰관도 턱없이 부족한 상태다. 소년원과 소년 보호시설도 이미 폭주 상태다. 박 경위는 이러한 현실적인 여건도 절대 무시할 수 없다고 말했다.

박기영 경위는 흉포하고 조직적인 청소년 범죄에 대한 대처는 반드시 필요하다고 했다. 특히 반사회성이 강한 소년범에 대해서는 경찰이 사건을 송치하기 전이라도 소년분류심사원에 즉시 입소시키는 등 응급조치가 필요하다고 했다. 또한 학교 폭력으로 자식을 잃은 부모님들을 잊어서도 안 된다고 했다. 그 피해자와 가족들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들어 줄 창구도 필요하다고 했다.

그는 지금은 촉법소년 연령을 낮추는 논의보다 비행 청소년의 특성에 맞는 '보호의 개별화'에 대한 논의가 더 필요하다고 언급했다. 소년법의 목적대로 "반사회성이 있는 소년의 환경 조정과 품행 교정을 위한 보호처분 등의 필요한 조치를 하고, 형사처분에 관한 특별 조치를 함으로써 소년이 건전하게 성장하도록 돕는 것"이 무엇인지 충분히 고민해야 한다고 했다.

박 경위는 "비행 청소년들을 유심히 관찰하다 보니, 우리가 회복적 선도 프로그램을 하면서 따뜻하게, 인간적으로 대해 주었을 때 마음이 열리는 것을 보았다. 그 이후 피해자의 고통을 알게 되면서 반성적 성찰을 하게 되는 것 같다"고 말했다. 끝으로 촉법소년 연령 하향 논의가 혐오와 차별의 장이 되지 않고 소년의 건전한 성장을 바라는 모든 사람의 뜻이 모아지면 좋겠다고 밝혔다.

"사람은 변할 수 있다
그 어떤 사람도 포기해서는 안 돼"
캐나다에서 시작된 '코사'는 재범 고위험 출소자와 시민들이 '서클 멘토링'을 하게 한다. (사진은 기사 내용과 직접적인 관련 없음.)
캐나다에서 시작된 '코사'는 재범 고위험 출소자와 시민들이 '서클 멘토링'을 하게 한다. (사진은 기사 내용과 직접적인 관련 없음.)

김영식 소장은 범죄한 청소년들이 수형 생활을 하는 소년교도소가 어떤 환경인지 자신의 논문을 통해 설명했다. 김 소장은 "가정의 결손이나 경제적 상황이 여전히 소년 범죄와 상관성이 높다. 소년 수형자들은 사회 유대감과 자아 통제력이 매우 낮고 부모로부터 방임된 사람이 많았다"며 "이런 걸 보면 우리가 이 아이들에게 돌을 던질 수 있을까 싶다. 청소년의 문제는 상당 부분 우리 모두의 책임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소년교도소에서는 아이들의 회복을 위해 여러 교육과 다양한 특별 활동을 하고 있다. 김 소장은 "여러 활동을 하면서 이 아이들도 일반 아이들과 동일한 재능과 가능성이 있다는 사실을 보기에 희망을 가진다"고 말했다. 하지만 교도소에 다시 들어오는 '재복역률'이 성인보다 소년들에게 더 높은 것이 사실이다. 이는 청소년 출소자들이 성인보다 사회에 적응하기 더 어려운 현실을 반증한다. 그는 청소년 출소자들의 사회 복귀 갱생에 대한 지역사회의 특별한 관심과 지원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김 소장은 경험적으로 출소자 중 15%가 습관적·만성적으로 범죄를 반복한다고 했다. 이런 사람들은 변하기 어렵다는 인식을 가지게 되는데, 갱생 지원을 포기하지 않는 특별한 활동이 캐나다에서 시행되는 것을 알게 되어 신선한 충격이었다고 전했다.

김영식 소장은 캐나다에서 시작된 코사(CoSA·Circles of Support and Accountability)라는 단체를 방문했던 일을 소개했다. 코사는 재범 고위험 출소자 1명과 건강한 시민 5명 정도가 함께 '서클 멘토링'을 하게 한다. 매주 정기적인 대화 모임을 통해 출소자가 삶의 현장에서 부닥치는 문제 상황에 대해 솔직히 이야기한다. 출소자가 인내심을 가지고 건강하게 극복할 수 있는 방법을 찾고 실천할 수 있도록 지지해 주는 것이다. 서클 구성원 간 신뢰와 친밀감이 형성되면, 더 나아가 범죄 피해자에 대한 인식과 공감, 피해 회복에 대한 책임감을 불러일으킨다.

캐나다 오타와에서 이 같은 코사 프로그램을 거친 재범 고위험 출소자들은 단 한 명도 재범하지 않았다. 캐나다 전역에서는 10%만이 재범했다. 코사 프로그램을 거치지 않은 재범 고위험 출소자들은 90%가 다시 범죄를 저질렀다. 김영식 소장은 "재범 고위험 출소자라도 서클 멘토링 참여를 통해 점차 관계를 회복하고 지지받으면 건강하게 사회로 복귀하는 것이 가능하다는 사실이 놀라웠다"고 말했다.

한국에서도 2014년 '코사코리아'가 출범했다. 코사코리아 회원들은 아동·청소년 성범죄자 등 재범 고위험 출소자를 대상으로 8년간 서클 멘토링을 해 오면서 캐나다와 유사한 재범 방지 효과를 확인하고 있다. 코사코리아는 출소자들이 지역사회 이웃과의 대화 모임을 통해 건강한 관계 능력을 조금씩 회복할 수 있다고 강조한다.

김 소장은 "어떠한 고위험 출소자라도 변화할 수 있는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그 누구도 포기해서는 안 된다는 믿음을 가지게 되었다. 이것은 단지 출소자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더 이상 피해자가 나오지 않게 하기 위한, 우리 아이들, 여성들, 나아가 지역 공동체를 지키기 위해 꼭 필요일 일이다"라고 말했다.

발제가 끝난 후 이재영 이사장은 어려운 자리에 나와 준 두 사람에게 고마움을 표하며 "오늘 발표를 들으면서 사법 공무원으로 계신 분들의 역할과 우리 민간 지역사회 자원들이 해야 할 역할이 좀 더 분명해지는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우리가 그저 '엄벌해라, 처벌해라' 이런 목소리만 내는 무책임하고 비인간적인 어른으로 남을 것이 아니라, 우리 사회 공동체를 위해 회복적인 역할을 해야 한다는 것을 다시 한번 느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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