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앤조이-구권효 기자] '회복적 정의'를 알게 된 후 안타까웠던 지점은, 이토록 좋은(?) 회복적 정의를 교회에 적용해 보려는 움직임이 잘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회복적 정의가 꼭 기독교적인 개념은 아니지만, 기독교가 중요하게 여기는 가치들, 특히 기독교평화주의 전통과 많이 연결돼 있다. 회복적 정의를 공부하고 전문가 과정까지 이수하는 사람 중 기독교인이 많은 것도 사실이다. 이들이 각자 삶의 영역에서 회복적 패러다임을 적용하기 위해 노력하는 덕분에 사회는 조금씩 변하고 있다. 그런데 왜 교회에서는 회복적 정의에 대한 논의가 잘 나오지 않을까.

'역시 교회가 끝판왕인가?'라고 생각하고 있을 무렵, 한국회복적정의협회(이재영 이사장) 안에 '회복적교회연구회'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회복적교회연구회는 말 그대로 회복적 정의 패러다임을 어떻게 교회에 적용할 수 있을지 연구하는 모임이다. 2019년 7월, 20여 명이 모여 이야기를 나눈 것이 시작이었다. 이후 코로나 상황이 닥쳐 적극적인 활동을 하지는 못했지만, 회복적 교회에 대한 소망은 간절하다.

회복적 교회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 보려 6월 23일 회복적교회연구회 회장을 맡고 있는 황필규 목사(66)를 경기 남양주 덕소에 있는 피스빌딩에서 만났다. 황필규 목사는 대한예수교장로회 통합에서 목사 안수를 받은 후 30년간 에큐메니컬 운동을 해 온 사람이다. 지금도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교회협) 장애인소위원회 위원장을 맡고 있다. 평생 정의와 평화, 인권 운동에 힘써 온 황 목사는 어떻게 회복적 정의와 만나게 됐을까.

황필규 목사는 교회협 장애인소위원회 위원장으로 지난 화요일에도 발달장애인 권리 보장 시위에 참여했다. 뉴스앤조이 구권효

- 회복적 정의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가 있으신가요?

제가 2011년 교회협 정의평화국 국장을 사임했어요. 새로운 총무가 오시면서 에큐메니컬 운동에도 뭔가 변화가 필요하다고 생각했고, 그 변화는 저보다 후배들이 해 주기를 바랐어요. 근데 그게 쉽지는 않더라고요. 관성대로 가는 면이 있었죠. 운동이라는 게 좀 공격적인 면이 있잖아요. 저희도 뭐 광화문이나 청와대 앞에서 집회하면, 나중에는 결국 경찰들과 부딪히고 많이 했죠. 열심히 했지만 뭔가 아쉬운 지점이 있었어요. 지금 와서 이런 말 하면 그렇지만, 좀 더 비폭력적으로 할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있었죠.

교회협을 그만두고 마침 '비폭력 대화에 근거한 회복적 정의 조정가 전문 과정'이라는 걸 수강했어요. 그때 회복적 정의를 처음 만난 거예요. 특히 그때 '적 이미지 프로세스(Enemy Image Process)'라는 걸 배운 게 참 좋았어요. 쉽게 말하면, 어떤 대상을 '아군 대 적군', '가해자 대 피해자'와 같이 대립적 관계로 보는 게 아니라 그냥 '행위자 A와 행위자 B'로 보는 거예요. 우리에게 너무 자연스러운 '적'이라는 이미지를 전환하는 거죠.

저도 에큐메니컬 운동을 하면서 수십 년간 정의·평화·인권을 외쳤지만, 얼마나 적이 많아요. 정의·평화·인권에 반하는 사람·단체가 다 적이었죠. 그때만 해도 이명박 정권이었잖아요. 정부도 그렇고 보수 단체인 한국기독교총연합회라든지 나아가서는 대형 교회들도 적이었죠. 제가 능력도 안 되는데 정의평화국 국장으로 이런저런 사건에 다 관여하고 저항운동을 하다 보니까 번아웃이 된 거예요. 저한테는 적만 너무 많았어요.

적 이미지 프로세스를 배우면서 마음이 편안해졌어요. 중요한 건 '적과의 싸움에서 내가 어떻게 이길 것이냐'가 아니라, '내 안에 있는 적 이미지를 어떻게 전환할 것이냐'였던 거죠. 그것이 바로 성경이 끊임없이 우리에게 이야기하는 '화해자'의 사명이라는 사실을 깨달았어요. 그리고 이 과정이 '조정가' 과정이었잖아요. 이 조정, 'mediation'은 흔히 말하는 '협상'과는 달라요. 어느 편을 드는 게 아니라, 결국 당사자들이 문제를 스스로 해결해 갈 수 있도록 힘을 돋워 주는 거거든요. 저에게는 그게 너무 도움이 됐어요.

또 하나 중요했던 게 AVP(Alternatives to Violence Project)였어요. 이건 퀘이커 전통인데요. 우리 말로는 '삶을 변혁시키는 힘을 기르는 평화 훈련'이라고 번역했어요. AVP의 핵심은 TP(Transforming Power)인데, 내 안에서 갈등을 평화로 전환할 수 있는 힘을 기르는 거예요. 이런 걸 배우면서 저도 패러다임이 전환됐죠. 사실 어찌 보면 에큐메니컬 운동을 하면서도 비슷한 걸 많이 이야기하긴 했는데, 그때는 이야기만 했던 거예요. 실제로 이걸 어떻게 실행할지 프로세스는 몰랐던 거죠. 이후에도 계속 회복적 정의에 대한 과정을 이수하면서 자연스럽게 이쪽에 몸담게 됐어요.

회복적교회연구회에 모인 사람들. 
회복적교회연구회에 모인 사람들. 사진 제공 한국회복적정의협회

- 회복적교회연구회는 어떻게 만들게 되셨나요?

회복적 정의에 관심을 가지고 한국회복적정의협회에서 전문가 과정을 수료하는 분이 많아지면서, 어느 정도 풀(pool)이 형성됐어요. 저마다 관심사가 있었죠. 어떤 사람은 사법 쪽에, 어떤 사람은 학교에, 어떤 사람은 공동체에. 그중 하나가 교회였던 거예요. 그리고 제가 알기로 회복적 정의를 공부한 사람 중 목사가 수십 명이 될 거예요. 100명이 넘을지도 몰라요. 거기에 기독교인까지 포함하면 훨씬 많죠. 전문가 과정 이수하신 분들 종교를 조사해 보지는 않았지만, 대부분 기독교를 기반으로 한 곳에서 회복적 정의에 관심을 가지고 활동하고 있거든요.

저는 에큐메니컬 운동을 하면서 한국교회 갱신도 많이 이야기해 왔으니 교회에 관심이 갔죠. 그렇게 회복적 정의를 교회에 적용해 보려는 사람들이 모인 거예요. 2019년 7월 첫 모임 때 20여 명이 모였어요. 작은 교회를 담임하는 목사님도 계셨고, 기관이나 선교 단체에 계신 분도 있었고, 이제 막 목회를 시작하려는 사람도 있었죠. 그간 회복적 관점에서 성서를 해석하는 시도를 해 봤고, 교수님을 모시고 회복적 교회 담론을 어떻게 구성할 것인지도 이야기해 봤고요. 피해 회복을 위한 '회복 기금'을 운영하는 교회 목사님에게 이야기 듣는 시간도 있었죠.

우리가 한국교회를 개혁해야 한다면서 그간 여러 방법으로 시도해 봤잖아요. 무엇을 하든 이제는 회복적 패러다임을 기반으로 해야 할 것 같아요. 저는 하나님나라 운동을 회복적 정의 운동으로 말해도 될 정도로 서로 닮아 있다고 생각해요. 시편 23편을 보면 하나님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내 영혼을 소생시키시고 의의 길로 인도하신다"라는 구절이 있어요. 이 '소생'이 영어로는 'restore'로 번역됐더라고요. 그리고 정의의 길로 인도하신다는 거예요. 이건 회복적 정의를 시로 표현한 것 아닌가 싶을 정도예요. 성경 곳곳에 이런 이미지가 많이 나오더라고요.

지금 한국교회에 문제가 많지만, 저는 가장 중요한 것이 '참여'라고 생각해요. 모두가 자기 목소리를 낼 수 있어야 하는데 지금은 그렇지 않죠. 평등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의사 결정은 다 위에서, 목사와 장로들이 알아서 하잖아요. 그러니까 제직회다, 공동의회다 하지만 교인들이 잘 참여하지 않죠. 어차피 거기에서 나오는 안건 자체가 자기들과 별로 상관이 없는 거거든요. 회복적 정의, 비폭력 대화, 서클 프로세스 같은 것들은 모두가 평등하게 참여하는 것을 전제하기 때문에 교회에 꼭 필요한 거죠.

황필규 목사는 머리에서 가슴까지의 거리가 가장 멀다며, 에큐메니컬 운동을 하면서 많이 들어 왔던 이야기들이 마음까지 가는 데 오래 걸렸다고 했다. 더불어 회복적 정의는 어떤 프로그램이 아니라 패러다임의 전환이라고 강조했다. 뉴스앤조이 구권효

- 저도 회복적 정의가 이 세상에 필요하다고 생각하지만, 유독 교회에는 어떤 모습으로 적용할 수 있을지 모르겠더라고요. 어떤 구체적인 모습을 그릴 수 있을까요?

회복적 패러다임이 적용되면 교회의 많은 부분이 바뀔 수 있다고 봐요. 대부분 교회 예배는 강대상을 바라보고 일방적으로 듣는 구조잖아요. 교인들이 예배를 하면서, 정말 자기가 예배에, 이 공동체에 참여하고 있다고 느낄까요? 서클은 모두가 둘러앉아서 이야기하고 경청하는 구조예요. 그렇게 되면 서로를 살필 수가 있습니다. 모두가 참여하는 거죠. 이렇게 되면 목사 혼자서 예배 처음부터 끝까지 다 준비할 필요가 없어요. 목사들도 지쳤잖아요.

갈등은 대부분 소통이 되지 않기 때문에 일어나요. 교인들은 목사를 힘들어하고, 목사도 교인들을 힘들어해요. 이럴 때 회복적 패러다임에 입각한 대화 모임을 통해서 각자 이야기하고 경청하는 과정이 필요한 거예요. 아까 말씀드렸던 적 이미지 프로세스와 AVP를 통해서 그 갈등·고통을 평화로 전환할 수 있는 힘을 길러야 하는 거죠. 그게 안 되니까 결국 맘에 안 맞는 사람들은 쳐 내고 잘라 내면서 교회가 분열되는 거잖아요. 정말 갈등이 심한 교회에서는 전문가들이 클리닉을 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해요. 이런 문제는 기도만 한다고 해결되는 게 아니거든요.

저는 이런 부분을 신학교에서 가르쳐야 한다고 봐요. 학교 상황과 비슷해요. 자기 교과목을 열심히 공부해서 교사가 됐는데, 정작 아이들 생활지도를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는 거예요. 그래서 결국 회복적 정의를 배운 사람들이 학교 폭력 사건이나 여러 갈등에 개입하게 되는 경우가 있어요. 그러지 말고 애초에 교사가 되기 위한 준비를 할 때부터 회복적 생활교육을 배워야 한다는 거예요. 신학교에서는 주로 신학과 설교 위주로 배워요. 그러고 나오니까 교회에서 갈등이 발생했을 때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모르는 거죠. '은혜로 풀자'는 건 그냥 덮자는 거죠.

안타까운 건 '회복적 교회'라고 할 만한 교회가 아직까지는 가시화하지 않았다는 거예요. 이제 정말 회복적 교회를 표방하는 실질적인 예가 나왔으면 좋겠어요. 다들 관심은 있는데 뭐랄까, 아직 어떤 임계점에 다다르지는 못했다는 느낌이에요. 그래도 회복적 정의를 공부한 크리스천이 결코 적지 않아요. 아마 1000명도 넘을 거예요. 이 중 한 명이라도 여기에 '꽂힌' 사람이 나오면 돼요. 저는 이제 나이가 많으니 젊은 사람이 해 줬으면 좋겠어요. 언젠가는 끓어오를 거라고 봐요. 지금은 한 80~90도 정도 된 거죠. 그리 어렵다고 보지만은 않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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