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질 수 없는 너

학부 시절, 신학과 학생들 사이에는 이런 말이 돌았다. "삼용을 피해라." 성함에 '용' 자가 들어가는 세 분의 교수님 수업은 피할 수 있으면 피하라는 말이었다. 그렇게 어려운 수업들은 아니었지만, 과제의 양이나 요구되는 글쓰기의 난도가 높다보니 그런 말이 돌았다. 그러나 나는 그 세 분의 수업을 모두 들었다. 남들은 피하기 바쁠 때 일부러 찾아 들었던 것 같다.

삼용 교수님의 수업들 중 가장 힘든 수업은 '기초 히브리어'였다. 고전어 수업을 쉽게 한다는 것 자체가 어려운 일이긴 하지만, 내가 다녔던 학교의 고전어 수업들은 악명이 높았다. 지금은 없어진 지 오래됐지만, 신학과 졸업 요건 중 '고전어 인증제'라는 게 있어서 히브리어·헬라어 중 하나를 선택해 기초 - 중급 - 원전의 수업을 쭉 들었어야 했고 시험도 봐야 했다. 내가 알기로 다른 신학교는 기초 과정을 두 학기에 걸쳐 진행하는데, 우리 학교는 한 학기만에 끝냈다. 15주, 기말고사를 제외한 단 14번의 수업 시간 안에 약동사(weak verb)를 제외한 문법을 모두 나갔고, 기말고사는 넓은 범위로 주어진 본문 중에서 10~13절을 번역하는 것이었던 데다가, 매주 주어진 과제의 양이 만만치 않아 학생들은 거의 울면서 수업을 들었다. 학기 중간에 포기하는 학생이 반, 남은 반 중에 ⅓은 'F'를 맞았다. 다른 수업은 몰라도 이 '기초 히브리어'만큼은 피할 수 있으면 피하라고 했던 말이 괜히 나온 게 아니었다. 그래서일까. 노래 하나가 떠올랐다. 뱅크가 부릅니다, '가질 수 없는 너'.

넘기 힘든 고전어의 벽

신학을 공부하는 학생들에게 가장 어려운 과목이 뭔지 꼽으라고 하면, 고전어는 꼭 순위 안에 드는 것 같다. 특히 히브리어를 헬라어보다 더 어렵게 느끼는 사람이 많다. 헬라어야 영어 알파벳처럼 보이는 것도 있고, 중·고등학교 시절 수학을 배우면서 보았던 기호들도 있으니 그나마 익숙하지만, 히브리어는 처음 보는 순간 '이게 문자인지 그림인지'부터 헷갈리고 시작하니 공부하는 입장에서는 괴롭기 그지없다. 일단 히브리어 문자와 발음을 서로 매칭하는 것부터 해결해야 하고, 이걸 겨우 해내고 나면 이어지는 각종 법칙과 문법의 향연은 히브리어에 대한 정내미가 뚝 떨어지게 만든다. 히브리어를 공부하는 학생들의 마음에는 계속 이런 목소리가 울려퍼질 것이다. '패스만 하자', 'D라도 좋사오니…' 

히브리어든 헬라어든 그 벽을 넘기 힘든 또 하나의 이유는, 짧으면 한 학기, 길면 두 학기를 배우고 나면 더 이상 배울 필요가 없어지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신학교에서는 기초 과정만 필수로 들으면 되고, 그 이상의 과정은 배울 필요가 없도록 커리큘럼이 짜여 있다. 그러니 '어떻게든 패스만 하자'는 마음으로 한 학기 내지 두 학기를 버티고 나면, 더 이상 쳐다볼 필요가 없어진다. 학부를 마치고 신대원에 들어가면, 머릿속에 있던 고전어 문법에 대한 전반적인 지식이 어느새 사라져 있는 자신을 마주하게 된다. 더듬거리며 읽을 수 있는 정도만 돼도 실로 대단한 취급을 받는 것이 현실이다.

고전어의 벽을 넘기 힘든 세 번째 이유는, 막상 목회 현장에서 쓸 일이 별로 없다는 점이다. 단어를 모르고 문법을 몰라도, 원어를 직접적으로 언급하는 경우가 아닌 이상 설교를 준비하는 데 큰 어려움이 없다. 각종 주석에서 다루고 있는 내용을 가져다 쓰면 되고, 원어를 언급해야 할 때는 신학생·교역자들 사이에 불법 복제판이 말 그대로 판을 치고 다니는 '바이블웍스(Bibleworks)'든 '로고스 바이블(Logos Bible)'든 '어코던스(Accordance)'든 프로그램을 돌리면 되기 때문이다. 이외에도 각종 프로그램으로 설교에 필요한 '정보'는 쏙쏙 빼올 수 있다. 그러니 고전어 단어를 외운다거나 문법을 공부한다거나 하는 '노력'이 굳이 필요하지 않다고 느끼는 게 현실이다. 실제로 히브리어를 공부하는 나에게 주변 사람들은 이런 말을 하곤 한다. "그거 다 프로그램 돌리면 되는데 굳이 공부해야 해?"

그래도 넘어야 하는 고전어의 벽

그래도 넘어야만 하는 게 고전어의 벽이다. '원어의 맛'이라는 게 있기 때문이다. 네덜란드 라이덴대학에서 가르쳤던 타카미츠 무라오카(Takamitsu Muraoka)는 그의 저서 <왜 성서를 원어로 읽어야 하는가? Why Read the Bible in the Original Languages?>의 결론부에 이렇게 말한다.

"성서를 원어로 읽으면 현대의 번역본으로 읽는 것보다 그 의미와 메시지를 더 정확하게, 또는 (번역된 것과는) 다르게 이해할 수 있다."1)

혹자는 "원어의 맛이라니, 그런 맛이 어디 있느냐"고 반문할 수도 있다. "시중에 나와 있는 번역본들의 질이 나쁜 것도 아니니 이것들만으로도 충분하지 않은가?"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러나 나는 '원어의 맛'이라는 게 있다고 단언한다. 동사의 시상이 주는 뉘앙스, 어근에서부터 나타나는 뉘앙스 등 원어를 직접 대할 때에만 느낄 수 있는 그 맛이 있기 때문이다.

한 가지 예를 들자면, 히브리어 동사의 시제 중 '완료(Perfect)' 시제는 시상에 있어 기본적으로 '종결된 동작'을 가리킨다. 그런데 본문의 문맥상 분명 미래에 해당하는 일인데도, 동사의 시제를 보면 '완료'로 나타나는 경우가 있다. 이때 화자는 아직 일어나지 않은 일을 '이미 끝난' 혹인 '성취된' 일인 것처럼 말하고 있는 것이다. 즉 화자는 미래의 일이 이미 분명하게 이뤄진 것과 같은 강한 마음의 확신과 믿음으로 가득한 상태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런 것이 번역본에서는 읽어 내기 어려운 '원어의 맛'이다. 이 맛을 제대로 느끼기 위해서는 넘기 어려운 고전어의 벽을 넘어야만 한다. 그리고 원전 속으로 들어가야 한다.

원어를 제대로 공부하면 '잘못된 맛'을 찾아내는 데도 도움이 된다. 요즘은 온갖 매체를 통해 고전어를 활용한 이상한 해석들이 유포되고 있다. 이를테면 '광야'를 뜻하는 히브리어 '미드바르(midbar)'가 '말씀이 있는 곳' 혹은 '말씀이 성취되는 곳'을 의미한다고 주장한다거나, '신성사문자(Tetragrammaton, YHWH)'를 '손을 보라, 못을 보라'로 해석한다거나, 십자가 위의 명패에 담긴 히브리어의 첫 글자를 따면 신성사문자가 나와서 사람들이 반대한 것이라고 주장한다거나, 마태복음 1장에 나오는 족보의 14대를 히브리어 게마트리아(gematria)로 보면 '다윗'이 나온다고 주장한다거나 하는 '잘못된 맛'들이 있다. 이런 것들은 사람을 혹하게 만들지만, 제대로 된 원어의 맛을 보면 저런 말은 더 이상 나오지 않는다.

고전어의 벽을 넘기 위한 좋은 보조재

고전어의 벽을 넘기 위해서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생각해 본 적이 있다. 학교를 다닐 때 히브리어 튜터를 하면서 '어떻게 하면 튜티들이 F를 안 맞게 할 수 있을지', '어떻게 해야 문법을 효과적으로 설명하고 이해를 도울 수 있을지' 고민했기 때문이다. 이 고민은 튜터 활동을 하는 내내 지속됐다. 튜티가 어떤 질문을 해 오더라도 충분한 답을 줄 수 있도록, 다양한 문법책을 살펴보며 공부를 놓지 않았고, PPT도 직접 만들어 튜터링을 진행했다.

하지만 한 가지 막히는 부분이 있었었다. 문법과 단어에 치우쳐져 있다 보니, 해석에 도움이 되는 배경적인 내용들이 취약한 부분으로 다가왔다. 국내에 출판된 책에서 도움을 얻을 수 있을지 찾아봐도, 기초 문법이나 구문에 대한 내용을 담은 책들은 있지만 그 배경에 대한 책은 찾아볼 수 없었다.

<성서 히브리어와 아람어 연구 - 언어학으로 새롭게 읽는 구약성서> / 벤자민 J. 누난 지음 / 신철호 옮김 / 감은사 펴냄 / 508쪽 / 4만 4000원
<성서 히브리어와 아람어 연구 - 언어학으로 새롭게 읽는 구약성서> / 벤자민 J. 누난 지음 / 신철호 옮김 / 감은사 펴냄 / 508쪽 / 4만 4000원

얼마 전 벤자민 J. 누난의 <성서 히브리어와 아람어 연구 - 언어학으로 새롭게 읽는 구약성서>(감은사)가 출판됐다. 이 책의 출판 소식을 접한 나는 박수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내 취약점인 부분을 메우는 데 도움을 줄 만한 아주 중요한 책이었기 때문이다. 저자는 책의 초반부에서 이 책을 통해 다루고자 하는 내용을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이 책은 성서 히브리어와 아람어에 관한 관심 논의들을 개관한다. (중략) 전반적으로 이 책은 성서 히브리어와 아람어 연구의 발전에 초점을 맞춘다. 나는 히브리 성서를 이해하고자 애쓰는 특정한 독자층을 염두에 두고 있기 때문에 이 책은 일반적인 히브리어와 아람어에 관한 내용을 담고 있지 않다." (40쪽)

저자도 밝히고 있듯이, 이 책을 읽는다고 해서 히브리어·아람어에 관한 문법 지식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지는 않는다. 솔직히 말해서, 애초에 문법 지식이 기초 수준 정도라도 없는 사람은 이 책의 내용을 이해하기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이 책은 원어를 통해 히브리 성서를 직접 읽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분명히 필요한 책이다.

저자는 총 10개의 장을 통해 히브리어·아람어에 관련된 논의들을 다룬다. 가장 먼저, 배경이 되는 언어학에 관한 내용을 다루고(1장), 이어 성서 히브리어·아람어 연구사(2장), 어휘론과 사전학(3장), 동사의 어간(4장), 시제, 상 ,법(5장), 담화 분석(6장), 어순(7장), 사용역, 방언, 문체 교체 그리고 코드 전환(8장), 성서 히브리어·아람어 본문의 연대 결정(9장), 더 나아가 성서 히브리어·아람어를 어떻게 하면 효과적으로 가르칠 수 있는지(10장)에 대한 내용들을 다룬다. 최근까지의 논의들을 비롯해 히브리어·아람어를 공부할 때 필요한 배경적 논의를 충실히 다룬다. 각 장의 간략한 이야기들은 서론에서 소개하고 있다(42~44쪽).

나에게 이 책을 가리켜 이렇게 표현하고 싶다. '고전어의 벽을 넘기 위한 좋은 보조재'. 이 책은 단순히 문법적인 부분에 관한 공부를 넘어서, 그 내용을 이해하고 본문 해석에 적용하기 위해 필요한 공부에까지 도움을 줄 수 있는 좋은 보조재다. 성경과설교연구원(IBP) 송민원 교수는 이 책을 다음과 같이 평했다. "이 책을 읽는다고 히브리어를 알게 되는 것은 아니지만, 이 책을 읽지 않고 히브리어를 안다고 하지 마라." 나 또한 이 평에 동감하며 같은 평을 내린다.

"이 책을 읽는다고 히브리어를 알게 되는 것은 아니지만, 이 책을 읽지 않고 히브리어를 안다고 말할 수 없다."

최이형순 / 구약을 전공한 신학도. 히브리어가 세상에서 제일 쉽다고 느끼는 한량.


1) Takamitsu Muraoka, Why Read the Bible in the Original Languages? (Leuven,  Paris, Bristol, CT; Peeters, 2020), 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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