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샐리어스(Don E. Saliers)는 미국 에모리대학교(Emory University) 신학대학원(Candler School of Theology)의 교수이자 음악가이며, 수많은 저술과 다양한 학술 활동을 이어 온 이 시대 가장 저명한 예배신학자·영성신학자 중 한사람이다. 많은 이에게 학문적·영적 통찰을 안겨 준 탁월한 스승이라고 부를 만한 인물이다. 학문적인 깊이와 교회 현장에서의 실용성, 그리고 가독성을 고루 갖춘 그의 저서 <예배의 감각 - 경외, 기쁨, 진리, 희망의 회복을 위하여>(비아)를 소개할 수 있게 되어 기쁘다.

본격적인 소개에 앞서

인간은 전적으로 타락해 스스로 자신의 의를 이루지 못한다는 엄연한 사실에 대한 자각이 개혁교회의 아름다운 신학적 전통을 형성했다고 생각한다. 물론 그 자각으로 향하는 길은 다양하나, 한국 개신교회에 익숙한 방식은 역시 '통렬한' 회심이다. 가슴을 치는 회개는 1907년 평양 대부흥회를 위시하여 우리 교회의 자랑이요, 돌아갈 본향이며, 예배의 목표이기도 했다. 회심 자체는 빛나는 유산임이 분명한데, 마음 한구석이 헛헛한 이유는 예배의 목표가 '회심'에 국한되고, 심지어 이에 대한 강박적 집착도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기 때문이리라.

신앙과 예배에서 강렬함 혹은 '뜨거움'을 추구하는 분위기가 한국교회의 획일성과 맞물려 있는 것도 부인하기 어렵다. 오랜 기간 한국에서 교수로 재직했던 박대인 교수(미국명 Edward W. Poitras)는 미국의 개신교 예배가 한국교회에 거의 고스란히 유지되어 외국인들도 큰 불편 없이 예배드릴 수 있다고 소개하며, 한국교회의 특징은 다른 곳에서 찾기 힘든 열정이라고 표현한 바 있다.1) 1919년 아서 브라운(Arthur Judson Brown)이 그의 저서 <극동의 지배>(한국기독교역사연구소)에서 묘사하는 한국교회는 '강렬함'으로 요약된다.2) "진리 가운데 일부만을 옹호하는 일에 강렬하다"라는 문장이 눈길을 끈다. 그가 이야기한 강렬함은 열심과 독선을 포괄한다. 예배에서의 뜨거움을 비하할 이유는 전혀 없다. 회심을 촉구하는 강렬한 예배는 얼마든지 자랑스러운 전통일 수 있다고 생각한다. 다만 그 회심의 경로를 국한하는 강렬한 '감각'에 대한 집착과 이와 연관된 신앙과 예배의 획일화는 상당히 안타까운 부분이다. 멀리는 비예전적인 '개척자 예배(Frontier Service)'의 영향부터 최근의 구도자 예배에 이르기까지 짙게 드리운 미국 개신교회의 영향도 무시할 수 없다.

다양한 예배에 대한 경험이 부족하다 보니 새로운 것들은 일단 색안경을 끼고 본다. 교리에 대한 애정이 지나쳐 과잉 충성이 되고 그렇게 양성된 '종교 경찰'들의 숫자가 교회 내에 만만치 않다. 소위 낯선 것에 대해 교리적 잣대를 들이밀어, 다양한 예배 전통이 대서양과 태평양을 건너오면 이단 시비로 귀결되는 씁쓸한 경험이 적지 않은 것이다. 특이하다 싶은 형식의 예배나 음악을 접하면 일단 의심의 눈초리로 보며 거의 예외 없이 '성경적 예배냐 하'는 질문을 던진다. 이렇게 우리 한국 개신교회는 '강렬하게' 극단적이다. 학계 역시 이러한 경향에서 자유롭지 않다. 과거의 일부 전통에 대한 낭만적 기대가 지나쳐, 비판적 성찰이나 문화에 대한 이해가 결여된 상태에서 예전을 수입·소개하고 갱신이라는 단어를 거침없이 사용한다. 또 다른 형태의 극단과 독선의 굴레 속에 갇혀 있는 것은 아닌지 묻게 된다.

<예배의 감각 - 경외, 기쁨, 진리, 희망의 회복을 위하여> / 돈 샐리어스 지음 / 이광희 옮김 / 비아 펴냄 / 184쪽 / 1만 2000원
<예배의 감각 - 경외, 기쁨, 진리, 희망의 회복을 위하여> / 돈 샐리어스 지음 / 이광희 옮김 / 비아 펴냄 / 184쪽 / 1만 2000원

이런 모든 문제를 지금 소개하는 돈 샐리어스의 <예배의 감각>, 이 한 권의 책이 해결해 준다고 이야기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런데 이 책은 즉답을 주기보다는 우리에게 진지한 성찰의 기회를 제공한다. 풍선 안에 갇혀 산다는(Living in the Bubble) 유명한 이야기가 있는데, 한국 개신교회의 예배를 논함에 있어 어느 정도 수긍할 만한 표현이다. 이 책은 기독교 예배가 매우 풍성한 역사와 신학, 메타포와 감성과 경험을 담고 있다는 사실을 친절하게 알려 준다. 풍선 밖 세상을 세밀하게 보여 주는 일종의 렌즈 역할을 할 수 있다고 감히 생각한다. 광범위한 자료를 제시하면서 다채롭고 풍요로운 예배의 세계로 우리를 초대한다. 따뜻하면서도 깊이를 놓치지 않고, 가벼운 듯 보이나 품위를 잃지 않고 전해 주는데, 평자가 개인적으로 가장 애정하는 방식이다. 책의 구조와 내용에 대해 이야기해 보자. 이 부분은 예배라는, 익숙하다고 생각하지만 사실 제대로 고민해 본 적이 없는 주제를 다룸에 있어서 상세한 안내가 필요한 독자들을 위해 준비한 것이다. 직접 책을 읽으시기를 권고한다. 

책의 구조와 내용

<예배의 감각>은 비교적 적은 분량의 책으로, 서론과 총 4부의 내용, 부록과 결론으로 구성돼 있다. '감각'이라는 커다란 주제가 이 책을 관통하고 있다. 샐리어스는 예배를 다룸에 있어 중요하게 여겨야 할 네 가지 감각, 즉 '경외(awe)', '기쁨(delight)', '진리(진실됨, truthfulness)', 그리고 '희망(hope)'을 소개하고 이 감각들이 왜 하느님을 체험하는 방식인지 설명한다. 나아가 이러한 감각들을 어떻게 예배와 일상에서 활용하고 심화할 수 있을지 모색한다. 

서론에서는 저자의 의도를 요약하면서 자신이 참석했던 예배 경험을 나눈다. 샐리어스는 예배에서 이뤄진 다양한 경험을 통해 그분의 "은총을 생생히 감지"했음을 고백하면서, 거룩한 갈망을 가지고 예배에 참여하자고 독자들을 초대한다.

1장에서는 경외의 감각이 예배에서 왜 필요한지 이야기하며 다양한 경외의 통로들을 소개한다. 그는 자연 속에서 창조질서의 경이로움을 발견하고, 죽음을 통해 "알 수 없는 신비"를 체험한다고 말하면서 우리의 예배와 일상에서 이러한 신비와 경이는 풍성하게 경험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2장은 예배를 통해 하느님을 기뻐하고 찬미하는 것에 대한 묘사를 담았다. 샐리어스는 예배가 '자기 계발'이나 '가벼운 위로를 받기 위한 행사'로 여겨지는 것을 경계하면서, 주님의 은총과 일상의 경험에서 경건한 감격과 기쁨이 가득하기를 소망한다. 그는 예배에서 기쁨이라는 선물을 향유·계승하도록 기억하고 훈련하기를 촉구한다. 물론 그 방법은 상상을 초월할 만큼 다양하다.

3장은 진리와 예배의 상관관계를 논한다. 간단하게 정리하면, 예배자들은 진실하게 예배에 참여해야 한다. 누구를 예배해야 하는지, 우리 자신이 어떤 존재인지에 대한 분명한 인식이 필요하다는 이야기다. 그는 참된 예배를 통해 우리가 "온전한 인간"이 되며 "우리가 온전한 인간이 되려 할 때 예배는 진리를 좀 더 온전히 드러낸다"고 주장한다(79쪽). 그 예배는 "삶을 나누며 영과 진리로 드리는 예배"(82쪽)다. 그에 의하면 애통함과 고백과 간증을 통해 예배 안에서 진리의 감각을 되살릴 수 있다.

4장은 희망의 감각에 대한 이야기다. 샐리어스는 낭만적인 낙관주의를 경계하며 예배가 소망을 배양하는 토양임을 밝힌다. 기독교인들은 개인적인 믿음의 성장뿐만 아니라 공동체와 세상의 회복과 발전에 대해 기대한다. 샐리어스가 이야기하는 소망은 종말론적이며 예언적이고 공동체적이다. 소망은 "피상적인 낙관주의"가 아니다. 이미 시작됐지만 아직 완성되지 않은 하느님의 통치에 대한 갈망이자 선포다!

결론에서는 지금까지의 논의를 정리하면서 하느님을 예배하며 경외를 느끼고, 기뻐하고, 진실되며, 소망을 품는 경로를 되새기게 해준다. 예배의 여러 가지 순서들을 통해, 예를 들면 시편의 낭송이나 성찬에서 빵이나 잔을 받을 때 이러한 감각들은 새롭게 깨어난다. 물려받은 전통을 소중히 여기면서 우리가 처한 불가피한 문화적 상황 속에서 예배의 감각들을 적극 활용하여 은총의 여정에 참여해야겠다.

부록에서는 '전례 개혁의 신학적 기초'라는 제하에, 예배의 개혁에 있어서 전통과 문화의 중요성에 대한 이야기를 담았다.

왜 이 책인가?

서두에 다소 길게 서술한 한국 개신교회의 예배를 평가하는 시금석으로, 예배라는 넓은 바다를 항해하는 길잡이로 이만한 책이 있을까 싶다. 한국의 예배학계와 신학교에는 자신을 성찰하는 참고 자료로, 일반 성도들에게는 예배의 본질과 예배자의 자세에 대한 깨우침을 제공하는 저서로 추천한다.

우선 샐리어스는 사변적인 이론이 아닌 자신이 직접 체험한 삶의 이야기들을 이 책에 진솔하게 담았다. 하나님을 만난 경이의 경험이 서술의 바탕에 깔려 있다. "경이감 없이 형성된 영성이란 자기 계발의 노력에 불과하다"는 유진 피터슨의 이야기가 생각난다.3) 이 책은 신실한 예배자의 고백이 담긴 저서다. 그가 이야기하는 예배의 감각은 그가 이미 경험하고 실천하고 실험을 마친 검증된 결과물이다. 그가 소개하는 찬양들은 음악가로서 직접 듣고 연주하고 회중들과 더불어 경외와 기쁨과 진실함과 소망으로 불렀던 곡들이다. 학술 모임에서 찬송가를 연주하며 참가자들을 '예배'로 맞이했던 그의 모습을 잊을 수 없다. 그의 수업을 들었던 이들의 이야기를 통해, 그가 수업과 예배의 경계를 자유롭게 넘나드는 사람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그는 학자이기에 앞서 예배자다. 논지가 자연스럽고 설득력이 있는 것은 놀랄 일이 아니다. 성서를 읽거나 찬양을 하거나 성례전에 참여하는 일련의 활동을 통해 예배에서 참된 기쁨을 풍성하게 누릴 수 있어야 함을 역설하는데, 이 또한 자기 고백적인 내용이다.

둘째, 신학적 깊이와 방대한 역사적 자료를 섭렵한 실력이 경이로우며, 특별히 난해한 주제를 일상의 언어로 풀어서 전달하는 부분도 칭찬을 아끼고 싶지 않다. 탁월한 신학자의 웅숭깊은 사상이 담겨 있는데 마치 부담 없는 수필처럼 읽힌다. 샐리어스는 삼위일체 하나님과의 교제와 그분의 은총이라는 가장 기본적인 예배의 주제와 목표에 충실하도록 우리를 일상의 언어로 안내한다. 

세 번째로, 그의 건강하고 균형 잡힌 신학을 주목해야겠다. "예배는 피상적인 낙관주의를 가르치지 않습니다"(141쪽)라는 표현을 통해 소위 '긍정의 힘'에 매몰된 낭만주의의 한계를 날카롭게 지적한다. A. W. 토저가 하느님과의 감성적인 만남이 "무례한 친밀감"으로 바뀔 수 있음을 적시한 바 있듯이, 샐리어스는 친절의 바탕에 하느님께 대한 경외라는 분명한 분별력을 두고 있다. 그는 예배의 본질에 집중한다. 삼위일체 하느님과의 교제를 놓치지 않으며 소비자(consumer) 중심의 예배에 경종을 울린다. 물론 문화와 세대에 대한 고려는 당연히 필요한 것이라 생각하지만, 결국 예배는 하느님의 계시에 대한 우리의 공동체적 응답임을 상기시킨다.

네 번째로 그의 포용적 태도가 인상적이다. 퀘이커 예배의 침묵, 쉐이커들의 춤(48쪽), 부활절 전날의 전통적인 예전 등 그가 다양한 예배 형식을 상대하는 방식에는 아무런 차별이나 선입견을 발견할 수 없다. 고교회와 저교회, 즉 예전적인 교회와 비예전적인 교회 사이에 우열은 존재하지 않는다(76쪽). 소위 '예배 전쟁'이라고 부르는 전통과 현대의 갈등·분리가 그에게서 화합·공존의 모습으로 나타난다. 강렬함에 대한 집착, 낯선 것들에 대한 교조주의적 배척에 사로잡힌 일부 한국 개신교회에 특별히 필요한 덕목이다.

다시 우리를 돌아보며

우리의 예배를 돌아보자. 앞서 서술한 대로 강렬한 체험에 몰입하고 있지는 않은지, 기능주의적이고 목표 지향적이지 않았는지, 모방에만 급급해 무엇이 본질적 요소인지에 대한 숙고를 결여하고 있지는 않았는지, 예배에서 거룩한 경이를 갈망하기보다 옳고 그름을 두고 교조주의적 접근에 몰입하고 살지는 않았는지 되돌아보길 바란다. 샐리어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 보자. 신실한 예배자로서 주님의 은총을 다양한 감각을 통해 맛본 그의 살아있는 경험에 동의하고 응원하며 경청할 수 있을 것이다. 본질에 집중하면서도 다른 전통들을 환대하는 서술적이고 통합적인 자세에서, 우리가 잃어버린 공정과 환대의 가치를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4)

제프리 웨인라이트(Geoffrey Wainwright)는 교리를 정당화하기 위해 사용된 중세 가톨릭 미사의 한계를 예리하게 지적한 바 있다.5) 예배의 목표도 중요하고 일정한 교육적 기능도 당연히 심도 있게 취급해야겠지만, 역시 예배는 주님과의 만남이며 은총을 체험하는 시간이다. 예배는 순수하고 신실한 신앙고백이 우리 감각을 통해 펼쳐지는 장이 돼야 한다. 사랑과 환대가 가득한 사귐을 대신하여 생명을 상실한 지식의 축적이 목표가 되고, 사막같이 건조한 관계 속에서 이뤄지는 사역이 우리를 목마르고 지치게 만들지 않았는가? 예배 갱신의 싹은 이런 딱딱한 토양에서는 절대 틔울 수 없고, 선동적인 구호의 문법으로는 결코 가독성과 설득력을 갖지 못한다. 그래서 샐리어스의 글에 귀 기울이지 않을 수 없다. 

결론은 본질의 회복이다. 샐리어스는 하느님의 은총에 참여하는 일, 그것이 예배의 본질이며 의미임을 상기해 준다. 그러니 개혁이니 갱신이니 하는, 오히려 식상하고 구태의연한 표현은 이제 접어 두자. 선동과 구호의 언어들은 귀를 지치게 하고 마음을 편치 않게 만든다. 변화도 좋고 갱신에도 동의하지만, 예배는 애당초 그런 강박적 목표와는 거리를 두고 있다. 갱신의 대상은 성도들, 즉 우리 자신이다. 샐리어스가 주장하는 대로, 예배자로서의 거룩한 감각을 회복하는 일이 급선무다. 경외와 기쁨과 진리와 희망으로 예배드리는 이들이 인생을 대충 살 리 없다. 어두운 세상에서 빛이 드러나지 않을 수 없고, 그리스도의 아름다운 향기를 숨길 방도가 없을 것이다. 샐리어스에게 있어서 예배와 일상은 이렇듯 하느님을 만나고 은총의 기억이 되살아나는 시공간이다. 우리의 예배와 일상이 얼마나 무덤덤하고 수동적인지 되돌아보게 된다. 균형 잡힌 시선과 가장 친절한 방식으로 독자들을 상대하고 품어 주는 책을 읽으며, 샐리어스가 제시하는 거룩한 감각이 예민해지고 풍성해지기를 소망한다. 풍선 밖의 아름답고 풍요로운 세상을 마음껏 향유하는 복된 예배의 여정에 동행할 친구가 되어 줄 것이다. 이 책은 예배의 아름다움에 대한 거장巨匠의 신실한 증언이 빼곡이 담긴 수작이다.

안덕원 / 서울신학대학교에서 신학을, 서강대학교에서 종교학을 공부했으며 미국의 드루대학교에서 석사(M.Div.)와 박사(Ph.D.) 과정을 마쳤다. 이후 드루대학교에서 예배학·설교학 교수를 역임했고, 뉴저지 시온성교회에서 담임목회를 했으며, 현재는 횃불트리니티신학대학원대학교에서 실천신학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1) Edward W. Poitras, "Ten Thousand Tongues Sing: Worship among Methodist in Korea" in The Sunday Service of the Methodists: Twentieth-century Worship in Worldwide Methodism : Studies in Honor of James F. White (Kingswood Books, 1996), 195-208. 뜨거운 찬양(fervent singing)이라는 표현도 사용했다.
2) Arthur Judson Brown <극동의 지배 - 한국의 변화와 동양에서 일본의 패권 장악>(한국기독교역사연구소, 2013), 588.
3) 유진 피터슨, <일상, 부활을 살다>(복있는 사람, 2015). 44.
4) 샐리어스의 절친 제임스 화이트(Jaems F. White) 박사는 예배에서 어떤 모범적이거나 절대적인 기준을 추구하기보다 "현상"에 집중하여 객관적으로 살펴보겠다는 "서술적 접근 방법"을 제시했다. 개신교 예배가 가지고 있는 폭넓은 스펙트럼을 고려하여, 자기가 선호하는 예배 방식을 고집하기보다 다른 예배 전통으로부터 배우겠다는 자세야말로 예배를 대하는 이에게 요구되는 기본적인 덕목이라고 생각하며 샐리어스가 공유하는 방식이다.
5) 기도의 법과 믿음의 법에 대한 제프리 웨인라이트의 설명을 참고하라. Geoffrey Wainwright, Doxology: The Praise of God in Worship, Doctrine and Life: A Systematic Theology (New York, Oxford University Press, 1984), 218-283. 단순히 기도가 믿음을 형성한다고 이해하는 것은 원래의 의도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것이다. 이 개념의 기원이라고 알려진 프로스페르(Prosper of Aquitaine, A.D. 390-455)는 성경과 전통에 토대를 둔 기도가 신앙에 영향을 주는 것으로 이해했다. 즉 기도와 믿음의 상호 밀접한 관계 속에서 이해해야 할 것이다. 이 각주 내용은 필자가 쓴 <예배, 공동체, 삼위일체 하나님>(제임스 토런스, IVP, 2022)에 대한 글에서 발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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