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등, 마음의 문제일까 뇌의 문제일까

사람과 사람 사이에는 갈등이 존재한다. 그리스도인이라고 해도 예외는 없다. 사춘기 아들은 시간을 아껴 쓰라는 아빠의 평범하고 지당해 보이는 메시지에 화를 낸다. 결국 격한 말다툼으로 이어진다. 의도치 않은 결과에 양쪽 모두 깊은 상처를 입는다. 무엇이 문제일까. 아빠는 예배에 참석해서 설교를 듣고 마음을 추스렀지만, 집에 돌아와 아들의 모습을 보니 이전 기억이 떠올라 또다시 감정이 묘하게 흔들리기 시작한다. 하지 않으면 좋았겠지만 아빠는 해야만 한다고 생각하는 말을 내뱉는다. 다시 전쟁이다. 무엇이 어디서부터 잘못됐을까.

부모와 자녀 사이에만 이런 일이 있는 것은 아니다. 부부 사이에도, 친구 사이에도, 인간이 인간을 만나는 모든 관계에는 예기치 못한 불화와 갈등이 발생한다. 이것이 심화·고착화되어 자신과 타인을 괴롭고 힘들게 만들기도 한다. 행동의 문제는 결국 마음의 문제다. 마음이 꼬여서 그렇다.

<영혼의 해부학 - 뇌를 통해 마음을 들여다보다>(IVP)을 우리에게 선사한 커트 톰슨(Curt Thompson)은 '마음'과 '뇌'는 동일한 개념은 아니지만, 깊은 연관성이 있다고 말한다. 신경 의학자인 톰슨은 마음이 변하려면 뇌 신경망의 변화가 필요하다고 본다. 이는 물론 뇌의 특정 부위에 하나님이 작용하시는 자리가 있어, 거기에 뭔가를 주입하면 문제가 해결된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그런 특정한 세포는 없다. 다만 하나님은 우리 몸과 마음, 그리고 뇌를 통해 우리 행동을 변화시키신다.

<영혼의 해부학 - 뇌를 통해 마음을 들여다보다> / 커트 톰슨 지음 / 김소영 지음 / IVP 펴냄 / 504쪽 / 2만 7000원
<영혼의 해부학 - 뇌를 통해 마음을 들여다보다> / 커트 톰슨 지음 / 김소영 지음 / IVP 펴냄 / 504쪽 / 2만 7000원
뇌의 구조와 역할

저자는 좌뇌의 분석적·논리적·언어적 기능과 우뇌의 통합적·정서적·비언어적 기능을 설명하며, 좌뇌와 우뇌의 기능적 통합이 매우 중요하다고 말한다. 1960년대 중반 신경 과학자 폴 매클린(Paul Maclean)이 제시한 뇌 모형을 저자는 "삼위일체 뇌"(89쪽)라고 부르며, 뇌간과 소뇌를 포함한 소위 파충류 뇌(호흡, 심장박동, 혈압, 신체 균형 관련)와 변연계 회로(두려움, 분노, 쾌락 등 정서 관련)를 언급한 후, 이들 신경세포가 하지 못하는 의식적인 정신 활동을 담당하는 '전전두피질'에 주목한다.

"생물학적으로 '우리를 인간답게 만드는' 것에 대하여 생각할 때, 우리는 전전두피질에 대해 생각하는 것이다. (중략) 그러나 추측과는 달리, 전전두피질이 대부분의 일상적 활동을 일으키는 건 아니다." (90쪽)

이 부분이 우리가 일상에서 겪는 혼란과 갈등에 대한 신경 과학적 해명이라고 할 수 있다. 뇌간과 변연계 회로에서 쏟아 내는 신호들을 전전두피질에서 의식적으로 통합하지 못할 때, '사고'가 발생한다. 그렇다면 사고가 빈번하게 일어나는 원인을 제대로 분석하고 인지하면 사고를 피할 수 있지 않을까. 뇌의 하부구조에서 보내는 본능적 충동을 거스르는 것이 가능하다면, 어떻게 그렇게 할 수 있을까.

변화하는 뇌

뇌의 역할은 참으로 중요하다. 그런데 뇌는 태어나서 어른이 될 때까지 고정돼 있지 않다. 오히려 뇌는 1000억 개의 신경세포들이 각각 1만 개의 연결망으로 끊임없이 접속하며 변화해 간다. 뇌는 두개골 안에 갇혀 있지만, 여러 감각기관을 통해 다른 사람과 끊임없이 접촉하는 것을 통해 활동한다. 저자의 전문적인 설명을 빌리자면, 뇌는 "높은 가소성"을 가지고 있다. "이는 세포 연결의 수준에서 새로운 연접을 만들고, 많은 발화 작용을 일으키지 않는 연접들은 제거하는 능력을 말한다."(98쪽) 즉, 뇌는 맺고 끊는 작용을 통해 살아간다.

그렇다면 '사고'를 피하기 위해 우리는 뇌의 이러한 특징을 활용할 수 있다. "유산소 활동, 주의 기울이기 훈련, 새로운 학습 경험이라는 신경 가소성의 삼합은 모두 뇌의 유연도를 높이는 데 필수적인 역할을 한다."(319쪽) 사실 답답한 마음을 달래고 털어 버리기 위해 뜀박질을 한다든가, 색다른 취미 활동에 몰두한다든가 하는 우리의 일상적인 행위들은, 설령 왜 그래야 하는지 신경 과학적으로 설명하지 못한다 해도 이미 하고 있는 일이다. 이런 식으로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의 마음을 담아낼 수 있는 연결망을 구성하고, 고착화된 부정적 패턴을 끊어 내는 훈련을 통해 뇌의 유연성을 높여야 한다.

통합을 향한 여정

이 책 전체에서 가장 강조되는 점은 '주의 기울이기' 훈련인 듯하다. 일상생활에서 주의를 기울임으로써 위험한 일을 피할 수 있듯이, 신경 과학적 측면에서도 뇌에서 일어나는 일에 주의를 기울이며 내 몸의 변화를 읽어 가는 것이 필요하다. 때때로 우리는 다른 사람이 내 마음을 알아주지 못한다고 불평하지만, 실제로 자신에게 주의를 기울이지 못하는 존재는 바로 자기 자신이라는 점을 깨달아야 한다. 저자는 기억·정서·애착에 대해 설명하면서 우리 내면을 주의 깊게 살펴보도록 안내하며, 통합된 마음을 향한 변화의 여정을 소개한다.

어떤 갈등을 반복하게 만드는 특정한 기억이 그대로 유지된다면, 우리는 갈등에서 헤어날 길이 없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저자는 기억을 바꾸고 변화시킬 수 있다고 말한다. 왜곡된 기억과 정서를 끊어 내고 새롭게 연결하는 '배선 작업'이 필요한 것이다. 곧 "기억하는 것을 다르게 경험함으로써"(144쪽) 우리를 괴롭히던 기억을 창조적으로 전환할 수 있다.

"기억하기는 단순히 마음의 기능에 불과하지 않다. 오히려 우리가 하나님과 사람들의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행위들을 회상할 때 드러나는 우리 삶의 체화된 표현이다." (154쪽)

어떤 사람의 뇌도 홀로 있지 않다. 뇌는 상호적이다. 두려움·슬픔·분노·수치심의 감정을 포괄하는 정서적 측면에서 치유에 이르는 변화가 일어나기 위해서는, 자신의 정서에 대한 이해와 더불어 다른 사람과 교감하고 더 깊은 차원에서 자신에 대한 하나님의 마음을 느끼는 일이 중요하다. 정서적 교감을 어렵게 만드는 기존의 애착 패턴을 공감과 경청의 상호작용을 통해 변형시키는 일은, 결국엔 뇌의 고착된 신경망을 변화시키는 일이다. 이렇게 통합된 마음을 형성하는 작업은 뇌의 전전두피질에서 일어나는데, 대략 아홉 가지 기능을 수행하는 이 전전두피질은 "우리를 우리가 부단히 되어 가는 존재로 만드는 잠재력을 지닌 장소다."(303쪽)

희망적인 변화만 일어난다면 가장 좋겠지만 현실은 늘 그렇지만은 않다. 이를 위해 저자는 우리의 희망과 달리 전전두피질의 와해(정서적 와해)가 일어날 때, 마음을 통합하기 위한 실질적인 지침도 소개한다. 간단하게는 몸의 자세를 바꾸는 것과 자신의 상태에 대해 질문을 던지는 것인데, 여기서 '누가·언제·어디서·무엇을·어떻게'를 묻는 것은 필요하지만 '왜'라는 질문은 던지면 안 된다는 점에 주의해야 한다. 애착 패턴을 탐색하고 "몸 스캔"을 실행하는 일(234~237쪽), 자신의 서사를 다시 쓰는 일도 유용한 방법이다. 하지만 마음의 통합을 위한 이러한 작업은 묵상·기도·금식·연구·고백이라는 영적 훈련을 동반한다.

"모든 영적인 훈련은 의식적인 주의를 기울이는 기술이 필요할 뿐 아니라 이를 뒷받침하는데, 이 기술은 우리가 마음을 성령에 둘 수 있게 해 준다. 우리가 주의를 기울이고 있는 것에 주의를 기울일 때, 그리고 (중략) 하나님이 가장 큰 공명을 불러일으키는 어조의 목소리로 말씀하실 때, 우리 마음, 특히 전전두피질은 좀 더 통합되는 경향이 있다." (326쪽)

신경 과학적 설명과 영적 훈련을 아우르는 책

저자는 다소 낯선 신경 과학적 언어와 익숙한 영적 훈련을 이론적으로 꿰맞추지 않는다. 그 대신 저자는 자신이 임상적으로 경험했던 여러 사례를 공유한다. 이러한 사례들을 읽는 동안 나는 부분적으로 또는 전적으로 내게도 해당되는 문제점을 발견했고, 어떤 측면에서는 자연스럽게 해결의 실마리를 찾았다.

책 후반부에 제시된 창세기 1~3장 이야기에 대한 신경 과학적 해석은 매우 새롭고 흥미롭다. 지금 우리 두뇌 속에 일어나는 일을 성경은 어쩌면 이렇게 정확하게 묘사하고 있었을까. 이 책 곳곳에 등장하는 성경 해석은 내면의 통찰로 안내하는 역할을 수행하기도 하고, 본문을 새롭게 읽는 시야를 열어 주기도 한다.

이에 더해 이 책은 중간중간에 영적 훈련 방법 또한 소개해 주고 있는데, 기도와 성경 묵상 외에도 새롭고 실질적인 훈련 방법을 구체적으로 제시하고 있어 유익하다. 저자가 제시하는 '알려짐' 훈련은 자신을 알리는 훈련이다. 자기 밖의 존재자들에게, 그리고 하나님께 자신을 개방하고 교감하는 훈련으로 6주간 매일 훈련할 것을 권한다. '몸 스캔'은 자신의 몸과 마음의 움직임을 자세하고 세밀하게 자각하는 훈련이다.

그 외에도 친구 간의 모임에서 자기 이야기를 쓰고 나누는 자서전 쓰기 훈련, 주변의 특정한 공간에 주의를 집중하는 훈련, 한국 상황에서는 직접 적용하기가 다소 조심스러울 수 있는 '집단 고백' 훈련 등이 소개된다. 이런 훈련들은 전전두피질의 통합성을 활성화하며, 치유의 영이신 성령께서 활동할 수 있는 조건을 만드는 작업이라 할 수 있다.

저자의 신경 과학적 설명은 영적 변화와 성숙이 자기도취적 착각에 불과한 것이 아니라 뇌에서 일어나는 매우 실제적인 현상임을 확인해 준다. 공동체에서 이루어지는 기도와 말씀, 사랑의 교제와 친교, 이웃을 향한 봉사는 신경망의 변화를 통해 우리 마음에 생명과 평안을 가져다준다.

책 말미에 소개된 참고 문헌과 '토론의 길잡이'는 교회 소그룹 모임에서 이 책을 활용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마음의 실질적인 변화를 추구하며 과학적인 설명과 구체적인 실행 방법을 알기 원하는 모든 이에게 일독을 권한다.

박영식 / 서울신학대학교 교양교육원 교수. 조직신학 전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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