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 대선이 남긴 것…하나님나라 가르쳐 준 지식인들의 몰락

[뉴스앤조이-구권효 기자] 이번 대선이 '역대 최악의 비호감 선거'라는 말이 있던데 어쩜 이리 내 맘을 잘 표현했나 싶다. 몇 개월간 양당 후보와 그 지지자들의 네거티브 선전은 관심을 두려 하지 않아도 어쩔 수 없이 접할 수밖에 없는 일이었다. 혐오감이 드는 무엇을 꼭 볼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달까. 모 유명 정치인이 "대선 기간에는 멀쩡한 사람도 정신이 약간 간다"고 말했다던데, 지금은 그저 누가 되든지 빨리 이 정신 나간 판이 끝나서 나간 정신이 돌아오길 바랄 뿐이다.

20대 대선은 개신교에 무엇을 남겼는가. 여러 각도에서 조명할 수 있겠으나 나는 오늘 '지식인의 몰락'을 이야기하려 한다. 여기서 말하는 지식인이란, 한때 나를 비롯한 많은 그리스도인에게 영감을 주었던 사람들을 가리킨다. 보수적인 보통의 교회에서는 들을 수 없었던 그리스도인의 사회참여를 가르쳐 준, 개인 구원이라는 반쪽짜리 복음을 벗어나 하나님나라를 꿈꾸게 해 준, 교회 개혁이라는 가치를 말뿐이 아니라 삶으로 살아 낸 여러 목사·교수·운동가들 말이다.

이들은 마치 국민의힘 윤석열 후보를 찍으면 그리스도인이 아닌 것처럼,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후보를 찍어야 참그리스도인인 것처럼 만들어 버렸다. 양당 후보의 접전이 예상될수록 메시지는 더 노골적으로 변했다. '한국이 낳은 세계적인 신학자'로 알려진 어떤 교수는 3월 9일이 '그리스도인들의 신앙고백 날'이라고까지 말했다. 이 교수가 출연한 유튜브 방송은 "윤석열을 찍으면 하나님의 저주를 받을 것"이라고 말하는 목사가 운영하는 채널이다. 이외에도 '복음주의 사회 선교', '에큐메니컬' 정신을 외치던 영향력 있는 목사·교수들이 공공연하게 "민주당을 찍어야 한다"고 설파했다.

윤석열 후보의 무속 관련성을 비판하는 성명서는 왜 유독 진보 교계에서 쏟아졌을까. 이례적인 현상은 '정파'라는 기준으로 보면 쉽게 풀린다. 사이비 종교인이 윤 후보의 비선 실세라는 의혹은 무성한 뉴스에 비해 사실로 확인된 게 별로 없다. 그런데 무속을 연구하고 무교를 존중해야 한다던 학자들이 "사이비 주술 정치 놀음에 나라가 위태롭다"고 성내고, 문자주의적 성경 해석을 경계하던 목사들이 레위기·신명기 구절을 그대로 인용해 무속을 비판했다. "무속인과의 연관성은 절대 인정할 수 없다"던 사람들이 이재명 캠프에 무속인이 있는 사실에 대해서는 함구했다.

2022기독교대선행동(기대선)은 '정책 선거' 운동을 하겠다며 만들어진 단체다. 복음주의 사회 선교 진영에서 존경받는 '어르신'이 많이 참여했다. 그러나 그중에는 공공연하게 민주당을 지지하는 이가 많았고, 어떤 사람은 이재명 캠프에 소속돼 있었으며, 또 어떤 사람은 심하게 민주당 편파적이라 사회적 지탄을 받기도 했다. 기대선이 운영하는 페이스북 페이지에는 노골적으로 민주당을 지지하는 유의 게시물이 몇 번이나 올라왔다가 사람들의 비판을 받고 삭제됐다. '이재명 대통령 만들기'를 위한 단체가 아니냐는 의심의 눈초리가 많았지만, 기대선은 자신들의 운동 결과로 믿음을 사겠다고 했다.

기대선은 주요 대선 후보의 정책을 모니터링한 결과, 자신들이 제안한 정책과 가장 부합하는 공약을 내놓은 사람은 정의당 심상정 후보라고 발표했다. 그러나 기대선 조직에 이름을 올리고 있는 사람 중 상당수가 시종일관 이재명 후보에 대한 지지 의사를 드러내고 있다. 물론 대통령을 선택하는 기준이 정책만 있는 것은 아니지만, 정책 선거를 하자고 모인 사람들도 정책 선거를 하지 않는데 누구에게 정책 선거를 하자고 말할 수 있을까. 기대선은 한국 사회에서 왜 정책 선거가 되지 않는지 몸소 보여 준 꼴이 됐다. 고생한 몇몇 사람만 안쓰러울 뿐이다.

이런 현상은 사실 예견된 것이기도 했다. 조국 전 법무부장관 사태부터 박원순 전 서울시장 성추행 사건에 이르기까지, 한국 사회를 갈가리 찢어 놓은 이 사건들에 대한 그들의 행동 기준은 철저히 '정파'였다. 이렇게 말하면 발끈하겠지만, 아무리 생각해 봐도 국민의힘에서 저런 사건이 벌어졌다면 그들이 "별문제 아닌데 '검찰'이, '피해 호소인'이 일을 키우고 있다"고 하지는 않았을 것 같다. 민주당은 '내로남불' 정당이라는 오명을 쓰고 있다. 젊은이들 사이에서 '민주당 아저씨 복음주의', '민주당 기독교지부'라는 조롱 섞인 말들이 나오고 있다는 사실을 간과하면 안 된다.

물론 그들의 현실 인식도 이해는 한다. 자유당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수구 세력에게 다시 정권을 빼앗길 수 없다는 위기의식, 숱한 희생을 치르고 이제 고작 몇 발짝 뗐는데 다시 뒤로 돌아갈 수 없다는 절박함을 모르는 바 아니다. 그런데 그런 논리는 이제 너무 낡았다. 사람들은 이렇게 묻고 있다. 그래서 결국 또 민주당이냐고. 누가 뭐라 해도 지난 5년은 명백히 문재인 정부의, 민주당의 실패였다. '촛불 정부'를 믿고 국회 180석을 몰아준 결과는 민중에 대한 배신이었다. 민주당이 재집권하면 뭐가 더 잘될 거라고 기대하는 게 더 이상한 일이다.

세간의 정치 평론가들이 그런 말을 한다고 상처받지는 않는다. 하지만 하나님나라라는 가슴 벅찬 꿈을 꾸게 해 주었던 사람들이 고작 '2번을 막기 위해 1번을 뽑아야 한다'는 식의 논리를 설파하는 것만큼 보고 있기 괴로운 일이 없다. 그런데 여기서 한술 더 떠 대선에서 누구를 뽑느냐가 '참된 그리스도인'의 기준이 된다? 이는 "이명박 안 뽑으면 생명책에서 지운다"고 했던 어떤 목사의 말이나, 동성애 찬반 여부로 진실한 그리스도인을 가리겠다는 반동성애 진영의 논리와 원론적으로 다를 바 없다. 지금 이 글을 쓰면서도 고통스러운 것은, 그들의 책과 인생을 보며 내가 배운 복음은 그렇게 얄팍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3월 9일, 결국 1번이 이기면 그것이 '진짜 그리스도인'의 승리가 될까? 아니다. 이번 대선이 민주당의 승리로 끝나더라도 개신교는 이미 패배했다. 정파성에 함몰돼 1번과 2번의 이분법을 벗어나지 못하는, 빈곤한 상상력으로 새로운 비전을 제시하지 못하는 종교의 앞날은 뻔하다. 한때는 한국교회가 썩었다는 소리를 들어도 그들이 있기에 희망을 봤다. 그들의 말뿐 아니라 삶을 존경했다. 그래서 이 정신 나간 판에 누군가 쓴소리라도 해 주기를 바랐다. 하지만 이번 대선을 기점으로 그런 기대를 접는다. 20대 대선이 개신교에 남긴 것은 지식인의 몰락이요, 한 시대의 종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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