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앤조이-구권효 기자] 20대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교계에서 '무속' 혹은 '주술' 정치를 비판하는 성명서가 줄지어 나오고 있다. 1월 19일 한국디아코니아를 시작으로, 2월 17일 현재까지 총 24개 단위에서 성명서를 발표했다. "무속에 의존하는 국가 지도자를 절대 반대한다", "무속·비선 정치가 주권재민의 공론장을 대신할 수 없다", "사이비 주술 정치 놀음에 나라가 위태롭다", "한국교회여 이 나라를 주술에서 구하라" 등 성명서 제목만 봐도 자못 비장하다.

비판의 화살은 국민의힘 윤석열 대선 후보와 그의 배우자 김건희 씨를 향하고 있다. 성명서는 윤 후보와 김 씨가 무속인과 깊이 관계하고 있다는 보도 이후 빗발치기 시작했다. MBC '스트레이트'는 1월 16일, 김건희 씨와 서울의소리 이명수 기자가 통화한 내용을 보도했다. 김 씨는 통화에서 "내가 되게 영적인 사람이다", "도사들과 '삶은 무엇인가' 얘기하는 걸 좋아한다", "내가 웬만한 무당보다 잘 본다"고 말했다. 하루 뒤 <세계일보>는 윤석열 후보 선거대책본부 하부 조직인 네트워크본부에 '건진법사' 전 아무개 씨가 고문 직함을 달고 인재 영입에 관여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윤석열 후보가 무속인과 관련돼 있다는 의혹은 작년 10월부터 불거졌다. 국민의힘 경선 토론회 때 손바닥에 임금 왕 자를 그리고 나온 것이 전파를 타면서, 윤 후보가 비상식적이고 주술적인 미신에 의존하는 것 아니냐는 비판이 쏟아졌다. 이후 윤 후보나 김건희 씨가 예전부터 여러 무속인과 관계해 왔다는 증언들이 이어졌고, 김건희 씨 녹취록과 건진법사 보도가 의혹에 기름을 부었다. 추가로 폭로된 김 씨 녹취록에는 그가 도사의 말에 따라 청와대 영빈관을 옮길 것이라는 내용도 나온다.

국민의힘은 윤 후보가 무속인과 깊이 관계하고 있다는 의혹을 모두 부인하고 있으나, 더불어민주당은 계속해서 윤 후보와 무속의 연관성을 폭로하고 있다. 최근에는 건진법사가 일광조계종이라는 정체를 알 수 없는 종단에 속해 있고, 2018년 살아 있는 소의 가죽을 벗기고 돼지 사체 10여 구를 전시한 채 진행된 엽기적인 일광조계종 행사에 윤석열·김건희 이름이 적힌 연등이 있었다는 사실을 폭로했다. 또한 2020년 2월 신천지 신도들의 코로나19 확진으로 전국이 비상일 때, 검찰총장이던 윤 후보가 건진법사의 조언에 따라 신천지 압수 수색을 거부했다고 주장했다.

때아닌 대선 후보 무속 논란에 개신교계는 격앙된 반응을 보이고 있다. 한 가지 이례적인 현상은 성명서 대다수가 비교적 진보적인 인사·단체에서 나오고 있다는 점이다. 개신교는 기본적으로 타 종교에 그리 관용적이지 않다. 무속이라면 치를 떠는 보수적인 개신교인이 대부분이지만, 무속(무교巫敎)도 하나의 종교로 인정해야 한다는 진보적인 개신교인도 소수 있다. 그런데 어째 이번 논란과 관련해서는 보수 쪽이 아니라 진보 쪽에서 더욱 목소리를 높이고 있는 상황이다.

비판해야 할 지점은 어디인가

한국 시민들은 사이비적 행위로 국정을 그르친 자들에 대한 사회적 트라우마가 있다. 개신교계 성명서들에도 박근혜·최순실 국정 농단 사건이 종종 등장한다. 이른바 '비선 실세'가 정치를 좌우지하는 현상이 되풀이될까 우려하는 심정은 십분 이해하나, 쏟아지는 성명서 내용 중 몇 가지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이 있다.

먼저 '무속(무교)'에 대한 이해다. 성명서들은 모두 무속 정치를 규탄한다는 내용이지만, 자세히 읽어 보면 무속이라는 말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성명서를 작성한 단위마다 조금씩 이해가 다른 듯하다. 어떤 단체는 무속과 주술을 등치하기도 하고, 어떤 단체는 무속과 주술을 구분하기도 한다. 또 어떤 단체는 아예 무속 자체를 악마화하며 "이것이야말로 영적인 싸움", "기독교의 미래를 위해서라도 이 싸움에서 이겨야 한다"는 표현까지 쓰고 있다.

옥성득 교수(UCLA 한국기독교학)는 2월 7일 기독교윤리실천운동이 발행하는 <좋은나무>에 '한국 정치와 기독교는 무교보다 가짜 예언을 경계하라'는 글을 올려 "기독교가 정치권의 비선 종교인을 비판하려면 제대로 알고 비판해야 한다"고 했다. 그는 "한국교회는 한국의 전통 종교나 타 종교를 배타시하고 깊이 연구하지 않았기 때문에, 상당수 목사나 교인이 무교가 무엇인지도 모르고 무교를 무속 미신으로 비하하며 비판하고 있다"며, 정치권력 교체와 연관된 비선 종교인의 문제는 무교보다 '가짜 예언 사상'에 있다고 썼다.

비판 지점을 좀 더 분명하게 할 필요가 있다. 무속에 대한 개신교인들의 우려를 모르는 바는 아니지만, 무속을 주술, 미신, 사이비 신앙 등과 동일시하며 그 자체를 문제 삼는 것은 다양한 종교가 공존하는 한국 사회에서 타당하지 않다. 이를 의식한 듯 1월 30일 신학자 28명이 낸 성명서에서는 무속과 주술을 구분했다. 이들은 "주술은 오랜 세월 우리 평민의 한을 위로하며 그 일상을 종교적 깊이에서 뜻깊게 동행해 왔던 무교를 말함이 아니고, 사사로운 관심에서 미래를 엿보도록 하거나 '정체를 알 수 없는 바깥의 힘'에 기대어 소원의 성취를 돕는 사이비 종교술을 의미한다"고 했다. 이처럼 무속과 주술을 구분한 성명도 있으나, 대부분은 무속을 주술 및 온갖 사이비적 행위와 동일시하는 내용이다.

성명서 중에는 십계명 1·2계명을 언급할 정도로 정치인이 무속인과 관계한다는 사실 자체를 인정할 수 없다는 입장도 있다. 그러나 정치인이 평소 종교 생활을 열심히 한다거나 종교인에게 조언을 듣는 것 자체를 문제 삼을 수는 없다. 그것이 개신교가 아니라 무교라도 말이다. 문제는 '비과학적·사이비적 방법을 쓰는 사람에게 휘둘려 공적인 일을 초법적으로 처리하는 것'이다. 많은 정치인이 종교인들을 찾는다. 대선 후보는 물론이거니와 국회의원, 시·구의원들도 종교 생활을 하고 종교인들의 조언을 듣는다. 정치인이 공무를 수행함에 있어, 종교인들의 조언이 비상식적인데도 그대로 따랐다면 비판받아 마땅하다. 그것이 무교가 아니라 개신교라도 말이다.

무속 자체를 백안시하는 현상에 대해 무교 단체 '경천신명회' 이성재 총회장은 2월 14일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에서 "보통 사람이든 정치인이든 스님이나 신부, 목사 등 종교인에게 '어떻게 했으면 좋겠느냐'고 (상담하듯) 물어보는 경우가 많지 않나. 이번 논란의 시작은 그런 거다. 우리는 정치 개입을 하는 게 아니다"라며 "(종교인) 누구는 정치인에게 조언해도 괜찮고, 우리는 하면 안 된다는 건가. (무속인 말이) 본인 생각하고 상통하면 밀고 나가면 되고, 다르면 안 하면 된다. '무속'이라 무조건 나쁘다고 하는 건 문제다"라고 말했다.

물론 정치인이 사이비 종교인의 조언을 듣는다면 그 자체로 문제가 될 수 있다. 언론 보도를 종합해 보면, 건진법사는 일종의 불교 사이비 종파 사람이라는 의혹이 짙다. 하지만 건진법사가 윤 후보와 어떤 관계인지는 아직 불분명하다. 언론 보도는 모두 건진법사 주변 인물들의 증언으로 구성돼 있는데, 건진법사가 정말 사이비 종교인이라면 그가 윤 후보의 멘토를 자처하고 다녔다는 말을 곧이곧대로 믿을 수도 없다.  

결국 비판해야 할 지점은, 윤석열 후보나 김건희 씨가 그간 교류했다고 알려진 도사·법사들이 비과학적·사이비적 조언을 일삼았는지, 그리고 윤 후보가 그에 따라 초법적으로 공무를 수행한 적이 있는지다. 최근 불거진, 윤 후보가 검찰총장 시절 건진법사 조언에 따라 신천지 압수 수색을 거부했다는 주장에는 충분한 증거가 뒷받침되지 않았다. 국민의힘은 윤 후보가 당시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중대본) 입장에 따라 강제수사를 하지 않았다고 해명했다. 실제로 2020년 3월 중대본은 "신천지에 대한 강제수사는 코로나19 방역에 부정적"이라는 입장을 공식적으로 밝힌 바 있다.

공무 수행에 법과 원칙 외에 다른 것이 관여했는지 따져 보자면, 윤석열 후보의 문제는 무속이 아니라 다른 데 있다. 그는 검찰총장이 되기 전부터 개인적인 관계나 대기업의 접대 때문에 수사를 무마하거나 허술하게 했다는 의혹을 받아 왔다. 전 용산세무서장 윤우진 씨와 관련한 수사 무마 의혹은 작년 12월 검찰에서 무혐의 처분됐으나, 윤 후보가 검사 시절 삼부토건을 수사하면서 삼부토건 관계자들과 골프를 치고 만찬을 가졌으며 10여 년간 명절 선물을 받아 왔다는 사실이 최근 <한겨레>와 <노컷뉴스> 등을 통해 알려졌다.

신앙보다 '정파'가 우선?

또 한 가지 짚고 넘어가야 할 문제는 비교적 진보적인 교계 인사·단체들이 이렇게 대대적으로 들고일어나는 상황이 '정파적 진영 논리'라는 인상을 준다는 점이다. 물론 "특정 후보를 지지하기 위한 것이 절대 아니다", "특정 후보에 대한 간접적 지지도 아니다"라는 문구가 들어간 성명들도 있다. 하지만 다음 몇 가지 대목에서 이들의 비판이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선 후보에게 힘을 실어 주기 위한 것 아니냐는 의심을 사게 한다. 특히 정파 싸움이 가장 치열해지는 대선 기간에는 더욱 그렇다. 실제로 성명서를 발표한 사람들 중 이재명 후보를 지지한다고 공공연하게 밝힌 이들이 있다는 점은 반대 정파 사람들에게 공격의 빌미를 제공한다.

윤석열 후보 선대본에 건진법사를 비롯한 도사·법사들이 활동한 것을 두고 공무 수행에 영향을 준 것이라 말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재명 후보 캠프에도 무속인은 존재한다. 이에 민주당은 "핵심은 무속인의 비선 실세 노릇"이라며 "우리 당 인사는 임명장을 받았으니 '비선'도 아니고 개별적 지지자이지 '실세'도 아니다"라고 밝혔으나, 건진법사를 비롯한 인물들이 윤 후보의 '비선 실세'였다는 주장은 아직 명확한 사실로 확인되지 않았다. 무엇보다 개신교계에서 쏟아져 나온 성명서 중에는, 대선 후보가 무속인과 관계하는 행동 자체를 받아들일 수 없다면서도 윤석열 후보와 김건희 씨만을 겨냥한 성명서가 많다.

그간 종교 간 대화를 중시하고 성경의 문자적 적용을 경계해 왔던 진보적인 개신교인들이 성경 구절을 그대로 인용해 무속을 폄하하는 내용의 성명을 발표했다는 것도 정파성에 대한 의심을 불러일으키는 지점이다. 이들은 "내가 또 복술을 네 손에서 끊으리니 네게 다시는 점쟁이가 없게 될 것이며"(미 5:12), "우상숭배와 주술 (중략) 이런 일을 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것이요"(갈 5:20), "점쟁이나 길흉을 말하는 자나 요술하는 자나 무당이나 진언자나 신접자나 박수나 초혼자를 너희 가운데에 용납하지 말라"(신 18:10b~11), "어찌하여 다시 약하고 천박한 초등 학문으로 돌아가서 다시 그들에게 종노릇하려 하느냐"(갈 4:9b) 등을 인용해 무속을 인정할 수 없다는 입장을 내놨다. 이런 논리는 성경에 적혀 있다는 이유로 동성애를 반대하는 행동과 다를 게 없다.

특히 '이세벨'을 언급하며 김건희 씨 개인을 비난하는 내용은 논점도 많이 비껴 가 있다. 이세벨 비유는 많은 성명서에서 인용됐는데, 그중 한 성명서는 이세벨을 집중적으로 공략한다. 이 성명서 중 "이세벨은 여자 무당이었다", "이세벨은 굉장한 부자였다", "이세벨은 음란한 여인이었다", "이세벨은 정략적 목적으로 결혼한 여자였다", "이세벨은 치명적인 매력의 여인이었다"는 등의 내용은 이번 논란과는 관계가 없는 내용이다. "그러나 네게 책망할 일이 있노라 자칭 선지자라 하는 여자 이세벨을 네가 용납함이니 그가 내 종들을 가르쳐 꾀어 행음하게 하고 우상의 제물을 먹게 하는도다"(계 2:20)라는 성경 구절을 인용한 성명서도 있다. 이는 '비선 무속 정치'보다 '여성'이라는 점을 부각해, 여성 혐오적인 시각을 담고 있는 것이라는 비판도 있다.

진보적인 개신교인들이 정파성을 의심받는 것만큼 보수적인 개신교인들도 진영 논리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는 비판을 받는다. 보수 단체 중 성명서를 발표한 곳은 샬롬나비(김영한 목사)밖에 없다. 앞서 언급했듯 대부분의 보수 개신교 지도자들은 무속이라 하면 치를 떤다. 일례로 2016년 1월 국회의원회관 소회의실에서 새누리당 종교위원장 주선으로 굿판이 벌어졌을 때, 한국교회언론회와 한국교회연합(한교연)은 성명서를 발표해 새누리당을 강하게 비난했다. 하지만 지금 개신교계 성명서가 쏟아지고 있는 상황에서도 두 단체는 조용하다. 오히려 한교연은 공식적으로 윤석열 후보 지지를 선언했고, 이 난리통에도 '차별금지법에 반대하는 후보에 대한 공식 지지'를 결의했다.

고 조용기 목사 장례식장에서 윤석열 후보에게 안수기도했던 김장환 목사(극동방송 이사장), 김삼환 목사(명성교회 원로), 이영훈 목사(여의도순복음교회), 오정현 목사(사랑의교회), 오정호 목사(새로남교회) 등 유명 목사들도 아무런 입장 표명이 없다. 오히려 김건희 씨는 2월 15일 김장환 목사와 만나 3시간 동안 이야기를 나눈 것으로 알려졌다. 평소와 다른 이중적인 모습에 일각에서는 신앙보다 '진영'이 우선인 것 아니냐는 비판이 나온다.

"종교는 공적 영역과 어떤 관계를 맺을 수 있는가"
국민의힘 윤석열 대선 후보. 뉴스앤조이 이용필
2021년 12월 2일 열린 국가조찬기도회에 참석한 윤석열 후보. 뉴스앤조이 최승현

윤석열 후보와 김건희 씨가 오랜 기간 도사·법사로 불리는 이들과 교류한 정황은 농후하다. 김 씨 녹취록을 보면, 권력에 대한 그의 이해가 우려스러운 것도 사실이다. 비선 실세에 대한 트라우마가 있는 한국 시민들이 비선 정치를 우려하고, 특히 '무속'이라면 눈살을 찌푸리는 개신교인들의 걱정이 더 큰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하다. 윤 후보가 정확히 주변 무속인들과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지는 그가 정치를 계속하는 한 주권자들이 눈을 부릅뜨고 지켜봐야 할 것이다. 하지만 현재까지 드러난 의혹들 때문에 개신교계가 "주술에 나라를 맡길 수 없다"는 논조의 성명을 쏟아내는 현상은 이해하기 어렵다.

오히려 개신교계의 대응 이면에서 성찰해야 할 지점들을 본다. 종교학자 한승훈 교수(원광대 동북아시아인문사회연구소)는 2월 14일 <한겨레>에 기고한 글에서 "우리는 헌법이 규정한 종교의자유가 어떤 믿음과 실천까지를 포괄하는 것인지, 그리고 그것이 공적 영역과 어떤 관계를 맺을 수 있는지를 진지하게 논의할 필요가 있다"고 썼다. 그리고 이렇게 덧붙였다. "이를테면 이런 질문이다. 무당들은 노골적인 정치 개입을 시도하는 종교 지도자들보다 정말로 더 해로운 이들인가?" 수십 년간 국가조찬기도회·국회조찬기도회를 개최하고, 지금도 차별금지법 제정을 막기 위해 전방위적으로 정치권을 압박하는 (혹은 이런 것들을 내부에서 막지 못한) 개신교계가 새겨야 할 뼈아픈 질문이다.

무엇보다 대선을 코앞에 둔 시점에서 명확하지 않은 비선 무속 정치보다 더 주목해야 할 주제가 많다. 기후 위기, 세대 갈등, 젠더 문제, 경제적 양극화, 한반도 평화 등은 대통령 하나 바뀐다고 해결되는 일이 아니라는 사실을 우리는 알고 있다. 이러한 중대한 문제들을 쉽게 소거하는 네거티브의 소용돌이에서 종교는 어떤 역할을 할 것인가. 대중은 개신교에 무엇을 요구하고 있으며, 개신교는 지금 어떤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을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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