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앤조이-강도현 대표] 대선이 코앞입니다. 평소 같으면 교회에서도 정치 이야기가 피어날 텐데 올해는 조용합니다. 모이지 않으니 정치 이야기를 나눌 일도 없는 걸까요? 아직 몇 달 남기는 했습니다만, 설교에서 특정 후보를 지지했다는 제보도 거의 없는 편입니다. 고 조용기 목사 빈소에서 김장환·김삼환 목사 등이 국민의힘 윤석열 대선 후보에게 안수기도를 했다는 뉴스가 있었지만, 과거와는 양상이 많이 달라졌습니다. '큰 목사님'들이 특정 후보를 지지한들, 교인들에게 미치는 영향력이 예전 같지 않습니다.

실제 교인들의 투표 성향이 전체 투표율과 다르지 않다는 분석이 많습니다. 지난 대선에서 문재인 후보가 41%로 당선됐는데, 개신교인의 39% 정도가 문재인 후보를 지지했다는 조사가 있었습니다. 홍준표·안철수 후보 지지 비율도 비슷했습니다. 지난해 한국기독교사회문제연구원이 실시한 설문 조사에서도 개신교인의 진보·중도·보수 비율이 각각 31%, 40%, 29%라는 결과가 나온 걸 보면, 교회가 진보든 보수든 특정 정치 세력과 가깝다는 인식도 맞지 않은 것 같습니다.

교회가 정치와 어떤 관계를 맺어야 하는가는 기독교 역사에서 매우 오래된 숙제입니다. 교회와 정치가 결탁했을 때 전쟁이 나기도 했고, 수많은 사람을 학살하기도 했습니다. 신적 권위를 특정 정치 세력의 몽둥이로 쥐여 준 일이 얼마나 많았습니까. 우리 한국교회도 아픈 역사들을 가지고 있습니다. 제주 4·3 사건을 비롯해 신앙이 '반공 이데올로기'의 폭력을 정당화하는 도구로 활용된 경우가 많았습니다. 독재를 비호하고 황금만능주의를 하늘의 축복으로 둔갑하는 일도 잦았지요. 교회는 그렇게 정치적인 힘을 얻었고, 선거가 있을 때마다 그 힘을 휘둘렀습니다. 이제 그런 시대가 막을 내리고 있습니다. 코로나19 사태를 거치며 교회가 가지고 있던 정치적 힘이 많이 약화했습니다. 새로운 질서가 꿈틀거리고 있습니다.

올해 한국교회와 정치가 만나는 공간은 크게 두 곳이었습니다. 하나는 코로나19 방역에 대한 교회의 반응이었고, 다른 하나는 차별금지법에 대한 반응이었습니다. 결산 기사 1번에서도 정리가 되었듯이, 한국교회는 전반적으로 방역 정책에 부정적인 반응을 보였습니다. 부산의 어떤 대형 교회는 방역 정책을 공개적으로 무시했고, 목회자들이 모여 방역을 성토하는 집회를 벌이기도 했습니다만 성도들의 반응은 차가웠습니다. 지난 4월 장로회신학대학교가 발표한 '코로나19와 한국교회에 대한 연구 보고서'의 결과가 흥미롭습니다. 개신교에 대한 비신자들의 신뢰도 하락을 중심으로 보도되었습니다만 정작 신자들의 인식 변화는 주목을 받지 못했습니다. 대략 60%의 교인이 정부 방역 정책에 교회가 잘 협조했다고 답했고, 85%는 비대면 예배가 방역에 도움이 된다고 답했습니다. 특히 흥미로운 지점은 교회 지도자들의 발언이 적절했다고 답한 응답이 32%에 불과했다는 점입니다.

이제 교회가 정치 세력으로 평가받는 시대는 끝났습니다. 그나마 가장 큰 목소리를 내는 영역이 차별금지법을 둘러싼 논쟁일 텐데요. 교회는 여전히 차별금지법을 반대하는 대표적인 집단으로서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저는 이 분야의 영향력도 곧 상실할 것이라고 예상합니다. 반대 논리가 너무 취약하기 때문입니다. 교계의 대표적인 연합 기구인 한국교회총연합에서 '위장된 차별금지법 반대와 철회를 위한 한국교회 기도회'를 지난 6월 개최한 적이 있습니다. 일단 제목부터 너무 시대에 뒤떨어집니다. 기도회에서 나온 주장들은 더 황당했습니다. 일부일처제 가족제도가 붕괴할 것이라든지, 화장실 전쟁이 시작된다든지 하는 주장들은 상식을 갖춘 교인 입장에서 받아들이기 어렵지 않겠습니까. 가장 대표적인 주장이라고 할 수 있는 '역차별' 논리도 조금만 생각해 보면 모순이라는 것을 알 수 있는데, 끝까지 그 논리를 버리지 못합니다. 한국기독교사회문제연구원이 지난해 7월 개신교인 10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 조사에 의하면, 답변에 응한 개신교인 중 42%가 차별금지법 제정에 찬성했고 38%가 반대했습니다. 비록 더디지만 차별이 없는 사회로 나아가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주류 교회가 정치를 대하는 태도에 대해 말씀드렸습니다. 그러나 교회에는 주류만 있는 것이 아니죠. 하나님나라를 꿈꾸는 이들이 다양한 방식으로 정치적 의사를 표현해 왔습니다. 환경 운동, 장애인 인권 운동, 평화운동 등 곳곳에서 기독교인들의 활약이 두드러졌습니다. 특히 지난 3월에는 '기후위기기독교비상행동'이 출범하여 정부와 기업에 적극적인 변화를 촉구하고 나섰습니다. 9월에는 '차별과혐오없는평등세상을바라는그리스도인네트워크(평등세상)'가 출범했고요. 한반도 평화를 위해 일하는 그리스도인들은 셀 수 없을 만큼 많습니다. 교회가 정치에 개입하는 목적이 바로 이런 것이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환경·정의·평화·평등과 같은 가치야말로 교회가 존재를 걸고 나서야 할 하나님나라 의제들이라고 생각합니다. 2022년에는 진정 교회다운 정치 개입이 더 많아졌으면 좋겠습니다.(끝)

저작권자 © 뉴스앤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