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앤조이-최승현 기자] 기독교방송(CBS·김진오 사장)이 국내 최초 성소수자 그룹 라이오네시스(LIONESSES)의 신곡을 '금지곡'으로 지정했다. 곡 자체에 문제가 있는 게 아니라 해당 그룹이 '기독교 정신에 위배된다'는 이유에서다.

CBS는 2021년 11월 22~26일 접수된 음반 심의 결과를 12월 2일 발표했다. 1주일간 총 107곡의 심의 신청을 받았는데, 라이오네시스의 크리스마스 싱글 'Christmas Miracle(Prod. Zantin)'만 심의를 통과하지 못하고 금지곡으로 지정됐다. CBS는 "기독교 정신에 위배되는 가수·팀(성소수자 그룹)"이라는 사유를 적었다.

심의 결과를 통보받은 라이오네시스는 황당해했다. 곡 자체가 아니라 그룹의 정체성을 문제 삼은 경우는 없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CBS는 라이오네시스의 첫 싱글 'Show Me Your Pride'를 11월 첫째 주 심의에서 아무 문제 없이 통과시킨 바 있다.

CBS는 10월 25일 라이오네시스의 첫 싱글은 심의를 통과시켰다. 그러나 라이오네시스가 성소수자 그룹이라는 사실이 알려진 이후, 두 번째 싱글은 '성소수자 그룹'이라는 이유로 금지곡으로 지정했다. 논란이 일자 CBS는 가사 때문이라며 심의 내용을 바꿔 올렸다.
CBS는 10월 25일 라이오네시스의 첫 싱글은 심의를 통과시켰다. 그러나 라이오네시스가 성소수자 그룹이라는 사실이 알려진 이후, 두 번째 싱글은 '성소수자 그룹'이라는 이유로 금지곡으로 지정했다. 논란이 일자 CBS는 가사 때문이라며 심의 내용을 바꿔 올렸다.

오히려 심의를 통과한 'Show Me Your Pride'는 'Christmas Miracle'보다 성소수자에 관한 이야기를 더 구체적으로 담고 있다. "암사자 무리가 뜨면 필드를 정리해, 돌격 / 차별의 시대를 불태워 빛나게 해방돼 '보석' / 지겨운 시선들이 널 짓누를 때, / 혼자라 느껴질 때 내 손을 잡아도 돼" 등 차별과 혐오에 내몰린 성소수자에들에게 용기를 주는 가사를 담고 있다. 커버 역시 무지개색으로 채색돼 있다.

크리스마스에 맞춰 발매한 'Christmas Miracle'은 캐럴 느낌이 나는 곡이다. "When Christmas is come, it's gonna be a miracle / 용기 내지 않고도 널 사랑한다 말할 거야. / 널 만난 뒤엔 하나님께 매일 감사해 / 너란 천사를 내 남자로 보내 줬으니 / 그분이 우리를 싫어한다는 말은 / 거짓말인 게 분명해진 거네"라는 가사를 담고 있다.

CBS는 일주일 단위로 심의 결과를 발표한다. 1월 첫 주부터 지금까지 발표된 음원 심의 결과를 모두 살펴본 결과, 곡이 아닌 그룹 자체의 정체성을 문제 삼아 심의를 통과시키지 않은 경우는 없었다. 그동안 심의에서 금지된 곡은 주로 가사가 선정적이거나, 비속어가 포함됐거나, 특정 상표를 노출한 경우였다. 일례로 '형돈이와 대준이'가 발표한 '부처님 오신 날에 만난 기독교 그녀' 곡은 기독교 정신에 위배된다며 '가사'를 문제 삼아 금지곡으로 지정한 적 있다.

그렇다고 CBS가 그동안 성소수자 가수·그룹의 곡을 전부 금지곡으로 지정한 것도 아니다. <뉴스앤조이>가 최근 CBS 라디오 편성표를 살펴보니, 가장 유명한 커밍아웃 가수 중 한 명인 엘튼 존의 'Candle In The Wind'가 지난 12월 3일 정오 방송에 나왔다. 올해 1월에는 성소수자 프레디 머큐리가 속한 Queen의 'I Want To Break Free'가 나온 데 이어, 같은 방송에서 양성애자라고 성 정체성을 공개한 제이슨 므라즈가 콜비 컬레이와 함께 부른 'Lucky'도 문제없이 송출됐다.

방송법 6조 5항은 "방송은 상대적으로 소수이거나 이익 추구의 실현에 불리한 집단이나 계층의 이익을 충실하게 반영하도록 노력하여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희망을만드는법 박한희 변호사는 13일 <뉴스앤조이>와의 통화에서 "이 그룹이 범죄행위를 저지른 것도 아니고, 메시지가 아니라 메신저를 문제 삼은 것은 개인에 대한 명백한 차별"이라고 말했다. 박 변호사는 "차별금지법안이 제재하는 4대 영역(△고용 △재화·용역 △교육 △공공 서비스) 중 △재화·용역 부분을 보면, 방송·통신 사업자가 불합리한 차별을 할 수 없도록 규정하고 있다. 이번 사건이 차별금지법이 제정돼야 하는 이유를 다시 한번 보여 줬다"고 말했다.

논란이 일자 CBS는 14일 자사 홈페이지에 "가사 부문에서 CBS 음악심의세칙 제7조(심의 기준) 1항 '기독교 정신에 위배되는 곡'에 해당하여, 방송 부적합 판정을 내렸다. 다만 부적합 판정의 사유를 적는 란에 '기독교 정신에 위배되는 가수·팀(성소수자 그룹)'이라고 간단하게 표기하는 과정에서 오해가 발생하게 된 점은 유감으로 생각한다. 뮤지션들이 '성소수자 그룹'이라는 이유로 방송 부적합 판정이 내려진 것이 결코 아니라는 점을 알려 드리며 오해가 없길 바란다. 같은 그룹의 다른 곡(Show Me Your Pride, 2021년 10월 25일 심의)은 가사 등에 문제가 없었으므로, CBS 내부의 음악 심의 과정을 통과했다"고 공지했다. CBS는 라이오네시스가 재심을 청구할 수도 있다고 공지했다.

CBS가 문제 삼은 가사는 "널 만난 뒤엔 하나님께 매일 감사해 / 너라는 천사를 내 남자로 보내 줬으니 / 그분이 우리를 미워한다는 말은 / 거짓말인 게 분명해진 거네 / 밝은 곳에서 사랑해도 되네 / 나 이제 다른 연인들 하는 것 / 지하철에서 널 와락 안는 것 / 여기서 네게 입맞춤하는 것 / 주저하지 않을 거야 / 용기 내지 않고도 / 널 사랑한다 말할 거야"다. 가사에 선정적 문구가 없음에도 이를 두고 '기독교 정신을 위배한다'고 판단한 것은 역시 이들의 정체성을 문제 삼은 것으로 보인다.

CBS는 논란이 일자 14일 홈페이지에 '정체성 때문이 아니라 가사 때문'이라고 해명했다. 그러나 문제 삼은 가사에도 선정적이라거나 노골적인 내용은 없다. CBS 홈페이지 갈무리
CBS는 논란이 일자 14일 홈페이지에 '정체성 때문이 아니라 가사 때문'이라고 해명했다. 그러나 문제 삼은 가사에도 선정적이라거나 노골적인 내용은 없다. CBS 홈페이지 갈무리

<뉴스앤조이>는 이와 관련해 CBS 입장을 듣기 위해 14~15일 음원 심의실에 수차례 연락을 취했으나, 연결이 되지 않았다. CBS 측은 "담당자에게 연락처와 메모를 남겨 놨다"는 입장만 반복했다.

한편, CBS 김진오 사장은 올해 6월 취임 이후 반동성애 활동에 앞장서겠다고 공개한 바 있다. 김 사장은 11월 17일 김회재 의원(더불어민주당 여수을)이 주최한 차별금지법 반대 토론회에 축사자로 참여해 "동성애 설교가 편집되지 않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그는 "CBS 사장이 포괄적 차별금지법 반대나 다름없는 행사에 참석한다는 것 자체가 교계 뉴스가 되지 않을까 싶다. 이 소문이 CBS 내부에 나면 '우리 사장님 드디어 커밍아웃했다'고 할 것 같다"고 하기도 했다.

라이오네시스 "정체성 이유로 금지? 박정희 시대인 줄"
"여성 가수가 불렀으면 금지곡 안 됐을 것"

올해 10월 결성된 라이오네시스는 '암사자'를 뜻하는 'lioness'의 복수 형태로 '암사자 무리'라는 뜻이다. 리더 배담준(30)과 사막여우(31)·강한(30)·이말랑(25) 등 성소수자로 커밍아웃한 4명이 결성했다. 한국 최초로 퀴어를 표방한 이들의 등장에 많은 매체가 주목했다. 중화권 유력 언론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는 11월 3일 'Lionesses, who say they're the 'first openly LGBTQ' K-pop boy band, release their debut single, Show Me Your Pride' 기사에서 이들의 데뷔와 첫 싱글 발매 소식을 다뤘다. LGBTQ 이슈를 다루는 유력 매체 <The Advocate>와 이외 여러 매체도 이들의 데뷔 소식을 기사로 전했다. <경향신문>도 11월 10일 '대한민국 최초 성소수자 남성 그룹 '라이오네시스', 그들의 음악은 계속된다' 기사로 이들의 데뷔와 활동 소식을 상세히 전하기도 했다.

라이오네시스 멤버 4명 중 3명은 기독교인이다. 이들은 이번 CBS의 심의 결정이 인종차별이나 다름없다며 매우 황당해했다. 한국 최초로 LGBT 당사자라고 공개한 이들은 앞으로도 성소수자들의 목소리로 당당히 노래하며 활동할 것이라고 했다. 사진 출처 라이오네시스 공식 인스타그램 
라이오네시스 멤버 4명 중 3명은 기독교인이다. 이들은 이번 CBS의 심의 결정이 인종차별이나 다름없다며 매우 황당해했다. 한국 최초로 LGBT 당사자라고 공개한 이들은 앞으로도 성소수자들의 목소리로 당당히 노래하며 활동할 것이라고 했다. 사진 출처 라이오네시스 공식 인스타그램 

라이오네시스 리더 배담준 씨는 12월 13일 <뉴스앤조이>와의 통화에서 "금지곡으로 지정됐다는 이야기를 듣고 가사에 문제가 있나 싶었는데, '기독교 정신에 위배되는 가수'라는 이유로 금지했다는 이유를 알고 너무 황당했다. 마치 '흑인 그룹이라 금지곡으로 지정한다'는 것과 뭐가 다른가. 나는 지금 음대에서 석사과정을 밟고 있는데, 연구 주제가 1970년대 금지곡이다. 1970년대 박정희 시대도 아닌데, 이런 일을 내가 당하리라고는 생각해 보지도 못했다"고 말했다.

라이오네시스는 대행사를 통해 CBS뿐 아니라 방송국 9곳에 동일하게 음원 심의를 접수했다. 타 방송사에서는 이상 없이 심의를 통과했다는 소식이 들려오고 있다. 배담준 씨는 "이번 싱글은 크리스마스를 맞아 긍정적인 모습을 담은 곡이다. 특히나 이번 싱글 가사를 보면 사랑하는 사람이 만나는 것은 신(하나님)이 맺어 주신 인연이라는 것으로, 우연이 아니라 신이 계획하신 것이라는 내용이 있다. 우리 멤버 4명 중 3명이 교회를 다니고 있다. 교회에 악감정이 있는 것도 아니고, 서로 사랑하는 것이 하나님의 섭리라는 것을 담은 가사"라고 했다. 그는 "이 곡을 여성 가수가 불렀다면 아무 문제도 제기하지 않았을 것 아니냐"고 되묻기도 했다.

그는 "한 교회에서 특정 곡을 틀지 않는 것은 그럴 수 있다고 보는데, 전파라는 공공재를 국가로부터 받아 쓰는 CBS가 이러는 것은 문제가 있다. 노래도 안 들어 보고 가사도 안 살펴보고 이런 식으로 대하는 게 너무 화난다. 특히 가수와 작곡가 수입의 대부분은 방송 저작권료인데, 사실상 CBS가 판로를 막아 버린 셈"이라고 했다.

라이오네시스는 이번 싱글 발매 이후에도 활발한 활동을 이어 갈 예정이다. 내년 봄에 라틴음악 풍의 신곡을 발표하기 위해 후속 작업을 하고 있다. 배담준 씨는 "Mnet 프로그램 '스트리트 우먼 파이트'를 보면서 '여자들도 이런 멋있는 춤을 출 수 있구나'라고 생각했던 것처럼, 이제 우리도 우리의 노래를 가질 때가 됐다고 생각한다. 특히 우리 활동이 위축돼 있는 청소년 성소수자 후배 가수들에게 힘과 용기가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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