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앤조이-나수진 기자] 차별금지법 제정을 반대하는 보수 개신교계는 성적 지향 및 성별 정체성 조항을 문제 삼고 있지만, 차별금지법은 성소수자뿐만 아니라 모든 형태의 차별을 막자는 법안이다. 여기에는 비정규 노동 등 다양한 차별을 겪는 청년도 예외가 아니다. 차별금지법 제정을 요구하는 국회 국민 동의 청원을 올린 이도 동아제약 신입 사원 면접에서 성차별적인 질문을 받은 피해자 청년 A였다. A는 청원 글에서 "모든 권력은 상대적이기에 나 또한 언제든 약자, 즉 배척과 혐오의 대상이 될 수 있다"며 모두를 위한 차별금지법을 제정해야 한다고 했다.
이런 상황에서 청년·학생 단체들이 '이대남(20대 남성)' 등 일부 청년의 목소리만을 선별해 젠더 갈등을 조장하며 차별금지법 제정을 미루고 있는 정치권을 규탄했다. 교육·기후·여성·소수자·인권·대학 단체 등 청년 단체 31곳은 12월 8일 국회 정문 앞에서 공동 기자회견을 열고 "불평등·양극화 시대를 살아가는 청년에게 필요한 것은 선심성 정책이 아닌 차별금지법"이라고 말했다. 감리교신학대학교 예수더하기·도시빈민선교회, 한신대학교 사회복지학과 학생회 등 신학생 단체들도 참여했다.
체제전환을위한청년시국회의 김건수 집행위원은 정치권이 청년 간 젠더 갈등을 부각하면서 오히려 갈등을 부추기고 있다고 했다. 김 집행위원은 "청년에게 '이대남', '이대녀'와 같은 이름을 붙여서는 사회 갈등만 조장될 뿐 문제는 해결되지 않는다. 이는 정치적 수혜를 바라는 기득권 정당의 비겁하고 비열한 행태"라고 말했다. 그는 "우리가 바라는 것은 사회적 차별을 해결해 어떤 삶을 살더라도 존중받는 존재로 살 수 있는 평등한 세상을 만드는 것, 즉 모두가 시민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인권운동네트워크바람 안나 상임활동가도 거대 양당이 '이대남'으로 대표되는 청년들에게만 주목하면서 혐오를 정당화하고 있다고 했다. 정치 서사에서 이대남이 과잉 대표되면서, 다른 삶을 사는 청년들은 무시된다고도 했다. 안나 활동가는 "두 거대 정당은 청년들이 '스윙 보터(부동층 유권자)'라며 2030 세대 표심을 얻으려고 노력하지만, 정작 주목하고 있는 대상은 '이대남'일 뿐"이라고 말했다. 그는 "다양한 삶을 사는 우리는 차별 당사자로서 차별금지법이 필요하다. 대학에 진학하지 않아서, 이주민이라서, 장애인이라서, 여성이라서, 성소수자라서, 비정규직 노동자라서 일상이 위협받지 않기를 원한다. 국회는 평등을 향한 청년들의 간절한 목소리를 들으라"고 말했다.
대학에 재학 중인 성소수자 안바람 씨는 학내 공론장 붕괴를 막기 위해서도 차별금지법이 필요하다고 했다. 안 씨는 "최근 몇 년간 대학 공동체 내 공론장이 급속도로 붕괴하는 과정을 보고 있다. 많은 학생이 학교 비정규직 노동자에게 노골적인 적대심을 표출하고, 공정과 능력주의, 시험 만능주의가 공론장의 모든 논의를 잠식했다. 페미니즘 리부트로 불붙은 대학가 페미니즘 운동은 거대한 백래시(backlash)에 맞닥뜨렸고, 백래시의 중심이자 온갖 혐오 표현의 온상인 대학 내 온라인 익명 커뮤니티는 최소한의 자정 책임조차 방기한 채 혐오 장사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차별금지법이 우리의 기울어진 운동장을 단숨에 평평하게 만들지는 못하겠지만 그나마 있는 운동장마저 무너져 내리는 건 막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감리교신학대학교 예수더하기 김경민 씨는 국회가 보수 개신교계 반발을 의식해 차별금지법 제정을 미루고 있지만, 법 제정을 지지하는 기독교인 청년도 적지 않다고 했다. 김 씨는 "작년 한국기독교사회문제연구원에서 기독교인 1000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조사에서 조사에 따르면 응답자 중 42.1%가 차별금지법 제정에 찬성한다고 답했다. 찬성 의견에서는 2030 청년 비율이 높았다"고 말했다. 그는 "기독교인들이 가져야 할 자세는 소수자들을 마녀사냥하며 종교의 이름으로 낙인찍고 차별을 정당화하는 것이 아니라 차별과 혐오에 맞서 그들의 편을 드는 것"이라며, 평등한 하나님나라를 만들기 위해서는 차별금지법 제정이 필요하다고 했다.
이들은 기자회견문에서 "트랜스젠더 육군 하사 변희수도 청년이었고, 비정규직 하청 노동자 김용균도 청년이었다. 청년들이 차별로 인해 세상을 떠나는 일이 멈추지 않고 있는데, 정치가 말하는 청년은 대체 누구인지 묻고 싶다. 청년 역시 시대의 문제를 겪는 당사자이자, 사회적 존재로 살아가는 시민이다. 차별금지법 제정으로 시민의 보편적 권리를 확대해 청년들이 어떠한 방식으로 살아가더라도 안정적으로 삶을 꾸릴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아래는 기자회견문 전문.
차별금지법이 청년 정책이다! 국회와 정치권은 청년이 마치 사회와 분리된 특별한 존재인 양 다른 사회 구성원과 분리해 갈등을 조장하고, 일부 청년의 목소리만 선별해 차별을 정당화하는 혐오 정치를 중단하라. 불평등과 양극화의 시대를 살아가는 오늘날의 청년에게 가장 시급하게 필요한 것은 정치권이 남발하는 선심성 청년 정책이 아니라 바로 차별금지법이다. 차별금지법을 먼 미래로 유예하고서 청년의 미래를 보장하겠다는 정치권에게 말한다. 차별금지법이 청년 정책이다. 지금 당장 차별금지법 제정으로 혐오와 차별을 멈추고 평등의 새로운 시대를 시작하라. 10만 국민 동의 청원으로 차별금지법이 발의되었지만, 국회는 사회적 합의가 부족하다는 핑계로 논의 심사 기한을 2024년으로 연장했다. 심지어 지난 14년 동안 '사회적 합의'라는 게으른 핑계를 반복해 온 것을 넘어, 이제는 하다못해 청년이 차별금지법을 반대한다는 황당한 소리로 청년을 기만하고 있다. "여혐도 남혐도 싫다"는 민주당이나, "페미니즘은 역차별을 발생시키는 사회적 해악"이라는 국민의힘 모두, 마치 존재하는 사회적 차별이 없는 것처럼 현실을 왜곡하고 있다. 그러나 최근 서울시장 보궐선거 결과만 두고 '이대남'만 청년이고 '공정'이 시대정신이라는 급조된 세대론에 근거해 나머지 청년들의 목소리를 지우는 정치권의 모습부터가 한국 사회 차별이 얼마나 심각한지 드러낸다. 트랜스젠더 육군 하사 변희수도 청년이었고, 비정규직 하청 노동자 김용균도 청년이었다. 청년들이 차별로 인해 세상을 떠나는 일이 멈추지 않고 있는데 정치가 말하는 청년은 대체 누구인지 묻고 싶다. 청년 역시 시대의 문제를 겪는 당사자이자, 사회적 존재로 살아가는 시민이다. 청년을 특별한 존재인 것처럼 왜곡하는 것은 청년에게 어떠한 도움도 줄 수 없다. 차별금지법 제정으로 시민의 보편적 권리를 확대하여 청년들이 그 어떠한 방식으로 살아가더라도 안정적으로 삶을 꾸릴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차별금지법은 시대정신이다. 다양한 차이를 가진 사람들이 평등하게 사는 사회를 만들고자 하는 새로운 시대적 흐름과 차별금지법은 공존한다. 아니, 차별금지법 유예의 14년 동안 평등을 위해 싸워 온 이들이 걸어온 길이 이제 새로운 시대를 열었다. 우리가 선택한 미래는 혐오와 배제의 각자도생 사회가 아닌, 평등과 연대로 살아가는 평등한 새로운 세상이다. 이대남도 이대녀도 아닌 한 사람의 시민으로서 요구한다. 국회는 청년 핑계도, 사회적 합의 핑계도 그만하고 지금 당장 차별금지법을 제정하라. 2021. 12. 08. 개인 참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