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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쾌한 해답은 없으나
시의적절한 위로를 건넨 책

욥기는 독특한 책입니다. 삶에 어려움이 닥칠 때마다 욥기를 읽었지만, 사실 속 시원한 위로를 받지는 못했습니다. 그럼에도 어려울 때마다 펼쳐 읽었습니다. 대학교 진학을 위해 고향을 떠나 외지 생활을 할 무렵, 외로워서 욥기를 읽었습니다. 전임 사역을 시작하고 목회에 대한 소명을 잃어 갈 때도 욥기를 읽었습니다. 코로나 팬데믹으로 삶의 방향이 불명확할 때도 욥기를 읽었습니다. 언제나 명쾌한 해답은 없었습니다. 하지만 때마다 시의적절하게 전혀 다른 맥락에서 위로를 받았습니다. 한 권의 책이 읽을 때마다 이토록 새로울 수 있다니 흥미롭습니다.

<욥기와 만나다>(비아) 저자 마크 래리모어는 성서를 연구하는 성서학자가 아닌 종교철학자입니다. 따라서 그는 욥기 본문을 해석하는 가장 선명한 해결책인 성서학의 방법을 따르지 않고 자신의 방법으로 욥기를 들여다봅니다. 바로 "욥기의 일대기"(12쪽)를 들려주는 길입니다. 욥기는 시대별로 다르게 해석돼 왔습니다. 독자들도 저마다 다르게 욥기를 해석해 왔습니다. 저자가 들려주는 욥기의 역사를 듣기 전에 한 가지 질문을 품을 필요가 있습니다. 

"왜 욥기는 시대마다, 사람마다 다르게 해석해 왔을까요?"

<욥기와 만나다 - 고통받는 모든 이를 위한 운명의 책> / 마크 래리모어 지음 / 강성윤 옮김 / 비아 펴냄 / 292쪽 / 1만 7000원
<욥기와 만나다 - 고통받는 모든 이를 위한 운명의 책> / 마크 래리모어 지음 / 강성윤 옮김 / 비아 펴냄 / 292쪽 / 1만 7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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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사람마다 다른 해석

1) 고대 독자들은 성경을 경전으로 읽었습니다. 그들은 욥기가 "부조화, 모호함, 반복"(60쪽)이라는 특징을 갖고 있는 이유가 "가장 중요한 의미"(75쪽)가 담긴 메시지를 은폐하기 위해서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욥기를 우의적(allegorical)·신비적(analogical)으로 읽는다면 본문 자체의 난해함은 별 어려움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그들은 '요밥의 유언' 같은 다양한 욥에 관한 전승들을 알고 있었습니다. 현대 독자처럼 욥기 본문의 난해함에 개의치 않고 욥기를 읽을 수 있었던 것이지요.

2) 중세 학자들은 철학적 문제 속에서 욥기를 읽었습니다. 토마스 아퀴나스(Thomas Aquinas)는 욥기를 "철학적 논증을 다루는 문헌"(109쪽)으로 읽습니다. 유대교 철학자 마이모니데스(Maimonides)는 욥과 세 친구의 논쟁을 당대 철학 논쟁사로 투영해 읽습니다. 칼뱅(John Calvin)의 경우에도 욥기를 하나님의 섭리를 모두 이해할 수 없는 "인간 이성의 불충분함"(129쪽)에 대한 책으로 읽습니다. 이처럼 중세에는 욥기를 철학적 문제에 대한 해답으로 읽었기에 욥기 본문이 지닌 독특함을 지나쳐 갈 수 있었습니다. 다만 욥의 저항적 목소리에 점점 귀를 기울이게 됩니다.

3) 반면 같은 중세에도 "철학자나 신학자가 아닌 평범한 사람들"(134쪽)은 조금 다르게 욥기를 읽었습니다. 그들은 장례 예식이나 위령 성무일도에서 욥기를 낭독하고 들으며 "인간의 비탄과 혼란, 절망"(152쪽)을 표현하는 법을 배웠습니다. 17세기에 상연된 연극 '욥의 인내'나, 욥기와 견주어 읽던 '그리젤다 이야기'를 살펴보면, "하나님에 대한 반역 이야기"(134쪽)로 욥기를 소비했을 가능성도 보입니다. 이전에는 "냐악함, 사악함, 고통을 이기지 못한 광기의 표출"(133쪽)로 해석됐던 욥의 목소리를 대중들이 발견하고 긍정적으로 소비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4) 근대에는 "성서, 전통, 전례가 지닌 권위"(181쪽)가 약화하면서 "하나님이 온 우주 만물을 다스린다는 생각"(190쪽)이 무너지기 시작했습니다. 근대의 무신론적 풍토 속에서 칸트(Immanuel Kant)는 욥을 '믿음 위에서 도덕을 찾지 않고, 도덕 위에 믿음을 세워 나가는 모범'으로 읽습니다. 반면 루돌프 오토(Rudolf Otto)는 하나님의 말씀(욥 38~41장)이 끝내 욥을 "내면의 확신, 그리고 압도당함에 대한 인정"(208쪽)으로 이끈 "진정한 신정론"(206쪽)이라 말합니다. 계몽주의(임마누엘 칸트)와 낭만주의(루돌프 오토)가 동일한 시대적 문제 앞에서 동일한 본문을 전혀 다르게 읽은 예시라 할 수 있겠습니다.

5) 홀로코스트 이후, 욥기는 또 다르게 해석됩니다. 홀로코스트를 겪은 엘리 위젤(Elie Wiesel)은 저항과 침묵 같은 주제를 투영해 욥기를 읽습니다. 마르가레테 주스만(Margarete Susman) 또한 홀로코스트와 유사한 저주와 고통의 역사를 겪은 유대인을 욥의 인생에 투영해서 읽습니다. 홀로코스트 이후 유대 사상가들은 "근대 인본주의의 공허함과 메시아적 희망의 필요성"(269쪽)을 한목소리로 노래합니다. 이처럼 신을 추방한 세속 시대(Secular age)라 불리는 오늘날, 욥기는 "커다란 상실 가운데 길을 찾아 헤매는 현대인들"(273)의 좋은 동반자로 자리 잡고 있습니다.

욥기를 읽다, 욥기를 다시 쓰다

모든 책은 독자의 상황에 따라 다르게 해석될 가능성을 품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점에서도 욥기는 독특함을 지니고 있습니다. 욥기가 지닌 형식 자체가 그러한 가능성을 적극적으로 허용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역사 비평 이후로 많은 학자들은 욥기가 산문 단락(1:1~2:13, 42:7~17)이 말하는 '인내하는 욥' 이야기와 운문 단락(3:1~42:6)이 말하는 '저항하는 욥' 이야기가 결합된 책이라고 여깁니다. 하지만 저자는 두 이야기가 분리될 수도 없을 뿐더러 "하나의 본문으로 엮어"(250쪽) 있을 때 비로소 다성음악처럼 작동하는 욥기의 독특한 연주를 들을 수 있다고 말합니다.

앞서 소개한 바와 같이, 다양한 사람이 역사 속에서 각자 다르게 욥기를 해석해 왔습니다. 이는 욥기 본문이 독자가 각자의 상황과 고민을 끌어안고 다르게 읽는 것을 적극적으로 허용해 왔기 때문입니다. "커다란 해석의 틀에 갇히기를 거부"하는 욥기는 "사람들이 끊임없이 욥기를 읽도록 자극"하는 동시에, 기존의 해석 전통을 뒤집어 읽을 것을 적극적으로 장려했습니다. 독자들은 자신만의 상황과 고민이 묻어나는 "자기만의 욥기"(276쪽)를 "계속해서 다시"(277쪽) 써 왔던 것입니다.

욥기는 정답을 바라는 이들의 책이 아닙니다. 고통을 겪는 이에게 명쾌하고 시원한 정답을 주지는 못합니다. 오히려 욥기는 독자들이 겪고 있는 세계 속 고통과 아픔에 적극적으로 열려 있기를 선택한 책입니다. 욥기는 독자를 초청해 각자의 기구한 사연과 고민을 끌어안고 다르게 읽을 것을 장려합니다. 결국 저자가 소개한 "욥기의 일대기"는 "자기만의 욥기"를 "계속해서 다시" 써 왔던 독자들의 역사였습니다. 욥기의 부름을 들은 독자들은 각자의 고민을 담아, 자기만의 욥기를 써 내려가며 응답했습니다.

욥기의 부름이 들리시나요? 이제 당신이 응답할 차례입니다. 당신의 방법대로 욥기를 읽으십시오. 아니, 고민과 실존을 끌어안고 자기만의 욥기를 다시 써 보십시오.

"욥기는 결코 완결될 수 없다. 다른 무엇보다 우리가 고통 받는 이들, 비극을 목격한 이들과 함께 하는 법을 익히고 그들을 보살피는 일에 대해 숙고해야하기 때문이다. 산산조각이 난 삶과 세계에서 살아가기 위해 삶과 세계의 의미를 엮는 작업을 이어 가는 한, 우리는 계속 우리의 욥기를 만들어 낼 것이다." (283쪽)

홍동우 / 설교도 잘하고 싶고 책도 잘 읽고 싶은 욕심쟁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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