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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리 그래함(Billy Graham, 1918~2018)은 다들 한 번쯤 이름은 들어 봤을 만한 유명한 사람입니다. 유명인들에 대한 평가는 다면적입니다(이는 널리 알려진 사람의 숙명입니다). 혹자는 빌리 그래함을 좋게 평가하고, 혹자는 나쁘게 평가합니다. 하지만 어떤 한 인격을 두고 단지 '좋다/나쁘다'로 평가하는 것은 분명 성급한 판단입니다. 좀 더 면밀히 살펴보면 "단순히 좋다/나쁘다로 평가할 수는 없겠어"라는 문장이 따라붙기 마련입니다. 네, 저 또한 빌리 그래함에 대한 편견이 있었습니다. 그런 편견을 다잡아 주고 그를 좀 더 복합적으로 이해할 수 있게 해 준 책을 소개할까 합니다. 바로 <빌리 그래함 - 한 영혼을 위한 발걸음>(선한청지기)입니다.

<빌리 그래함 - 한 영혼을 위한 발걸음> / 그랜트 왜커 지음 / 서동준 옮김 / 선한청지기 펴냄 / 640쪽 / 2만 5000원
<빌리 그래함 - 한 영혼을 위한 발걸음> / 그랜트 왜커 지음 / 서동준 옮김 / 선한청지기 펴냄 / 640쪽 / 2만 5000원

이 책은 51가지 장면을 통해 빌리 그래함의 삶과 복음주의 역사를 매우 포괄적으로 서술하고 있습니다만, 저는 크게 세 가지에 집중해 그에 대한 편견을 복합적으로 살펴보고자 합니다.

1) 빌리 그래함은 사회적 죄악을 도외시한 인물 아닌가요?

가장 먼저 소개할 장면은 빌리 그래함의 모스크바에 방문 이야기(41번째 장면)입니다. 제가 그에 대해 갖고 있었던 편견처럼, 빌리 그래함은 단순한 복음 전도자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 외에는 모르는, 정치적·외교적 고뇌가 잘 보이지 않는 인물입니다. 하지만 모스크바에 방문한 그는 독특합니다. 빌리 그래함은 미국과 소련 사이에 핵무기를 둘러싼 신경전이 벌어지고 있던 시절 소련을 방문했고, '핵 위협'이라는 대재앙에 함께 맞설 것을 촉구합니다. 이는 정치적으로 매우 순진한 발언이었지만, 그의 방문과 행보는 큰 바람을 불러옵니다. 그리고 끝내 레이건과 고르바초프가 냉전 종식을 향한 합의를 맺습니다. 물론 뚜렷한 인과관계를 찾기는 어렵습니만, 빌리 그래함이 보여 준 용기에 대해서 다시 한번 생각해 볼만한 사건임에는 분명합니다.

이와 유사한 사건도 있었습니다. 인종차별과 관련된 빌리 그래함의 이야기(13번째 장면)입니다. 그는 노예제를 인정하던 미국 남부에서 태어났고, 인종차별을 심각한 문제로 여기지 않았으며, 보수적인 해결책을 꿈꾸던 사람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복음을 전해야 한다'는 대원칙 아래, 인종 분리 원칙을 깨뜨리고 다양한 인종을 한자리에 모아 집회를 열었습니다. 빌리 그래함은 보수적이었고 정치적으로도 순진한 입장을 지닌 사람이었지만, '인간사의 모든 해결책은 복음에 있다'고 믿었던 그의 순수한 신념은 미국과 소련을, 다양한 인종들을 서로 만나게 하는 작은 불씨가 됐습니다.

이러한 결과는 역설적으로 빌리 그래함이 비난받은 지점과 잇닿아 있습니다. 정치에 얄팍한 이해를 지녔던 그는 1957년 인종차별 문제 앞에서 "법과 질서를 굳게 세우는 것이 중요하다"며 지극히 백인편향적이고 보수적인 발언을 했습니다. 그와 친분을 유지하면서도 비판적인 관계를 유지했던 마틴 루터 킹과 비교하자면, 킹은 '사회적 죄'를 지적한 반면, 빌리 그래함은 '개인적 죄'만 해결되면 사회도 더 나아진다는 순진한 생각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와 별개로, 개인적 죄를 해결하기 위한 복음 전도 집회에 대한 열정이, 결국 '모스크바 방문'과 '모든 인종이 함께하는 예배'로 이어졌다는 것은 무척 흥미롭습니다. '복음만이 해결할 수 있다'는 빌리 그래함의 믿음이 결국 사회적 변화를 추동한 것입니다.

젊은 시절의 빌리 그래함. 한국빌리그래함전도협회 홈페이지 갈무리
젊은 시절의 빌리 그래함. 한국빌리그래함전도협회 홈페이지 갈무리

2) 빌리 그래함은 기독교 복음 메시지를 지나치게 단순화한 인물 아닌가요?

빌리 그래함에 대한 비판적 평가는 바로 이 지점에 있습니다. 그가 지나치게 단순화·대중화한 기독교 메시지를 설파했다는 점입니다. 빌리 그래함은 경건의 힘을 믿는 천상 복음 전도자였습니다. 날마다 성경을 읽고 기도 생활을 꾸준히 했습니다. 깊은 신학적 식견은 부족하지만, 죄의 문제, 해결책인 예수 그리스도, 중생을 다뤘습니다. 빌리 그래함의 메시지가 지나치게 대중적이란 문제는 당시에도 비판을 받았습니다. <크리스천센추리>는 그게 세계에서 일어나는 일을 전혀 알지 못한다고 비평했고, 라인홀드 니버는 "반계몽주의적인 형태의 기독교 신앙"이라고 평가절하하며, 빌리 그래함의 집회가 맺은 열매들을 "값싼 중생"이라고 일갈했습니다.

빌리 그래함과 함께 초기 순회 설교 사역을 했던 찰스 템플턴은 기량과 용모에 있어 빌리 그래함에 뒤지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찰스 템플턴은 빌리 그래함과는 달리 프린스턴신학교에서 신학을 공부했습니다. 그는 다양한 논의를 접하며 성경의 무오성을 두고 지적으로 씨름합니다. 그러나 그에 대한 빌리 그래함의 대답은 '단순한 신뢰와 기도'였습니다. 어찌 보면, 찰스 템플턴의 지적인 신학 탐구에 비해 빌리 그래함은 순진한 신앙인에 불과하다고 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템플턴은 빌리 그래함을 두고 양가적인 평가를 내립니다.

"그가 강단에서 이야기하는 많은 내용은 유치하고 말도 안 되는 것들이었습니다. (중략) 하지만 그는 내가 유일하게 신뢰할 수 있는 대중 복음 전도자입니다."

빌리 그래함의 설교는 분명 높은 수준이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찰스 탬플턴의 지적처럼, 그는 신뢰받을 만한 인격과 복음에 대한 순수한 헌신을 가진 인물이었고, 그의 집회에 참여한 대중도 그를 인격적으로 신뢰했습니다. 대중이 빌리그래함전도협회로 보내온 편지들을 보면, 마치 개인적으로 빌리 그래함을 아는 것 같은 친근함이 묻어납니다. 죄에 대한 개인적인 고민을 토로뿐만 아니라 달라진 삶에 대한 감사함을 표하는 편지도 많습니다. 이 또한 하나의 역설입니다. 그는 매우 유치한 설교를 하는 순수한 복음 전도자였고, 그랬기 때문에 많은 이가 그에게 도움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빌리 그래함은 수많은 대중 전도 집회를 이끌었다. 한국빌리그래함전도협회 홈페이지 갈무리
빌리 그래함은 수많은 대중 전도 집회를 이끌었다. 한국빌리그래함전도협회 홈페이지 갈무리

3) 그래도 빌리 그래함은 역사상 최고의 순회 설교자는 맞죠?

빌리 그래함에 대한 상반된 평가와는 별개로 모두가 동의할 수 있는 점은, 그가 최선을 다해 열정적으로 살았다는 것입니다. 그는 거센 강물을 거슬러 올라가는 연어와 같았습니다. 1943년 6월 빌리 그래함은 등록 교인 30명 규모의 작은 침례교회 담임목회자가 됩니다. 그는 부임하자마자 교회를 초교파로 바꾸고 이름도 '빌리지교회'로 바꿉니다. 또한 지역 지도자들과 식사 자리를 열고 라디오방송을 인수해서 대중매체를 통한 복음 전파를 시작합니다. 그는 YFC라는 선교 단체와 협력해 곳곳을 돌아다니며 설교하는 복음 전도 사역에 뛰어듭니다. 이후로 그는 60년 동안 총 400여 회의 전도 대회와 외부 설교 사역을 감당했다고 알려집니다.

그는 전도 집회를 손쉽게 진행하지 않았습니다. 수천 장의 광고 전단지·스티커·판, TV·라디오 등 매체를 활용해서 집회를 알렸습니다. 또한 운동선수·연예인·정치인 등 유명인들의 간증을 배치했고 성가대·예술가 게스트를 동원해 집회의 완성도를 높였습니다. 전도 대회가 시작하기도 전에 팀이 도착해 홍보를 하고 지인들을 데려올 수 있도록 유도하는 캠페인을 벌이기도 했습니다. 빌리 그래함은 복음 전도의 힘을 굳게 믿었던 사람이고, 가능한 모든 자원을 동원해 복음 전도의 영향력을 증대하려고 했습니다.

빌리 그래함은 분명 기독교 역사상 최고의 순회 설교자이자 복음 전도자였습니다. 그는 복음 전도에 모든 자원을 투자했고, 그에 걸맞는 결실을 거둔 사람입니다. 그가 세운 기록과 그에게 영향을 받은 사람의 숫자를 뛰어넘을 사람은 아마 만나 보기 어려울 것 같습니다. 이처럼 그는 개신교 진영에서 가히 '교황'에 버금가는 지위를 누린 사람이었습니다. 하지만 과연 그가 추구했던 복음 전도와 그에 따른 결실이 정말 기독교적이었는지는 의문스럽습니다. 그는 복음 전도를 위해 다양한 정치 지도자들과 교류했고, 상업주의·자본주의의 성과를 최대한 활용했습니다. 그의 행보는 복음 전도자의 길이었을까요? 아니면 복음 전도를 판매하는 사업가의 길이었을까요?

한 인간의 생애란 참 역설적이지요. 개인적 죄악에 몰두했지만 인종차별을 넘어서게 만들고, 냉전 체제 균열에 일조했다는 사실은 흥미롭습니다. 또한 누구보다 단순한 메시지를 전했기에 매번 비판의 도마 위에 올랐지만, 오히려 이 때문에 대중의 버팀목 역할을 할 수 있었다는 사실도 흥미롭습니다. 빌리 그래함은 오늘날 복음주의 역사의 토대나 다름없는 사람입니다. 빌리 그래함의 면면을 살펴보면, 복음주의가 걸어온 역사의 명암을 두루 볼 수 있습니다. 다양한 행보를 통해 생애에 관한 방대한 데이터를 남긴 한 인물과, 그가 이끌었던 복음주의 운동을 살펴보는 일은, 한 인격과 역사의 신묘막측함을 느끼게 합니다.

여러분은 빌리 그래함을 어떻게 평가하시나요? 복음주의 운동은 어떻게 평가하시나요? 분명한 것은 조금 더 깊고 면밀히 살펴보고 나면, 우리 생각이 예전 같지는 않을 거라는 사실입니다. 역사란 원래 그런 것이니까요.

홍동우 / 설교도 잘하고 싶고 책도 잘 읽고 싶은 욕심쟁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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