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님, 안녕하세요.

두둥. 제 근황을 소개하는 시간이 돌아왔네요. 사실 유별난 것 없이 같은 일상을 반복하다 보니, 특별히 소개할 만한 일이 있나 부담되기는 합니다. 요즘 일상에 생긴 소소한 변화라면, 20년 전 한국을 휩쓸었던 게임 '디아블로2'가 재출시됐다는 건데요. 향수를 느끼며 이 게임을 다시 하고 있습니다.

중학생 시절, 게임 좀 그만하라는 잔소리를 들을 때마다 "어 엄마 나 바알 잡는 중이야"라고 대답했던 기억이 새록새록합니다. 디아블로 게임에 나오는 가장 마지막 몬스터가 바알이거든요. 그때는 목사 아들이라 당연히 캐릭터 고를 때도 '성기사(팔라딘)'를 해야 한다고 생각했는데요. 십자가 모양 방패를 든 성기사로 바알을 잡는다니…. 이래 봬도 목사 아들인데, 게임을 해도 이렇게 '성경적'인 게임을 해야 하는 거 아니겠습니까. ㅎㅎㅎ 

그래서 20년 만에 다시 시작한 지금도 그 직업을 골라 키우고 있는데요. 이틀 전 퇴근하고 한참 게임하는데 엄마에게 전화가 왔습니다. "집에만 있다고 너무 놀지 말고, 경건 생활도 좀 하라"고 하시더군요. 순간 20년 전 그 시절이 떠오르더라고요. 차마 "엄마 나 요즘도 바알 잡아"라고 할 순 없고….

요즘 일할 때 성가곡 켜 놓고 일한다고 대답했는데, 안심하시는 것 같았습니다. 안심시키기 위해 한 빈말은 아니었지만, 무료한 일상이 반복되다 보니 정말 몸과 마음을 챙기기가 갈수록 어려워지는 것 같습니다. 얼른 일상이 회복되기만을 바랄 뿐입니다. 마침 이번 주 주일예배 피아노 반주라는 중책을 맡고 저는 찬송가 연습하러 갑니다.

편집국 승현

처치독 리포트

어떻게 악법까지 사랑하겠어, 교회를 사랑하는 거지

저희 편집국에서는 매달 1권씩 책을 정해서 읽고 나누는 시간이 있어요. 지난달 읽은 책은 최정규 변호사(원곡법률사무소)의 <불량 판결문>(블랙피쉬)이라는 책이었는데요. 내용 자체도 좋지만, 최정규 변호사라는 사람이 어떤 생각을 하고 어떤 삶을살아 왔는지 알고 보니 더 몰입하게 되더라고요. 

첫 장부터 인상적이었어요. 다들 '악법도 법이다'라는 말 들어 보셨을 텐데요. 흔히 이 말을 소크라테스가 했다고 알고 있죠. 최 변호사는 이 '악법도 법이다'라는 말을 소크라테스가 했다는 증거가 없다고 말합니다. 오히려 일제강점기 경성제국대학 법학부 교수 오다카 도모오가 1937년 펴낸 <법철학>이라는 책에 이런 내용이 있다고 하더군요. 

"소크라테스가 독배를 든 것은 실정법을 존중했기 때문이며, 악법도 법이므로 이를 지켜야 한다." 

'댕~' 머릿속에서 누가 커다란 종을 치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습니다. 최 변호사는 우리가 일본의 국가주의를 지탱하는 논리를 제공한 법철학자 주장을 소크라테스가 한 말로 인식하고 있었고, 무엇보다 이 말이 상식에 반한 법에 저항하는 사람을 핍박하는 논거로 사용돼 왔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아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불량 판결문>과 그의 삶이 말하는 메시지는 이것입니다. 

"상식에 맞지 않는 법, 악법은 더 이상 법이 아니다!"(26쪽)

교회가 싫으면 목사가 떠나라?

최정규 변호사의 태도는 제게 큰 울림을 줬어요. 그간 교계 현장을 취재하며 많은 교회·사회 재판을 접했는데요. 재판을 통해서도 억울한 상황이 해결되지 않았을 때, 저 또한 그런 생각을 했었거든요. 

'법이 이러니까 어쩔 수 없지'‍
'판례가 그런데 이걸 넘어설 수는 없잖아?' 

재판을 관장하는 사람들의 권력을 의식하며 상식보다 '전략'을 먼저 생각하게 될 때도 있었습니다. 어느새 저도 '악법도 법이다'라는 말에 길들여져 있었는지 모르겠네요.

굳이 사회문제로 눈을 돌리지 않아도, 교계에 이런 일이 많습니다. 대표적인 것이 교단들의 '반동성애법'입니다. 3~4년 전부터 한국교회 주요 교단들은 앞다퉈 교단법에 반동성애 규정을 신설했는데요. 규모가 가장 큰 교단 세 곳만 봐도 교계는 '반동성애 독재' 시대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 예장통합: 동성애자 및 그 지지자는 교회의 직원이나 신학대학교의 교직원이 될 수 없다
· 예장합동: 동성애자 및 그 지지자는 신학교에 입학할 수 없고 적발 시 퇴학
· 감리회: [(범과犯過·잘못을 저지름)의 종류]마약법 위반, 도박 및 동성애를 찬성하거나 동조하는 행위를 하였을 때

이 때문에 직접적인 피해를 입는 사례가 하나둘 늘어나고 있어요. 2018년 5월 17일 아이다호데이(국제성소수자혐오반대의날)에, 장로회신학대학교에서 성소수자를 혐오하지 말자는 취지로 '무지개 행동'을 벌인 신학생들이 징계를 받은 사건 기억하시죠? 

학생들의 소송으로 징계는 무효가 됐지만, 징계를 받았던 학생들에게는 많은 상흔을 남겼는데요. 최근 법원이 이 피해에 대한 배상을 요구하는 소송을 기각하면서, 학생들은 실질적으로 피해를 구제받을 길이 막혀 버렸습니다. 판결문을 보니, 재판부는 장신대가 속한 예장통합 총회가 반동성애 규정을 만들었다는 점을 기각 이유 중 하나로 언급했더라고요.

2019년 인천 퀴어 문화 축제에서 축복식을 했다는 이유로 감리회 경기연회에서 정직 2년을 선고받은 이동환 목사(영광제일교회)도 교단의 반동성애법의 피해자입니다. 성소수자를 축복한 것이 2015년 교리와장정 재판법에 추가된 '동성애를 찬성하거나 동조하는 행위'에 해당한다는 것입니다. 이 목사는 정직 2년이라는 중징계를 받아 교회에서 담임목사 지위가 정지됐고, 총회 상소 비용까지 총 1400만 원을 납부해야 했습니다. 총회 재판은 코로나19를 핑계로 무기한 연기돼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이 됐습니다.

"법 자체가 저렇게 정해져 있으니 어쩔 수 없는 일 아닌가?"
"그런 법이 싫으면 교단을 옮겨야지 꼭 그 교단에 남아서 저러는 이유가 뭐야?"

이런 사건 기사에는 꼭 저런 댓글이 달립니다. 이 의견들이 어찌 보면 상식적으로 보이기는 해요. '악법도 법'이라는 말이 상식이 돼 버린 것처럼요. 갑자기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라'는 옛말이 생각나네요. 지금 시대에는 이렇게 바뀌어야 할 것 같습니다. '교회가 싫으면 목사가(혹은 교인이) 떠나라.' 

악법을 폐기하는 첫걸음

저런 반응을 보이는 사람들을 탓하자는 건 아닙니다. 앞에 썼듯이 저도 한편으로 그런 생각을 했던 게 사실이니까요. 하지만 이번 기회에 한번 생각을 다듬어 보면 좋겠어요. 제가 성소수자와 관련한 문제를 생각할 때 항상 잊지 않으려 하는 것이 있는데요. 누군가에게는 신학적 이야기이고 누군가에게는 정치적 이야기겠지만, 누군가에게는 삶 자체라는 것입니다. 그런 규정들에 삶을 재단·부정당하는 존재들이 있습니다. 이걸 염두에 두면서 잠시 최정규 변호사로 빙의해서 차근차근 생각해 볼까요? 

최 변호사는 '상식에 맞지 않는 법과 싸우는 변호사'로 살며 다음 철칙을 정했다고 합니다.

1. 내 의견을 명확하게 정리하기

관련 판례를 찾아보기 전, 보편적 상식과 내가 공부하고 경험한 법 논리에 비추어 내 의견을 명확하게 정리한다.

2. 질문을 던지며 구시렁거리기

판례를 찾아 내 의견과 다를 경우 당황하지 않고 이런 질문을 던지며 구시렁거린다. '이 판례는 상식과 맞지 않는데, 왜 그런 것일까? 혹시 힘 있는 자들의 논리에 설득당한 것이 아닐까? 도대체 판사들은 왜 이런 논리에 설득당했을까? 판사들이 이런 논리에 설득당할 때 법률가들은 도대체 뭘 한 것인가? 구경만 했단 말인가?' 

3. 박차고 일어나 새로운 전쟁터로‍

"우리가 바꿔야 할 판례를 하나 더 발견했구나! 새로운 판례를 만들어 보자!"‍⚖️ 

저도 한번 질문을 던지며 구시렁거려 보겠습니다. 보수적인 교단들은 동성애가 죄라고 하면서도, 동성애자는 차별·혐오하지 않는다고 선언합니다. 

이것이 과연 가능한 건지 차치하고서라도, 

· 동성애자와 그의 인권을 존중하는 사람까지 입학을 금지한다든지,
· 교회에서 직분을 맡지 못하게 한다든지, 
· 마약이나 도박을 하는 사람과 같은 선상에서 취급하는 것이, 
과연 그들을 차별·혐오하지 않는 행위라고 할 수 있을까요?

- 신학적 입장이 첨예한 동성애와 관련한 어떤 토론도 없이 처벌만을 규정한 것이 과연 교단이 할 수 있는 최선일까요? 
- 다양한 교회 구성원들을 대표할 수 없는 60대 남성 목사들이 삽시간에 정한 이 규정을 그냥 따라야 할까요? 
- 성소수자를 축복했다는 이유로 이 규정에 저촉돼 중징계를 받는 상황을 '어쩔 수 없다'며 용인해야 할까요? 
- 사회 법정에서 교단 방침이 그러니 어쩔 수 없다는 식으로 판결해도 역시 '그럴 줄 알았다'며 수긍해야 할까요? 

최정규 변호사로 빙의한 저는 '아니'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며칠 전 감리회에서는 이 악법을 폐기하자는 움직임이 있었습니다. 교단 내 성소수자 지지 단체들이 모여, 이 규정이 사상 검증 도구로 이용되고 있는 현실을 고발하고 진지한 연구·토론이 이뤄져야 한다고 이야기를 나눴는데요. 물론 이런 작은 이야기가 교단법을 주무르는 이들에게 가닿을지는 미지수지만, 악법을 폐기하는 첫걸음이라는 관점으로 보면 큰 의미가 있는 자리였습니다. 안타까운 점은 다른 교단에서는 아직 이런 논의가 나올 기미조차 보이지 않는다는 거예요. "박차고 일어나 새로운 전쟁터로"‍ 나아가는 작은 걸음들이 나와 주었으면 합니다.

편집국 권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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