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앤조이-구권효 기자] 장로회신학대학교(김운용 총장)에서 일명 '무지개 행동'을 벌였던 당사자들이 학교를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소송이 기각됐다. 학교의 징계가 법원에서 무효가 됐는데도 이로 인한 손해배상 책임은 인정되지 않은 것이다.

장신대생 8명은 2018년 5월 17일 아이다호데이(국제성소수자혐오반대의날)를 맞아 무지개색 옷을 맞춰 입고 채플에 참석했다. 예배가 끝난 후에는 무지개 깃발을 들고 사진을 찍었다. 다음 날부터 보수 교계 언론들이 '장신대 내에서 동성애 지지 퍼포먼스가 벌어졌다'는 식으로 기사화했고, 학교는 그해 7월 26일 학생 5명에게 각각 정학 6개월, 근신, 경고 등 징계를 내렸다.

학생들은 징계를 받아들일 수 없다며 소송을 제기했다. 법원은 2019년 5월 17일 징계 절차와 내용이 잘못됐다며 징계 효력을 정지시켰다. 같은 해 7월 18일, 징계 무효 확인소송에서도 학생들이 이겼다. 학생들 행동이 징계 사유에 해당하는지는 다루지 않았지만 징계 절차 자체가 잘못됐다는 점이 인정됐다. 학교가 항소하지 않아 이 판결은 확정됐다. 징계가 부당했다는 점이 법적으로 인정된 것이다.

이 중 학생 4명은 학교를 상대로 손해배상을 청구했다. 결과적으로 징계는 무효가 됐지만, 그 전후로 학습권 및 양심의자유와 인격권이 침해됐고, 교단과 지인들로부터 동성애 옹호자로 낙인찍혔다는 것이다. A는 당시 일하던 교회에서 사임하게 됐고, B는 대한예수교장로회 통합(예장통합·류영모 총회장) 목사 고시에서 합격점을 받고도 불합격 처리됐다. C와 D 역시 목회자로서 진로가 위태로워졌다고 주장했다. 학교가 원고들에게 각각 1000만~1500만 원을 배상하고 명예훼손 특칙을 적용해 학교 신문 및 홈페이지에 패소 판결을 공지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무지개 행동 학생들은 옷을 맞춰 입고 예배한 후 사진을 찍었다. 아이다호데이에, 말 그대로 성소수자 혐오를 반대한다는 의미였다. 뉴스앤조이 자료 사진
무지개 행동 학생들은 옷을 맞춰 입고 예배한 후 사진을 찍었다. 아이다호데이에, 말 그대로 성소수자 혐오를 반대한다는 의미였다. 뉴스앤조이 자료 사진

하지만 서울동부지방법원 민사16부(우관제 재판장)는 10월 6일, 학생들의 청구를 모두 기각했다. 학교의 징계가 절차상 하자로 무효가 됐다고 하더라도, 그것만으로는 불법행위가 되지 않는다고 판단한 것이다. 재판부는 대법원 판례 두 개를 통해 장신대 신대원의 징계가 불법행위가 될 수 없다고 판결했다.

① 대법원 1997년 9월 9일 선고(97다20007): 학생에 대한 징계가 징계 대상자의 소행, 평소의 학업 태도, 개전의 정 등을 참작하여 학칙에 정한 징계 절차에 따라 징계위원들이나 징계권자의 자율적인 판단에 따라 행하여진 것이고, 실제로 인정되는 징계 사유에 비추어 그 정도의 징계를 하는 것도 무리가 아니라고 인정되는 경우라면, 비록 그 징계 양정이 결과적으로 재량권을 일탈한 것으로 인정된다고 하더라도 이는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법률 전문가가 아닌 징계위원들이나 징계권자가 징계의 경중에 관한 법령의 해석을 잘못한 데 기인하는 것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어서, 이러한 경우에는 징계의 양정을 잘못한 것을 이유로 불법행위 책임을 물을 수 있는 과실이 있다고 할 수 없다.

② 대법원 2010년 4월 22일 선고(2008다38288): 학교가 그 징계의 이유로 된 사실이 퇴학 등의 징계 처분의 사유에 해당한다고 볼 수 없음이 객관적으로 명백하고 조금만 주의를 기울이면 이와 같은 사정을 쉽게 알아볼 수 있는데도 징계에 나아간 경우와 같이, 징계권의 행사가 우리의 건전한 사회 통념이나 사회 상규에 비추어 용인될 수 없음이 분명한 경우에 그 징계는 그 효력이 부정됨에 그치지 아니하고 위법하게 상대방에게 정신적 고통을 가하는 것이 되어 그 학생에 대한 관계에서 불법행위를 구성하게 된다.

쉽게 말해, 학교가 징계 사유가 아닌 걸 알면서도 학생들을 악의적으로 징계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판례상 불법행위 책임을 물을 수 없다는 뜻이다. 재판부는 징계에 절차상 하자가 있더라도 이는 법률 전문가가 아닌 징계권자들의 실수로 봐야 한다는 것(①)과, 무지개 행동이 장신대 신대원 안에서 명백하게 징계 사유가 아니라고 판단할 수 없다는 것(②)을 이유로 학교 징계가 무효일지라도 불법행위를 구성하지는 않는다고 판단했다.

쟁점은 이 '무지개 행동'이 명백하게 징계 사유가 아니라고 볼 수 있느냐는 것이다. 학생들은 무지개 행동이 성소수자에 대한 혐오와 차별에 반대한다는 취지로 헌법상 표현의자유와 양심의자유에 따라 보호받아야 할 행위이기 때문에 "징계 대상이 될 수 없다는 것이 명백하다"고 주장했지만, 재판부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부는 장신대가 예장통합 교단에 속해 있고 예장통합은 2017년 9월 총회에서 "동성애자 및 동성애를 지지하고 옹호하는 자는 성경의 가르침에 위배되며 교회의 직원 및 신학대학교 교수, 교직원이 될 수 없다"는 헌법시행규정을 만들었다는 점을 들어, 학교가 총회 결의를 존중해야 할 지위에 있다고 봤다. 또 신구약 성경에 동성애를 금지하는 문언이 여러 곳에 존재하고 동성애가 성경 가르침에 위배된다고 보는 교인이 상당하다는 점도 언급했다. 실제 이 사건이 하루 만에 기사화했고 논란이 촉발됐다며, 무지개 행동은 총회 결의에 반하는 행위로 오인될 여지가 다분해 학교가 징계를 고려하지 않을 수 없었다는 것이다.

징계 이후 학생들이 겪어야 했던 일들도 학교의 징계 때문에 생긴 결과라고 보기 어렵다고 했다. 재판부는 "원고들이 교단 등과 대립하면서 목사 고시 불합격, 전도사 사임, 진로의 불투명 등과 같은 상황을 겪는 것은 원고들의 자발적 의사로 시작된 이 사건 행위 및 교단과 총회 결의에 대한 비판적 태도를 비롯해 원고들의 신념에 따른 적극적인 행동과 이에 반대하는 교인들 간의 대외적인 갈등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일 뿐"이라고 판결했다.

장신대는 징계 후 이 사실을 담은 소책자를 만들어 2018년 8월 총회에 제출한 바 있다. 학생들은 소책자에 자신들이 마치 동성애 문제로 징계받은 것처럼 기술돼 있고 신원을 유추할 수 있는 내용이 기재됐다며 명예가 훼손됐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재판부는 소책자 내용이 교단 구성원들의 관심과 이익에 관한 것이라며 위법성이 없다고 판단했다. 소책자가 총회에 제출되기는 했지만 전국 노회장 및 교계 주요 인사들에게까지 배포되지 않은 단계에서 회수됐다는 점도 언급했다.

정학 6개월이라는 징계를 받은 학생 A는 징계 효력이 정지된 후 2019년 2학기 복학하려 했으나, 학교 측이 징계 상태를 유지하는 바람에 제대로 된 복학 준비를 할 수 없었다. A는 이에 대한 책임도 물었지만, 재판부는 "효력이 정지된 징계 처분의 외관을 즉시 제거하지 않은 흠이 있지만, 이로써 원고에게 징계 처분과 별도로 추가적인 손해가 발생한 것으로는 보이지 않는다"는 점 등을 참작해 학교가 불법행위를 저질렀다고 보기 어렵다고 했다.

학생들은 안정적으로 학업을 이어 갈 수 있도록 학교가 외부의 부당한 비난으로부터 학생을 배려·보호할 의무가 있는데도 그 의무를 위반했다고도 문제를 제기했다. 그러나 재판부는 "원고들과 피고가 대학원생 및 학교법인의 관계에 있다는 사정만으로는 원고들이 안정적으로 학업을 이어 갈 수 있도록 외부 세력의 부당한 비난으로부터 원고들을 적극적으로 보호할 법적 의무가 피고에게 있다고 보기 어렵다"고 일축했다.

재판부는 징계 전후로 일어난 일에 대해 학교 책임을 인정하지 않았다. 뉴스앤조이 이용필

학생 측은 판결을 받아들일 수 없다며 항소하겠다고 밝혔다. 대리인 중 한 명인 박한희 변호사(희망을만드는법)는 10월 12일 기자와의 통화에서 "이 소송은 근본적으로 부당한 징계를 한 학교 측의 책임을 묻기 위한 것이다. 이미 법적으로 징계는 절차와 내용에 문제가 있다고 판단됐다. 그런데 이번 판결은 오히려 학생들이 오해의 소지를 줬다며 마치 징계 자체도 문제가 없다는 식으로 나왔다. 논란은 보수 교계 언론과 단체들이 만든 것이지, 학생들은 징계를 각오하거나 논란을 일으킬 걸 예상하고 행동한 것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그는 "재판부는 교단 총회가 반동성애 결의를 했다는 점을 언급했는데, 학교 측에서도 징계가 학칙 위반 때문이라고 주장했지, 총회 결의 때문이라고 한 적이 없다. 이외에도 재판부는 교계 언론이 기사화했다거나 교계 단체들이 장신대 총장에 대한 징계 및 해명 요구를 했다는 등 이런저런 것들을 다 끌어와 마치 학생들이 잘못한 것처럼 썼다. 심지어 신구약 성경 이야기도 나오는데, 이건 학교 측도 주장하지 않았던 것이다"라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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