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은 흐르고 있고 세상도 바뀌고 있다. 아무리 '교회인(churchians)'들이 성소수자를 향한 편견·혐오 생산에 열과 성을 다하더라도, LGBTQIA+ 제자들이 안수받고, 목회하는 지형은 계속 확장되고 있다. 시간강사로 일한 2004년부터 만나 온 제자들은 자신들의 속도에 맞춰 그리스도인·목사·전도사로 살아가고 있다.

지난달에도 한 제자가 "교수님, 시간이 많이 흘렀지만, 저 안수받아요. 언젠가 프리다가 세우실 교회에 꼭 합류하고 싶어요"라고 연락해 왔다. 안수식 전 축하 식사 자리에서 교회·목회 이야기를 그 어느 때보다 신명 나게 하는 그를 볼 수 있어서 하나님께 감사했다. "젠더와 성 정체성에 상관없이, 신체 기능의 다름과 상관없이 자기 존재 그대로 '충분히 그리스도인'이 될 수 있는 교회를 기도하며 꿈꾸자"고 축하와 축복을 전했다.

이번 글에서 소개할 '함께고통함께평화' 인사를 나누는 내 친구는, LGBTQIA+ 인권 운동 앨라이(Ally, 협력자·동맹자)들, 소위 '무지개 퍼포먼스'로 알려진 3년 전 사건 참여자들이다.

2018년 5월 17일 '국제성소수자혐오반대의날'을 맞아 무지개 퍼포먼스에 나섰던 장신대 신학도들. 사진 제공 프리다
2018년 5월 17일 '국제성소수자혐오반대의날'을 맞아 무지개 퍼포먼스에 나섰던 장신대 신학도들. 사진 제공 프리다

장로회신학대학교 학부생 3명과 신대원생 5명, 그렇게 모인 신학도 8명은 2018년 5월 17일 '국제성소수자혐오반대의날(International Day Against Homophobia, Transphobia and Biphobia, 아이다호데이)'을 맞아 그 정신을 기념하고 싶었다. 그들은 캠퍼스에서 동문수학하는 이들을 향한 우정의 메시지를 상징적으로 표현하기 위해 다른 색 상의를 입고 채플에 참석했다. 예배를 마친 후에는 무지개색 깃발을 들고 사진도 찍었다. 나는 이 학생들이 이날 일로 학교 당국의 조사를 받게 됐다는 것을 2018년 5월 21일 <뉴스앤조이> 기사를 통해 접했고, 두 가지 의미에서 이 사건에 주목했다.

첫째, 기독교 안에서 문화적으로 '금기시된 깃발'을 든 이 신학도들은 분명 사회적 소수자의 목소리를 경청하는 이들일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목소리가 들려오는 곳을 향해 단지 귀만 가져간 것이 아니라 마음까지도 합해 행동으로 옮긴 이들이 궁금해졌고 함께 만나 대화를 나누고 싶었다. 단순 '퍼포먼스'가 아닌 예수가 지닌 복음 정신을 실천한 자랑스런 신학도들이라 생각했다.

둘째, '반동성애' 열풍이 한국교회에 흥행했던 반공주의의 대체물이 돼 가고 있는 상황에서, 근본주의에 빠진 교회가 학생들의 무지개 퍼포먼스를 '흥행 확장성'을 위한 부싯돌로 이용할 것 같다는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그렇게 될 경우 이들에게 드리울 먹구름은 불 보듯 뻔한 일이었기에, 이 사건의 흐름에 더욱 주목하게 됐다.

장신대는 방학 기간이던 2018년 7월 26일, 8명 가운데 학부생 3명을 제외하고, 신대원생 5명 중 1명에게는 정학 6개월, 3명에게는 근신·사회봉사, 다른 1명에게는 엄중 경고를 내려 징계 처분했다. 몇몇 동문이 징계 철회를 위한 성명서를 작성하자고 제안했고, 나도 그 취지에 공감해 징계 철회를 위한 기자회견에 참여했다. 먹구름이 쏟아부을 비를 함께 맞을 각오를 하고, 학교 당국 교수들을 만나 서명지를 전달하기도 했다. 그런 나의 마음이 전해졌는지, 이 사건에 직·간접적으로 관여한 후배들이 광주로 찾아와 대화도 나누게 됐고, 징계 처분을 받은 후배들은 '함께고통을 겪으며 함께평화를 구하는' 나의 친구가 됐다.

그 후에도 사건은 악화일로에 접어들었고, 성명서에 서명한 1407명 명단은 급조된 교단 '동성애대책위(동대위)'에 넘겨져 블랙리스트로 활용됐다. 처벌당한 나의 친구와 군목 후보생이었던 또 다른 한 사람은 목사 고시에 합격하고도, 다시 노회 호출·면접, 총회 동대위 재면접이라는 호된 과정을 겪으며 고통을 감내했다. 이들의 합격은 '불합격' 통보로 뒤집혔다. 이런 일은 여기에 그치지 않았다. 2020년에도 블랙리스트 명단에 있는 후배 한 명이 모든 과목에 합격했으나 면접 불합격 사유로 목사 고시를 통과할 수 없었다. 당사자가 결과 통지서를 내게 보내와 알게 된 사실이다. 동대위가 해체되지 않는 한, 이런 일은 지속될 것이다.

장신대학교는 2020년 10월 23일 공식 유튜브 채널에 '동성애 반대' 영상을 업로드했다. 장로회신학대학교 유튜브 채널 갈무리
장신대학교는 2020년 10월 23일 공식 유튜브 채널에 '동성애 반대' 영상을 업로드했다. 장로회신학대학교 유튜브 채널 갈무리

현재 교단 총회 산하 7개 신학교는 입학생을 대상으로, 총회에서 어떤 저항도 없이 만들어진 동성애 혐오 장치를 사상 검증용 리트머스종이로 사용하고 있다. 2020년에는 총회장이 '자칭' 장자 교단장답게 '포괄적 차별금지법 제정 반대 성명서'를 공식 발표하기도 했다. 나는 교단에 성명서의 작성·공표 과정을 따져 묻기도 하고, 발표를 철회하라는 개인 서한을 총회장 앞으로 보내기도 했으나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무지개 퍼포먼스 후배들과 제자들, 그리고 나 자신을 포함한 이들을 '우리'로 묶는 것이 가능하다면, '우리는 합류를 기다리는 강의 지류들처럼 서로 다른 곳에서 흘러 오고 있던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후배들이 장신대에서 징계를 받은 2018년 7월보다 조금 이른 2월, 나는 어떤 사건을 계기로 10년 넘게 교수로 일한 호남신학대학교를 떠나게 됐다.

2017년 10월 호남신대 종교개혁 500주년 기념 예배에 초청된 강사 목사는 시대착오적인 내용으로 설교했다. 예배를 마친 후 한 학생이 설교 내용에 반문하며 저항했고, 나는 그 학생의 용기 있는 행동을 지지했다. 당시 총장은 몇몇 학생의 이야기만 듣고 내 강의 내용을 문제 삼았고, 교권을 침해했다. 나는 총장의 행동에 수치심을 견디기 어려웠고, 나를 향한 하나님의 소명이 그곳에 계속 머물러 있을 만큼 시시하게 느껴지지 않아 곧 사표를 제출하고, 해당 학기를 마지막으로 2018년 2월 학교를 떠났다. 그 상황을 바라본 몇몇 제자들은 신대원 졸업을 한 학기 남기고 자퇴했고, 해당 학생도 졸업 후 졸업장을 버리고 교회를 떠났다.

비슷한 시기에 비슷한 경험을 한 사람들, 즉 장신대 무지개 퍼포먼스 징계 피해자와 지지자, 자퇴한 장신대·호남신대 제자, 교회를 떠난 후배, 성소수자 신학생과 앨라이 등 '함께고통'받은 우리 모두는, 신학교 '안'이 아닌 '밖', '채플'이 아닌 '카페', 사진 한 장 찍는 '기념 행사'가 아닌 모두를 위한 '예배'에 어느 날 함께 모였다. 그날은 후배들의 '그날'로부터 꼭 1년이 지난 2019년 5월 17일이었고, 나는 그 자리에서 '모두여서 비로소 예배'라는 제목으로 설교했다.

2019년 아이다호데이 장신대 징계 학생들이  때 함께 모인 성소수자. 뉴스앤조이 이은혜
2019년 아이다호데이를 맞아 서울 광장동 한 카페에서 열린 '모든 사람의 예배'. 뉴스앤조이 이은혜

2018년 신학교를 떠난 후 1인 연구소를 구상하면서 영국 버밍엄을 방문했다. 평생을 퀘이커로 헌신한 조지 캐드버리(George Cadbury)와 엘리자베스 캐드버리(Elizabeth Cadbury)가 조성한 '퀘이커대학'과 '우드브룩퀘이커연구소(Woodbrooke Quaker Study Center)'를 찾아갔다. 마하트마 간디가 머물렀던 방을 둘러보며, '평화·관용·평등사상'과 '하나님은 모든 사람 안에 있다'는 퀘이커의 가르침을 묵상했다. "여기에 머무는 동안 고요함(Stillness)을 찾기 바란다"는 센터 인사말에 위로를 받으며 그 안에 담긴 따스함이 내 삶에도 깃들기를 기도했다. 그 기도는 무지개 퍼포먼스 후배들과 동행하는 동안 늘 내 마음에 자리했고, '공간엘리사벳'의 바탕 정신이 됐다.

영국에서 돌아와 2018년 11월 15일 광주에 연구소를 열었으나, 나는 '동성애 지지 신학자'로 낙인찍혀 9년간 함께했던 교회마저 떠나야 했던 아픔을 겪었다. 교회는 내게 의논 한마디 없이 2018년 12월 말로 내 임기가 종료됐다고 표기한 '2019년 교회 요람'을 새해 첫 주에 전 교인에게 배포했다. 그 황당하고도 당황스러운 상황 속에서 당회에 사과를 요구하고 대화를 이어 가고자 5개월 동안 애썼으나, 더는 교회에 머물 수 없었다. 교회는 나의 사임 사유를 '일산 이주'로 공지했다.

광주살이 12년, 연구소를 개소한 지 7개월 만에, 연구소·교회를 중심으로 살아가고자 했던 나의 꿈을 접고, 2019년 5월 20일 일산으로 이사했다. 집에서 혼자 예배를 드리고, 공간 없는 '공간엘리사벳'을 다시 시작하면서, 무지개 퍼포먼스 후배들을 초대해 집들이를 했다. 학교 밥을 주로 먹고 살았던 터라 요리에는 자신이 없었기에 유학 시절 간단히 해 먹었던 김쌈밥, 일명 '캘리포니아 롤'을 준비했다. 집을 찾아 준 후배들에게 고통 속에서도 해방적으로 살아간 예수님을 따라가며 같이 책도 보고 꿈도 꿔 보자고 격려했다.

후배들이 돌아간 자리에 한동안 머물러 앉아 있으니, 여성 안수가 안 되어 암울했던, 병든 시어머니를 돌보며 소명도 갈 길도 잃은 듯한 스물 아홉의 내가 보였다. 그들을 응원하고 나를 위로하는 심정으로 식탁에 오르고 남은 아보카도 씨 하나를 보살폈다. 수경재배를 하던 어느 날, 아보카도 씨가 위아래로 쪼개지더니 아래로는 뿌리가, 위로는 줄기가 돋기 시작했다. 정말 신기했다. 뿌리가 길어지고 줄기가 자라나고 이파리가 돋아나길래, 아보카도를 물에서 꺼내어 작은 화분에 심었다. 어느덧 두 해를 살아 꽤 키가 자란 아보카도 뿌리가 편히 발 뻗을 수 있도록, 지난달에는 아예 커다란 화분으로 옮겨 심었다.

어느덧 두 해를 살아 낸 아보카도 나무. 사진 제공 프리다
어느덧 두 해를 살아 낸 아보카도 나무. 사진 제공 프리다

아보카도를 보면서 '변형된 존재는 살던 곳에서 머무를 수가 없구나' 하고 생각했다. 나를 포함해 징계를 받은 후배들에게는 '학교·교회·마을·집 어디든 영원히 머물 수 있는 곳이 없겠구나' 싶어 괜히 서러운 마음도 든다. 하지만 무지개 퍼포먼스를 담은 사진 한 장의 추억이 '사건'이 되고, 그 사건이 '역사'가 되리라는 희망, 그 희망의 터에서 진정한 '교회'가 재건되리라고 믿는다. '사랑'은 죄인인 인간에게 스며든 하나님의 정체성이며, '혐오·배제'는 신이 되고자 하는 인간이 만들고 유포한 욕망의 씨앗이다. 선교사를 앞세워 식민지로 갔던 제국주의 교회의 시대는 끝났지만, 빼앗아 쌓은 교권과 돈을 지키려, 자본주의 탈을 쓰고 타자를 향한 혐오와 정죄를 합법화하는 종교 지배 엘리트들의 오랜 제국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이제는 모두 그 오래된 집을 떠날 때도 되지 않았는가!

"모든 제국은 끝이 났어!(All Empires come to an end!)"

영국 방문 때 나를 집으로 초대해 주고, 수시로 만나 대화를 나누기도 했던 수기르타라자(R. S. Sugirtharajah) 교수님이 작년에 한국을 방문해 하신 말씀이 떠오른다. 그의 예언적 선포와 "혐오는 사랑이 아니다"라고 다정하게 말했던 무지개 퍼포먼스 친구들의 신학 선언이 오랜 제국을 끝내고 그 자리에 지어질 새로운 교회의 터전이 되기를 간절하게 소망한다. 함께고통함께평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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