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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기독 군인회

2005년 여름 어느 미디어 프로덕션에서 내가 처음 맡게 된 의뢰는 한국에서 열리는 '세계 기독 군인 대회' 홍보 영상 제작이었다. 아나뱁티스트신학교에서 평화학 석사 과정을 막 마치고 돌아온 내게 주어진 첫 번째 과제가 군인 대회 홍보 영상이라는 것이 당황스럽기도 했지만, 더 놀랍고 신기했던 것은 내가 알지 못했던 '세계기독군인연합회(AMCF·Association of Military Christian Fellowship)'의 존재였다.

영상물 제작을 위해 클라이언트와 미팅을 하고 기획 구성안을 쓰는 일은 쉽지 않았다. 제작자로서 클라이언트의 요구에 충실해야 했지만, 기독교 평화주의에 대한 스스로의 확신을 어딘가에 치워둘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러다 붙잡은 것이 사도행전 10장에 등장하는 '고넬료' 이야기였다. 사실은 미팅을 위해 방문했던 군인 교회 화장실에서 본 월간 기도 제목이 내게 새로운 성찰의 계기를 제공했다. 거기에 적힌 많은 기도 제목 중 가장 먼저 보았던 것이 다름 아닌 '평화'를 위한 기도였기 때문이다. 군에서 복무하는 의롭고 경건한 고넬료 같은 이들은, 전쟁이 일어나지 않기를 누구보다도 간절히 바랐던 것이다.

2. 황금 어장

최근 'D.P.'라는 드라마가 큰 화제를 몰고 있다. 2014년 어간 군대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는데, 1990년대 초반 군 생활을 했던 내 경험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드라마에서 보여 주듯, 바뀌지 않는 오래된 수통만큼이나 군대 문화는 크게 바뀌지 않은 게 사실이다. 드라마를 보면서 수십 년 동안 불러본 적 없는 군대 시절 여러 사람의 이름과 사건들이 떠올랐다. 많은 시간이 지났지만 내가 온몸으로 겪었던 폭력의 트라우마는 사라지지 않았던 것이다. 

1948년 8월 15일 창설된 대한민국 국군과 한국교회는 지난 73년 동안 어떤 관계를 맺어 왔을까? 1951년 감리교 신자 대통령의 적극적인 지원 아래 시작된 '군종' 제도에서 개신교가 배타적인 특혜를 누려 왔다는 사실은 이미 잘 알려져 있다. 쿠데타로 권력을 얻은 박정희 치하에서는 "신앙도 전력화"하는 군인 출신 대통령의 전폭적인 지원 아래 '전군 신자화 운동'(1965)이 시작되기도 했다. 한국교회 급성장의 외적 요인으로 흔히 반공주의·민족주의를 언급하지만, 사실 '진중 세례'·'대규모 합동 세례식' 등을 통해 군대라는 황금 어장 깊은 곳으로 나가 그물을 던졌던 한국교회의 수십 년 노력을 간과하면 안 될 것이다. 최근까지도 초코파이를 '만나'에 비유하면서 "초코파이 전도로 국민 75%를 복음화할 수 있다"고 주장하던 장군님이 있었다.

여기서 드는 생각은, 교회가 70년이 넘는 세월 군 복음화를 위해 그렇게 열심을 냈는데도 왜 군대 내 폭력은 사라지지 않았을까, 더 열심히 전도하면 군대 내 각종 폭력·총기 사고가 근절될까, 그동안 교회는 군대를 복음화한다고 했지만 오히려 교회가 폭력적인 군대 문화에 포섭된 것은 아닐까 하는 질문들이다. 

3. 부끄러운 '군종' 마크

대한민국 많은 예비역에게 군대 트라우마를 소환하는 이 드라마 속 기독교는 어떻게 비칠까? 단 하나의 장면이 내게 남았다. 드라마 속 조석봉 일병(배우 조현철 분)을 상습적으로 성추행하던 류이강 상병(배우 홍경 분)의 전투복 왼쪽 가슴에는 십자가와 함께 '군종'이라고 새겨진 마크가 등장한다. 아마도 이 장면이 6부작 드라마에서 유일하게 기독교의 존재감을 보여 주는 부끄러운 자화상일 것이다. 기독교 신앙과 복음이 폭력 구조 안에서 아무런 힘도 발휘하지 못한 것이다. 나는 이 깨알 같은 장면이 고마웠다. 폭력을 대하는 교회의 민낯을 너무도 자연스럽게 드러내 줬기 때문이다.

후임병 성추행을 일삼던 병사의 전투복 왼쪽 가슴에 선연한 십자가와 군종 마크(사진 빨간 원). 넷플릭스 드라마 'D.P.' 갈무리
후임병 성추행을 일삼던 병사의 전투복 왼쪽 가슴에 새겨진 십자가와 군종 마크(사진 빨간 원). 넷플릭스 드라마 'D.P.' 갈무리

이렇게 쓰고 보니, 십자가 깃발을 들고서 제국과 교회가 저질러 온 수많은 폭력의 역사가 떠오른다. 하나님은 폭력적인 십자가 위에서 비폭력적인 방식으로 세상을 구원하셨지만, 교회는 오히려 십자가를 폭력의 자리에서 사용해 왔다. 그렇다면 이 드라마가 보여 주는 것 같이 피해자·가해자 혹은 방관자라는 세 가지 선택지만 있는 것일까. 이러한 상황에서 교회가 그렇게 중요시 여기는 복음은 과연 무엇이고, 구원은 또 무엇일까.

이제는 다른 질문이 필요한 시대다. 교회는 이미 다른 세상에 도달했다. 군대를 더 이상 '황금 어장' 혹은 '민족 복음화의 마지막 보루'로 보지 않기를 바란다. '죽임 당하신 어린양 예수'를 믿고 따른다면 우리는 이전과 다른 질문을 할 수밖에 없다. 이제는 교회가 우리 안에 이미 깊숙이 뿌리내린 폭력 문화를 성찰하고, 질문하고, 다른 상상의 근거를 제시할 수 있으면 좋겠다.

4. 평화의 길

고넬료는 계속 로마 군대의 백부장으로 남았을까? 사도행전은 베드로를 만난 이후의 고넬료에 대해 더 이상 언급하지 않는다. 그러나 베드로는 "의롭고 경건하며 하나님을 두려워하던 고넬료"에게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평화를 전하셨다"라고 말한다. 의롭고 경건하며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고넬료가 많아지길 바란다. 그리고 고넬료가 받아들인 예수 그리스도의 평화의 복음이 우리 교회 안에서 새롭게 발견되기 간절히 바란다.

김성한 / 메노나이트중앙위원회(MCC) 동북아시아지부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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