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앤조이-이은혜 기자] 교회 내 성폭력을 취재하다 보면 과거 기사를 들춰 볼 때가 있다. 안타깝게도 10년 전 20년 전 기사에서 지적하는 내용이 오늘날 나오는 이야기와 크게 다르지 않다. 목회자에게 집중된 권력 구조, 폭력을 저지르고도 '불륜'이나 '실수' 정도로 빠져나가려는 뻔뻔한 가해자, 가해자를 쉽게 용서해 주는 교인들, 가해자가 명예롭게(?) 떠날 수 있도록 사임 사유를 공개하지 않는 선·후배 목회자들이 교회 성폭력을 계속 발생하게 만든다. 예나 지금이나 교회 성폭력 근절을 위한 첩경은 성폭력을 '성'폭력이 아니라 성'폭력'으로 바라보는 것이다.

교회 내 성폭력이 반복된다는 건 교회가 안전한 공간이 아니라는 것을 방증한다. 최근 출간한 <실패한 요더의 정치학 - 존 하워드 요더의 성폭력과 교회의 대응>(IVP) 저자 김성한 대표[메노나이트중앙위원회(MCC) 동북아시아지부]는 이 같은 현실을 '동그란 네모'라고 표현했다.

요더(John Howard Yoder, 1927~1997)는 아나뱁티스트들에게 결코 빼놓을 수 없는 기독교윤리학자이자 탁월한 업적을 남긴 평화신학의 대가였다. 그런 그가 수십 년간 100명에 가까운 여성에게 성폭력을 가한 사실이 밝혀졌을 때 충격은 어마어마했다. 지금도 그의 저작 인용을 놓고 사람마다 의견이 갈린다. 김성한 대표는 <실패한 요더의 정치학>에서 교회 성폭력 가해자의 신학적 산물을 어떻게 사용할 것인가와는 별개로, 요더가 중요한 위치에 있는 사람이었기 때문에 교회가 대응에 실패했다는 점을 지적하고, 교단·학교 리더십이 어떤 과정을 통해 이 문제를 단순한 성적 스캔들이 아닌 '교회 성폭력' 의제로 전환해 해결했는지 설명했다.

책을 읽으면서 공감하는 지점이 많았다. 그동안 취재하면서 느껴 온 많은 부분이 요더 사건 곳곳에 녹아 있었다. 한국교회가 요더 사건 조사를 맡았던 AMBS(Anabaptist Mennonite Biblical Seminary)의 1970~1990년대 행보를 좇아가면 교회 성폭력 대처에 실패할 것이고, 제대로 대처하기를 원한다면 2011년 이후 사건 처리 과정에 주목해야 한다고 말하는 것 같았다.

안타깝게도 한국교회 대부분은 여전히 AMBS가 1970~1990년대에 취한 문제 해결 방식에 머물러 있다. 피해자의 회복에 초점을 맞추기 보다 가해자의 명성을 걱정하고, 사건이 외부에 알려지지 않도록 가해자가 조용히 사라지는 방식의 미봉책을 택하는 경우가 부지기수다.

<실패한 요더의 정치학>(IVP)을 쓴 메노나이트중앙위원회 동북아지부 김성한 대표를 6월 10일 춘천에서 만났다. 뉴스앤조이 이은혜
<실패한 요더의 정치학>(IVP)을 쓴 메노나이트중앙위원회 동북아지부 김성한 대표를 6월 10일 춘천에서 만났다. 뉴스앤조이 이은혜

김성한 대표와 6월 10일 춘천에 있는 MCC 사무실에서 만나 책과 요더, 교회 성폭력에 대해 자세한 이야기를 나눴다. 김 대표는 성폭력 전문가도 아닌 자신이 이야기를 꺼내는 게 부담스럽다면서도, 이 일을 통해 한국교회가 '안전한 교회'를 바라는 우리 시대의 선교적 요구에 응답하면 좋겠다고 했다.

- 존 하워드 요더는 아나뱁티스트, 평화신학을 논할 때 빼놓고 이야기하기 힘든 신학자로 알고 있습니다. 대표님 역시 아나뱁티스트로서, 아나뱁티스트신학을 일군 한 신학자의 성폭력을 정리해 드러내는 일이 쉽지 않았을 것 같은데요. 어떻게 책까지 발간하게 됐나요.

2015년경 박사과정 공부를 위해 미국에 머물고 있었는데요. 요더를 향한 문제 제기가 여기저기서 불거지고 있을 때였어요. 요더 성폭력 관련 자료가 공개되기 시작했고, 아카이브도 제가 살던 곳에서 그리 멀지 않았습니다. 그때만 해도 요더의 성폭력 문제가 어느 정도인지 잘 알려지지 않았을 때라, 마지막 과목이었던 '연구 조사 방법론'의 사례 연구 주제로 덜컥 선택하고 시작한 거죠. 책에도 언급했지만, 요더 문제를 다시 끄집어 내고, 피해자 회복을 위해 노력하던 분들 역시 마침 닿을 수 있는 거리에 있었기에 그분들도 인터뷰할 수 있었습니다.

그렇게 해서 과제를 완성하고 담당 교수에게 제출했는데요. 교수가 이걸 자기 교단 리더십과 공유해도 되겠느냐는 거예요. 교단 내 제법 큰 교회에서 성폭력 문제가 발생했는데 리더십이 어떻게 치리해야 할지 고민 중이라고요. 제 과제가 비슷한 상황에 있는 교회들에게 도움이 될 것 같으니, 그냥 사라지게 하지 말고 의미 있게 사용해 보면 좋겠다고 하더군요. 그 말에 힘입어 <복음과상황>에 제가 먼저 연재 제안을 했고, 총 다섯 차례 글을 쓰게 됐어요.

그때까지만 해도 이걸 책으로까지 내는 건 무리라고 생각했죠. 일단 제 첫 책이나 마찬가지인데 이런 주제로 첫 책을 쓰고 싶지는 않았거든요.(웃음) 부담스러우니까요. 게다가 기성세대이면서 남성인 제가 성폭력 문제를 다루기에는 한계가 있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제가 어쭙잖게 하는 말이 혹시나 비슷한 일을 겪은 사람에게 '잘 알지도 못하면서 말을 보태고 있다'는 인상을 주지는 않을까 해서요.

그런 와중에 요더 성폭력 문제 해결에 중요한 역할을 한 AMBS 사라 웽어 쉥크 총장이 2019년 5월 한국을 방문했고요. 고발에 중요한 역할을 한 캐롤린 홀더리스 헤겐이 2019년 12월 한국을 방문하게 됩니다. 2015년 미국에서 관련 자료를 조사할 때, 헤겐의 존재를 알고 있었지만 만날 수는 없었거든요. 제가 MCC에서 일하고 있으니까 공식 만남 일정이 잡힌 거죠. 헤겐은 고발자이면서 동시에 요더 성폭력 피해자이기도 하거든요. 한국에서 만난 낯선 사람이 가해자 얘기를 꺼내는 걸 불편하게 생각할 수도 있을 것 같아 망설였지만, 결국 밥 먹으면서 조심스럽게 말했어요. 요더에 대해 이런 글을 썼다고요. 굉장히 반가워 하시더라고요. 이후 요더 이야기를 한참 하게 됐어요.

이 사람들의 이야기를 기록하는 것도 중요할 것 같아 <복음과상황>에 추가 인터뷰를 요청해 기사로 싣게 됐습니다. 그런데 인터뷰 기사에서 새롭게 보이는 게 있는 거예요. 제가 자료 읽고 관련자들 인터뷰하면서 파악했던 것과, 사건과 직접 연관된 사람들의 이야기가 만나니까 좀 더 큰 그림을 그릴 수 있겠더라고요.

외적인 상황도 한몫했어요. 한국교회에서 비슷한 일(성폭력)이 반복되고 있었으니까요. 부담스럽고 어려운 문제라고 다들 쉬쉬하기 때문에 문제가 되는 거 아닌가 생각했고요. '실패한 교회 성폭력 치리 이야기'를 통해 배울 점이 있을 거라 생각해 결국 책으로까지 내게 됐습니다.

존 하워드 요더는 평화신학을 이야기할 때 빼 놓을 수 없는, 메노나이트가 낳은 최고의 신학자로 불려 왔다.
존 하워드 요더는 평화신학을 이야기할 때 빼 놓을 수 없는, 메노나이트가 낳은 최고의 신학자로 불려 왔다.

"요더만 피해자들에게 권력을 행사한 것이 아니었다. 메노나이트교회와 그 기관들 역시 피해자들에게 권력을 행사했다. 그들은 피해자들의 증언을 믿지 않았거나, 어쩔 수 없이 겨우 받아들였으며, 피해자들을 보호하거나 치유할 수 있었음에도 그 힘을 적극적으로 사용하지 않았다." (66쪽)

- 요더의 성폭력 문제 전말이 밝혀진 건 2015년인데요. 사실 그전부터 문제 제기는 있었잖아요, 1990년대에는 교회가 공식 치리 절차를 밟기도 했고요. 당시 교회가 성폭력 가해자를 대하는 방식이 지금 한국교회에서 일어나는 일과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아요. 교회 성폭력이 발생하면 왜 대다수 교인은 가해자에게 더 감정이입을 하게 될까요.

교인들이 성폭력 저지른 목사를 적극 옹호한다는 기사를 보고 깜짝 놀랐어요. 왜 저렇게까지 할까 생각해 봤는데요. 목사가 무너지면 그를 믿고 따르던 나도 무너질 거라고 생각하니까 그러는 게 아닐까 생각해요. 존경하던 목사·교수가 무너지면 그 사람뿐 아니라 나도 같이 무너지는 거죠.

이 지점에서 '교회가 무엇을 애도하고 탄식할 것인가'라는 질문이 떠올라요. 한국교회는 애도와 탄식을 낯설어해요. 교회에 모이면 기뻐해야 하고, 감사하며 찬양해야 한다고 생각하죠. 그렇다 보니 공동체 내에서 폭력을 당한 누군가가 눈물 흘리고 있는데도 돌보지 못하는 거예요. 정작 피해자는 보이지 않고, 무너지는 가해자와 함께 무너지는 나를 더 염려하는 상황이 돼 버린 것 아닐까요. 일상이 뒤집어진 피해자와 함께 공감·애도·탄식하지 못하고, 나의 일상에 미칠 부정적인 영향만 걱정하는 거죠.

예배 공간에서 애도와 탄식을 이끌어 내려는 노력이 중요한 것 같아요. 책 부록으로 2015년 3월에 요더 성폭력 피해자들과 함께 진행한 두 예배의 순서지를 넣었는데요. 어떤 예배 과정을 통해 회복이 일어날 수 있는지를 보여 주고 싶었어요. 한국교회 안에는 이런 고민이 없기 때문에 자꾸 가해자에게 감정이입하고 보호하려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요.

- 피해자와 함께 공감·애도·탄식하는 것 자체가 가해자에게 부담을 지우는 것이라는 주장도 흔하죠. 특히 교회 성폭력 문제를 취재하다 보면, 오히려 '가해자의 가족'이 제일 큰 피해자라고 주장하며 피해자를 비난하거나, 성폭력을 공론화하는 일 자체가 교회를 공격하는 행위라며 조용히 처리하려는 모습을 공식처럼 발견할 수 있는데요.

그렇게 하면 어떤 결과가 나오는지 요더 사례를 보고 배우라고 말하고 싶어요. 꽁꽁 숨기고 비밀에 부치려 하다 보니 가해자(요더)가 죽고 나서도 문제가 해결되지 않았어요. 차후 덮었던 것을 바로잡기 위해 수많은 사람이 더 큰 고통을 겪어야 했죠. 요더 성폭력 문제를 제일 처음 접했던 AMBS 말린 밀러 총장은 비교적 이른 나이에 갑자기 세상을 떠났는데요. 다들 이 문제로 혼자 끙끙 앓았던 게 극도의 스트레스로 작용했기 때문이라고 얘기해요. 지금은 숨겨서 덮고 갈 수 있을지 몰라도 절대 그렇게 문제가 해결되지는 않아요. 언젠가는 또 다른 대가를 지불할 수밖에 없고, 훨씬 더 큰 고통이 따르게 된다는 사실이 우리에게 시사하는 점이 있다고 봐요.

"존(요더)이 사귐을 회복하고 교회 안에서의 섬김을 허락받기 위해 우리가 무엇을 더 요구해야 할까요? 도대체 어느 정도의 기간이 징계와 '파문'을 끝내기에 합당할까요? 존은 이제 70세가 되었습니다. 이제는 그를 다시 받아들여도 괜찮지 않을까요? 조심스럽고도 충분한 논의와 진지한 검토를 거쳤기에 저는 그렇다고 생각합니다." (79쪽)

- 위 인용문은 크레이빌 총장이 1997년에 쓴 편지글 일부인데요. 요더는 이미 치리를 받았기 때문에 그를 다시 받아들여도 괜찮지 않느냐는 논지입니다. 피해자의 동의 없는 공동체 회복이 가능할까요.

저는 회복적 정의를 지향하고, 이것이 우리 사회에 필요하다고 생각하지만 만병통치약이라고 보진 않아요. 회복적 정의가 말하는 정의·평화·화해는 공동체가 회복되고 피해자가 온전히 일어서는 일을 중요하게 생각해요. 이걸 놓치면 파괴적인 방향으로 갈 수밖에 없어요.

크레이빌 총장은 후임 쉥크 총장과 다르게 요더 사건을 잘 몰랐기도 했고, 알았다고 해도 일단 이 문제를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은 것 같아요. 한 가지 더 안타까운 점은 크레이빌 총장이 저 얘기를 하고 얼마 안 가 요더가 사망했거든요. 이미 고인이 됐으니까 더 이야기할 필요성을 못 느꼈던 것 같아요. 문제는 요더가 사후에 더 유명해졌다는 거죠. 피해자들은 전혀 회복되지 못해 어려운 시간을 보내고 있는데, 요더는 계속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며 위대한 신학자 대접을 받고… 지금 현실에서 일어나는 일도 비슷하잖아요. 가해자는 계속 미디어에 등장하거나, 다른 곳에 가서라도 목회 활동을 이어 가죠. 요더 사건 같은 경우 부글부글 끓어 오르다가 2011년 어간에 수면 위로 훅 드러나게 된 거죠. 교회 성폭력은 피해자의 회복 없이 해결될 수 없다고 봐요.

책은 교회의 요더 성폭력 사건 처리가 왜 실패했고, 이후 어떤 과정을 통해 회복으로 이어졌는지 담고 있다. 뉴스앤조이 이은혜
책은 교회의 요더 성폭력 사건 처리가 왜 실패했고, 이후 어떤 과정을 통해 회복으로 이어졌는지 담고 있다. 뉴스앤조이 이은혜
남성 중심의 권위적 구조에서는
교회 내 성폭력 반복될 것
가장 분명하고 확실한 예방법은
'여성 리더십' 더 많아지는 것

- 교회 성폭력이 발생하면 피해자는 공개 사과와 그에 따른 처벌, 재발 방지를 요구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지만 대부분 이것이 지켜지지 않고 진흙탕 싸움으로 번지는 경우가 많은데요. 이 과정에서 피해자의 요구가 과하다고 말하는 이들도 있어요.

가해자가 피해자에게 빼앗은 게 뭔지, 무엇을 이용해서 폭력을 저질렀는지를 제대로 짚지 않아서 그런 얘기를 한다고 봐요. 가해자는 책임져야 할 가정이 있고, 자녀가 있으니 이걸 알게 하면 안 되고, 이미 사직도 했고 주절주절 계속 얘기할 수는 있어요. 그런데 가해자는 피해자의 '신앙심'을 이용하는 경우가 많아요. 교회에서 그렇게 중요하다고 말해 온, '돈 주고도 살 수 없는 믿음'을 이용해 범죄를 저지른 거잖아요. 너무 큰 걸 무너뜨린 거죠. 가해자가 얼마나 잘못을 했는지 자각한다면 피해자의 요구를 '과하다'고 얘기할 수 있을까요.

"정말 교회의 미래를 걱정한다면 이 기울어진 구조부터 바꾸어야 한다. 교단의 신학적 입장과 전통 때문에 교회 내 여성의 지위와 역할에 보수적인 태도를 취한다 하더라도, 리더십은 성폭력 사건을 예방하고 피해자 중심의 해결을 위한 투명하고 구체적인 제도와 방안을 제시해야 할 책임이 있다. 그리고 가장 분명하고 확실한 방법은 여성 리더십이 그 구조와 조직에 더 많아지는 것이다." (123쪽)

- 후임 사라 웽어 쉥크 총장은 여성이었기 때문에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었다고 보시나요.

쉥크 총장이 '여성'인 게 전부는 아니겠으나, 그때 쉥크 총장이 있었다는 건 이 사건 해결에 매우 결정적이었어요. 이미 요더 문제가 곳곳에서 수면 위로 드러나고 있었거든요. 피해자들과 지지 그룹은 요더 문제를 더 언급하지 않고 갈 수 있느냐는 의문을 제기하고 있었고, AMBS 학생들은 요더를 '평화신학자'라고 할 수 있는지 문제를 제기하고 있었죠. 쉥크가 아니었다면 이걸 누가 받아 낼 수 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요.

쉥크 총장은 고발에 앞장선 피해자였던 캐롤린 홀더리스 헤겐을 직접 만나 이야기를 듣고, 요더 성폭력이 아직 해결되지 않은 문제라는 걸 직감해요. 헤겐도 처음에는 AMBS 사람들을 만나지 않으려고 하다가 여성 총장이 여성들끼리만 보자고 하니까 가게 됐거든요. 굉장히 작은 부분인 것 같지만 결정적인 지점이에요. 우리가 성폭력 문제를 다루는 위원회를 구성할 때, 이런 부분을 담아낼 수 있는 감수성이 있는지, 교회 내에 피해자의 문제 제기를 듣고 공감하고 정의로운 방식으로 해결할 수 있는 여성들이 준비돼 있는지, 세세한 부분까지 구조화·제도화돼 있는지 고민해야 교회 성폭력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아무리 신고해도 이를 조사하고 치리하는 사람들이 다 남성 목회자들이면 뭐가 달라질까 하는 의문이 남는 거죠.

또 한 가지, 쉥크 총장은 이걸 예수님 이야기로 연결 지었어요. 메노나이트에서 요더는 너무 거대한 인물인데, 그 때문에 계속 가려지는 목소리를 어떻게 들을 것인가 고민한 거죠. 쉥크 총장은 이걸 복음서가 들려주는 예수님 이야기와 같은 맥락으로 봤어요. 예수님은 길 가다 멈춰서 당시 힘 있는 권력자들이 무시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그들의 '스토리'를 중심부로 가져오시잖아요. 이처럼 소외되고 배제된 목소리를 듣는 일은 복음과 맞붙어 있죠. 뒤집어 생각하면 그들의 목소리를 가리고 누르려고 하는 일은 반복음적인 게 되는 거예요. 쉥크 총장은 그런 면에서 문제에 접근하는 방식이 탁월했던 것 같아요.

생명을 주는 교회가 될 것인가, 생명이 끊어진 물웅덩이 같은 교회가 될 것인가. 뉴스앤조이 이은혜
생명을 주는 교회가 될 것인가, 생명이 끊어진 물웅덩이 같은 교회가 될 것인가. 뉴스앤조이 이은혜

"교회 안에서 일어난 성폭력을 언제까지 '은밀하고 은혜롭게 덮어야' 하겠는가. 요더와 메노나이트교회 지도자들이 가졌던 순진하기까지 한 교회론과 '은혜로운' 접근 방식은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 악화시키는 데 일조했다. 모름지기 '성경적 성교육'을 비롯해 모든 성교육은 성폭력이 일어나지 않는 안전한 공간을 만드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 지금이라도 한국 교계가 교회 내 성폭력 근절이라는 더 큰 의제로 전환하려는 노력을 하지 않는다면, 안전하지도 않고 정의롭지도 않은 교회의 미래는 더욱 어두워질 것이다. 교회를 성폭력으로부터 가장 안전한 공간으로 만드는 것은 세상의 절반이 묻고 있는 질문에 대한 교회의 가장 분명한 대답일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선교적 질문에 답하는 것이다." (125~126쪽)

- 요즘 교회 성폭력 사건에 대한 교단의 대처 방식을 보면 정말 피해자의 아픔에 공감해서 움직인다기보다, '세상에 알려지면 욕먹을 게 뻔하니까 빨리 처리하자'는 것처럼 보일 때가 많습니다. 구조적 문제를 들여다보지 않으면 재발할 위험이 큰데도, 그런 부분까지는 고려하지 않는데요.

요더 성폭력 피해자인 캐롤린 홀더리스 헤겐은 교회 안에서 여성들이 어떻게 여성을 도울지 연구하고 이를 교회에 적용하는 '시스터 케어' 사역을 해요. <공동체를 위한 시스터 케어 리더십>(대장간)이라는 책도 있는데요. 한국교회가 배울 수 있는 점이 있지 않을까 싶어요. 큰 제도를 개선하고 구조를 만드는 일과 동시에, 피해자를 도울 수 있는 '사람'을 훈련하고 세우기 위해서도 마땅히 노력해야 할 것 같아요.

'미투', '위드유'는 결코 교회를 망가뜨리는 도전이 아니라 오히려 교회가 답해야 할 '선교적 질문'인 거죠. 이 시대 절반 이상 되는 사람이 '교회가 성폭력으로부터 안전한 공간이어야 한다'고 요구하는데 이걸 '권위에 대한 도전', '교회를 무너뜨리는 공격'으로 받아들이면 완전 헛다리를 짚는 거죠.

지금 우리 시대 여성들은 '교회가 여성에게 안전한 공간인가', '교회는 여성이 힘을 얻고 회복되고 살아나는 공간인가' 묻고 있어요. 이런 선교적 질문을 교회가 받아들이지 않겠다는 건 '우린 당신들의 안전을 보장할 수 없으니 오지 마세요'라고 얘기하는 것과 같아요. 이건 교회가 교회 됨을 부인하는 것이고, 교회가 해야 할 선교적 사명을 다하지 않겠다는 거죠.

"완전한 교회는 없다. 우리는 모두 연약하여 실패한다. 그러나 그 연약함이 약자들에 대한 폭력을 정당화하는 도구가 될 수는 없으며, 되어서도 안 된다. 쉥크의 고백과 같이, '우리는 교회의 성스러운 신뢰를 지키는 데 실패했습니다. 우리는 복음의 진리에 대해 알고 있는 대로 행하는 일에 실패했습니다. 우리는 여러분께 잘못을 저질렀습니다'라며 우리의 실패를 인정하고 서로에게 잘못을 고백하고 사죄할 때, 비로소 회복되고 화해할 기회를 얻게 된다. 교회는 그런 곳이어야 한다."(129쪽)

- 교회 성폭력은 결국 교회가 어떤 곳이어야 하는가라는 '교회론'과도 연결되는 것 같습니다.

축적된 사건들이 가리키는 지점이 있는 것 같아요. 이것을 성 문제로만 볼 게 아니라 절대화한 권력, 구조의 불균형 문제를 함께 짚어야 하는 거죠. 교회 성폭력이 가리키는 근본적인 방향이 있다고 생각해요. 요더, 전병욱(홍대새교회) 등 유명 목회자들의 성범죄가 '스캔들'로만 끝나선 안 돼요. 일련의 사건과 이를 올바로 대처하는 데 실패해 온 교회의 모습에서 우리가 지향해야 할 방향을 발견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쉥크 총장이나 당시 총회장이었던 어빙 스투츠만 등은 이 문제를 구조적 차원까지 확대하는 걸로 의제를 전환했어요. 요더만 처리하고 끝내는 게 아니라 학교·교단 차원으로 넓혀서 '왜 실패했는지', '앞으로 무엇을 할 것인지' 정리해 성명으로 발표했죠. 교회 성폭력에서 시작한 문제지만 다시 선교적 질문으로 연결된다고 생각해요. '교회는 이 문제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어떻게 재구성해서 재발 방지하는 구조까지 만들 것인가.' 이 질문에 응답해야 한다고 봅니다.

김성한 대표는 교회 성폭력 문제로 힘들어하고 있는 이들에게 이 책이 도움이 되면 좋겠다고 했다. 뉴스앤조이 이은혜
김성한 대표는 교회 성폭력 문제로 힘들어하고 있는 이들에게 이 책이 도움이 되면 좋겠다고 했다. 뉴스앤조이 이은혜

- 어떤 분들이 이 책을 읽으면 좋을까요.

요더 사건의 실체를 더 자세히 알고 싶은 사람은 <야수의 송곳니를 뽑다>(대장간)를 읽으면 되고요. 이 책은 교회가 어떻게 반응했고, 그 반응은 왜 실패했으며 종국엔 회복과 화해가 어떻게 가능했는지에 포커스를 맞췄어요.

이 책을 준비하면서 주변의 20~30대 여성들에게 초고를 보내고 피드백을 받았습니다. 과거 제가 몸담았던 선교 단체에서도 성폭력 문제가 있었거든요. 그 일이 일어나기 전, 성 윤리 규정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전국 간사들과 함께한 공청회에서 요더와 관련한 내용을 발제한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 피드백 주신 분이 그때 얘길 해 주시더라고요. 제가 한 그 발제가 사건을 공론화하는 하나의 계기가 됐다고요. 격려가 많이 됐어요. 돌아보면 충분하지 못한 것 같아 자책했는데 그렇게라도 이야기를 꺼낸 것이 누군가에게는 용기 낼 수 있는 계기가 된 거죠. 이 책 역시 교회 성폭력 문제로 고민하고 있는 분에게 가닿아 작은 도움이 됐으면 하는 바람이 있습니다.

다른 한편으로는 이미 어느 정도 구조를 바꿀 수 있는 위치에 있는 분들, 하지만 어떻게 바꿔야 할지 전혀 모르겠는 분들이 읽으시면 좋겠어요. 저는 '교회는 성폭력에서 안전한 공간이 되어야 한다'는 명제에 반대할 사람은 없다고 생각해요. 바꾸기는 해야겠는데 뭘, 어떻게 바꿔야 할지 몰라 막막한 남성 목사님들이 이 책을 읽고 구체적인 제도 변화까지 상상해 볼 수 있으면 좋겠어요.

청어람ARMC(오수경 대표)는 6월 18일 오후 8시 <실패한 요더의 정치학>(IVP) 북 토크를 온라인으로 연다. '교회는 왜 성폭력 문제 앞에서 번번이 실패하는가'라는 제목으로 열리는 북 토크에는 저자 김성한 대표와 감리교여성지도력개발원 이은재 연구원이 참석해 이야기 나눌 예정이다.(생중계 바로 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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