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앤조이-나수진 기자] 교회 내 팽배한 여성 차별과 성소수자 혐오를 다룬 하이퍼 리얼리즘 연극 '청년부에 미친 혜인이'가 개막한다. 교회를 소재로 한 연극인데도 반응이 뜨겁다. 9월 17일부터 30일까지 대학로 시온아트홀에서 열리는 이 연극의 티켓 800여 장은 예매가 시작된 지 3일 만에 매진됐다. 9월 10일 추가 예매가 진행됐는데 그마저도 2분만에 매진됐다.

이 작품을 쓰고 연출한 이는 '호랑이기운' 소속 이오진 극작가다. '호랑이기운'은 여성의 이야기를 쓰고 무대에 올린다. 이 극작가를 중심으로 2017년 시작해 올해로 4년을 맞았다. 초창기에는 여성의 이야기를 연극계에서 가시화하는 것 자체를 목표로 했다면, 지금은 '어디서 본 것 같지 않은 여자들'이 나오는 희곡을 쓰며 여성 서사의 지평을 넓히고 있다. 극단 소개 글에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발을 동동 구르다가 기어이 한 발 내딛고 마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무대에 올립니다"라고 쓰여 있다.

이오진 극작가는 2009년 한국예술종합학교 재학 시절 대산대학문학상 희곡 부문 수상자로 데뷔했고, 여성·소수자의 삶을 다뤄 왔다. 청소년 성소수자의 이야기를 담은 '바람직한 청소년', 스쿨 미투를 다룬 '김이박이 고등학교에 입학할 때 김이박이 고등학교에 입학한다,' '1인용 식탁', '피어리스 - 더 하이스쿨 맥베스', '이번 생에 페미니스트는 글렀어' 등을 쓰거나 연출했다. 여성 서사를 꾸준히 다뤄 온 그의 두터운 팬층 덕에, 그가 하는 작품마다 매진 행렬이었다.

그런 이오진 극작가가 이번에는 교회 내 청년 공동체를 소재로 한 연극을 연출했다. 이 극작가가 '청년부에 미친 혜인이'를 통해 전하고 싶은 메시지는 무엇일까. 사회와 괴리된 교회 모습에 충격을 받고 '가나안 교인'이 된 이오진 극작가를 9월 10일 서울 대학로에서 만나 이야기를 들어 봤다.

교회내 성차별·혐오를 다룬 연극 '청년부에 미친 혜인이'를 쓰고 연출한 이오진 극작가. 뉴스앤조이 나수진
교회내 성차별·혐오를 다룬 연극 '청년부에 미친 혜인이'를 쓰고 연출한 이오진 극작가. 뉴스앤조이 나수진
여성이 교회서 제 목소리 내면 이상한 사람 돼
"미친 사람 기준은 누가 만드나"

'청년부에 미친 혜인이'는 한국 개신교회의 문제점을 다룬 작품임에도 일반 대중의 관심이 높다. 이오진 극작가도 반응이 이렇게 뜨거울지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고 했다. 국부적인 이야기라고 생각했는데, 많은 사람이 교회 얘기에 관심이 많은 것 같다며 놀라워했다. 그러면서도 누구나 살면서 한번쯤은 교회와 연결되는 지점이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주변에 교회를 계속 다니는 사람은 별로 없는데 다녀 봤던 사람은 생각보다 진짜 많다. 유치원생 때 다녔다든지, 결혼했는데 시댁에서 교회를 가라고 했다든지, 애인이 가 보자고 해서 몇 번 따라갔다든지, 대학 때 열심히 다녔는데 목사님이 자꾸 노무현 욕을 해서 관뒀다든지….(웃음)

 

자기 인생에 교회가 한 번도 없었던 사람도 교회 다니는 사람을 보면서 '저 사람은 왜 교회에 다니지' 하고 의아해하는 경우가 많다. 교회 내 만연한 성폭력이나 코로나 상황에서 예배를 강행하는 교회를 보면서 '목사라는 사람이 왜 저러지', '어떻게 이런 상황에서 모이지' 하고 궁금해하기도 하고. 기본적으로 사람들은 교회라는 집단을 희한스럽게 생각한다. 세상이 이렇게 변해 가고 있는데, 교회는 어쩜 저렇게 똑같은 행동을 하고 있는지 도대체 이해가 되지 않으니까 말이다."

교회가 낯선 사람, 교회에서 상처를 입고 떠난 사람, 교회를 다니고 있지만 어딘지 모르게 불편해하는 사람들 모두가 궁금해할 만한 주제가 바로 '교회'라는 것. 이 극작가가 교회와 청년들의 삶을 연극 소재로 삼은 이유다. 특히 비기독교인 눈에 비친 교회는, 노래도 하고 춤도 추고, "주여"를 외치며 큰 소리로 기도한다는 점에서 '극적'이다. 잊을만 하면 성범죄를 저지르는 남성 목회자, 한복을 차려입고 부채춤을 추거나 꽃다발을 든 여성 교인 등 한국교회가 만들어 낸 강렬한 이미지에 비해, 교회 안에서 살아가는 청년 개개인은 잘 가시화되지 않았다고도 했다.

그도 한때는 교회를 다녔다. 부모를 따라 어린 시절부터 교회에 나갔다. 하지만 20대 초반 사회와 괴리가 큰 교회를 겪으며 고민에 빠졌다. 이 극작가는 "뭔가를 이야기하려고 하면 '골방에 들어가서 잠잠히 기도하라'는 권면을 들어야 했다. 교회에 있으면 내가 너무 별로인 인간인 것처럼 느껴졌다"고 했다. 가나안 교인이 된 그는 여전히 교회에서 만난 동료들과 관계를 유지하고 있지만, 생각의 다름을 부정하고 죄책감을 부여했던 교회를 떠올릴 때면 불편한 마음이 든다고 했다.

교회를 배경으로 극본을 쓴 데는 교회에서 경험한 가스라이팅이 계기가 됐다. 어느 날 교회 청년부에서 임신중절에 대한 간증이 설파됐고, 이를 들은 대다수가 눈물로 기도했던 경험이 그에게는 충격으로 다가왔다. '낙태는 살해'라고 여기는 교회가 여성의 고통을 이용해 공포를 조장하는 모습이었다. 그는 당시 경험을 떠올리며 2년 동안 극본 작업에 몰두했다. 교회 내 성차별, 여성·성소수자 혐오와 관련한 인터넷 기사, 단행본, 영상, 강의, 온라인 예배 등을 참고하고, 알고 지내던 교회 청년들에게 고증을 받았다. 배우들과는 2개월간 통성기도, 워십, 찬양 인도 연습도 거쳤다. 그렇게 '청년부에 미친 혜인이'가 탄생했다.

이 작가는 '청년부에 미친 혜인이'를 두 가지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고 했다. '청년부에 미쳐 있는 혜인이'와 '청년부에 있는 미친 혜인이'다. '교회에 미쳐 있던' 주인공 '혜인'은 각종 예배에 참석하며 봉사하고 해외 선교까지 준비했다. 하지만 페미니스트가 되어 교회에 돌아온 후에는 '미친 사람 취급'당하며 공개적으로 손가락질을 받는다. '청년부에 미친 혜인이'는 교회가 청년들을 공짜 노동력으로 소비하는 행태를 드러내면서 동시에 여성 혐오 문화를 꼬집는다.

"작중 사람들은 교회에 미쳐 있는 혜인을 비난하지 않지만, 혜인이가 교회 내에서 자기 목소리를 내기 시작하자 '미친 사람'으로 여긴다. 거기에 '예전에는 안 그랬는데…' 같은 말이 따라붙곤 한다. 누군가를 미쳤다고 말하는 사람은 보통 자기는 정상이라고 생각하는데, 이런 점에서 교회에서 비정상이라고 불리는, '미친 사람'의 기준은 누가 만드는 건가 묻고 싶었다."

작중 혜인의 전 남자친구이자 끝까지 각성하지 않는 인물의 이름은 공교롭게도 '예수'다. 가장 거룩할 법한 인물이 그렇지 않은 모습을 보이는 연출을 통해, 교회답지 않은 교회의 상황을 짚어 내려는 의도가 담겨 있다. 그밖에도 성소수자를 차별하는 교회 공간에서 생존하기 위해 자신의 정체성을 부정하는 이들의 이야기도 담겨 있다.

극중 '혜인' 역을 맡은 신윤지 배우. 사진 제공 호랑이기운
극중 '혜인' 역을 맡은 신윤지 배우. 사진 제공 호랑이기운

작중 혜인이 자신을 배제한 공간으로 되돌아오는 장면은 인상적이다. 연극 후반부에서 '탈코'한 페미니스트 혜인은 성차별적인 교회에 일침을 가하며 반격에 나선다. 그러나 작품은 교회를 파괴하며 카타르시스를 주는 손 쉬운 결말을 택하지 않는다. 혜인은 교회에 대한 애정 때문에, 동료 여성들을 위해 교회에 남는다.

"사람들이 왜 혜인이가 불을 지르지 않고, 강대상을 때려 부수지 않느냐고 이야기한다. 하지만 그런 일은 일상에서 잘 벌어지지 않는다. 우리가 만들 수 있는 변화는 거대한 드럼통에 겨우 색소 한 방울 떨어뜨리는 정도다. 그렇지만 작은 변화라고 무의미한 것은 아니다. 이런 균열들이 끊임없이 있을 때 분명히 어떤 변화가 이루어질 것이다. 교회가 변화했으면 좋겠고, 변화는 결국 일어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목사들이 봐야 하지만 아마 안 올 것"
"더 많은 여성 서사 필요해"

'청년부에 미친 혜인이' 곳곳에는 "신은 어디에 있는가"라는 질문이 등장한다. 이 극작가는 이 말을 프리드리히 니체의 말 "내가 신을 믿는다면 춤출 줄 아는 신만을 믿으리라"에서 가져왔다. 그는 어딘가에 신이 살아 있다면, 그 신은 동성애자를 혐오하고 여성을 정죄하는 하나님은 아닐 거라고 확신한다. 그 신은 약자를 배려하고 어떻게 도움이 될 수 있을지 궁리하는 신이다.

이오진 극작가는 관객들이 이번 연극을 통해 인물 개개인의 심리 변화에 공감했으면 좋겠다고 했다. 뉴스앤조이 나수진
이오진 극작가는 관객들이 이번 연극을 통해 인물 개개인의 심리 변화에 공감했으면 좋겠다고 했다. 뉴스앤조이 나수진

이오진 극작가는 관객들이 이 연극을 '코미디'로 즐기길 바란다면서도 한국교회를 희화화하려는 의도는 없다고 했다. 그가 극을 통해 드러내고자 하는 건 '서로 다른 욕망을 지닌 각각의 인물들이 교회라는 구조 안에서 어떻게 숨겨지고 드러나는지'다. 이 극작가는 "개개인의 욕망은 뚜렷하지만, 그 인물들이 교회 안에 있을 때는 어떤 것이 소거당한 채 존재한다. 그런 이들이 어떤 내적 변화를 겪고 교회가 어떻게 변화하는지 보여 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미친년이 있어야 세상이 변화한다는 말을 동료들과 농담처럼 주고받은 적이 있다. 불편한 것을 괜찮다고 넘기면 아무것도 변하지 않지만, 누군가 거기에 돌을 던지고 목소리 내면 변화되는 지점이 생긴다. 세상에서는 그런 시람더러 '미친년'이라고 손가락질하지만, 여성 인권의 진보는 기존 질서를 얌전하게 수용하는 사람들로부터 나온 적이 한 번도 없다. 이번 연극에는 변화를 만들기 위해 목소리 내는 여성들에 대한 진심어린 존경을 담았다. '혜인'처럼 자기 알을 깨고 나와 교회 내 성차별·혐오에 작은 목소리라도 낼 수 있는 청년들이 많아지면 좋겠다."

이오진 극작가는 누구보다 목회자들이 이 연극을 봤으면 좋겠다고 했다. 당연하게도(?) 큰 기대는 하지 않았다.

"사실 목사님들이 좀 봤으면 좋겠는데, 분명 안 올 것 같다.(웃음) 그래도 왔으면 좋겠다. 생각보다 재미있으실 거고 삶에 도움이 될 수도 있다."

그는 2017년 페미니스트 극작가 모임 '호랑이기운'을 시작한 후 여성의 이야기를 담은 연극을 쓰고 연출하고 있다 . 뉴스앤조이 나수진
그는 2017년 페미니스트 극작가 모임 '호랑이기운'을 시작한 후 여성의 이야기를 담은 연극을 쓰고 연출하고 있다 . 뉴스앤조이 나수진

그의 개인적인 바람은 '어디서나 열 수 있고 누구나 볼 수 있는 공연을 만드는 것'이다. 여성 서사도 마찬가지다. 마니아층에서 주로 소비되는 페미니즘 연극이 장기적으로는 어디에서나 열리고 누구나 볼 수 있는 공연이 되길 바란다. 그는 여성이 등장하는 이야기가 관객들과 보다 폭넓게 만나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 소망을 이루기 위해서 이 극작가는 오늘도 어디로, 어떻게 나아가야 할지 고민한다.

"세상이 내 연극으로 다 바뀔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하지만 언젠가 페미니즘 서사가 전체를 아우르면서 유효한 이야기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우물쭈물하지만 결국은 한 걸음 나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통해, 연극에 등장하는 인물의 젠더가 남성이든 여성이든 중요하지 않은 시대를 만드는 게 내가 가야 할 길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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