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쿼크, 카오스, 그리스도교 - 종교와 과학에 관한 질문들> / 존 폴킹혼 지음 / 우종학 옮김 / 비아 펴냄 / 208쪽 / 1만 2000원
<쿼크, 카오스, 그리스도교 - 종교와 과학에 관한 질문들> / 존 폴킹혼 지음 / 우종학 옮김 / 비아 펴냄 / 208쪽 / 1만 2000원

[뉴스앤조이-김은석 사역기획국장] 존 폴킹혼(1930~2021)은 영국 케임브리지대학에서 수리물리학을 가르치고 영국왕립학회에 속한 물리학자였다. 그는 어느 날 교수직을 내려놓고 목회자가 되기 위해 신학을 시작한다. 누군가는 그가 과학의 한계를 깨닫고 더 나은 진리를 추구하기 위해 신학을 택한 것이라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는 "과학에 환멸을 느껴서 물리학계를 떠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자신의 소명이 "과학과 신학의 관계에 대해 생각하고 쓰는 데 있음"을 깨달았기 때문이라고 밝힌다(182쪽). 우리는 세계를 보는 관점으로 과학과 종교 둘 중 하나만을 선택해야 하는 것일까. 아니면 상호 보완적인 두 관점을 함께 견지해야 할까. 저자는 후자를 택했고 스스로를 "과학과 종교라는 두 관점으로 실재를 보는 '두 개의 눈을 가진 사람'"이라고 표현한다. 생을 마감할 때까지 과학자이자 성공회 사제로서 과학과 종교의 상호 보완적 관계를 변론하기 위한 작업을 꾸준히 펼친 그의 사상이 이 책에 짧고 쉽게 집약돼 있다. '과학과신학의대화'를 설립해 이끌고 있는 서울대 물리천문학부 우종학 교수가 우리말로 옮겼다. 

"한 꺼풀만 벗겨 보면 과학과 종교는 지적 사촌지간이라고 저는 믿습니다. 과학과 종교는 모두 근거 있는 믿음을 추구하기 때문입니다. 종교든 과학이든 절대적으로 확실한 지식을 주장할 수는 없습니다. 각 결론은 해석과 경험의 상호작용에 바탕을 두기 마련이고, 결론을 수정할 가능성에 언제나 열려 있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종교와 과학 모두 순수한 사실, 순전한 의견을 다루지 않습니다. 과학과 종교는 '이해'하고자 하는 위대한 분투의 일부입니다." (1장 '사실인가? 의견인가?', 29쪽)

"과학의 지적 전략은 과도한 신뢰도, 끝없는 의심도 아닙니다. 모든 것을 계속 의심하기만 한다면 진보는 이루어지지 못합니다. 다른 모든 사람이 그렇듯, 과학자들도 오랫동안 유지한 믿음을 바꾸라는 요구를 받아들이기 어려워합니다. 우리가 현재 갖고 있는 이 세계에 대한 이해는 결코 의심할 나위 없는 것이 아니며, 실제로 발생하는 일은 종종 이해하기 어렵고 어떤 것들은 심지어 완전히 불가해합니다. 과학자들은 그저 최선을 다할 뿐입니다. 일반적인 과학 이론이 전반적으로 설득력이 있는 것은, 그 이론이 우리의 수많은 물리적 경험을 가장 잘 설명해 주기 때문입니다. (중략)
 

보이지 않는 하느님이라는 실재에 대해서도 저는 같은 전략을 펼쳐 보고 싶습니다. 하느님의 존재는 우리가 갖고 있는 많은 지식과 경험에 잘 들어맞습니다. 예를 들어, 물리적 세계의 질서와 비옥함이 그렇고, 실재의 다층적인 특징들이 그렇고, 예배, 희망과 같은 거의 보편적인 인간의 경험이 그러하며, 예수 그리스도라는 현상(그의 부활을 포함해서)이 그렇습니다. (중략) 저는 과학이라는 영역에서 종교라는 영역으로 옮길 때, 무슨 기어를 바꾸듯 괴상한 지적인 방식으로 옮기는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종교는 무언가 신비로운 보증을 받은, 의심할 나위가 없는 지식의 원천에서 솟아나는 것이고, 합리적인 판단이 불가능한 것이라고, 재고의 여지가 없는 폐쇄적인 지식 체계에서 믿음이 비롯되는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하느님은 그 속성상 무한한 풍요로움을 갖고 있으며, 그 풍요로움에 견주면 우리는 하느님에 대해 부적절한 상을 갖고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하느님에 대한 우리의 개념은 궁극적으로 더 큰 실재 앞에 부서질 수밖에 없는 우상입니다. 오랜 신학의 역사는 이를 우리에게 알려 줍니다." (8장 '과학자가 신앙을 가질 수 있을까', 176~17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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