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소수자들의 잇따른 부고를 직·간접적으로 들으며 '신학생으로서 내가 하는 공부가 누군가를 해치고 있는 건 아닐까' 고민해 왔다. 교회가 성소수자를 향해 저지르는 수많은 만행들 앞에서 목회자를 꿈꾼다는 것이 부끄럽게 여겨졌던 순간도 수없다. 그 고민과 부끄러움이 나를 성소수자 인권 모임 '무지개감신'으로 이끌었고, '성소수자축복기도로재판받는이동환목사대책위원회' 활동으로 이끌었다.

인천 퀴어 문화 축제에서 축복식을 집례해 기독교대한감리회(이철 감독회장)로부터 재판을 받은 이동환 목사(영광제일교회)가 차린 광화문 농성장 한 켠에서 <목사 아들 게이>(햇빛서점)를 읽었다. 성소수자를 축복했다는 이유로 농성까지 하게 된 그 장소와 '목사의 아들이자 게이'인 이들의 이야기가 담긴 이 책은 퍽 잘 어울리는 조합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이 책에는 개신교를 바탕으로 자라 온 이들(나미푸·더즌·샌더·유민·향록)이 자신들의 삶 속에서 신앙과 성 정체성의 조화를 어떻게 이뤄 왔는지를 주제로 나눈 대담이 담겨 있다. 대화 모임을 주최한 더즌은 게이로서 "목사 아들만이 경험하는 것들"을 생애 주기대로 나누어 이야기해 보자고 제안하면서, 대담의 끝에서는 한국 사회 내 개신교와 성소수자의 관계를 다뤄 보자고 말한다. 나는 그들의 이야기를 읽으며 내가 처한 상황과 나의 꿈에 대해 생각해 봤다.

<목사 아들 게이> / 나미푸·더즌·샌더·유민·향록 지음 / 햇빛서점 펴냄 / 112쪽 / 1만 원
<목사 아들 게이> / 나미푸·더즌·샌더·유민·향록 지음 / 햇빛서점 펴냄 / 112쪽 / 1만 원

농성장의 하루는 참 더디게 흘렀다. 더딘 하루 중 가장 더딘 시간을 꼽자면, 태양이 머리 위로 올라 작열하는 12시 점심 피케팅 시간이었다. 어찌나 덥고 지루한지 시간이 조금 갔나 시계를 보면 고작 3분이 지나 있었다. 어느 날 열 번쯤 시계를 봤을 때였나, 미끄러지듯 차에서 내리는 이철 감독회장을 보았다. 나는 그를 봤는데 그가 나를 봤는지는 모르겠다. "기독교대한감리회는 성소수자 차별 회개하라"고 적힌 피켓을 들고 있는 나를 그는 봤을까?

만일 봤다면, 그에게는 골치 아픈 일이었을 것이다. 아등바등 비로소 원하는 자리에 올라갔더니만 '왜 하필 이런 시끄러운 일이…'로 시작하는 생각을 했는지도 모르겠다. '괜한 일로 교계 안팎으로 입방아에 오르니 피곤하다'는 생각도 했을 것이다. 그러니 이철 감독회장은 피켓을 들고 있는 나를 봤어도 보지 않은 체 넘어갔을 것이다. 그가 뜨거운 태양을 피해 건물 안으로 쏙 들어갔을 때, 나는 그의 꽁무니를 보며 생각했다. 못 본 척하고 싶은 당신 마음은 내 알지만서도, 당신이 내내 모른 척 꽁무니를 빼긴 어려울 거라고.

농성을 하는 26일간 농성장에는 참 많은 사람이 머물다 갔다. 그중에는 나이가 많은 이도 있었고, 나이가 적은 이도 있었다. 여성도 있었고, 남성도 있었다. 여성과 남성, 둘 중 무엇으로도 불리고 싶지 않은 사람도 있었다. 장애를 가진 사람도 있었고,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었다. 자신과 같은 성별의 사람을 사랑하는 사람도 있었고, 다른 성별의 사람을 사랑하는 사람도 있었다. 성별이 사랑의 조건이 되지 않는 사람도 있었다. 연애를 하고 있는 사람도, 하고 있지 않은 사람도 있었다. 삶을 사는 데 굳이 연애가 필요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었다. 그러나 지금껏 나열한 모든 것, 채 나열하지 못한 모든 조건들까지도 농성장에서는 전혀 중요하지 않았다. 서로에게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좋았고, 그렇다고 부러 숨길 일도 없었다.

이동환 목사가 광화문 감리회본부 앞에 설치했던 농성장. 뉴스앤조이 최승현
이동환 목사가 광화문 감리회본부 앞에 설치했던 농성장. 뉴스앤조이 최승현

우리는 각자 제 모습대로 있었다. 각자 지음받은 모습대로 기도했고, 말씀을 읽었고, 읽은 말씀을 나눴다. 우리가 우리의 모습대로 그 자리에 있었다고 해서 갑자기 교회가 망하거나 나라가 망하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망하지 않은 것을 내가 봤고, 그 자리에 있던 모든 사람이 봤다. 망하기는커녕 오히려 은혜롭더라. 이철 감독회장도 원했다면 볼 수 있었을 것이다. 농성장을 오갔던 많은 이가 은혜로운 그 장면을 품고 각자의 자리로 돌아갔기 때문이다.

"소외받은 사람들이 다 잔치에 왔잖아요. 난 거기에 핵심이 있다고 생각해요. 열심히 교회에서 봉사하고 장로님, 권사님 했던 사람만 구원받는 게 아닌 거지. 그게 하나님의 은혜일 테고 이 판단은 오롯이 주님의 몫이죠." (79쪽)

나는 농성장에서 목사가 돼야겠다는 생각을 더 분명히 했다. 우리들의 교회가 이곳을 닮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닮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니 이철 감독회장은, 선배 되시는 이철 목사님은, 설령 원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곧 보게 되실 것이다. 후배들이 만들어 갈 교회에서 그가 배울 점이 분명 있을 거라고 믿는다.

더즌은 "성도가 모인 공동체가 하나님나라"라고 말하는 아버지에게 그 하나님나라에는 성소수자의 자리가 있느냐고 물었다고 한다. 목사인 아버지는 그 질문에 대답하지 못했고, 더즌은 그 침묵을 감내하며 "남자를 좋아하는 내가 낄 자리는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았구나 깨달았다고 한다. 그의 깨달음이 더욱 사무치는 까닭은 그의 아버지의 침묵이 오늘날 한국교회가 성소수자들을 향해 보여 주는 노골적인 혐오·편견에 비하면 양반처럼 느껴지기 때문일 것이다.

샌더는 "그 멀고 먼 크리스천과 성소수자라는 단어가 조금 가까워지면 좋겠"다고 했다. 그렇게 된다면 본인도 교회에 나가는 것이 편해질 것이라고. 이철을 비롯한 교회의 많은 사람들이 이 사실을 알았으면 좋겠다. 멀고 먼 크리스천과 성소수자라는 단어가 가까워지는 일은 다른 게 아니라, 교회에 나가고 싶어도 교회에 나오는 것이 어려웠던 사람들이 보다 편하게 교회에 나올 수 있는 일이라는 사실을 말이다.

샌더는 "그 멀고 먼 크리스천과 성소수자라는 단어가 조금 가까워지면 좋겠"다고 했다. 뉴스앤조이 자료 사진
샌더는 "그 멀고 먼 크리스천과 성소수자라는 단어가 조금 가까워지면 좋겠"다고 했다. 뉴스앤조이 자료 사진

지난 7월 16일, 이동환 목사는 농성장을 접었다. 감리회 총회재판위원회가 이동환 목사의 상소를 각하했다는 소식을 듣고 내린 결정이었다. 이 목사는 농성을 마무리하면서, 새로운 운동을 시작하겠다고 말했다. 혐오와 차별의 시대에 우리의 신앙이 어떤 모습이어야 하는지, 모든 존재에게 안전하고 평등한 공동체를 만들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지, 한국교회를 향해 퀴어한 질문을 던지고 답을 찾아가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목사 아들 게이>가 세상에 나온 지 햇수로 4년이 지났다. 책 속 주인공들은 이동환의 포부를 어떻게 들을까. 더즌은 자신에게 "겨자씨만한 믿음이 남아 있다면 자신의 삶을 앞으로 사랑할 수 있지 않을까"라고 말한다. 이동환 목사가 밝힌 포부가 실현돼 모든 성소수자 크리스천들에게 겨자씨만한 믿음을 남길 만한 힘을 더해 줄 수 있길 바란다.

"나는 게이다. 그리고 목사 아들이다. 지금 이 글을 읽는 당신은 성소수자일 수도 아닐 수도 있다. 크리스천일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중략) 당신이 이 글을 읽고 나서 세상 어딘가의 나 같은 존재에 대해 아주 가끔, 평생에 한두 번일지라도 생각해 주면 좋겠다는 생각뿐이다." (101쪽)

책의 끝에서 더즌은 "나는 틀림없이, 목사 아들이고 게이"라고 말한다. 나도 그의 말에 고개를 세차게 끄덕이고 싶다. 맞다고, 틀림없다고. 당신은 틀린 곳 하나 없이, 목사 아들이고, 게이라고. 얼마 전 있었던 그의 첫 기일1)을 기억하며, 오늘의 글을 그에게 보내고 싶다.

김유미 / 감리교신학대학교에서 공부하고 있다. 농성장에서 상주하다가 얼마 전 첫 직장이 생겼다. 한국교회를 향한 퀴어한 질문, '큐앤에이'에서 일한다.


1) 목사 아들 게이 '더즌(이도진)'은 2016년 한국 최초 성소수자 전문 잡지 <DUIRO>를 창간한 디자이너이자 퀴어 활동가였다. 그는 2020년 7월 11일 간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향년 만 33세. '퀴어와 비퀴어, 그 장벽 허물고자 했던 게이 디자이너', <한국일보>, 2021년 07년 1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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