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과 1년 전까지만 해도 죽고 싶었다. 한 차례 자살 기도를 하기도 했다. 죄책이 무거웠고 배신감은 처치 곤란이었다. 이런 마음으로 남은 긴 인생을 보낼 수 없다는 결심이 확고했다. 죽는 건 어려웠다. 자살 실패 후, 가족·친구의 24시간 관리하에 매일을 억지로 버텼다. 경건 생활 따위는 하지 않았다. 기도를 해 보려 해도 "하나님…"에서 말이 끊겼다.

그즈음 지인 손에 이끌려 한 대형 교회 수요 기도회에 참석했다. 그날도 기도는 나오지 않았다. 송구한 마음으로 밝히건대, 그날 내가 한 건 하나님을 향한 과격하고 상스러운 욕이었다. 그마저도 10분쯤 하니 고갈됐다. 평소에 욕을 열심히 알아 둘 걸, 언제 집에 가자고 할까, 이 사람들은 대체 무슨 기도를 하는 걸까, 울며 기도하는 저 사람들이 과연 나만큼 힘들까… 잡다한 생각 틈으로 문득 주기도문이 떠오른 건 지금 생각해도 신기한 일이다. "하나님의 선하심에 대한 회의"(160쪽)가 그 어느 때보다 가득했던 때였기 때문이다.

그 후로 한동안 기도를 해야 할 때면 주기도문을 무한 반복했다. 의미 없는 되뇜이라고만 여겼던 주기도문 연속 재생 행위가 내 회복을 채근하는 하나님의 조치였다는 것을 <예수님의 기도 학교>(IVP)를 읽으며 깨달았다. 하나님이 내가 "구하는 것 이상으로, 구하지 않은 것까지도 응답"(25쪽)하시고자 중언부언하는 기도 대신 주기도문을 외우게 하신 거라고 믿는다.

<예수님의 기도 학교-주기도로 배우는 자유와 신뢰 그리고 공동체> / 이정규 지음 / IVP 펴냄  /344쪽 / 1만 7000원
<예수님의 기도 학교-주기도로 배우는 자유와 신뢰 그리고 공동체> / 이정규 지음 / IVP 펴냄  /344쪽 / 1만 7000원
주기도의 참된 의미를
안내하는 따뜻한 책

<예수님의 기도 학교>는 주기도에 대한 성경적 해석과 참된 의미, 기도법 등을 안내하는 책이다. 344쪽 분량으로 부담 없이 읽을 수 있고, 저자 이정규 목사(시광교회) 특유의 따뜻한 말씨가 책의 분위기를 한층 부드럽게 한다.

책은 총 4부 15장으로, 주기도문을 한 문장씩 나누어 예수님이 기도문을 알려 주실 때의 의중과 성경적 배경을 친절히 일러 준다. 1부 '기도의 근거'에서는 높고 위대하신 하나님께서 죄인인 우리에게 당신을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는 자격을 허락하신 은혜를 설명한다. 2부 '하늘을 땅에 내리는 기도'에서는 하나님의 이름을 거룩히 여기는 것의 의미, 하나님나라와 통치 주권을 사모하는 일의 참뜻을 상세하게 알려 준다. 3부 '땅이 하늘을 향해 올라가는 기도'에서는 매일의 쓸모를 채우시는 하나님, 회개와 용서, 하나님이 주시는 시험의 의미를 풀어 이야기한다. 4부 '기도의 마침'에서는 기도를 마칠 때의 마음가짐 등을 설명하며 글을 마친다. 부록 '기도 학교를 위한 가이드'에는 독자가 홀로 또는 공동체와 함께 기도 습관을 재정비하고 깊이 있는 기도 생활로 나아갈 수 있도록 기도 제목과 기도문을 실었다.

하나님을 생각하고
나의 나라를 끝장내는 기도

저자는 "지성을 거의 사용하지 않"는(40쪽) 기도를 경고한다. 하나님의 높으심과 위대하심을 차분히 '묵상'할 때 그분에 대한 경외가 시작되고, 또 완성될 수 있다는 것이다. 격정적인 감정이 전부인 기도는 하나님을 이해할 수 없게 하고, 오히려 우리와 그분을 멀어지게 만든다. 자기 연민, 비통, 원망, 억울함, 불안, 자책 등 모든 감정은 자신에게서 기인한다. 스스로에게 매몰될 때 하나님의 뜻을 구하는 기도는 나오기 어렵다. 우리가 자기 감정의 배설물만을 쏟아 내고 자리를 떠나면 하나님과의 진정한 대화는 요원해진다.

여기서 저자는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기억하라고 말한다. 그분의 거룩함과 아름다움을 바라보며 우리의 "삶과 마음을 들추어"(58쪽) 내라고 안내한다. 기도할 때 우리가 진정으로 욕망하는 것이 드러나기 때문이다. 커리어, 관계, 돈, 자아 등 삶의 구원처로 삼고 싶은 것이야말로 우리가 하나님보다 거룩하게 여기는 대상이다. 나 역시 죽기를 소망할 정도로 낙담했던 근원적 이유는, 내가 아름답게 여기고 신으로 섬겼던 것의 소멸을 인정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자신의 안위와 정체성이 요동치면 "하나님의 이름이 높아지기를 원하는 마음"(66쪽)을 먹기 어렵다.

하나님의 높아지심을 바랄 때 비로소 '하나님나라'를 소망할 수 있다. 여기서 '나라'는 헬라어 '바실레이아'로 "왕과 백성으로 이루어진 왕국"(76쪽)이라는 뜻인데, 통치자의 주권이 강조된 단어다. 즉 "하나님의 나라는 사실 하나님의 주권적 통치를 의미"(77쪽)한다. 예수님의 성육신과 사역으로 이 땅에 하나님나라가 임했지만, "그분의 통치가 아직 완전"(80쪽)하지는 않다. 이는 하나님의 무능함 때문이 아니라 자기중심성으로 점철된 인간의 연약함과 '불순종' 때문이다.

저자는 그러므로 하나님나라를 구하는 것은 사실상 "나의 나라는 끝"이며 "내 주권을 포기"하겠다고 말하는 것임을 기억하라고 말한다. 더불어 하나님을 삶의 주인으로 모실 때 "염려하지 말아야 한다"(92쪽)고 강조한다. 염려에서 파생하는 죄가 많기 때문이다. 내가 자살 충동의 고리를 끊어 낼 수 있던 이유는, 적절한 병원 치료와 주변인의 도움에 더해 '내 인생이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망가졌다'고 염려했던 마음을 내려놓을 수 있게 됐기 때문이다.

"미래의 것을 통제하고 싶"고(94쪽) 대비책을 세워야 한다는 압박감이 들 때 인간은 염려하고 불안해한다. 여기에는 자신의 인생을 스스로 완전하게 할 수 있다는 "교만이 도사리고 있"다(97쪽). 저자는 이를 "깊이 생각"(99쪽)함으로 떨쳐 내라고 말한다. "우리가 하나님이 아니라는 것", "우리가 하나님께 귀한 존재라는 것"(99쪽)이 그 깊은 생각의 요체다. 자신의 교만함을 꺾되, 세상 전부를 주실 수도 있는 분께 전인격을 맡기라는 것이다. 그때 우리는 하나님나라의 의를 구할 수 있고, 버거운 책임에서 벗어나 "자유를 얻게"(103쪽) 된다.

이 책은 이처럼 독자의 교만을 꼬집지만, 읽는 내내 불쾌한 감정이 들지는 않는다. '당신은 지금 잘못 살고 있다'는 비난조가 아니라, '좀 더 가벼워도 된다', '그분께 모든 것을 맡기고 안식하라' 외치는 저자의 목소리가 들리기 때문이다.

자기 부인으로 이뤄 가는
하나님 뜻, 하나님나라

염려와 불안을 모두 내려놓고 인생의 주권을 하나님께 드릴 때 순종에 가까워진다. 실패하면 안 된다는 강박에서 벗어나 하나님 안에서 "자유롭게 결정하고 기도하며 그분을 신뢰"(113쪽)하면 되기 때문이다. 여기에는 철저한 "자기 부인"(139쪽)이 동반된다. 자기 부인은 이유를 알지 못할 때도 "하나님의 성품을 믿고 순종"(158쪽)할 수 있는 힘을 주고, "'내' 기도가 아닌 '우리' 기도"(166쪽)를 하도록 이끈다. 더불어 '우리 죄'에 대한 용서를 구하게 만든다.

'우리'보다 먼저인 것은 '자기 자신'이다. 회개를 통해 "자신을 치료"(184쪽)한 사람은 하나님 안에서 풍요로움과 안식을 누린다. 상대의 죄와 내 죄의 무게, 크기, 색깔, 온도가 하나님 앞에서 동일하다는 것을 시인하는 순간 복수를 갈망하던 내 마음도 시든다. "타인을 정죄하는 것에 대한 정서적 걸림돌이 생"긴(191쪽) 것이다. 용서는 자연스레 따라온다.

이 모든 간구는 결국 '복음'으로 이어진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기도를 알려 준 선생이시기도 하지만, 기도를 듣는 하나님이시며 우리의 기도 그 자체이시기 때문이다. 선생이신 그분께 족집게 과외를 받듯, 많은 독자가 <예수님의 기도 학교>를 한 장 한 장 넘기며 미쁘신 하나님의 뜻을 알아 가게 되길 바란다.

이효정 / <예수님의 기도 학교> 저자 이정규 목사가 담임하는 시광교회 교인. 홍보맨으로 일상을 성실히 살아 내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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