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앤조이-이은혜 기자] 가정을 하나 해 보자. 당신이 목회하는 혹은 다니는 교회에서 오랫동안 함께 신앙생활을 해 온 신실한 교인이 있다. 어느 날 그가 자신은 동성애자라고 고백해 온다면, 이 고백에 당신은 어떻게 반응할 것인가.

커밍아웃을 들은 순간 머릿속에는 매스컴에서 보고 들은 수많은 발언이 떠오를지도 모르겠다. 교계 소식에 익숙한 사람이라면, 개신교계 반동성애 진영이 만들어 낸 왜곡·거짓 정보가 먼저 생각날지도 모른다. 동성애를 하면 에이즈에 걸린다거나, 동성애자는 모두 성적으로 문란하다거나, 아침에는 남성으로 살고 싶다가 저녁에는 여성으로 살고 싶어지는 게 트랜스젠더라는, 편견과 무지를 기반으로 한 헛소문들 말이다.

"나는 동성애자를 혐오하지는 않지만 정작 만나면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생각하는 이들에게 도움이 될 만한 책이 있다. 가톨릭 출판사 성서와함께가 발간한 <다리 놓기>다. 미국에서 비공식적으로 성소수자와 그 가족을 위한 목회 활동을 해 온 제임스 마틴 신부가 쓰고 서강대 총장 심종혁 신부가 번역했다.

개신교에서도 동성애와 관련한 다양한 책이 나온 지 오래다. 하지만 대부분이 성경에서 언급하고 있는 동성애 정죄 구절을 문자주의적으로 해석하는 데 천착한다. 반면 <다리 놓기>는 신학적으로 동성애가 죄인지 아닌지, 동성 간 성행위를 허용해야 하는지를 논하지 않는다. 제임스 마틴 신부는 "양 진영 모두 극명하게 대립하고 있는 영역이기에 이 주제에 대해 길게 논의하지 않기로 결정했습니다. (중략) 이 주제와 관련하여 두 진영이 공감할 수 있는 공통의 영역에 좀 더 집중하고 싶기 때문"이라고 쓰고 있다.

<다리 놓기> / 제임스 마틴 지음 / 심종혁 옮김 / 성서와함께 펴냄 / 274쪽 / 1만 8000원. 뉴스앤조이
<다리 놓기> / 제임스 마틴 지음 / 심종혁 옮김 / 성서와함께 펴냄 / 274쪽 / 1만 8000원. 뉴스앤조이 이은혜

이 책은 이미 성소수자에 대한 나름의 판단이 확고한 이들에게는 별다른 영향을 미치지 못할 확률이 높다. 반동성애 진영의 주장에 경도된 이들은 성소수자 존재 자체를 인정하지 않으려 하고, 성소수자와 이미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는 이들에게는 이 책이 하는 말이 너무나 당연한 이야기처럼 들릴 수 있기 때문이다.

저자는 가톨릭 내 성소수자 공동체를 상담해 온 경험을 되살려 이 책을 썼다. 따라서 양극단에 있는 이들보다는, 내가 속해 있는 신앙 공동체에서 성소수자를 만났을 때 어떻게 대해야 할지 잘 모르는 이들을 위한 '목회 안내서'에 가깝다. 그래서 저자는 이 책을 "무엇보다 대화와 기도에 관한 책"이라고 설명한다.

존중·공감·민감함, 세 가지만 기억하자

저자는 성소수자 공동체와 교회 사이에 다리를 놓으려면 세 가지 키워드를 기억해야 한다고 말한다. '존중(respect)', '공감(compassion)', '민감함(sensitivity)'이다.

상대적으로 논쟁적인 내용도 자신의 경험에 비추어 편하게 풀었다. 예를 들어 '존중' 부분에서 저자는 '상대방이 불리기 원하는 이름으로 부르는 것' 또한 존중을 표현하는 중요한 방식이 될 수 있다고 말한다. 동성애자를 혐오하는 이들은 '성소수자'라고 부르는 것도 거부한다. 대신 '동성 간 성행위자'라는 노골적인 이름으로 부른다. 하지만 마틴 신부는 신·구약성경의 아브라함과 모세 이야기를 예로 들며 유대교·그리스도교 전통에서 제대로 된 이름을 부른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설명한다.

"히브리어 성경, 즉 구약성경에서 이름은 바로 그 사람의 정체성을 의미합니다. 즉 이름을 안다는 것은 바로 그 사람을 안다는 뜻이고, 그 사람과 가깝다는 뜻일 뿐 아니라, 나아가 그 사람을 향한 어떤 권한과 힘을 지니고 있다는 뜻을 내포합니다."(69쪽)

제대로 된 이름을 부른 후에는 상대방의 경험에 공감하는 일이 필요하다. 하지만 이것도 쉽지 않다. 이미 우리 안에 성소수자에 대한 편견이 조금씩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이다. 상대가 어떤 일을 하는 사람인지, 무슨 음식을 좋아하는지, 최근에 가장 재미있게 본 영화는 무엇인지 등의 질문보다 '성.소.수.자'라는 말에 압도돼 모든 생각이 '성적인 것'으로 환원되기도 한다. 그러나 경청이 없이는 다른 사람의 삶을 경험하거나 공감할 수 없다. 저자는 목회자 혹은 대화를 이끄는 사람이 성소수자들과 대화를 나눌 때 주제로 삼을 만한 몇 가지 질문을 소개한다.

- 게이, 레즈비언, 트랜스젠더로 성장하며 어떤 경험을 했습니까.

- 요즘 어떻게 지내십니까.

- 성적 지향이나 성 정체성 때문에 고통을 겪은 적이 있습니까.

- 삶에서 언제 기쁨을 경험합니까.

- 당신에게 하느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 당신에게 예수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 당신에게 교회는 어떤 존재입니까.

- 당신이 희망하고, 바라며, 기도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제임스 마틴 신부는 성소수자 신자를 존중하고 그들의 경험에 공감하는 것이 동성 결혼을 허락하지 않는 가톨릭의 가르침에 반하는 건 아니라고 말한다. 유튜브 동영상 갈무리
제임스 마틴 신부는 성소수자 신자를 존중하고 그들의 경험에 공감하는 것이 동성 결혼을 허락하지 않는 가톨릭의 가르침에 반하는 건 아니라고 말한다. 유튜브 동영상 갈무리

마틴 신부는 성소수자 공동체에도 같은 키워드를 기억해 달라고 요청한다. 성소수자 신자 역시 교회를 존중하고, 교회 지도자들이 처한 상황에 공감하며, 변화가 더디게 느껴지더라도 민감함으로 예언자적 직무를 감당하면 좋겠다고 말한다. 이 책은 이렇게 '양방향 대화'가 얼마나 중요한지 말한다.

생각해 보면, 이 세 가지 키워드는 사람과 사람 사이 관계를 맺을 때 늘상 필요한 태도다. 한때 개신교에서 유행처럼 번진 '관계 맺기 전도 프로그램'에서도 강조하는 바다. 전도하고 싶은 상대를 존중하며 친밀감을 형성하고, 그의 어려움과 아픔에 공감하고, 상대가 원하는 것을 민감하게 알아차리는 것. 하물며 불신자를 전도할 때도 이런 태도를 요구하는데, 성소수자 그리스도인과 대화할 때는 왜 일방적인 혐오와 비난만 퍼부을까.

안타깝게도 한국교회에 널리 퍼진 반동성애 진영의 주장은 이런 '기본'조차 갖추지 못하고 있다. 그들이 "우리는 동성애자를 혐오하는 게 아니라 사랑하는 것"이라고 아무리 주장해도, 허공에 울리는 메아리일 뿐 그 누구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오히려 한국교회를 더 편협하고 획일적인 곳으로 만들어 사회와의 괴리만 깊게 할 뿐이다.

양방향 대화에 대한 안내를 마치고 저자는 독자를 성경 묵상과 기도, 성찰을 위한 질문으로 이끈다. 여러 명이 함께 생각한 바를 나눌 수도 있고, 혼자 실천해 보는 것도 좋다. 마틴 신부가 직접 작성한 '거부당했다고 느낄 때 드리는 기도문'도 실려 있다.

다시 처음 가정으로 돌아가 보자. 이 책을 읽고 난 후라면 당신은 나름의 원칙을 가지고 성소수자를 대할 수 있을 것이다. 무턱대고 성소수자에게 두려움·반감·증오·혐오의 감정을 표현하지 않고도, 일단 그를 '존재'로서 존중하고 다가갈 수 있을 것이다. 예수께서 그러셨던 것처럼.

"모든 그리스도교의 사목 활동이 예수님에게 뿌리를 두지만, 특히 주변으로 밀려났다고 느끼는 이들에게 다가가는 것은 예수님을 가장 가까이 따르는 길입니다. 예수님은 소외된 이들에게 다가가는 일을 가장 우선시하셨으므로, 교회도 그 일을 가장 중요하게 여겨야 합니다."(4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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