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분야에서 뛰어난 업적을 성취했거나 진보적 목소리를 내 온 사람들이 줄줄이 성폭력 가해자로 지목되고 있습니다. 성폭력 가해자로서 피해자에게 사과하고 마땅한 법적·도덕적 책임을 져야 하는 것은 당연합니다. 하지만 그 사람이 이룬 업적은 어떻게 평가해야 할까요.

여기 메노나이트 교단을 대표하는 신학자 존 하워드 요더(John Howard Yoder)가 있습니다. 평화주의, 기독교 윤리학의 새 지평을 연 요더는 수십 년간, 많게는 100명에 가까운 여성에게 성폭력을 가했습니다. 그의 탁월한 신학과 저서를 볼 때 이런 사실을 받아들이는 일은 쉽지 않습니다.

'미투 운동'으로 한국 사회가 요동치는 지금, 요더의 성범죄를 다룬 <야수의 송곳니를 뽑다>(대장간)가 출간됐습니다. 존경받는 신학자 요더의 성폭력과 학교 및 교단의 대처, 그것이 드러나기까지 과정을 찬찬히 들여다보면, 목회자 성폭력이 끊이지 않는 한국교회에 주는 시사점이 많습니다.

<뉴스앤조이>는 연중 기획 '#교회_내_성폭력_OUT 당신의 잘못이 아닙니다'의 일환으로 요더의 성폭력을 통해 본 목회자 성범죄와 교회 문화를 조명합니다. ①요더가 어떤 방법으로 성범죄를 저질렀는지 ②신학교와 교회는 왜 치리에 실패했는지 ③그가 세상을 떠난 뒤 메노나이트교회는 어떤 과정을 거쳐 피해자들의 회복을 위해 힘썼는지 ④한국교회가 요더 사건에서 무엇을 배울 수 있는지 살펴봅니다. - 편집자 주

[뉴스앤조이-이은혜 기자] 미국메노나이트교회(MCUSA)와 미국아나뱁티스트성경대학원(AMBS)은 존 하워드 요더(John Howard Yoder) 사망 18년이 지나서야 성폭력 피해자들에게 공개 사죄했다. 그동안 숫자로만 존재했던 피해자들은 2015년 3월, AMBS가 마련한 치유와 회복의 예배에 참석해 눈물을 흘렸다.

지난 2월 중순 출간한 <야수의 송곳니를 뽑다>에는 AMBS와 MCUSA가 써 내려간 '실패의 역사'가 담겨 있다. AMBS는 학교와 '평화신학자' 요더의 명성을 유지하기에 급급해 피해자들의 아픔을 돌보지 못했다. 피해자들은 스스로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고 교단의 여성 리더십을 중심으로 재조사가 시작됐다.

<뉴스앤조이>는 앞선 기사에서 <야수의 송곳니를 뽑다> 출간에 맞춰 요더의 성폭력과 AMBS·MCUSA의 대응을 시리즈로 소개했다. 마지막 순서로 요더 사건에서 한국교회는 무엇을 배워야 하는지를 돌아보는 대담을 진행했다. 대담에는 교회개혁실천연대 김애희 사무국장, 감리교여성지도력개발원장 홍보연 목사, 캐나다메노나이트교회 김복기 선교사가 참여했다.

김애희 국장은 교회개혁실천연대에서 약 14년 일하며 목회자 성폭력을 비롯한 다양한 교회 문제를 다뤄 왔다. 삼일교회(송태근 목사)가 지원해 올해 7월 개소하는 기독교반성폭력센터 실무를 담당하고 있다. 홍보연 목사는 과거 8년간 기독교여성상담소 국장을 역임했고 이제는 기독교대한감리회(감리회) 안에서 여성운동을 펼치고 있다. 김복기 선교사는 한국아나뱁티스트센터(KAC) 전 총무로 <야수의 송곳니를 뽑다>를 번역했다.

홍보연 목사(왼쪽부터 시계 방향), 김애희 국장, 김복기 선교사가 요더 사건에서 한국교회는 무엇을 배울 수 있는지 대담을 진행했다. 뉴스앤조이 김은석

- 책을 읽은 소감부터 간략히 말해 달라.

김애희 / 평화운동에 앞장서고 전 세계적으로 영향력을 행사한 신학자의 추악한 부분을 잘 드러낸 것 같다. 교회가 요더 성폭력 문제를 끌어안고 고민하는 과정을 잘 엮었다. 시기적으로 중요한 때에 책이 나오게 돼 반갑다. 이 책은 사투의 기록이다. 여러 사람이 요더 성폭력을 놓고 자기 입장과 이해가 충돌하고 경합하는 과정을 비교적 가감 없이 표현한 것 같다. 요더 문제 해결을 위해 노력했던 이들이 이 사안을 바라보는 다양한 태도가 드러나는 점이 인상적이었다.

홍보연 / 사실 요더에 대해 잘 몰랐고 이 책으로 처음 알게 됐다. 앞부분에 나온 요더의 '성적 실험'을 읽고 충격받았다. 자신의 행위를 철저히 정당화해 끝내 성적 행위가 아니라고 어필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교단이 20년 동안 이것을 해결하기 위해 애썼다고 하는데, 그 과정에 피해자 목소리가 전혀 없었던 것도 놀라웠다. (책에는 2015년 피해자가 참석한 치유와 회복의 예배에 대한 기술은 없다 - 기자 주) 어떻게 이렇게 철저히 가해자만 보호하고, 피해자의 소리는 묻힐 수 있었을까. 책 뒷부분에서는 교회 공동체, 치유와 화해에 대해서 정성스럽게 접근했는데 그 부분이 다행스러웠다.

김복기 / 메노나이트 교인으로서 요더 이야기는 새로운 사실이 아니었다. 성폭력 문제는 분명히 가해자와 피해자가 존재하는데, 매번 가해자만 조명받아 왔다. 피해자 목소리는 익명 처리되고 '피해가 있었다'고만 기술하고 끝났다. 정말 관심받아야 할 희생자들은 관심받지 못했다. 요더 문제도 전 세계 메노나이트가 어느 정도 알고 있었고 그걸로 충분하다고 생각했는데 아니었다.

번역하면서 사람들이 요더에 대해 잘 모르니까 우선 1차적인 정보를 줘야겠다고 생각했다. 이야기하기조차 힘든 사안을 양지로 끌어낼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있었는데, 직접 번역하면서 살펴보니 이게 보통 문제가 아니었다.

실제로 교회에서 성폭력 사건이 발생하면 교회가 무지해서 덮어 버리는 경우가 많다. 이걸 어떻게 교회 안에서 담론화하고 피해자 입장을 부각해 실제적으로 치유가 일어나게 할 수 있는지, 어떻게 하면 그 작은 피해자의 목소리가 들리게 할 수 있는지 관심이 갔다.

번역하면서 많이 아팠다. 지금 미투 운동이 퍼져 나가고 있는데 가해자가 권력자거나 유명한 사람인 경우에는 그래도 이야기가 밖으로 나온다. 하지만 이야기할 수 없는 사람이 더 많고, 우리나라 특유의 수치 문화에서 이 문제가 어떻게 전개될지 관심이 많다. 사실 지금도 아프다.

- 책에도 요더가 그루밍(길들이기)에 능숙했던 것으로 나온다. 전문가들은 교회가 그루밍에 굉장히 취약하다고 한다. 왜 그렇다고 보는가.

홍보연 / 여러 교육을 다니면서 교회가 성폭력이 발생하기 쉬운 구조라고 이야기한다. 한 번 발생하면 많은 피해자, 지속적으로 피해자가 생길 수 있다는 이야기도 덧붙인다. 교회 지도자가 어떻게 생각하고 어떤 마음을 갖느냐에 따라 성폭력을 예방할 수도, 성폭력이 발생할 수도 있다. 지금으로서는 목회자 스스로 자기를 보호할 장치도 없고, 교인과 어디까지 경계를 그어야 하는지 정보도, 배운 것도 없다. 교회 공동체 전체를 보호하려면 세부적 지침을 만들어야 하고, 더 구체적으로 권위가 분배되는 것까지 염두에 둬야 한다.

김애희 / 목회자에게 권력이 집중되면 횡령 같은 문제뿐만 아니라 성 문제도 발생한다. 여러 문제가 동시에 일어나는 경우도 많다. 돈을 마음대로 쓸 수 있듯이 교회 여성들도 본인 마음대로 좌지우지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자연스럽게 발생한다고 본다.

대부분 교회에서는 목사의 성폭력을 덮고 넘어가려 한다. 때로 목사의 성 문제를 악용하는 경우도 발생한다. 피해자 권익을 위해 싸우는 게 아니라 마음에 들지 않는 목사를 내보내기 위한 수단으로 상황을 이용하는 경우도 있다. 피해자의 동의와 상황에 대한 이해 없이 목사 성 문제가 교회 안에서 계속 회자된다.

홍보연 목사는 교회가 성폭력이 발생하기 쉬운 구조라고 했다. 뉴스앤조이 김은석

- 한국교회는 성폭력이 발생하면 우선 가해자를 옹호하고 어떻게든 덮으려 한다. 1970년대 밀러 총장이 요더 문제를 해결하려고 한 방식과 비슷하다.

홍보연 / 기본적으로 교회는 이런 일이 치부라는 걸 알기 때문에 문제가 드러나는 걸 원치 않는다. 그렇게 덮는 것이 교회를 위하는 일이고 은혜롭다고 배우고 세뇌당했다. 그런데 교회가 뭔가. 한 사람 한 사람의 아픔을 돌보지 않는 교회가 무슨 의미가 있을까. '교회를 위한다'고 할 때 '교회'가 누구이며 무엇인지 다시 생각해 봐야 한다.

지금은 어떻게 보면 교회가 괴물 같다. 자기를 지키는 일이 제일 중요해졌다. 교인들은 교회의 부속품 같은 느낌이다. 부속품이 잘못되면 치우면 된다. 그렇기에 얼른 치우려고 다들 애를 쓴다. 그런 행동은 결국 교회를 위한 일이 아니다. 피해자가 뭘 원하는지 살피고 교회 공동체가 이를 실천해 나가는 것이 교회를 위한 길이다.

김복기 / 메노나이트 교회론으로 보면 피해자가 곧 교회다. 한국교회는 교회에 대한 이해를 달리 할 필요가 있다. 진짜 교회인 피해 생존자는 어떻게 입지를 찾을 수 있는지 함께 고민해야 한다. 권력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 뭘 해 줄 수 있는지 고민하는 것보다, 어떻게 하면 교회의 몸인 교인들이 피해자와 연대할 수 있을지 생각의 기본 구조를 바꾸면 좋겠다.

- 요더의 저서와 신학을 재평가해야 한다는 주장도 점점 힘을 얻고 있다.

김복기 / 요더는 신학과 삶이 분리될 수 없다고 했는데, 완전히 사기를 쳤다. "요더의 책을 계속 인용해도 되는가", "요더가 한 명강의들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 등의 질문을 많이 받는다. 요더를 인용하고 싶은데 누군가가 가이드라인을 제시해 주고, 권위 있는 사람의 도움을 받고 싶다는 거다. 그건 문제 해결을 더 애매하게 만드는 행위다. 다른 사람에게 고민을 전가하지 말고 스스로 목소리를 내야 한다.

요더 문제는 엄청난 사건이었다. 교단에서 당연히 다뤄야 했다. 다만 피해 생존자 목소리가 너무 없었고, 그들의 목소리가 묻혀 있었기 때문에 그동안 '종결되지 않은 사건'(Unfinished Business)이라고 표현했다. 다 끝난 일인데 왜 자꾸 언급하느냐고 하는 사람도 있었다. 한국 상황에서 명확하게 해야 할 부분은 성폭력은 성폭력이라는 거다. 거기에 무슨 신학적 토를 달 수 있을까. 잘못한 건 잘못한 거다. 그 안에 어떤 신학적 의미가 있는지 말하려면 요더가 잘못을 저지른 사람이란 걸 전제로 접근해야 한다.

김애희 / MCUSA에서 요더의 연구, 신학적 성과 등이 재평가돼야 할 것 같다. 요더가 과거에 저지른 잘못은 잘못이고, 신학적 성과는 성과라고 분리할 수 없다. 학생들 교과서에서 고은 시인의 시를 삭제하고 있다. 그런 방식으로 도려내고 있는데 요더는 이 시대에 적합할 수 있을까.

홍보연 / 나에게 기준은 피해자다. 피해자가 납득할 수 없으면 아닌 거다. 요더가 신학에 공헌한 바를 재평가하는 게 핵심이 아니다. 그 작업을 하는 동안에도 피해자는 계속 상처받는다. 20년, 30년, 100년이 흐른다 해도 회복하지 못한 피해자가 있는 한, 계속 문제 제기해야 한다. 고은 시인의 시 자체에 문제가 있어서 삭제하는 게 아니다. 우리도 그 시를 보면서 더 이상 감흥을 느낄 수 없다. 성경에는 계속 약자, 소자, 과부, 고아, 여성 등을 언급한다. 약자를 고려하지 않는 신학이 무슨 신학인가.

- 요더 문제가 발생했을 당시 MCUSA도 가부장적이었다. 이후 여성 리더십이 등장하면서 피해자 목소리에 귀 기울이기 시작했다. 결국 젠더 권력이 여성으로 옮겨지지 않는 한 해결이 불가능할까.

김복기 / 그렇지 않다고 본다. 나는 거듭난 남성들이 더 말을 해야 한다고 본다. 물론 그동안 전 세계적으로 가부장의 역사가 굉장히 길기에 가부장적인 사고방식을 쉽게 떨쳐 버릴 수 없다. "나는 가부장적이지 않다"고 생각하는 남자들 굉장히 많은데, 그런 사람들이 더 가부장적이다. 남자들끼리만 있으면 "당신 가부장적이다"는 지적을 주고받을 수 없다. 가부장제가 유지돼 온 시간에 비하면 여성운동의 역사는 그리 길지 않다. 그동안 억눌린 목소리들이 한꺼번에 봇물처럼 터져 나오는데 좋은 현상이라고 생각한다. 이럴 때 여성과 남성이 같이 얘기하면 좋겠다.

김애희 국장은 교회 내 성폭력 피해자들이 서로의 경험을 공유할 수 있는 '말하기'가 많아지면 좋겠다고 했다. 뉴스앤조이 김은석

김애희 / 요더 피해자들이 치유와 회복의 예배까지 갈 수 있었던 과정을 보면, 비슷한 문제를 겪은 여성들이 자연스럽고 편안하게 말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했고 실제로 피해자들이 모였다. 그렇게 모인 자리에서 어떻게 하면 이야기를 지속할 수 있을지 스스로 결정하고 토론했다. 그런 과정이 있었기 때문에 이 책도 나올 수 있지 않았나 싶다.

기독교반성폭력센터는 지난 3월 2일 성폭력 피해 생존자 혹은 사례를 알고 있는 이들과 함께 '말하기 대회'를 열었다. 자신의 이야기를 처음 하는 사람이 대부분이었다는 점이 안타까웠다. 가까운 가족에게도 부모에게도 말할 수 없어 혼자만 삭이고 있는 사람이 많았다.

생존자의 말하기라고 하는 게 어떤 의미에서, 어떤 해방을 주는지 경험하는 자리였다. 언론, 남성 다 배제하고 모였다. 단순하게 폭로성 기사의 소재로 이용하고 싶지 않았다. 피해자가 목소리를 내기까지 얼마나 오랜 시간이 걸렸고, 얼마나 많은 용기가 필요했는데… 그런 방식으로 도구화하고 싶지 않았다.

말하기에 참석한 사람들도 자신의 인생에서 삶을 결정하는 주체는 자신이라고 인식하게 됐다. 피해자들은 늘 다른 사람의 입을 통해 내 경험과 내가 겪은 피해를 걸러서 이해해 왔다. 다른 이의 경험을 자기 것이라 오해한 이들이 많았다. 말하기 경험을 통해 자기 경험을 재해석한 것이 좋았다.

홍보연 / 말하기와 폭로가 해방과 치유를 가져오는 이유는 들어 주는 사람이 있기 때문이다. 내가 안전한 곳에서 말하고 그 말을 그대로 들어 주는 사람, 받아 주는 사람이 있을 때 해방감을 느낀다. 교회가 들어 주는 역할을 해야 한다. 지금 교회는 공감 능력이 없다. 피해자의 아픔에 전혀 공감하지 못한다. 공감은 힘 있는 행동인데 교회에는 그 힘이 없다.

교회에서 성폭력이 발생하면 우선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모르고, 앞으로 어떤 일이 일어날지도 확실하지 않다. 목회자 자신이 그런 상황을 두렵다고 느끼기 때문에 교인에게도 두려운 마음을 심는다. 그래야 통제가 쉽다. 미투 운동은 우리 사회 근본 구조 자체를 흔드는 일이 될 것이고 그렇게 돼야 한다. 교회 내 성폭력을 드러내는 것도 교회가 공감하는 교회, 정의로운 교회가 되도록 하는 시발점이 되면 좋겠다.

- 지금 말씀하신 것처럼 누군가 말하면 듣는 사람이 있어야 한다. 듣는 주체로서의 교회는 어떤 태도를 가져야 할까.

홍보연 / 사람들이 헷갈려 하는 부분이 있다. 교회는 피해자 중심주의를 100% 수용하지 않는다. 사안을 객관적·중립적으로 보려 하고, 가해자와 피해자 양쪽 말을 다 들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것은 들어 주는 사람의 태도가 아니다. 재판하고 판단하려는 사람이다. 한국교회는 '들어 주는 사람'이 어떤 의미인지 잘 모르는 것 같다.

잘못을 가려 판단하려고 하는데 그 이면에는 가해자를 이해하고 싶은 마음이 깔려 있다. 듣기는 하는데 피해자를 믿으려 하지 않는다. 이것도 가부장제 영향이다. 여성 말을 믿으려 하지 않는다. 성서에 여성은 증인이 될 수 없다는 말씀도 있지 않나. 늘 그래 왔지만 여성의 말에는 힘이 없고, 듣는 역할을 하는 교회도 그 말을 믿으려 하지 않는다. 그게 문제다. "나는 양쪽 말을 다 들어 보려 해. 나는 중립적이야"라는 말은 폭력이다.

김복기 / 더 힘든 부분은, 피해자가 '이 사람은 정말 들어 주겠거니' 하는 마음으로 말했는데 실제로는 듣지 못하는 사람일 때다. 듣기를 거부하는 이는 "나에게 말하지 마. 난 별로 알고 싶지 않아"라고 반응한다. 내가 피해자 말을 들었다는 데서 두려움이 시작된다. 과거 선교 단체에서 간사로 일하면서 상급자의 성폭력을 알았고 해결하려 한 경험이 있다. 그때 문제를 제기하려 해도 사람들은 모두 가해자와의 관계를 우려해 문제를 외면했다. 가부장과 권력이 연결돼 있기에 더 어렵게 만들었던 것 같다.

그렇기 때문에 적극적으로 안전한 공간을 만들어 그 사람 이야기를 듣고 비밀을 보장해 줘야 한다. 말하려는 사람은 한 사람, 두 사람만 이야기를 들어 주면 빛이 되고 힘이 되는 건데… 이런 부분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우리가 답을 잘 알지 못하거나 혹은 알아도 실천을 못 해 왔다. 그런 면에서 기독교반성폭력센터가 하는 말하기 대회 같은 모임은 큰 의미가 있다고 본다.

김복기 선교사는 <야수의 송곳니를 뽑다>를 번역하면서 많이 아팠다고 했다. 뉴스앤조이 김은석

- 한국교회 내 여성운동의 역사도 짧지 않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가시적 변화를 이끌어 내지는 못했다.

홍보연 / 교회에서 여성운동은 늘 실패의 역사였다. 대한예수교장로회 통합은 여성 목회자 안수 문제로 60년을 싸웠다. 쉽게 되지 않는다는 것을 너무 잘 안다. 그렇다고 해서 포기하면 안 된다는 것도 잘 안다. 오랜 경험에서 우리는 기대하지 않으면서 희망하는 것을 배웠다. 나는 이 힘이 '영성'이라고 생각한다. 정의감·책임감으로만 할 수 있는 일은 아니다. 하나님이 함께하신다는 믿음이 없으면 진짜 어려운 일이다.

김애희 / 여성들의 연대가 중요하다. 여성들이 이렇게 미투 운동에 열광적으로 반응하는 이유는 여전히 그런 삶을 살고 있기 때문이다. 여전히 공포에서 쉽게 벗어나지 못하고, 삶에서 내 판단과 선택을 존중받지 못하는 사람이 많다. 그렇기에 피해자들 말에 귀 기울이고 공감한다. 공감과 경청이 연대로 발전해야 한다. 교단 내 다양한 여성 주체들을 만나 왔는데 여성이라고 성폭력 문제에 다 공감하는 건 아니었다. 당면 과제가 아니니까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하지만, 이 문제에서는 함께 한목소리를 내는 것이 중요하다.

홍보연 / 여성학, 여성신학을 처음 시작할 때 자기 경험에서부터 시작한다고 말한다. 자신의 피해 경험, 억압의 경험을 이야기하기 시작하면 금방 공감대가 형성된다. 거기서부터 시작해야 한다. 감리회에서 여교역자 대상으로 하는 수련회가 있다. 작년 수련회에서 소그룹 중 하나가 성폭력 이슈를 다뤘다. 모인 분들에게 성폭력 피해 경험, 간접 경험 다 좋으니 마음껏 말씀하시라고 했는데 다 직접 겪은 일을 말씀하셨다. 그분들은 목회하시는 지방도 다르고, 정치적 성향도 다르고, 나이도 다른데 성폭력 피해로 하나가 됐다. 거기서부터 시작할 수 있다.

김복기 / 피해자 목소리는 계속 들려야 하고 거기에 힘이 있다. 그나마 지금은 과거 세대에 비해 말할 수 있는 환경이 조금 개선됐다. 시대가 바뀌고 있다. 한국에서 벌어지는 미투 운동도 그런 맥락인 것 같다. 어떻게 기대하지 않으면서 계속 희망할 수 있을지 자꾸 질문하면 좋겠다.

- MCUSA는 2015년 총회에서 교회 내 성폭력과 관련한 구체적 행동 지침이 담긴 교단 차원의 성명서를 발표했다. 오랜 기간 논의하고 토론한 결과였다. 한국교회가 사회에서 미투 운동이 활발해지는 것을 보고 성폭력 관련 정책을 만드는 것은 바람직하다고 볼 수 있지만, 이슈에 편승해 졸속으로 만들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있다.

김복기 / 당연히 그런 우려가 있을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이런 대책을 단번에, 마음에 쏙 들게 만들 수는 없을 것 같다. MCUSA도 여러 차례 논의를 거치고 수년 동안 수정해 가며 만들었다. 우선 모두가 참고할 수 있는 기초 자료를 만들어 그걸 토대로 논의하고, 다음 자료에 또 추가하고 이런 식으로 진행하면 어떨까. 계속 대화하고 논의한다는 건 우리 생각을 바꿔 나간다는 의미도 있다.

교회 내 여러 운동이 있는데 그런 운동이 있을 때마다 사람들 인식이 조금씩이라도 바뀐다. 현장 속에서 조금씩 실천하는 수밖에 없는 것 같다. 이런 작은 움직임이 큰 의미가 없는 것처럼 보이고, 계란으로 바위 치기 같아도 계속 하다 보면 어느 순간 '티핑 포인트'에 도달할 것으로 본다.

홍보연 / 많은 우려가 있다. 교단에서 성폭력 문제를 전담할 상설 기구를 설치하고, 그에 따른 예산 확보가 돼야 장기적으로 논의하고 대안을 마련할 수 있다. 쉽지는 않겠지만 전담 기구를 만들어 장기적으로 접근해야 한다.

김애희 / 교단 차원의 대책 기구도 반드시 필요지만 교단 밖에도 필요하다. 양쪽이 균형감 있게 활동하면서 상호 견제하는 시스템이 안전하다고 생각한다. 한국 사회는 역동적이어서 어떤 이슈가 불거지면 마치 모두가 그 논의에 한마디라도 보태야 하는 것처럼 받아들인다. 그 결과 검증되지 않거나 적절하지 않은 이야기, 대책이 우후죽순 쏟아져 나온다. 개인적으로 심히 우려된다.

대한예수교장로회 통합도 성폭력 예방 지침을 만들고 있는데, 전담 부서도 없고 국내선교부에서 담당하고 있다. 제보 및 상담도 외부 기관과 연계하려는 건데, 그렇게 되면 만약 문제가 발생했을 때 책임은 지지 않게 된다. 교단 밖에서 운동하면서 그런 경우를 너무 많이 봐 왔다. 실제로 교단이 뭘 하고 있다는 착시 효과만 주는 건 위험하다.

상담해 보면 피해 생존자들은 교단과 교회를 신뢰하지 않는다. 교단에서 지원하는 혜택은 이미 '오염'됐다고 생각해서 기대하지도 않는다. 교회가 말하는 질서 자체에 의구심을 가지는 사람들이다. 이 사람들의 안전과 익명을 보장하면서 우리가 공정하게 이 문제를 다루겠다는 신뢰를 주려면 교단 밖에도 대책 기구가 있어야 하지 않나 생각한다.

김복기 / MCUSA에는 교회에서 성폭력이 발생했을 때 어떤 절차를 밟아야 하는지 프로토콜이 있다. 미국 같으면 전병욱 같은 사람은 목회를 할 수도 없고, 실형을 살고 나온 가해자에게는 꼬리표가 붙는다. 가해자가 바뀌지 않으면 피해자가 계속 발생할 수 있으니, 가해자를 위한 회복 프로그램도 있다. 단 목회는 할 수 없다. 평소 성폭력 예방 교육도 당연한 것이고, 실생활에서 지켜야 할 구체적인 지침도 많다. 목회자, 교인 모두 이런 교육을 받으며 경각심을 갖는다. 궁극적으로 서로 존중하는 문화가 형성돼야 한다.

<야수의 송곳니를 뽑다>(대장간)에는 교회 내 성폭력을 예방하고 피해자들 회복과 치유를 위해 교회가 어떻게 해야 하는지도 담겨 있다. 뉴스앤조이 김은석

- 요더 문제를 통해 한국교회가 배울 수 있는 가장 중요한 것을 꼽는다면.

홍보연 / 교회가 이 문제를 끌어안고 오랫동안 고민하고 기도하면서 끌고 올 수 있는 힘은 '영성'이고 진짜 '신앙'이다. 감리회에서도 성폭력 문제가 된 목사가 많은데, 그들을 치리해야 하는 위치에 있는 사람들이 제 역할을 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감리회 지도력을 별로 믿지 못하는 현재 상황이 안타깝다. 감리회가 진짜 교회를 사랑하는 마음, 피해자 또는 가해자의 영혼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교회 내 성폭력 문제를 다루면 좋겠다.

김애희 / 우리는 어떤 상황이 발생하면 빨리 수습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논의를 급하게 마무리하려고 한다. 자료도 남기지 않는다. 그런데 이 '실패의 역사'를 기록했다는 자체가 중요하다. 이 과정에서 어떻게 무엇을 놓쳤는지, 무엇을 희생했는지 잘 기록했다. 다음 세대에게 주고자 하는 교훈이 뭔지 남기려 했다는 인상을 받았다. 권력에 대해 새롭게 생각해 볼 수 있는 여지를 줬다. 우리는 왜 권력을 무조건 신뢰하고 신임하며 한 번도 질문해 보지 않았을까. 요더가 자신의 범죄를 부인하고 부정하는 과정을 남겨 줘서 고맙다. 그렇게 우리는 요더의 저작을 비판하고 새롭게 들여다 볼 기회를 얻었다.

김복기 / 피해자들은 그저 숫자에 불과했다. 피해자들 목소리와 얼굴을 찾아 주는 일을 하고 있는 분들이 있다. 요더 피해 생존자들도 숫자가 아니라 이름을 찾았다. 성폭력 피해를 입은 사람이 부끄럽고 잘못한 게 아니라, 이 사회와 제도의 문제였고 그들은 폭력에 희생됐다는 걸 알려 주는 일. 피해자의 이름을 찾아 주는 일이 중요하고 그 일이 곧 빛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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