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앤조이-이용필 편집국장] 서울 송파구 오금동에는 지은 지 30년 넘은 한 아파트 단지가 있다. 외부인 출입을 엄격히 통제하는 신식 아파트와 달리, 비교적 자유롭게 드나드는 게 가능하다. 상가도 한 공간에 밀집해 있는데, 작은 공원을 중심으로 편의점·세탁소·빵집·식당·옷집 등이 원을 그리듯 자리하고 있다. 노후하면서도 친숙한 느낌이 드는 이곳에 청소년을 위한 '빛소카페(빛소)'가 있다.

카페 밖에는 '빛소 쌀롱 - 젊은 인문학자들의 집', '바리스타 제과&제빵 자격증 클래스 - 청소년 무료', '2021 세월호 참사 7주기, 미안합니다. 우리 결코 잊지 않겠습니다', '직접 농사지은 퇴촌 토마토 팝니다' 등 여러 문구가 걸려 있었다. 뭔가 하이브리드(?)한 느낌이 들었는데, 아니나 다를까 커피·빵뿐만 아니라 파스타·라면·볶음밥까지 다양한 식음료를 팔고 있었다.

빛소는 서민석 목사(38)가 2009년 만들었다. '빛과 소금'을 줄여 '빛소'라고 지었다. 원래 이 공간은 독서실이었는데, 서 목사가 20대 중반에 임대해 지금까지 쓰고 있다. 처음에는 청소년을 위한 공부방으로 시작했다가 카페, 식당, 문화 공간으로 확장했다. 12년간 청소년을 위해 '한 우물'만 파 온 서 목사를 5월 18일 빛소에서 만났다. 첫인상부터 상당히 '힙'한 기운이 느껴졌다. 그의 머리에는 주황색 모자가 비스듬히 걸쳐 있었고 옷차림도 자유분방했다.

서 목사는 '아저씨'로 불린다. 아이들은 서 목사를 '아저씨'라고 부르며 당연한 듯 도움을 청했다. 서 목사는 배가 고프다고 찾아오는 아이들에게 빵과 음료를 내줬다. 음악을 하고 싶어 하는 아이들을 위해 건반·드럼·기타도 가져다 놨다. 커피를 내리고 빵을 만들어 보고 싶다는 아이들도 있어서 관련 장비도 구비했다. 원래 크리스천 청소년들이 주로 이용했는데, 나중에는 학교 밖 청소년과 장애 청소년이 더 많이 찾았다. 코로나19 이전만 해도 빛소는 아이들의 문화 공간으로 기능했지만, 지금은 감염 위험 탓에 놀이 활동을 제한하고 있다. 요즘 빛소는 바리스타·제빵사를 꿈꾸는 아이들을 위한 장소로 쓰이고 있다.

"지역 대안 학교나 센터, 청소년 기관에서 아이들을 체험 활동 차원에서 빛소로 보내 주고 있다. 온몸에 문신을 한 친구도 있고, 중국·북한 출신인 친구도 있다. 나는 가리지 않고 받아 준다. 전문 강사 선생님들이 오셔서 아이들을 가르치고, 나도 돕고 있다. 아이들은 본인 스스로 필요하다고 느끼면 열심히 한다. 지난해 16명 중 15명이 바리스타·제빵사 자격증을 땄다. 성공하든 실패하든 노력하는 것 자체만으로 아이들에게는 가치가 있다."

혈기왕성한 아이들은 어디로 튈지 모르는 럭비공과도 같다. 기술 좀 배우겠다고 찾아왔는데, 띄엄띄엄 나오거나 대충하는 아이들도 많다. 또 빛소에서 만났다가 서로 싸우며 으르렁대는 아이들도 있다. 서 목사는 이런 청소년들을 수없이 봐 왔고, 있는 그대로 받아 주고 있다고 말했다.

"아이들은 늘 어른 꼭대기 위에 있다. 그리고 늘 실망하게 하는 존재들이다. 나는 사실 애들을 믿어 본 적이 없다. 그냥 받아들일 뿐이다. 뭐 좀 해 보겠다고 찾아오는 아이들도 많다. 처음에는 하는 시늉을 내는데 대부분 끝맺음이 없다. 그렇다고 질책하지는 않는다. 옆에서 호흡하고 맞춰 주기만 한다. 무책임하다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그 친구들만의 사연이 있으니까 그러려니 이해한다. 어른들도 뭐 하겠다고 해 놓고 다 못 하지 않나."

빛소카페는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운영한다. 커피와 빵, 파스타, 볶음밥 등 다양한 식음료를 판매한다. 뉴스앤조이 이용필
빛소카페는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운영한다. 커피와 빵, 파스타, 볶음밥 등 다양한 식음료를 판매한다. 뉴스앤조이 이용필

서민석 목사는 수많은 청소년과 부대끼며 지내 오면서, 따로 전도는 하지 않았다고 했다. "종교 강요는 폭력이다. 나는 하나님의 만지심을 위한 하나의 통로가 되고 싶을 뿐이다. 이 일을 통해 아이들을 내 울타리에 가두거나 이용하고 싶지 않다. 특별히 전도는 하지 않지만 기독교적인 사상을 언급하기는 한다. 그래서인지 모르지만, 나중에 교회에 다니는 아이들도 있다"고 했다.

한국교회의 고민거리 중 하나는 '다음 세대'다. 갈수록 줄어드는 다음 세대를 붙잡기 위해 여러 방안을 내놓고 있지만, 여의치 않은 상황이다. 이 문제와 관련해 서민석 목사는 "청소년은 교회에 관심이 없다"고 잘라 말했다. 청소년의 관심은 '돈'과 '이성'이기 때문에 교회가 뭘 하든 관심이 없다고 했다. 불행 중 다행인 점은 교회에 대한 '선입견'도 없다는 것이다.

"아이들에게 교회는 별 의미가 없다. 공부하느라 바쁘거나, 밥·돈·이성·수면 등 본능에 충실할 뿐이다. 교회는 친구가 가면 따라가는 곳에 지나지 않는다. 수많은 아이를 만났는데, 그들에게 목사는 '좋은 사람'이다. 선입견도 없다. 학교 안 청소년이든 학교 밖 청소년이든 '교회에 가 볼래?'하면 얼마든지 갈 애들이다. 교회가 청소년의 필요를 제공하면 얼마든지 불러 모을 수도 있다는 의미다.

 

요즘 배달하는 아이가 많다. 잠깐 쉬어 갈 수 있는 공간을 교회가 내주면 어떨까. 여름에 시원하게 농구할 수 있게 실내 강당을 열어 주고, 얼음물도 제공하고. 노트북이나 빔프로젝터를 빌려주면 금상첨화다. 그리고 이게 가능할지는 모르겠지만, 궁극적으로는 교회가 돈과 이성에 목매지 않고도 잘 사는 모습을 보여 줘야 한다. 교회가 세상과 다른 모습을 보여 주면 다음 세대가 알아서 찾아올 것이다."

서민석 목사는 어려움에 처한 청소년을 다 돌보지는 못한다고 했다. 자신이 도울 수 없다고 판단하면 주변 네트워크를 통해 교수·변호사·교사 등 전문가를 연결해 주고 있다고 말했다.

최종 목표는 아이들의 피난처이자 추억의 장소인 빛소를 유지하는 것이다. 인건비·운영비를 포함하면 한 달에 최소 200만 원은 벌어야 한다. 인맥이 넓어 후원을 받을 법도 한데, "어딘가에 메이기 싫다"며 후원은 아예 안 받고 있다. 서 목사는 "요즘 커피도 밥도 잘 안 팔린다. 부모님이 농사지은 토마토를 팔고 있는데, 이게 남는 게 많다. 주변 상가와 시민·사회단체에 강매(?)하면서 버티고 있다"고 웃으며 말했다.

서민석 목사는 주중에는 빛소를 관리하고 주말에는 삼일교회(김종환 목사)에서 부교역자로 사역하고 있다. 오랫동안 서 목사를 지켜본 김종환 목사는 "예전에 '10년 이상 한길만 파 보라'고 조언했는데, 진짜 10년 넘게 하더라. 학교 밖 청소년부터 장애인까지 케어하는 아주 성실한 목사다. 그 동네 주변에는 청소년을 위한 곳이 없다. 그들을 위해 한 우물만 파는 내공 있는 친구"라고 말했다.

빛소에는 조만간 꽃을 파는 공간도 생긴다. 한 아이가 꽃집을 차려 보고 싶다고 해 자리를 내준 것이다.

"아이들이 와서 뭐 좀 해 보겠다고 하면 나는 무조건 하라고 한다. 기대가 되기도 하고 떨리기도 한다. 과연 저 친구가 잘할 수 있을까 싶기도 하고. 장사를 하면서 안 팔리는 것도 경험해 보고, 재미도 느껴 봤으면 한다. 손해가 나면 내가 감당하면 되는 일이다.

 

나는 목사가 안 됐어도 이 일을 했을 것 같다. 한 번 사는 인생인데, 하고 싶은 일을 해야지, 등 떠밀려서 하고 싶지는 않다. 돈 못 벌어 전전긍긍해도 '이 또한 하나님의 뜻이 있겠지'라는 자유로운 믿음으로 나아가고 있다."

빛소는 청소년들의 실습장이기도 하다. 이곳에서 정기적으로 바리스타·제빵 교육이 이뤄진다. 뉴스앤조이 이용필
빛소는 청소년들의 실습장이기도 하다. 이곳에서 정기적으로 바리스타·제빵 교육이 이뤄진다. 뉴스앤조이 이용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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