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니, 대박… 이런 (엄청난) 책을 내 주는 출판사가 있다고?'

[뉴스앤조이-여운송 기자] 3년 전, 이름도 생소한 어떤 출판사가 낸 F. F. 브루스의 <사해사본의 구약 사용>을 서점에서 발견하고 든 생각이다. 이 출판사는 그 후로도 세계 굴지의 신학자들 저서를 무서운 속도로 출간하며 강한 인상을 남겼다. 벌써 22권을 출간해 이제 이 바닥에서 알 만한 사람은 다 아는, 신학 덕후(?)들의 희망으로 떠오른 1인 출판사 '감은사' 이야기다. 신학, 특히 성서신학 분야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감은사가 뽑아내는 화려한 출간 도서 소식에 매번 눈이 돌아갈 것이고, 당장 이번 달 카드값 한도가 얼마나 남았는지 계산하고 있을 것이다. 최근 감은사의 행보를 보면 "셧 업 앤 테이크 마이 머니(Shut up and take my money!)"라는 말이 이보다 더 잘 어울리는 기독 출판사가 있을까 싶다.

뭐? 감은사가 신간을 또 냈다고?
뭐? 감은사가 신간을 또 냈다고?

신학 덕후들의 한줄기 빛으로 통하는 감은사지만, 성토(?)를 받는 지점도 있다. 특이하게도 감은사의 책들은 책등이 뒤집혀 제작되고 있기 때문이다. 책을 책장에 바로 꽂으면 책 표지·내용이 거꾸로 뒤집히는 참을 수 없는 상황이 연출된다. 감은사의 책들은, 책을 읽는 것보다 나란히 꽂아 두고 관조하며 뿌듯함을 느끼는 일이 더 중요한 소위 '소장파' 독서가들의 책장 오와 열을 흐트러 놓는 주범이다. '대체 왜 이렇게 만들어서 내 책장 배열의 아름다움을 망치는(?) 건가' 하는 분노를 유발하는 디자인에는 나름 심오한 철학이 담겨 있다. '바로'와 '거꾸로'가 무엇을 기준으로 하느냐는 것, 기존 관념을 뒤집어 보자는 것, 독자가 능동적으로 해석할 수 있는 여지를 활짝 열어 두자는 것이다.

총신대학교 신학대학원을 졸업하고 현재 독일에서 유학 중인 감은사 이영욱 대표(37)는 사실 이 바닥(?)에서는 좀 이름이 나 있다. 신학대학원 시절 한 교수에게 "지금 당장 교수로서 가르쳐도 손색이 없다"는 찬사를 받았다거나, 보통 사람이라면 당사자 눈앞에서 읽어 주는 것을 치욕스러워 할 석사 졸업논문이 곧바로 국내 학술지에 등재됐다거나, 수많은 장학금 제안과 러브콜을 뿌리치고 홀연히 독일로 날아갔다거나 하는 전설 같은 이야기의 주인공이다.

이런 그가 대표로 있는 출판사라면 감은사의 화려하고도 파격적인 출간 목록은 우연이 아닐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영욱 대표는 1인 출판을 어떻게 시작하게 됐을까. 책은 어떤 기준으로 선정하는 걸까. 유학생 신분으로 해외에서 공부하기도 버거울 텐데 출판까지 병행하는 일이 어렵지는 않을까. <뉴스앤조이>는 독일에 있는 이영욱 대표와 이메일·소셜미디어 메신저를 수차례 주고받으며 서면으로 인터뷰했다. 이 대표와의 인터뷰를 일문일답으로 정리했다.

- 자기 소개 부탁한다.

이영욱이라고 한다. 이렇게 인사드리게 되어 반갑다. 총신대학교에서 신학을 공부했고, 지금은 독일에서 공부하며 감은사를 운영하고 있다. 출판사를 운영한 지 2년 반 정도 됐다. 그리고 또 뭐가 있을까.(웃음)

- '감은사' 출판사명이 특이하다. 국내에 동명의 사찰이 다수 있긴 하던데… 의미가 궁금하다.

'감은感恩'은 국어사전에 등재된 사전적 의미로 "은혜를 고맙게 여기는 것"이다. 이건 내가 신앙의 핵심이라고 생각하는 부분이다. '사'는 '출판사'를 가리키는 말이다. 1970~1980년대에 'OO사'라는 이름의 출판사가 많이 나오지 않았나. 거기에 착안해 고전적인 책을 많이 내고 싶은 바람을 담아 봤다. 이에 부합하듯 감은사 책 중 다수가 옛날에 나왔던 책이다.

사실 독자·파트너들이 출판사 뜻을 종종 묻는데, 내면적·상징적 의미를 물을 때마다 이렇게 답하곤 한다. "내가 의미를 풀어 드리면 의미가 고정될까 우려가 되니, 답을 하지 않고 열린 채로 놔두면 좋겠다. 상상하시는 것이 맞다"라고.(웃음) 독자들이 자유롭게 상상하시면 좋을 것 같다. 해석은 고정되기보다 열려 있을 때 아름다운 법이다. 해석이 고정되는 순간 텍스트(출판사 이름도 일종의 텍스트다)는 독자·청자와 만나는 접점을 상실하게 된다. '감은사가 설마 절 이름에서 유래한 건 아닐 테고, 대체 무슨 뜻이지?' 하는 의문에서 감은사와 독자가 만나는 공간이 창조된다고 생각한다. 그 공간을 열어 두고 싶다.

기능적인 차원도 고려했다. 일단 온라인 서점에서 출판사 이름을 검색했을 때 검색 건수가 '0'이 되는 이름이어야 했다. 출판사 이름만으로도 출간된 책 전체를 한눈에 볼 수 있게 말이다. 이 조건을 만족시키는 이름을 찾고 싶었다. 오프라인 서점에 책이 보통 출판사명 '가나다' 순으로 배열된다는 점도 노렸다. '기역(ㄱ)'으로 시작하면 서점에서 책의 위치를 직관적으로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그렇게 중요한 요소는 아니지만.(웃음)

- 원래 책을 좋아했나. 책을 직접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에 언제 어떻게 닿게 됐는지.

책 자체를 좋아했다기보다, 성경과 신학에 대한 물음·고민을 20대 초반부터 했던 것 같다. '내용'에 관심이 많았고, 신학교 가기 전부터 신학 관련 책을 많이 읽었다. 신학대학원에서 리처드 헤이스의 <바울서신에 나타난 구약의 반향 Echoes of Scripture in the Letters of Paul>(여수룬)이라는 예술적인 책을 만났는데, 이 책이 국내에 소개가 안 돼 있어서 직접 번역했다. 그때 출판계와 가까워진 게 출판사를 직접 시작한 계기 중 하나였다.

또 당시 신학생을 대상으로 히브리어 유료 과외를 했는데, 이때 교재를 직접 제작해 가르쳤던 게 지금 책을 제작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됐다. 결정적으로는 대학생 시절 만나 함께 신학 서적을 읽던 교회 형님 한 분이 1인 출판사를 차렸는데, 이게 큰 동기부여가 됐다. 출판에 대해 모르는 게 태반인 상황에서 형님의 도움을 많이 받았다.

- 그 출판사가 어딘가?

도서출판 100(김지호 대표)이다. <다시 읽는 아우구스티누스>·<우리 시대의 그리스도교 사상가들>·<교리의 종말> 등 다양한 책을 내 왔는데, 색깔이 굉장히 분명하고 독특한 곳이다.

<마가가 전하는 예수 이야기>를 들여다보고 있는 감은사 이영욱 대표. 사진 제공 이영욱
<마가가 전하는 예수 이야기>를 들여다보고 있는 감은사 이영욱 대표. 사진 제공 이영욱

- 신학교 시절은 어떻게 보냈나.

신학교 시절 공부한 경험이 번역자·편집자로 일하는 데 도움이 많이 됐다. 강의 내용을 선별적으로 녹음해서(녹음하지 말라고 한 교수님도 많았지만) 그걸 나름대로 받아쓰고 편집했다. 한 학기 수업을 그대로 옮기는 데 120시간 정도 걸리는데, 학부·신대원 동안 40~50과목 정도를 이렇게 했다. 쓸데없는 문장은 빼고, 보충할 것은 각주로 넣어서 과목 전체를 하나의 작은 책으로 완성했다.

- 전설같이 떠도는 얘기들이 많던데.(웃음)

대체 무슨 이야기를 들으셨는지.(웃음) 무슨 소문이 도는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학교 들어갈 때 동계 원어 강좌 면제 시험을 봐서 통과한 것, 1학년부터 히브리어 조교(ΤΑ)를 하며 히브리어 유료 과외를 했던 것이 생각난다. 유료 그룹 과외를 할 때는 10개 그룹 이상을 가르쳤다. 당시 히브리어를, 특히 형태론을 처음부터 끝까지 체계적으로 가르치는 건 세계에서 최고라고 자부했다. 물론 원어민을 포함해 나보다 히브리어를 잘 구사하는 분은 세상에 차고 넘치겠지만, 잘 구사하는 것과 잘 가르치는 건 차원이 다른 문제니까. 졸업 시즌에는 제출하기 직전 주제를 바꿔서 5일 만에 쓴 졸업논문이 '최우수'로 뽑혀 국내 학술지에 실리기도 했다.

또 가만히 앉아서 수업을 듣는 것보다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할 수 있는 발제를 더 좋아했다. 발제를 하면 독특하다는 피드백을 많이 받았고, '육룡이 나르샤(SBS 드라마)'가 유행할 때는 한 교수님께서 나를 '잔트가르'에 비유하기도 했다. 문자적으로는 '최강의 사내'라는 뜻인데, 드라마 내에서는 '새로운 판'을 짠 인물로 나오니 그런 의미로 말씀하셨을 수도 있겠다. 그런 일들로 소문이 좋게 난 게 아닐까 생각해 본다.(웃음)

- 감은사에서 내는 책 디자인의 통일성이 인상적이다. 매번 다른 디자인을 사용하지 않아도 되니 편리해 보이기도 한다. 이런 디자인을 사용하는 이유가 있나.

디자인은 할 말이 많다. 일단 네덜란드 출판사 '브릴(Brill)'과 독일 출판사 '모어지벡(Mohr Siebeck)'의 느낌을 반씩 가져가려고 했는데, 결과적으로 영국 출판사 '티앤티클락(T&T Clark)'의 JCT(Jewish and Christian Texts) 시리즈와 비슷하게 나왔다. '단순한 것이 가장 아름답다'는 개인적 취향이 반영됐고, 겉은 화려한데 정작 읽을거리 없는 책들에 대한 반발심을 담은 것이기도 하다.(웃음) 사실 책 표지나 겉모양을 그리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하드커버로 돼 있는 책들은 들고 다니기 무거워 칼로 표지를 잘라내고 알맹이만 들고 다니기도 한다.

감은사 디자인이 주는 장점이 꽤 있다고 생각하는데, 하나는 시간이 지나도 여전히 아름답다는 점이다. 아무리 예쁜 책 표지라고 해도 20년 지나면 촌스러워지지 않나. 마치 20년 전 TV 프로그램을 보면 당시 슈퍼스타의 헤어스타일·패션 등이 촌스럽게 느껴지는 것처럼 말이다. 감은사 디자인은 20년이 지나도 똑같은 느낌을 줄 거라 확신한다. 또 (이것도 기능적인 측면인데) 서점에서 책을 찾기 쉽다는 장점도 있다. 오프라인 서점 평상에 놓여 있으면 먼 곳에서도 눈에 띄고, 책장에 꽂혀 있어도 찾기 쉽다.

감은사가 출간한 책들. 통일된 디자인과 특이하게 뒤집힌 책등이 돋보인다. 사진 제공 이영욱
감은사가 출간한 책들. 통일된 디자인과 특이하게 뒤집힌 책등이 돋보인다. 사진 제공 이영욱

- 굳이 책등을 뒤집어서 편집하는 이유도 궁금하다. 책장의 오와 열을 중시하는 독자들의 강한(?) 반발을 불러일으키기도 하는 걸로 아는데.(웃음)

'책등이 거꾸로 돼 있는 게 아니냐'는 항의·문의 전화를 인쇄소에서 세 번(거래처를 세 번 바꿨다), 서점에서 두 번, 도서관에서 한 번 받았고, 저자·역자·독자들도 수없이 묻는다. "거꾸로 된 것 아니냐", "왜 그렇게 만들었냐"고. 이렇게 물어 주는 건 역설적으로 아주 잘 만들었다는 걸 뜻한다. 표지를 통해 독자가 (표지라는) 텍스트 안에 능동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해 주려고 했으니까.

일단 '거꾸로'라고 말하기 위해서는 '바로'가 있어야 한다. 그런데 우리가 책등의 '바로'를 규정하는 기준은 무엇일까? 그건 절대적인 문제가 아니라 으레 그래 왔으니까 이것이 정상이라고 여기는 '관습'의 문제다. 그러한 고정관념에 질문을 던지고 싶었다. 감은사가 내는 책 내용도 마찬가지다. 감은사의 책들은 가장 단순한 방법으로, 아주 강렬한 메시지를 던지고 있고 있는 거다. 여기저기서 전화가 걸려 온다는 것은 기획 의도가 맞아떨어졌다는 방증 아니겠나.(웃음)

사실 독일 책들은 90%가 감은사 책등 방향으로 돼 있다. 그래서 책을 앞 표지가 위로 향하게 놓으면 책등이 거꾸로 보인다. 독일 서점을 다니다 보니, 어느 순간 위에서 아래로 읽는 책등이 낯설어 보이더라. 충격적인 경험이었고, 바로 '이거다' 싶었다. 처음에는 낯설어도, 나중에는 자연스러워진다는 것을 보여 주고 싶었다. 여기에 감은사의 철학이 담겨 있다. 감은사는 기존에 믿던 바를 뒤집어 보는 통찰을 주는 책을 내려고 한다. 처음에는 거꾸로 된 것 같고 틀린 것 같지만, 언젠가는 오히려 기존에 알고 있던 게 틀렸다는 걸 알려 주는. 그렇게 독자들의 통념이 깨진다면 그게 바로 책등을 통해 상징하고 있던 감은사의 철학을 이루는 일이다.

- 독일에서 공부와 출판을 병행하려면 힘들 것 같은데.

보통 절대적인 시간 때문에 둘 다 하기 힘들 거라고 생각하는데, 절대적인 시간 부족보다도 마음이 나뉘는 게 더 어렵다. 어느 하나에 몰입하면 잘 빠져나오지 못하는 스타일이다. 일에 몰입했다가 다시 공부에 몰입하거나, 그 반대로 하는 게 어렵다. 그래도 한번 몰입하면 외부 자극이 있을 때까지 거의 8시간 정도 집중할 수 있는데, 이때 의자에서 일어나지 않고 많은 일을 한다. 공부와 출판을 동시에 하는 일보다는, 1인 출판사의 본질적인 특징, 그러니까 모든 걸 '혼자서' 해야 한다는 게 실제적인 어려움으로 작용하는 것 같다.

- 구체적으로 어떤 어려움이 있나.

혼자서 번역·편집·조판을 하다 보니 생기는 문제는 텍스트에 너무 익숙해진다는 거다. 내용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교정할 때 읽는 속도가 자연스레 빨라지고, 그러면 놓치는 오타도 많을 수밖에 없다. 형식을 보려고 하면 내용이 안 보이고 내용을 보려고 하면 형식이 안 보이는데, 이걸 혼자서 하려고 하니 놓치는 게 많아지더라. 그래서 언젠가부터 몇몇 교정·교열자와 함께 작업하고 있다. 1인 출판사라고는 하지만, 이들의 도움이 없었다면 지금의 감은사는 먼 미래의 일이었을지도 모른다.

- 첫 책을 서점에서 발견하고 '와 대박 이런 책이 다 나오네?' 하고 놀랐던 기억이 있다. 처음 출판사를 시작했을 때 주변 반응은 어땠나.

사실 첫 책을 엄청 비싸게 매겼다. 보통 타 출판사에서는 쪽 당 50~55원을 매기는데, 감은사는 135원을 매겼으니 2.5배 비쌌다. 책도 작고 얇은데 2만 4000원에 나왔으니 반발이 이만저만 아니었다. 나는 사실 그런 반응을 예상하지 못했다. '비싸면 도서관에 신청해서 빌려 보거나 그냥 안 사고 말겠지' 생각했으니까. 목표도 200권 판매였고.

시장 규모가 작으면 판매가가 올라가는 게 당연한 논리다. 시장이 작은 물건의 판매가가 큰 시장 물건의 판매가와 동일하다면, 본인이 희생했거나 타인의 노동을 착취해서 제작 가격을 최소화했을 가능성이 높다. 안타까운 점은, 우리나라 대중이 '책값은 부피에 비례해야 한다'고 생각한다는 거다. 이런 논리는 종류가 전혀 다른 음식이 중량(g)이 같으면 가격이 비슷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과 같다. 결국 예상치 못한 반발을 이기지 못해 가격을 하향 조정하긴 했지만, 지금도 처음 고가 정책을 시작했을 때와 생각은 같다. 아마 올해 말에 도서관 납품용으로 200권 정도 판매를 예상하고 엄청나게 비싼 책이 하나 나올 것 같다.(웃음)

기자가 서점에서 마주하고 놀랐던 감은사의 첫 책 <사해사본의 구약 사용> / F. F. 브루스 지음 / 이영욱 옮김 / 감은사 펴냄 / 178쪽 / 2만 4000원
기자가 서점에서 마주하고 놀랐던 감은사의 첫 책 <사해사본의 구약 사용> / F. F. 브루스 지음 / 이영욱 옮김 / 감은사 펴냄 / 178쪽 / 2만 4000원

- 주로 성서(신)학 분야 책들을 내고 있다. 보수 신학교 출신이 골랐다고 보기에 다소 의아한 선택도 있는데. 책을 고르는 특별한 기준이 있나.

일단 신학에 있어서 좌우는 전혀 보지 않는다. 어떤 독자들은 다소 진보적인 색깔을 가진 감은사에서 보수적인 저자의 책이 나올 때마다 아쉽다고 이야기하기도 하는데, 설득력 있게 통념을 깨뜨려 주는 부분만 있다면 일단 합격이다. '독자들에게 친숙하지 않은 내용을 설득력 있게 전달하느냐'를 보는 거다.

사실 본인이 책을 직접 쓰지 않는 이상 처음부터 끝까지 100% 마음에 드는 책은 어느 누구에게도 없을 거다. 예를 들어, <신약 헬라어의 문법적 통찰>에는 과격한 주장들이 많이 나오는데, 나는 오히려 그런 급진적인 주장들을 좋아한다. 그 주장을 무조건 받아들이기 때문이 아니라, 그동안 당연하다고 간주된 해석·생각을 새롭게 바라볼 수 있는 시발점이 되기 때문이다. '통찰의 시발점', '익숙하지 않은 것'을 제시하는 것이 감은사 출판 기획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다.

또 하나는 학문 영역에서 '뿌리'에 위치한 책들, 소위 '일차 자료'로 불리는 책을 내려고 한다. 예컨대, 조만간 선보이게 될 크리스터 스텐달의 <유대인과 이방인의 사도 바울>(가제)은 워낙 "~카더라"로 여기저기 인용된 걸 많이 봐서 내용은 알고 있었지만, 직접 번역·편집하면서 보니 머리에 지진이 날 정도더라. 일차 자료를 직접 읽어 보느냐 인용문으로 보느냐의 차이는, 아프리카의 장엄한 자연경관을 직접 눈으로 보느냐 사진으로 보느냐 정도로 차이가 있다고 본다. 설득력의 차이가 어마어마하다.

마지막으로 책의 가치를 평가할 때 '어떤 책이 절판돼 중고로 나왔을 때 정가의 두세 배 가격으로 책정돼도 사겠는가'를 고려한다. 이건 어떤 책이든 그 책의 진정한 가치를 가늠해 볼 수 있는 질문이다.

- 벌써 22권이나 냈다. 그동안 출간한 책을 쭈욱 늘여 놓고 보면 어떤 마음이 드는가.

처음 시작할 때 목표가 30권이었다. 30권 정도 내면 출판사로 생계가 유지되겠다 생각했는데 이제 8권 남았다. 독자들이 종종 소셜미디어에 감은사 책들을 모아 놓고 사진을 찍어 올려 주시는데, 그걸 보면 '언제 이만큼 많이 냈지?' 하는 생각이 든다. 한편으로는 '신앙 서적을 출판했다면 이보다 세 배 정도는 많이 낼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해 본다. 신학책들은 번역·편집에 있어서 (신앙 서적보다) 시간과 자금이 몇 배로 많이 드니까. 물론 판매량은 몇 배로 적고.

- 책이 잘 팔리는 편인가.

생각보다는 잘 나간다. 사실 감은사 책들은 시장이 좁으니 대박을 낼 가능성 자체가 없다. 애초에 기대가 없어서 그런지 기대보다는 많이 나간다고 할 수 있겠다.(웃음)

판매량보다도 꼭 읽어야 할, 읽을 만한 독자들 손에 감은사 책이 들렸으면 하는 바람이다. 판매량을 크게 염두에 뒀다면 보증수표가 되는 대중 작가·설교자들의 책을 내지 않았겠나. 물론 책이 많이 팔리는 건 기분 좋은 일이다. 그래야 정말 내가 내고 싶은 책을 낼 수 있으니까. 사실 지금은 조금씩 타협하고 있는 형편이다.(웃음)

- 전자책도 꾸준히 내고 있는데.

굉장히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는 부분이다. 일단 출판사 성격상 독자들 중 해외에서 학위 공부하는 학생들이 많은데, 책 한 권을 해외로 배송하려면 책값에 추가로 고액의 배송료까지 든다. 이런 분들을 위해 전자책을 내고 있다. 실제로 내가 외국에 거주하고 있다 보니 전자책의 필요성을 더 체감하기도 하고.

전자책 유통이 불법 PDF 유통을 막는 데 어느 정도 일조할 수 있을 거는 생각도 있다. 누군가 악의적인 의도로 PDF를 돌려 본다기보다, 전자기기에 넣어서 보는 게 편하고 휴대성도 좋으니 스캔해서 가까운 친구에게 "너만 봐" 하고 주고, 그 친구는 또 다른 친구에게 "너만 봐" 하고 넘겨주면서 불법 PDF 자료가 퍼지는 거라고 생각한다. 전자책을 유통하면 PDF를 만드는 행위를 '어느 정도'는 막을 수 있다고 본다.

- 지금까지 출간한 책들 중 가장 아끼는 책을 고른다면.

김상훈 교수님(총신대)이 쓰신 <요한서신, 유다서, 요한계시록>(원어 성경 구문 읽기 시리즈)을 빼놓을 수 없다. 이 책이 나왔을 때 "와, 미쳤다" 하는 반응이 많았는데, 저자·출판사 입장에서도 정말 '미친 작업'이었다. 작업을 하면서도 '포기할까' 하는 생각을 수차례 했다. 들인 시간·제작비도 다른 책 한 권 만드는 것보다 5~7배 정도 들었다. 그렇지만 이 책이야말로 '감은사는 신학 서적을 출판하는 기성 출판사들과 추구하는 바와 가는 방향이 다르다'는 걸 단적으로 보여 준 예라고 생각한다. 누구의 길이 옳고 그르다는 게 아니라, 이 책이 감은사만의 방향성을 확실하게 드러낸다는 거다.

또 하나는 가장 최근에 나온 존 바클레이의 <바울과 은혜의 능력>을 꼽아야 할 것 같다. 이 책은 기획자 입장에서 볼 때 밸런스가 완벽하다. 전문적인 것 같으면서도 목회적·대중적이고, 진보적인 것 같으면서도 보수적이고, 성서학적인 것 같으면서도 조직신학과 맞닿아 있고, 근원적으로 들어가면서도 지극히 실천적인 면모까지 다루고, 명료한 설명에 쩌릿쩌릿 전율을 느끼게 하면서도 따뜻한 서술에 또르르 눈물 흘리게 한다. 책 내용에 대한 동의 여부를 떠나, 말로 설명하기 어려운 예술적인 책이다. '은혜의 힘·능력·역동성이 신자와 공동체를 어떻게 이끌어 가는지' 메커니즘을 그 뿌리부터 열매까지 쭉 설명해 준다. 그래서 나는 이 책에 '은혜신학의 결정판'이라는 별명을 붙였다. 제목도 너무 멋지지 않나. <바울과 은혜의 능력>이라니.(웃음)

- 타깃팅하고 있는 독자층이 있나.

사실 신학을 깊이 공부하기 원하는 목사님·신학생을 주 고객층으로 생각하고 출판사를 시작했는데, 놀라운 점은 오히려 평신도들이 감은사 책에 더 정확한 피드백을 주시는 경우가 많다는 거다. 평신도들이 써 주시는 서평이 더 적확할 때도 왕왕 있다. 이럴 때 정말 힘이 난다. 여담으로, 감은사와 지속적으로 협력하는 교열자 세 분 중 두 분은 일반 회사원이다.(웃음)

다. 사진 제공 이영욱
이영욱 대표는 '통찰의 시발점', '익숙하지 않은 것'을 제시하는 책을 내는 것이 감은사 기획 원칙 중 하나라고 했다. 사진 제공 이영욱

- 1인 출판을 하면서 겪은 특별한 에피소드가 있다면.

후원 요청을 한 적 없는데도, 주변에서 감은사를 후원해 주시겠다는 독자를 세 분이나 만났다. 아무런 대가도 없이 말이다. 한 분은 정기적으로 매달 후원하고 계시고, 한 분은 한 차례 후원을 해 주셨다. 또 한 분은 책 내는 데 써 달라며 상상을 초월할 만큼의 금액을 후원하셨는데, 이분들을 생각할 때마다 더 잘해야겠다고 생각한다. 생각할 때마다 감동적이기도 하고.

- 감은사만의 모토나 목표가 있다면.

모토는 '책보다 사람'이다. 처음에는 번역자를 많이 대우해 드리지 못한 것 같은데, 적어도 최근 2년 안에 계약한 건들은 (아마도) 업계 최고 대우일 거라고 자부한다. 물론 외부 번역물이나 저자 투고로 제작이 진행되는 경우에는 감은사가 큰 손실(출간 계획 일정 변경, 계획에 없는 지출 등)을 감내해야 해서 그렇게까지는 못해 드린다.

번역자들의 불만은 투자한 시간에 비해 수입이 너무 적다는 거고, 출판사들의 불만은 번역 품질이 떨어진다는 거다. 모든 번역자·출판사가 겪는 일이다. 그래서 '출판사에서 페이를 많이 주고 최고 품질의 원고를 받으면 되는 거 아닌가?'라고 생각했다. 그러면 갈등이 간단히 해결되는 거 아닌가. 문제는 '누구를 최고로 대우할 만한가'인데, 나는 파트너를 선정할 때 학력·경력을 보지 않고, 보통 직관에 의존하는 편이다.

출간 관련 목표 중 하나는 '필론 전집'을 출간하는 것이다. 6개월에 한 권씩 내서 22년 동안 44~45권을 완간하는 계획을 잡고 있다. 당대 비견되는 유대 작가 요세푸스는 이미 국내에 많이 번역돼 있는데, 필론의 글은 서사적인 요세푸스의 글과는 차원이 다르게 옮기기가 어렵더라. 지금도 작업은 틈나는 대로 하고 있는데, 다른 신학책과는 달리 번역 원칙을 더욱 구체적·기계적으로 세워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원칙을 세우는 작업에 집중하고 있다.

사실 필론 번역 작업에만 매진하면 3년 안에도 가능할 것 같은데, 아마도 어려울 것 같다. 그러면 회사가 마비될 테니까.(웃음) 또 다른 목표는 '칠십인역' 번역 성경을 내놓는 것이다. 상징적으로 연구원 일곱 명 정도 모아 번역해 볼까 한다. 이를 실행에 옮기려면 연구원들 생계를 보장해 줄 수 있어야 하니, 나중에 감은사 규모가 커지면 그때야 가능할 것 같다.

- 주변에서 1인 출판사 시작한다고 하면 말리고 싶나 권하고 싶나. 1인 출판 꿈나무에게 조언을 해 준다면?

창업의 목적이 중요할 것 같다. 창업을 통해 실현하고 싶은 가치가 무엇이냐는 말이다. 단순히 '매출액'을 기대한다면 말리겠다. 매출액은 회사의 발전과 존립을 위해 절대적으로 필요한 요소긴 하지만, 실제적으로 그 이상의 가치가 필요하다. 본인이 그렇게 추구하는 가치가 있다면 권하겠다.

감은사가 3년이 채 되지 않았기에 나 역시 초보 운영자라 조언을 받아야 하는 입장이지만, 그간의 경험을 토대로 한 가지 덧붙이자면 '1인' 출판사라 하더라도 혼자 하는 것이 아니다. 혼자서는 분명 한계가 있고 많은 사람의 도움이 필요하다. 1인 출판사라고 하면 으레 모든 것을 다 혼자 해야만 한다는 압박감을 느낄 수 있겠지만 꼭 그렇지도 않다. 주변을 돌아보면 도움을 줄 수 있는 분이 많이 있을 거다. 그들에게 도움을 구하자. 그러면 도움의 손길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 앞으로의 출간 계획을 살짝 알려 준다면.

최근에 존 바클레이의 <바울과 은혜의 능력>이 나왔고, 바로 이어서 바울 관련해서는 E. P. 샌더스의 <바울, 율법, 유대 민족>(가제)과 크리스터 스텐달의 <유대인과 이방인의 사도 바울>(가제)가 나온다. 둘 모두 바울 연구사에 큰 족적을 남긴 책이다. 유대교, 유대 문헌 관련해서는 여러 저자가 한 챕터씩 쓴 <제2성전기 문헌으로 읽는 마가복음>·<초기 유대교>가 나오고, 독일어권 저서로는 마르틴 헹엘의 <하나님의 아들과 메시아 예수>(가제), 알베르트 슈바이처의 <사도 바울의 신비주의>를 준비하고 있다. 많은 독자가 기다리고 있는 리처드 헤이스의 <복음서에 나타난 구약의 반향>도 작업하고 있다. 사실 좋은 책들이 너무 많아서 모두 설명하는 건 어렵겠다. 내년 말까지 15권 정도 출간할 계획이다.

- 마지막으로 감은사 독자들에게 한 말씀 부탁한다.

처음에는 독자가 아무리 없어도 좋은 책만 내면 된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다. 독자가 없으면 책은 아무 의미를 가지지 못한다. 책은 태어날 때가 아니라 읽혀질 때 비로소 생명을 가진다. 제작자로서 실제 보람을 느끼는 것 역시 책이 인쇄·제본되어 나왔을 때보다 '제대로 된' 서평을 읽었을 때다. 책을 완성하는 사람은 '오케이어(OK'er, 최종적으로 승인하는 사람)'가 아니라 독자다. 독자가 책에 의미, 생명, 영혼을 불어넣는다. 이런 의미에서 감은사는 늘 '독자를 위해'라기보다 '독자와 함께' 책을 만든다고 생각하고 있다. 감은사의 파트너, 독자들에게 무한한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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