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들어가며:
허장성세의 교회 개혁,
무슨 말을 더 보태야 할까

이솝우화의 양치기 소년 이야기를 모르는 사람은 아마 없을 것이다. 늑대가 나타났다는 소년의 호들갑에 마을 사람들은 너 나 할 것 없이 달려 나오지만, 거기엔 번번이 아무것도 없었다. 알맹이 없이 반복되는 소년의 허장성세는 마을 전체를 시니컬하게 만들었다. 늑대가 정말로 나타났을 때 소년의 다급한 외침에 누구도 귀 기울이지 않은 것은 어쩌면 당연했다. 결국 소년은 사람들의 무관심 속에 모든 것을 잃는다. 이 철없는 소년 이야기에서 오늘날 교회의 비극을 읽어 낸다면 무리일까?

내친김에 조금 시니컬해져 보자. 허장성세로만 따지자면 양치기 소년이 아니라 선거철 국회의원들과 비교해도 결코 뒤지지 않을 집단이 오늘날의 교회 아닌가. 교회는 매번 개혁을 외치지만 거기엔 번번이 아무것도 없다. 2년 전, 교회 개혁 500주년을 맞아 온갖 결의에 찬 구호를 앞세우며 당장이라도 모든 것을 바꿀 듯 떠들썩하던 교회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그러나 정작 교회 개혁 주일을 불과 며칠 앞두고, 이 모든 것을 비웃기라도 하듯 대형 교회 세습 문제가 터졌고, 교회는 또 한 번 세간의 조롱거리가 되었다. 대사를 앞두고 맥이 빠진 교회의 입장에서야 비극일지 모르겠으나, 외부에서 보면 '물 들어오는데 노를 분질러 먹는' 촌극이 따로 없었다. 교회가 늘 교화 대상으로 여기며 평가절하했던 교회 밖 세상이 촛불 개혁으로 새 정부를 출범시켰던 그해, 정작 교회는 스스로 대망하던 자신의 500번째 생일을 모두가 손가락질하는 세습 파티로 자축하며 그렇게 허망하게 보내 버렸다.

문제가 어디 세습 하나뿐일까. 더 언급하자면 끝도 없을 터, 이제는 교회의 자정 능력에 대한 우려를 넘어 애초에 자정 의지가 있는지조차 의문스럽다. 교회가 허구한 날 외쳐 대는 개혁의 목소리는 아무런 기대와 주목도 끌지 못한다. 내부인들조차도 고개를 가로저으며 대거 교회를 이탈하고 있다. 신뢰도 잃고 양 무리도 잃은 양치기 교회. 모두 스스로 자초한 일이다. 사실 필자로선 지금의 이 작문 활동이 썩 유쾌하지만은 않다. '개혁된 교회는 계속 개혁되어야 한다'고 개혁 없이 외쳐 대는 이 허장성세의 말잔치에 미력한 필자가 상투적인 말 한마디 더 보태는 것이 과연 무슨 의미가 있을까. 교회 개혁의 효시였던 <마르틴 루터 95개 논제>(감은사)의 출간 소식을 전하는 이 일에 기쁨과 설렘보다 민망함과 바닥을 치는 효능감이 앞서다니 참으로 슬픈 일이다.

그러나 아무래도 애증의 어머니 교회에 대하여 이대로 영원히 시니컬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한 사람의 신자로서 위에 빗댄 양치기 소년 이야기가 나와 무관한 양 행세할 수도 없다. 필자는 작금 못지않은 어두운 시대를 살았던 개혁자 마르틴 루터의 글에서 사랑하는 교회를 포기할 수도, 책임을 회피할 수도 없었던 한 그리스도인의 고민과 분투를 엿볼 수 있었다. 역자의 말대로 우리가 고전을 읽는 이유가 시공과 조류에 흔들리지 않는 가르침이 거기에 있기 때문(22쪽)이라면, 필자와 같이 교회에 대한 애증 속에서 흔들리는 양치기 소년들이 가르침을 얻기에 루터의 '95개 논제'만큼 적실한 고전도 드물 것이다.

<마르틴 루터 95개 논제> / 마르틴 루터 지음 / 최주훈 옮김, 해제 / 감은사 펴냄 / 128쪽 / 8300원

2-1. 진리에 대한 사랑과 열정,
이를 밝히려는 열망으로

교회 개혁자 루터는 시니컬함과 거리가 먼 사람이었다. 적어도 진리에 관하여, 진리의 복음을 품은 교회에 관하여는 확실히 그랬다. 루터는 자신의 논제를 시작하기에 앞서 다음과 같은 짧지만 중요한 말을 덧붙여 서술의 동기를 분명히 한다.

"진리에 대한 사랑과 열정, 이를 밝히려는 열망으로 (후략)" (41쪽)

주지하다시피 루터 당대 교회의 현실은 암흑과도 같았다. 교회는 사면증(면벌부) 장사를 하며 교회가 교회로서 저지를 수 있는 최악의 일인 '영혼 팔아먹는 일'을 자행했다. 목회자이자 신학자였던 루터에게 이런 망측함은 그를 충분히 낙담시키고도 남을 일이었을지 모른다. 또한 '95개 논제' 게재 이후 그에게 쏟아진 교회의 폭압과 위협은 어쩌면 그의 개혁 의지를 대번에 꺾을 수도 있었다. 그럼에도 루터가 포기하지 않고 개혁을 이어 갈 수 있었던 원동력은, 사면증 따위가 아니라 십자가 복음이야말로 교회의 참된 진리요 보물이라는 확신, 인간의 교설이 아니라 진리의 하나님 말씀이 선포되어야 한다는 뜨거운 열망이었다.

혹자들의 오해처럼 루터는 단지 냉소와 분노에 차 교회를 훼파하려고 하지 않았다. 그것은 개혁의 동기가 될 수 없었다. 그는 오히려 진리에 대한 지극한 사랑과 열정으로 교회를 바로 세우기 원했다. 세상에서 가장 재미있는 구경이 싸움 구경 불구경이라지만, 내 형제가 싸우고 우리 집이 불에 탄다고 생각하면 누가 방관하며 즐길 수 있겠는가. 시니컬함과 교회 개혁은 함께 갈 수 없다. 그렇기에 개혁은 쉽지가 않다. 부패한 현실 자체뿐만 아니라 우리 안에서 끊임없이 고개를 치켜드는 냉소와도 지난한 싸움을 이어 가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루터에게 볼 수 있듯이 우리에게 복음의 진리에 대한 사랑과 열정, 이를 밝혀내려는 열망이 있다면, 시니컬한 방관자의 자세는 마침내 설 자리를 잃게 될 것이다.

"우리의 교회가 아무리 악하게 행동하더라도 우리는 항상 그 옆에 서서 눈물로 기도하며 권고하고 탄원하며 서로 돕는다. 왜냐하면 그리스도의 사랑은 우리에게 '너희가 서로 짐을 지라'(갈 6:2)고 명령하기 때문이다." (118쪽, 논제 해설 80조)

1517년 교회 문에 '95개 논제'를 못 박는 루터. 페르디난트 포웰스의 1872년 작품. 사진 출처 위키미디어 공용 이미지

2-2. 오직 믿음으로?
루터는 그렇게 말하지 않았다

교회 안에서 '오직 믿음으로'라는 슬로건만큼 왜곡되어 통용되는 말도 드물 것이다. 어떤 이들은 자신들의 '바른 신학'에 도취한 나머지, 믿음을 강조한 루터의 신학을 더러 삶을 고려하지 않는 '칭의 일변도' 신학이라 매도한다. 교회를 망친 '값싼 은총'의 원흉을 루터의 신학이 가진 내재적 결함 탓으로 돌리며 책임을 회피하는 것이다. 값싼 은총을 비판하기 위해 나섰던 루터의 칭의론이 되려 값싼 은총을 조장한다며 비판받는 현실이 아이러니하다. 그러나 이 가당치도 않은 말에 섣불리 동조하기 이전에, 과연 교회에서 루터의 신학이 제대로 설파된 적이나 있는지를 먼저 되물어야 한다. '95개 논제'의 처음과 끝을 보자.

"우리의 주요, 선생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회개하라. (하략)'[마4:17] 명령하셨을 때 그 뜻은 신자의 모든 삶이 돌아서는 것이다." (42쪽, 논제 1조)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이라면, 안전하게 보장된 평화보다는 수많은 시련을 통해 하늘에 들어간다는 것을 더욱 굳건히 신뢰해야 한다." (64쪽, 논제 95조)

위의 논제에 '값싼 은총'이 끼어들 자리는 없다. 루터는 누구보다 '회개의 총체성'을 강조한 사람이었다. 루터가 말했던 회개와 칭의의 은총은 결코 간편하지 않다. 회개는 신자의 전 삶을 통틀어 계속되어야 한다(42쪽, 논제 3조). 회개는 흔히 생각하는 것처럼 예배당 구석에 앉아 울며 기도하면 끝나는 문제가 아니다. 삶의 변화와 유리된 일순간의 감정적 동요는 '천국 보장'이 적힌 사면증을 받아들고 감격에 겨워 했을 중세 그리스도인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 루터는 결코 그런 식의 회개와 믿음을 말하지 않았다. 루터가 말하는 진정한 회개는 모든 삶의 자리에서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선행을 실천하는 것이며(51쪽, 논제 41조), 삶의 책임에 대한 홀가분한 벗어던짐이 아니라 십자가를 지고 가는 일이다.

이제 무엇이 문제인지 분명해졌다. 누군가의 말처럼 루터의 '오직 믿음으로'가 교회를 망친 것이 아니라, '오직 믿음으로'를 '제2의 사면증'으로 변질시킨 교회의 무지와 어그러진 욕망이 교회를 망친 것이다. 우리네 교회 현장에서 제대로 된 루터의 신학은 요원하다. 그러나 오늘날에도 루터의 신학은 여전히 유효하고 또 필요하다. 루터가 반복하여 강조했듯이 이 진리는 그리스도인들에게 분명히 가르쳐져야 한다(논제 41~55조).

2-3. 질문,
프로테스탄트(protestant)에 대한
프로테스트(protest)

루터의 '95개 논제'는 조항 하나하나가 다분히 선언적인 성격을 띠고 있지만, 동시에 공동체를 진지한 대화의 장으로 끌어들이는 초대의 글이기도 하다. 질문을 통해 당연하게 받아들였던 권위에 대한 맹목적인 믿음 대신, 참된 믿음의 권위를 세워 보자는 도전이다. 참된 회개, 교황의 권위, 사면증의 효력, 사도 계승의 의미와 연옥에 이르기까지, 루터는 성서를 기반으로 정당한 질문들을 던졌다. 그러나 교회는 이를 참람한 반역으로 여기고 호되게 탄압을 가했다. 루터가 이에 굴하지 않고 자신의 공동체와 함께 질문과 저항을 멈추지 않았기 때문에 개신교회 즉, '프로테스탄트'가 탄생할 수 있었다.

'그리스도인'이라는 이름이 그러했듯, 우리가 자랑스럽게 여기는 '프로테스탄트'라는 이름은 개신교회 스스로가 취한 것이 아니다. 그로부터 500년이 지난 지금, 세상은 어떤 이름으로 교회를 명명하고 있는가? 그 이름이 자랑스럽진 못하더라도 부끄럽진 않아야 할 터인데 말이다. 적어도 우리가 목도하는 현실 속에서 교회는 질문과 저항이 아니라 불통과 탄압의 주체로 전락하였다. 혹자의 말처럼 프로테스탄트는 프로테스탄트 자신에 대한 프로테스트를 지속하는 데 실패했다. 어쩌면 프로테스탄트보다 프로크루스테스(그리스신화에 나오는 강도. 손님이 오면 침대에 눕혀, 침대보다 크면 자르고 작으면 잡아당겨 죽인다. - 편집자 주)라는 말이 더 잘 어울릴지도 모르겠다.

마르틴 루터의 95개 논제가 게재됐던 비텐베르크 성채교회 문. 사진 출처 위키미디어 공용 이미지

오늘날의 교회가 답답하게만 느껴지는 것은 질문을 가로막고 자꾸 정해진 답, 답만을 강요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좋은 질문이야말로 좋은 답의 선제 조건이다. 질문을 잃어버린 공동체에서 새로운 무언가가 촉발될 리 만무하지 않은가. 질문과 답변의 선순환으로 불통의 장막을 걷어낼 때 교회는 비로소 프로테스탄트라는 이름에 걸맞게 될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루터의 다음 논제는 참으로 마땅하고 옳다.

"일반 신자들이 던지는 예리하고 불편한 질문들을 정당한 이유 없이 권력으로 누르고 입막음한다면, 그것이야말로 교황의 반대자들에겐 비웃음거리를, 그리스도인들에겐 불행한 일이 될 것이다." (63쪽, 논제 90조)

3. 나오며:
루터의 논제들은
어디를 향하는가?

필자는 독자들에게 묻고 싶다. 무엇을 기대하며 '마르틴 루터 95개 논제'를 손에 쥐려는가? 이 책을 중세 로마교회를 저격하는 우리 동지의 '사이다 발언 모음집' 정도로 읽어선 곤란하다. 우리는 세상이 성서 구절을 인용하며 교회를 비판하는 유구무언의 시대를 산다. 중세 교회이든 세상이든 다른 무엇과 비교해서 나을 것이 별로 없다는 말이다. 만일 루터가 다시 살아나 자신의 논제를 게재한다면, 못질을 당하는 대문은 저 멀리 비텐베르크 성채교회가 아니라 지금 여기서 우리가 섬기는 교회의 대문이 될 공산이 크다. 그러므로 이 책을 아무런 반성도 없이 제3자의 눈으로 읽는 것은 이미 사라진 허수아비(로마 가톨릭은 지난 500년간 수많은 개혁을 단행해 왔다)에 대한 자아도취적 우월감만 심어 줄 뿐 아무런 유익이 없을 것이다.

그러나 반대로 반성적 태도를 넘어 절망에 빠지는 것 또한 유익이 없기는 마찬가지이다. 우리는 그럼에도 희망할 수 있고, 또한 희망해도 좋다고 믿어야 한다. 루터는 자신의 논제가 그토록 큰 반향을 일으키게 될지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눈에 보이던 현실들이 아니라 눈에 보이지 않던 예측 불가능한 일들에 이끌려 교회의 개혁은 불 일 듯 퍼져 나갔다. 우리는 믿음 안에서 감히 이것을 '하나님의 섭리'라 부른다. 감추어진 것들 가운데서 드러내시는 하나님, 눈에 보이는 암담한 현실 이면에서 일하시는 하나님을 근거 삼아 우리는 신앙하는 한 희망할 수 있다. 루터파 신학자 홀스트 푈만은 "신앙이란 오늘날 하나님의 나라가 부재하는 것만 같은 현실을 참아 내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 말이 옳다면 지금이야말로 교회가 '오직 믿음으로'의 정신을 간절히 붙들고 행동해야 할 때가 아닐까.

여운송 / 신학교를 졸업한 후 회사에 다니고 있다. '온 산 뒤덮은 푸름은 큰 나무만 아니라, 무심히 밟고 가는 수많은 그냥 풀'이라는 한 토막 노랫말을 마음에 품고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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