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앤조이-여운송 기자] 출판계는 어렵다. '언론·출판'으로 한데 묶이곤 하는 직종에 종사하는 주제에 이렇게 남 일 이야기하듯 출판계 걱정하는 꼴이 조금 우습기는 하지만, 아무튼 출판계가 어려운 건 공공연한 사실이다. 바야흐로 대 유튜브 시대, 형형색색 영상물이 천지사방에 넘쳐 난다. 이제 활자 중독자 아니고서야 대체 누가 흰 바탕에 검은 글씨 빼곡한 책을 사서 본단 말인가. 책장 한켠에 장식용으로 꽂아 놓을 표지 예쁜 책 몇 권이면 충분한 것 같은데.

모르긴 몰라도 기독 출판계는 아마 더 어렵지 않을까. 무려 '기독 + 출판'이지 않은가. 어려운 것 두 개가 '콜라보'를 한 셈이다. 소위 '3대 기독 출판사(두란노·규장·생명의말씀사)'가 전체 판매량의 70% 정도를 차지하는 기형적인 기독 출판 시장 속에서, 기획·디자인·마케팅 역량이 나름 탄탄한 메이저 출판사들도 바닥을 치는 판매량에 어려움을 호소하곤 한다. 그런데 이런 상황 속에서도 고군분투하며 양질의 책을 꾸준히 출간하는 1인 출판사들이 있다. 이 무모하고도 용감한 이들은 대체 누구인가. 이들은 왜 1인 출판을 하는가. 대체 뭘 어떻게 하려고 1인 출판을 시작했는가. 그냥 돈이 많은 건가. 사연 없는 무덤 없듯 사연 없는 창업도 없을 터. <뉴스앤조이>는 1인·소규모 출판사를 찾아 그 사연을 듣는다.

1인 출판사 인터뷰 첫 번째 주자는 <뉴스앤조이> 독자들이 선정한 '2020년 올해의 책' 레이첼 헬드 에반스 <다시, 성경으로>를 낸 바람이불어오는곳 박명준 대표다. 박 대표는 복있는사람에서 6년간 편집장으로 일했고, 10년 가까이 번역·편집 외주에 참여해 여러 권의 책을 펴낸 잔뼈가 굵은 사람이다. 인터뷰의 첫 주자로 당첨(?)됐다는 기자의 말에 박 대표는 "잘못된 선택인 것 같다"며 손사래 치기도 했다. 알고 보니 박 대표는 2001년 <뉴스앤조이> 1주년 기념 행사에 '1000번째 정기 후원자'로 참여한 오랜 인연이었다.

박명준 대표를 4월 8일 서울 중구 필동 카페바인에서 만나 1시간 30분가량 대화를 나눴다. 박 대표는 핸드폰에 예상 질문과 답변을 빼곡히 적어 왔다. 인터뷰의 생동감을 위해 일부러 사전 질문을 보내지 않았다는 기자의 핑계에 박 대표는 "미리 보내 줬어도 크게 열심히 준비하진 않았을 것"이라고 웃으며 답했다. 아래는 박 대표와의 일문일답.

1인 출판사 '바람이불어오는곳' 박명준 대표를 4월 8일 만났다. 뉴스앤조이 여운송
1인 출판사 '바람이불어오는곳' 박명준 대표를 4월 8일 만났다. 뉴스앤조이 여운송

- 출판계에서 오래 일했다. 처음 출판계에 뛰어든 계기가 뭔가.

책을 좋아했다. 사실 책을 많이 보는 사람이라기보다 많이 사는 사람이었다. 대학을 가기 위해 삼수했는데 공부하다 힘들 때면 꼭 서점을 찾았다. 맘에 다가오는 책을 한두 권씩 사 모은 게 모든 일의 시작이었다. 대학 가서는 한국기독학생회(IVF)에서 활동했다. 책 읽기를 강조하던 공동체였고, 책 선물을 많이 하던 시기이기도 했다. 책을 좋아하는 선배들 틈바구니에서 자연스럽게 기독교권 책에 관심을 갖게 됐다. 졸업 이후에도 계속 책을 보게, 아니 사게 되는 일이 이어졌고. 그러던 중 새롭게 옮긴 교회 집사님 한 분이 마침 출판사를 운영하고 있었다. 그분과 친하게 지내면서 서평도 쓰고 하다 보니 출판사에서 같이 일하게 됐다.

- 그 출판사가 어디였나.

복있는사람이다. 2005년 10월 입사해서 2011년 11월 나왔으니 6년을 일했다. 입사 당시 직원은 사장님, 과장님, 디자이너님, 나까지 총 4명이었다. 복있는사람이 지금처럼 알려지지도 않은 때였다. 입사하고 처음 작업한 책이 낸시 피어시의 <완전한 진리>, 김회권 목사님의 <청년 설교>였다. 그때 다니던 교회 담임목사님이 김회권 목사님이었는데, 당시 그렇게 유명한 분은 아니었다.(웃음) 유진 피터슨의 <메시지>성경도 내가 있는 동안 함께 작업해서 국내에 소개했다.

- <메시지>성경은 그야말로 대박이 나지 않았나.

사장님이 예전부터 <메시지>성경을 내고 싶어 했다. 꾸준히 오퍼를 냈는데 유진 피터슨 쪽에서 "그걸 왜 번역하느냐. 한국에 좋은 신학자들 많으니 내가 한 것처럼 번역하면 되지" 하며 번번이 거절했다. 여차저차해서 결국엔 판권을 따냈는데, 당시 복있는사람보다 훨씬 크고 유력한 출판사들도 계약에 뛰어들어 경쟁했다. 결정적으로 선인세에서 큰 차이가 났다. 다른 출판사에서 복있는사람이 제시할 수 없는 큰 금액을 제시했다. 그래서 '이게 될까' 싶었는데, 1/10도 안 되는 금액을 제시한 복있는사람에 판권이 왔다. 꾸준히 오퍼해 왔다는 점, 미국에서 <메시지>성경을 출판한 NavPress 출판사 책들을 복있는사람이 꾸준히 내 왔다는 점을 고려했다고 들었다. 그래도 그분이 의리가 있었던 거다.(웃음)

힘들게 작업해서 책을 낼 즈음엔 '과연 독자들에게 통할까' 하는 두려움이 있었다. 지금은 <메시지>성경이 자리를 잡고 '읽는 성경' 시장이 생겼지만 그 당시엔 없었다. 이 책 내면 엄청 욕먹고 이단으로 찍힐지 모른다는 생각도 했다. 그때 당시 온라인에 유진 피터슨 이단 논란이 올라오기도 했으니까. 초판만 다 팔면 더없이 감사하겠다고 생각했는데 대박이 났다. 뿌듯하고 기쁜 일이었다. <메시지>성경은 지금의 복있는사람이 있기까지 큰 기반이 됐다.

- 복있는사람에서 편집장까지 지냈다. 결국 퇴사 후 1인 출판을 시작했는데 계기가 있었나.

승진한 것이 아니라 원래부터 편집장이었다. 나이 많은 사람 데려다 놓고 뭐라 부르기 애매하니까 그냥 '편집장'이라고 한 것이다.(웃음) '복집'(복있는사람)에 있는 동안 재밌었다. 한 회사가 성장하는 과정을 함께하며 지켜봤고. 퇴사한 이유는 나올 때가 됐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더 좋은 분들과 함께 회사가 다음 단계로 도약할 때가 됐다고 봤다.

복있는사람에 다니면서도 나중에 내 출판사를 차리고 싶다는 생각이 있었다. "출판사 이름을 찾으면 그때 회사를 그만두겠다"고 농담처럼 말하곤 했는데 정말 퇴사할 때 쯤 이름이 나왔다.

- 찾았다는 출판사 이름이 '바람이불어오는곳'인가.

그렇다. 김광석을 들으며 20대를 보냈다. 그의 노래 중에 유일하게 밝고 희망적인 노래가 '바람이 불어오는 곳'이다. 어느 날 그 이름이 확 다가오더라. 주변에서 '성령의 바람에 대한 오마주(hommage) 아니냐'는 말도 들었는데 해석하기 나름이다. 시대가 요구하는 시선이 닿는 곳, 소외된 사람들의 목소리가 있는 곳, 많은 이의 마음이 모여 있는 곳이 '바람이 불어오는 곳'일 수도 있고.

김회권 목사님에게 배운 것 중 '구원의 메시지는 예루살렘이 아니라 갈릴리에서 온다'는 말이 있었다. 중심지, 유력한 곳이 아니라 '갈릴리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나겠느냐'는 바로 그곳에서 구원이 온다는 말이었다. '이 시대의 바람, 구원의 메시지, 희망은 어디서 올까' 생각했을 때 갈릴리, 경계, 주변은 교회 안이라기보다는 교회 밖일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출판사 소개 말에도 '교회 안과 밖 사람들의 신앙 여정을 담은 즐거운 책을 만듭니다'라고 쓴 것이다. 교회 안팎 혹은 경계에 있는 목소리, 신앙 여정을 담아내는 출판사가 되고 싶었다.

박명준 대표는 이 시대의 '바람이 불어오는 곳'은 교회 밖 갈릴리, 주변, 경계일 수 있다고 했다. 뉴스앤조이 여운송
박명준 대표는 이 시대의 '바람이 불어오는 곳'은 교회 밖 갈릴리, 주변, 경계일 수 있다고 했다. 뉴스앤조이 여운송

- 2011년 말 퇴사했는데, 바람의불어오는곳 첫 책은 2020년 나왔다.

여러 사정 때문에 1인 출판을 바로 시작하진 않았고, 10년 가까이 외주로 번역·편집 일을 하면서 아이를 돌봤다. 출판사 등록은 2013년 해 뒀다. 그냥 신청만 하면 되는 거라 나 말고도 많이 해 놨을 거다.(웃음) 이게 출판사 이름만 갖는다고 되는 것이 아니라 '꼭 내고 싶은 책'을 찾아야 했다. 그렇게 찾은 책이 바로 레이첼 헬드 에반스의 <다시, 성경으로>였다. 정확히 말하면 내가 찾았다기보다는 그 책이 나에게 왔다.

- 첫 책으로 <다시, 성경으로>를 선택한 이유가 뭔가. 출판사의 첫인상이기도 하고, '출사표'이기도 했을 텐데.

일단 독자 입장에서 글이 너무 좋았다. 책 자체가 잘 읽히고 마음에 와닿았다. 정답을 말하거나 가르치려고 한다기보다 자기가 어떻게 성경을 읽었는지 문학적 에세이식으로 정치하게 잘 썼더라. 편하게 쓴 것 같지만 굉장히 많은 고민을 해서 쓴 흔적이 있는 책이고.

기존에 듣던 '성경은 이렇게 읽어야 한다'는 내용에서 탈피해 이 시대 필요한 성경 읽기는 어떤 것인지 소개하는 책이다. 이 책이 지금 꼭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계약 오퍼를 냈는데 어떻게 또 성사가 돼서 냉큼 계약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아내에게는 비밀로 하고 있었는데, 계약을 하고 돈을 지불하고 나니까 안 할 수가 없게 됐다. 아내가 사업은 절대 하지 말라고 했는데.(웃음) 그렇게 첫 책이 세상에 나왔다.

- 시장 반응도 좋았다. 작년엔 <뉴스앤조이> 독자들이 뽑은 '2020년 올해의 책'에 선정되기도 했다.

정말 감사했다. 생각보다 반응이 좋았다. 초판 2000부가 나가는 데 4개월이 걸렸고 중쇄를 포함해 3000부 넘게 팔렸다. 신생 출판사로서는 꽤 선방했다. 많은 분이 책을 추천해 주셨고, 적어도 온라인상에서는 '매우 베스트셀러인 것처럼' 보였다. 좋은 반응이 나오니까 힘도 나고 재밌었다. 책을 읽은 많은 분이 주변에 권해 주신 덕분이다. 첫 책이 나가고 '뭐, 초판 파는 거 어렵지 않네. 이 정도면 해 볼 만한데?'라고 생각했는데 요즘은 좀 쓴맛을 보고 있다.(웃음)

- <보시는 하나님>도 인상 깊게 읽었다. 책을 고르는 남다른 감각이 있을 것 같은데 특별한 기준이 있나.

이건 모든 출판사가 마찬가지일 텐데, 우선 내 마음에 끌리는 책을 낸다. 어떤 메시지가 한 사람의 삶을 통해 드러나는 종류의 책을 좋아한다. 출판계에서 일하면서 느낀 아쉬움 중 하나는 정말 좋은 책인데도 주변에 있는 교회 집사님, 청년들에게 쉽게 건네줄 만한 책이 많지 않았다는 점이다. 내용이 어렵고 무거운 책이 대다수라, 누구나 편하게 읽을 만한 책이 별로 없었다. 각 출판사가 맡은 역할이 다르겠지만. 그래서 나는 조금 더 편안한 책, 나와 함께 구역 모임을 하는 집사님들에게도 편히 건넬 수 있는 책을 고르려고 한다.

남이 내는 책이면 굳이 내가 낼 필요 없다는 생각도 있다. 이미 다른 출판사에서 잘 소개하고 있는 책·저자보다는 그렇지 않은 사람의 책들을 발굴해서 소개하는 역할을 하고 싶다. 최근 나온 <보시는 하나님>도 국내 처음 소개된 저자의 책이다. 그렇다고 한번 읽고 마는 휘발성 있는 책이 아니라 마음에 남고 삶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책을 고르려고 노력한다.

- 꼭 소개해 보고 싶은 책이나 저자가 있나.

이 시대의 '갈릴리 경계', '바람이 불어오는 곳', '우리가 귀 기울여 들어야 할 목소리'는 '여성들'이라고 생각한다. 교회 안에서 남성들 목소리는 충분히 많이 들었다. 지금도 힘이 세지 않나. 이제는 교회 안에서 들리지 않았던 약자들 목소리를 대변하는 일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앞으로 출간을 기획해 놓은 많은 책이 여성 저자들 책이다.

예를 들어, 여성 저자가 쓴 <영혼의 밤으로 안내합니다>(근간)는 우울증에 관한 이야기다. 우울증을 겪은 저자가 교회사에서 우울증을 겪은 인물 7명의 생애를 다룬다. 마르틴 루터부터 데이비드 브레이너드까지. 본인이 겪은 일을 중심으로 서술해서 그런지 마음에 와닿는다. 우울증을 신앙의 언어로 표현하는 책이 될 것이다.

그 외에도 중년 여성들의 자기 목소리 찾기 프로젝트에서 나온 글을 엮은 <하고 싶은 말이 있어 글을 쓰기로 했어>(근간), 미국에서 큰 반향을 일으킨 <나는 지금도 여기에 있다 - 백인을 위해 만들어진 세상에서 흑인의 존엄성에 관하여>(근간) 등도 준비 중이다. 이 책은 흑인 여성 저자가 썼는데, 미국 사회에서 흑인이기 때문에 겪을 수밖에 없었던 지점들을 유쾌하고 감동적인 언어로 풀어냈다.

바람이불어오는곳이 출간한 책들. 뉴스앤조이 여운송
바람이불어오는곳이 출간한 책들. 뉴스앤조이 여운송

- 체계적인 분업화가 돼 있는 출판사에서 나와 모든 일을 혼자 하는 중인데.

아직 출판한 책 종수가 많지 않아서 그런지 전반적으로 재밌다. 조직에 있을 때는 내게 정해진 업무의 범위가 있었기 때문에 주로 '편집' 영역에 제한돼 있었다. 지금은 하나부터 열까지 배워 가며 다 해야 한다. 책을 읽는 사람뿐만 아니라 만드는 사람도 즐거워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역자·디자이너·추천자들과 만나는 과정도 즐겁게 해 나가고 있다. 제일 좋은 점은 직접 결정하고 빨리 진행할 수 있다는 것이다. 출판사에 있을 때라면 사장님 결재도 받아야 하고 다른 사람 동의도 구해야 하니 어려웠겠지만, 지금은 내 마음대로 하면 되니까.

물론 처음에는 어떻게 해야 할지 잘 몰라 어려웠고 실수도 있었다. 서점은 어떻게 컨택해야 하는지, 인세는 어떻게 내야 하는지, 창고는 어딜 써야 좋은지 등 여기저기 물어보고 다녔다. 나는 '어디서 하면 얼마가 필요하고 퀄리티는 어떻더라'는 식으로 명확하게 알려 주기를 원했는데 대부분 돈 들어가는 부분은 직접적으로 알려 주지 않더라. 그래서 "나는 누가 물어보면 다 얘기해 줘야지" 생각하고 있다.(웃음)

아무래도 가장 어려운 건 '마케팅'이다. 책을 소개할 채널이 없다는 게 아쉽다. 책을 내도 사람들에게 알릴 수단이 마땅치 않다. 그래도 지금은 소셜미디어가 있어 다행이다. 옛날 같았으면 아예 방법이 없었을 텐데. 지금 바람이불어오는곳 인스타그램 팔로워가 700명이 조금 안 되는데, 수천수만 되는 출판사 페이지를 보면 솔직히 많이 부럽다.

- 출판계가 어렵다 보니 "평균 근속 연수 3년, 정년 40세"라는 말도 있고, "내고 싶은 책 1권을 내기 위해 잘 팔리는 내기 싫은 책 9권을 내야 한다"는 말도 있더라. '내고 싶은 책'과 '살기 위해 내야 하는 책' 사이의 간극도 있을 것 같다.

이제 잘못하면 생존을 위해 출판을 해야 하는 수준이다. 생존은 중요하다. 일단 내고 싶은 책과 내야 하는 책이 크게 다르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출판사마다 지향·색깔이 있는데, 아주 상업화하기 전까지는 다들 자기가 원하는 책을 내는 것 같다. 편집자 개개인의 선호가 있을 수는 있겠다. 예컨대 날더러 성경 주석을 만들라고 하면 죽고 싶겠지만.(웃음) 그것도 나름 재밌다.

편집자들이 내고 싶은 책을 못 만드는 일이 실제 있기도 하다. 전반적으로 그 부분도 많이 좋아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요즘은 편집자들이 내고 싶은 책을 독자들도 많이 찾아 주는 것 같다. 아무래도 1인 출판은 그런 부분에 대한 갈등은 덜하다. 내가 원하는 책을 계약해서 직접 내는 것이니까. 내가 내고 싶은 것을 내면 잘 안 되는 시기가 있었는데, 지금은 분명 수요가 있고 충분히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 '더 이상 책을 읽지 않는 시대'라고 한다. 출판업 관계자와 독자 사이의 간극(이해관계, 리터러시, 변화하는 미디어 환경, 독자들의 욕구)을 어떻게 바라보는지.

사람들이 책을 안 읽는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심오한 무언가를 읽고 대오각성을 하지는 않더라도, 우리가 일상에서 읽는 작은 이야기들이 분명 우리 인생을 어떤 방향으로 차곡차곡 만들어 가고 있다. 그런 책 읽기는 여전히 많은 사람이 갈망하고 있는 것 같다. 젊은이들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생각해 보면 나도 삶을 살다 힘들거나, 나를 넘어서는 다른 무언가가 필요할 때는 늘 책으로 돌아왔던 것 같다. 시대가 많이 변했지만 책의 역할은 여전히 유효하다고 본다.

출판사 입장에서 '좋은 책 냈는데 왜 안 읽어 줄까' 하는 말은 변명이 안 된다고 생각한다. 안 읽힌다는 것은 푸념일 뿐이고 좋은 책을 읽게 만드는 것까지도 출판사 책임이다. 독자들에게 잘 가닿을 수 있도록 마케팅뿐 아니라 번역·디자인 모든 영역에서 노력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 일반 출판사가 아닌 '기독' 출판사로서 겪는 장단점이 있다면.

1인 출판사여서 갖는 어려움은 있지만, 딱히 기독 출판사여서 더 어려운지는 모르겠다. 기독교 관련 서적을 내고 있지만 '기독' 출판사라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오히려 이득을 보는 측면도 있다. 예컨대 기독 출판 해외 서적 같은 경우는 일반 출판에 비해 좀 더 좋은 조건에 계약할 수 있다. 외국 출판사에서 우리 의도를 좋게 봐 주고, 경제적인 관점에서 접근하지 않고 기꺼이 계약해 주는 경향이 있다. 일반 출판에서는 잘 안 되는 부분이다.

우리 독자들이 교회 안에만 있다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신앙의 여정을 가고 있는 사람은 모두 우리 독자다. 우리가 전하고자 하는 이야기가 궁극적으로 복음이라면, 교회 내 독자들만을 향해서는 안 된다. 바람이불어오는곳이 타깃으로 하는 독자들은 교회 안팎을 포괄하는 경계에 있는 이들이다.

앞으로의 책들도 종교 매대보다는 일반 매대에서 독자들을 만날 수 있었으면 좋겠다. 그 구분 자체가 의미가 없어진 것 같긴 하지만. 더 이상 독자들에게 다가가지 못하게 되면 접을 생각도 하고 있다. 감이 떨어졌다고 인정하고.(웃음)

박 대표는 '종교 매대'보다 '일반 매대'에서 독자들과 만나면 좋겠다고 말했다. 뉴스앤조이 여운송
박 대표는 '종교 매대'보다 '일반 매대'에서 독자들과 만나면 좋겠다고 말했다. 뉴스앤조이 여운송

- 최근 몇 년 사이 1인 출판사들이 많아진 것 같다. 왜 이런 현상이 벌어질까. 눈여겨보는 출판사가 있나.

자기가 좋아서 하는 거지 뭐 다른 이유가 있겠나. 문화적인 흐름인 것 같다. 일반 출판사들도 임프린트 형식으로 1인 출판사와 유사한 시스템을 많이 갖추고 있다. 기본적으로는 1인 출판을 할 수 있는 여건이 마련됐다. 예전에는 힘들었는데, 요즘은 편집·디자인·제작 등 손이 많이 가는 일을 외주 맡길 수 있는 인프라가 생겼다. 1인 출판으로 성공한 케이스도 많이 생겼고.

1인 출판을 통해 다양한 기호와 욕망이 표출되는 건 좋다고 생각한다. 출판계 문화가 다양해지는 것이니까. 기독 출판계가 전통적으로 주력해 오던 것도 중요하고 또 필요하지만, 복음의 메시지를 담은 책을 좀 더 다양한 방식으로 내는 출판사가 많아지면 좋겠다.

눈여겨보는 출판사는 임혜진 대표가 운영하는 1인 출판사 '옐로브릭'이다. 얼마 전 <마흔에게 그림책이 들려준 말>이라는 책도 냈더라. 다양한 시도를 하면서 재밌게 하고 계신 것 같다.

- 그동안 만들었던 책 중 가장 아끼는 책 혹은 '인생 책'이 있다면.

사실 내가 작업한 책을 다시 읽는 것이 쉽지는 않다. 교정했던 기억이 머릿속에 남아서 잘 읽지 못하는데, 작업했던 책 중 지금도 자주, 매주 보는 책은 <메시지>성경이다. 요즘 교회 유년부 교사분들과 매주 <메시지>성경을 읽고 있다. 지난주엔 바울 서신을 읽었는데, 다들 너무 좋아하신다. '성경이 본래 이런 것이었구나' 알게 된다고. 개역개정으로 볼 때는 근엄하고 부담스러운 명령 같았다면, <메시지>성경으로 읽으니 바울의 편지가 생생히 전달되고 곧바로 위로도 받고 어떻게 살아야 할지 배우게 된다고. 그만큼 누구나 쉽게 읽을 수 있는 성경이 <메시지>다. 지금은 내가 작업했다는 생각이 들지 않고 이 책 자체가 굉장히 소중하게 여겨진다.

'인생 책'이라고 하니까 부담스러운데… <다시, 성경으로>를 고르겠다. 이 책이 다루는 내용은 아마 5년 후에는 상식적인 이야기가 될 것 같다. 그때까지 많이 읽히면 좋겠다. 성경은 규범적인 정답을 찾아내기 위한 도구가 아니라, 누구나 볼 수 있는 이야기라는 점을 정말 잘 보여 준 책이다. 나는 이 책을 보면서 몇 번 울었는데, 나 말고도 많은 분이 그런 얘기를 하셨다. 우리 신앙생활이나 교회가 잘 다뤄 주지 못하는 지점들을 이 책이 잘 건드려 주는 것 같다. 하나님이 이 책을 통해 우리 삶을 만져 주시는 것이기도 하고. 거창하게 인생 책이라기보다는, 읽었을 때 전혀 후회가 없을 만한 책으로 꼽고 싶다.

- 앞으로 기독 출판 혹은 1인 출판을 꿈꾸는 이들에게 조언한다면.

책이 좋아서, 그것을 나누고 싶어 하는 일이라면 적극 권하고 싶다. 마음이야 충분할 테니 '정말 그 길을 가려 한다면' 3가지를 점검해 보면 좋을 것 같다. 우선 '필요'다. 내가 내려는 책이 내가 보기에 좋은 건 분명할 텐데, 그게 '독자들에게도 필요한 책인지' 하는 고민이다. 독자들의 고민과 질문에 응답하고, 기쁨과 위로를 줄 수 있는 책인지 충분히 고려하지 않으면, 자칫 교회 내 뒤쳐지는 사고·문화, 기독 출판 시장의 폐쇄적 성격 때문에 동시대 독자와 함께 가기는커녕 퇴행할 위험도 있다고 본다.

둘째는 그 필요를 독자에게 전달하는 '전문성'이다. 기독 시장의 도서와 경쟁하지 말고 일반 도서와 견주어도 빠지지 않는 문제의식과 내용, 형식, 디자인이어야 한다. 그래야 내가 고민한 '필요'가 독자에 가닿을 수 있다.

마지막으로, 출판은 큰돈이 되지 않는 '장기 사업'이 되기 쉽다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 초기 투자금이 필요하고 한동안 수익 내기가 쉽지 않다. 어느 정도 회사 운영이 되어야 완성도 높은 책을 낼 수 있는 여건도 마련된다.

- 바람이불어오는곳 독자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우리 독자들은 교회나 기독 서점이 아니라, 직장과 학교, 거리와 일반 서점에 있다고 본다. 여러분들에게 다가가는 책, 교회의 경계에 있는 사람들에게도 말을 거는 책을 내고 싶다. 교회 안에 있든 밖에 있든, 어떻게 살 것인가를 고민하는 이들은 누구나 '신앙 여정'에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 과정과 결과가 '즐거웠으면' 좋겠다. 책을 보는 독자가 '지금 내게 필요한 책이다', '따뜻하고 예쁜 책이네', '갖고 싶다' 하는 마음이 들 만한 책을 만들도록 노력하겠다. 그런 연결과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출판을 하고 싶다. 설레는 마음으로 기대하고 기다려 주시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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